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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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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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 언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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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오로지 진실만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 조지 오웰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20.05.09 리뷰제목
요즘의 언론기사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인들이 쓴 기사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긴 대부분의 언론기사들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편이지만 어쩌다 접하게 되는 기사들을 보면 우선은 쓴웃음만 짓게 된다. 물론 모든 언론인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저널리스트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리뷰제목

요즘의 언론기사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인들이 쓴 기사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긴 대부분의 언론기사들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편이지만 어쩌다 접하게 되는 기사들을 보면 우선은 쓴웃음만 짓게 된다. 물론 모든 언론인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저널리스트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젓게 만든다. 단지 무늬만 저널리스트인 사람들이 쏟아내는 진정성 없는 기사들은 수많은 가짜뉴스를 양성하거나 혹은 그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 읽게 된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는 무엇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일전에 [더 저널리스트 :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진실을 파악하여 충분히 분석하고 편향 없이 자기주장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마르크스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저널리스트였다는 생각에 두 번째 책으로 조지 오웰을 읽었다.

 

조지 오웰은 저널리스트이기에 앞서 작가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동물농장]이나 [1984]에서 그가 그려낸 세상은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전체주의 풍토를 비판한 것이지만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지금의 세계가 더욱 작품 속에서 오웰이 그렸던 세계와 유사해지지 않았나 싶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단지 빅 데이터로 바뀌었을 뿐이고, 우리가 생각하기를 멈추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비판의식이 사라졌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동물농장]에서는 자신들의 무지가 자신 스스로를 옭아매고 만다는 사실을 통해 민중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음을 경고하면서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르포를 통해서 당시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꼼꼼히 기록하여 저널리스트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오웰은 양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그는 영국일간지 <트리뷴>에 근무하면서 칼럼을 쓰기도 했고 <옵서버>에는 책의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끊임없이 자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이 작성한 많은 기사와 칼럼, 기고문을 주제와 의미별로 묶어 정리한 저널리스트 작품집이다. 역자는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글들을 선별하여 글의 소재를 늘 현실의 삶과 사회문제 속에서 찾은 오웰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역자는 오웰의 글들을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라는 여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책에 싣고 있다. 오웰의 글을 읽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저널리스트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오웰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버마에 대한 글에서 팩트를 알지 못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진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영국인 혹은 더 나아가 힘 있는 국가의 국민이 자국의 이익을 외치며 정의나 평등 같은 신념을 저버리는 행위 역시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오웰은, 진실을 알리겠다고 노력이 없다면 거짓 프로파간다가 인간들 모두를 서로 말살하게 만들 것이라 우려했다. 나치버전으로 쓰인 전쟁과 나치가 아닌 이들이 묘사하는 전쟁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지만 이 중 어느 쪽이 역사로 남겨질지는 역사적 증거가 아니라 전투의 결과가 결정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대중이 믿는 진실이 언제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오웰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오웰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작가이자 저널리스트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비겁함’을 꼽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웰은 ‘내가 반대하는 건 위선이다. 무력을 수단일 뿐이라고 정당화하면서 특정 무력수단에만 반대하고 불평하는 위선, 전쟁을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전쟁을 유도하는 사회구조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런 위선 말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어딘가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의 글을 곱씹어 읽을수록 지금 우리사회에 범람하는 자칭 저널리스트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편견이나 자기확증에 사로잡혀 어떤 사실조사나 분석 없이 정파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짐에도 어떤 사과나 반성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겁함은 우리사회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들의 수준과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저널리스트라고해서 그들에게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판이든 옹호든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함이 제일의 요건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부하여 지식을 쌓아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진실을 바탕으로 윤리적 보도를 하려는 진정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오웰을 읽으면서 우리사회의 저널리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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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인류는 비이성적이고,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u*******9 | 2020.03.18 리뷰제목
코로나 19의 가공할 여파로 도서분야에도  장르를 막론하고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도무지 그 쪽으로는 손이 가지 않는다. 평소 관심없던 분야이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마케팅에 혹해서 사봤자 재미있게 읽힐 것 같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같다. 그 대신에 내가 선택한 분야는 "조지 오웰"이다.올해 들어 결정한 일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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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가공할 여파로 도서분야에도  장르를 막론하고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도무지 그 쪽으로는 손이 가지 않는다. 평소 관심없던 분야이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마케팅에 혹해서 사봤자 재미있게 읽힐 것 같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같다.

그 대신에 내가 선택한 분야는 "조지 오웰"이다.

올해 들어 결정한 일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자마자 들었다.

책은 1946년 11월 29일 <트리뷴>지에 기고된 한 칼럼으로 시작하는데 역자는 이 글에다 '인류는 비이성적이고,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을 만들어 달았다.

칼럼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열린 유엔총회소식을 다루고 있는데 각 참전국들의 대표들은 '논의'라는 형식적이고 허울뿐인 액션을 취하며 서로 위신 세우기에 지나지 않은 승리를 각자 선언하는 선에서 전쟁을 종식하겠지만 앞으로의 인류사회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내다 보고 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오웰이 BBC에서 <트리뷴>지로 이직한 1943년 전후로 2차 대전에 대해 기고했던 글들을  크게 6개의 주제로 나누어 편집하여 소개하였는데 신문 사설 분량의 글들이라 한 편 한 편 읽다 보니 이틀  새 거의 다 읽었다.

 

물론 내가 유럽 근현대사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 처지이기에 소설을 읽듯 막힘없이 읽어내려가는 건 아니었지만 오웰이 문장을 길고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닌데다  특별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역자가 친절히 각주를 달아 설명해 두어서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 중 재미난 글 몇 개를 추려 보았는데 앞서도 밝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조지 오웰'이란 사람과 그 삶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첫번째. '유색인 차별을 멈추려면'

특정 인종에 대한 영국내 대중의 반감이 전혀 없는 이유가 영국인들에게 특유의 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당시(2차대전진행중)까지는 영국내에서 인종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어이쿠야... ㅋㅋㅋ

 

 

 

그러면서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드는 예는 얼핏 단순한 듯 하면서도 개개인에게는 상당한 행동력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칼럼을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이 있는 사고에의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두번째. '유럽 지도와 시민들의 무지' 

각 나라별 세계지도가 품고 있는 징후(내지는 음모)에 대한 언급이 새롭다.

지도를 선전용으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해봤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구나 싶어 놀라웠다.

그러므로 각국의 세계지도에는 '민족지도'와 '정치지도'가 존재한다는 오웰의 말은 엄연한 사실일 거라 여겨진다.

 

  

 

 

 때문에 각국의 국민들이 최소 어느 나라가 자기 나라(혹은 우방국)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지, 포탄을 쏴서 선박을 폭파할 수 있는 해안이 어디인지, 또 어느 해안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지와 같은 개념은 알아야 적어도 그 나라 국민 개개인의 외교 정책 의견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할게요.)

 

 

 

세번째. '파시즘 정의 내리기'

나역시도 파시즘이니 파시스트니 하는 말에 대해 명확한 의미를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나치랑 비슷한 말 정도로만 막연하게 가늠할 뿐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꼬집는 글이다.

 

 

 

 

파시스트를 정의하기 위해서 보수주의자니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국수주의자니 하는 무슨 무슨 주의자들에 대한 정의를 기껏 분류하여 줄세워 놓고는 정작 영국인 대부분이 쓰는 파시스트의 유사어는 '양아치'라고 정리하는 대목에서 아주 빵 터졌다.

 

 정말이지 이런 류의 표현에는 항거불능의 매력을 느낀다.

 

 

 

그와 더불어 글 말미에 남들이 다 그런다고 해서 '파시즘'이란 단어를 아무렇게나 '욕 대용'으로 쓰지 말라는 충고는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경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약 50여개의 칼럼 중 60퍼센트 이상이 적어도 한 줄 이상의 위와 같은 위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책이 국내 온라인 서점 1위라는 곳에서 리뷰가 달랑 2개 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자기 전에 힐링하려고 실행했는데 애나벨의 썸네일을 띄우는 유투브 알고리즘만큼이나 알 수 없는 일이다. (feat.빨간내복야코님)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면, 머릿 속이 온통 침몰하는 배에 관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는 조지 오웰.

그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의 삶을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조지오웰

#더저널리스트

#한빛비즈

#김영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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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20세기 초반을 살아낸 사회주의 기자의 현실비판 평점10점 | y*****2 | 2018.04.08 리뷰제목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작가이기 전에 기자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칼 마르크스 등의 기사들을 통하여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조명해보는 기획시리즈의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http://blog.yes24.com/document/9853914>를 읽고 그의 문학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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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작가이기 전에 기자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칼 마르크스 등의 기사들을 통하여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조명해보는 기획시리즈의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http://blog.yes24.com/document/9853914>를 읽고 그의 문학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역기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조지 오웰이 예견한 전체주의는 오늘날 모든 사회의 밑바닥에 숨어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치와 무관한 글을 썼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조지 오웰이 활동하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제국주의가 각축을 벌이고, 파시즘이 대두되고,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을 치던 때였습니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을 엮은 이는 ‘오웰은 지금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이때 지식과 진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7쪽)’라고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합니다.

1903년 인도의 모티하리에서 출생한 오웰은 19살 때 버마에서 인도제국경찰로 근무했고, 30살에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34살 때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고, 36살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38살부터 BBC라디오에서 방송대본 쓰기를 2년, 40살부터는 <트리뷴>에서 문학편집장으로 2년 근무하면서 <동물농장>을 발표했고, 42살부터는 <옵서버>,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의 전쟁 특파원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47살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숨졌습니다.

엮은이는 주로 조지 오웰이 근무했던 <트리뷴>지에 기고한 칼럼 57개 가운데,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 등 6개의 주제로 나누어 정리하였습니다. 그의 관심사가 유럽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지역으로까지 넓혀진 것은 버마에서 근무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제국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이에 맞서기 위하여 영국이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시 영국 정부와 국민들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수주의적 분위기였습니다. 유럽을 지배하려는 나치의 속셈을 묵인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고, 독일과 담합하여 동유럽을 분할하려던 소련이 연합국의 편에 서자, 과거 핀란드를 침공한 전력을 눈감아주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살면서도 오웰은 식민지 인도의 국민이나 유태인 및 폴란드인 등 난민을 비롯하여 유색인들까지 살면서 겪는 차별대우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좌파, 노동당원, 공산주의자들의 편협한 이기주의까지도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프랑스사회에서 일어난 부역자 처단 움직임과 관련하여, 오웰이 인용한 ‘괴물에 맞서 너무 오래 싸운 이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고 만다. 심연을 너무 오래 응사하다 보면 어느새 심연이 그를 응시할 것이다(169쪽)’라는 니체의 말은 시사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봉합이 되었다가 다시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스라엘 국내의 문제도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만, 요즈음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싶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제대로 읽은 오웰의 작품으로는 <카탈루냐 찬가> 뿐인 듯하여, 그의 대표작들을 다시 읽어볼 계획입니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이 그의 작품을 읽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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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평점10점 | g*****3 | 2020.10.03 리뷰제목
[도서협찬]올해 [1984] 소설을 읽었다. 저자의 작품은 너무 익히 알려져 있어서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작품이다. 그런데 [1984] 소설을 읽고나서 문득 왜 저자는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일까? 동물농장 이나 1984 는 그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에 이 점에서 궁금해졌다. 그리고 오늘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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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올해 [1984] 소설을 읽었다. 저자의 작품은 너무 익히 알려져 있어서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작품이다. 그런데 [1984] 소설을 읽고나서 문득 왜 저자는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일까? 동물농장 이나 1984 는 그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에 이 점에서 궁금해졌다. 그리고 오늘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과 신념을 알게 되었다. 


조지 오웰은 살아생전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다. 전시를 겪은 사람은 겪지 않는 사람과 다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하여튼, 조지는 살아생전 글로써 정치 세력을 비판했다. 영국이나 인도에서 태어났고 당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를 했던 시기다. 부조리한 사회를 봤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힘들게 생활을 하면서 글로 인도에서 겪은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앞서 [더 저널리스트: 헤밍웨이]처럼 자료를 모으고 분류해서 낸 책이다. 마찬가지로 조지 오웰이 쓴 글로 일기장, 에세이, 컬럼 등 방대한 자료를 찾았고 오웰의 저널리즘 책은 절판된 것이 많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하여튼, 어마한 자료를 정리해서 낸 책이 바로 [더 저널리스트]로 조지 오웰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책은 평등,진실,전쟁,미래,삶, 표현의 자유 라는 목록으로 되어있다. 오웰은 인종차별에 대해 반대를 했고, 전쟁 특히 영국이 제국주의에 대한 것도 비판했다. 수 많은 젊은이들이 한 순간에 죽게 만드는 전쟁과 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실날하게 비판한다. 세계지도에 대해 자국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것은 국수주의가 보이는 징후이며, 더 나아가 시민들이 제대로 지도를 봐야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한 나라에 대해 왜곡이 될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도 읽는 것이 인기를 얻으려면 전쟁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또한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영국의 참전을 지지하는 태도에서는 '전쟁이란 악을 선택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라고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서 옳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언제나 사실만을 적었고 늘 객관적으로 전쟁이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객관적이로 이성적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글은 시대가 변했어도 생각할 것을 던져주었다. 오히려 편하게 살 수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고 본국이 저지른 식민지와에 대해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독일이 저지른 전쟁에 대해 훗날 재판정에서 선 히틀러와 함러에 대한 글도 있다. 최근 독일 전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함러 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는데 평범한 사람이 그저 명령에 복종 했다는 점이 소름이 끼쳤다. 여기에서도 히틀러는 무죄라는...포로를 직접 죽이지 않았고, 산 채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단지, 전쟁의 도화선을 당겼다는 것 뿐인데...


[그들은 무죄인가]를 읽으면서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을]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죽는 것이 왜 더 나쁜가? 적국에서도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영국군이 독일과 독일 점령국를 기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제거 될 거면 골고루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글에 놀라기도 했으나 이건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 대한 오웰의 비판 목소리다. 아군과 적국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말이다. 사는 동안 평탄치 않는 삶이었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 아내와 같이 스페인을 탈출했고, 젊은 나이에 건강이 악화 되었는데 결국 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죽기 1년 전 최소한 10년은 더 살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허무하게도 오웰의 생명은 다음해에 사라졌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남긴 책들은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각인 되고 있다. 전쟁은 여전히 진행이 되고 있다 물론, 과거처럼 세계대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곳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전쟁을 일어나고 있다. 만약, 지금 조지 오웰이 존재한다면 이 상황을 두고 무엇이라고 적을까...문득 생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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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MDCCXXXV. 조지 오웰은 신념에 투철했다. 그래서 '저널'은 날카롭고 '소설'은 오롯했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z******8 | 2024.03.09 리뷰제목
[한빛비즈 138번째 리뷰] 앞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야 겠다. 그동안 쓴 리뷰는 '로마숫자'로 전체 표기를 하고, '출판사별 통계'는 리뷰의 첫머리에 장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가별 통계'도 따로 냈으면 좋겠지만, 워낙 중구난방으로 읽고 있고 지금까지 리뷰한 것을 '따로' 카운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련다. 이제 내게 주어진 '리뷰 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리뷰제목
  [한빛비즈 138번째 리뷰] 앞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야 겠다. 그동안 쓴 리뷰는 '로마숫자'로 전체 표기를 하고, '출판사별 통계'는 리뷰의 첫머리에 장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가별 통계'도 따로 냈으면 좋겠지만, 워낙 중구난방으로 읽고 있고 지금까지 리뷰한 것을 '따로' 카운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련다. 이제 내게 주어진 '리뷰 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은 시간동안 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련다. 어느 날, 내 리뷰가 멈추면...나도 없을테다.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저널리스트'라고 꼬집고 싶다. 못난 정치꾼들의 '독재'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깨어 있는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지금의 세계는 '펜이 사라진 시대'를 지나고 있다.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은 본분을 잊은 지 오래고, 구독자들의 외면마저 받고 있다. '방송매체'는 못된 정권에 장악되어 '나팔수 역할'만이 전부인줄 착각하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새로운 매체로 자리잡은 '너튜브' 같은 곳에 기대를 걸어야 할 판이지만, 이곳마저 '가짜뉴스의 온상'이고 보니, 저널리스트가 살아남아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깜깜한 시절이다. 그렇기에 '저널리스트'라기엔 한참 부족하지만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 분명 '깨어 있는 분'들이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늘 깨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책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앞선 '헤밍웨이'와 '마르크스' 편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이들은 '소설가'이며 '사상가'이기도 했지만, 부당한 일에 참지 않은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사람'들이 남긴 저널들을 짜깁기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하지만 '시대순'으로 쓰여진 저널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따로 묶어서 엮었기 때문에, 이들이 펼쳐낸 '생각의 변화'나 '저널리즘의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각각의 책들에는 '그들'이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저널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회적 문제'가 있는 곳에 '저널리즘'도 함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의 세계적인 혼란이 벌어지는 한복판에 '저널리즘'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저널리스트'들의 생각들을 한데 엮어서 모두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고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내 깜냥으로 그것들을 한데 엮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쨌든, 이 책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전쟁으로 혼란스런 아픈 시대를 살아간 조지 오웰이 참지 않고 쏟아낸 저널들을 한데 엮은 책이다. 오웰이 1903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을 했으니 1, 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은 셈이다. 주요 저작물은 미얀마 주제 인도제국경찰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쓴 <버마 시절>(1934), 파리와 영국에서 궁핍한 생활로 연명하며 쓴 <파리와 런던 안팎에서>(1933)을 출간하였으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1938), 영국과 소련의 정치를 우화 형식으로 쓴 <동물농장>(1945), 그리고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미래사회를 그린 <1984>(1949) 등을 펴냈다. 하지만 그는 소설만 쓴 것이 아니다. <트리뷴>지를 비롯해서 다양한 신문에 정치적 논평을 써내는 등 날카로운 비평가로서의 모습도 훌륭히 보여주었다.

  그리조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네편내편'을 가리지 않고 비판할 것이 있으면 참지 않는다는 속시원한 '사이다' 역할을 자처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이쪽저쪽'에서 다구리를 당하는 처지에 서기도 했다. 특히, 오웰은 '영국인'이면서도 '영국인'을 저격하는 글을 많이 썼다. 이를 테면, '무비판적인 애국심'은 참 애국심이 아니라 '국수주의'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자 대대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핀란드 군인에게 보낸다며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소련이 갑자기 '연합군'편으로 돌아서자 소련을 지지하며 뜨개질로 완성된 물품을 소련에게 보내는 영국인들을 향해 '모순덩어리'라며 비판을 한 것이다. 이처럼 영국인들은 '신념'조차 잃어버렸다며 맹렬히 비판을 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식민지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에는 둔감하면서 자국민들이 받는 조그만 불편에는 악다구니를 퍼붓는 '우매한 대중'을 향해서도 아낌없이 비판을 날렸다.

  우리는 정의나 평등과 같은 신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할 뿐, 그런 신념 따위는 자신들보다 '더 훌륭한 분들'의 전유물이고, 더 웃긴 건 '그런 분들'만이 입에 달고 직접 만들어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선심을 쓰듯 베풀어주는 것인냥 철저히 '남일'처럼 생각한다. 그러니 자신들에게 닥친 '불공정, 불평등한 일'이 발생을 했을 때만 부랴부랴 신념을 끌어들여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든다. 그러나 그런 호소에 '응답해주는 이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왜냐면 더 많은 대중들이 '그따위 신념'에 그닥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다른이의 고통'에 둔감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간섭하거나 참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관심'을 모아주란 말이다. 불평등한 일이 발생해도 '관심'을 쏟아줘야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잡기'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가'는 실종되고 '정치꾼'만 남아 국민을 우롱하고 '대국민 사기'를 벌이려는 못난이들만 설치는 마당에 '관심'마저 없다면 한국정치는 바로 설 희망조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정치참여'가 절실하다. 정치하는 사람치고 '믿을만한 사람'은 100% 없다. 그러니 정치인을 믿고 정치를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철저히 감시하고 언제나 감시해야 마땅하다. 특히,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치인, 국민을 위해서 자기가 할 일을 말하기보다 국민을 위한다며 상대를 헐뜯는 일에만 열심인 정치인,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한 점의 부끄럼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정치인은 절대로 뽑으면 안 된다. 그런 당을 지지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는 '소신'을 갖고 해야 마땅하고, 대중은 '신념'을 갖고 지지해야 나라가 바로 서는 법이다.

  적어도 조지 오웰은 '자기만의 신념'에 투철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였으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명백해지면 '부족했다'고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웰의 저작물은 오롯하고, 오웰의 저널은 날이 번뜩인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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