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빨강머리 앤』. 언제 읽어도, 다시 읽어도 늘 좋은 책. 아마 출판사 별로 몇 권을 소장하고 있고,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세트 전권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소설가가 직접 번역한 허밍버드 클래식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앞서 김서령 작가가 번역한 『빨강머리 앤』의 그 후의 이야기 『에이번리의 앤』을 읽지 않고 배길 수는 없다. 그 설렘에 읽게 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학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매슈 아저씨가 죽고 마릴라 아주머니 때문에 다시 에이번리로 돌아온 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앤을 위해 학교를 양보했던 길버트 때문에 에이번리로 돌아왔지만 굳이 길버트는 그 사실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앤의 나이가 고작 열일곱 살이라는 거다. 처음 초록지붕 집에 왔을 때보다는 컸지만 여전히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학교의 아이들에게 매 보다는 사랑으로 대하려는 앤을 볼 수 있다.
마릴라에게 먼 친척이 있었는데 데이비라는 남자아이와 도라라는 여자아이가 이곳 초록지붕 집으로 오게 된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얌전한 아이인 도라보다는 사고뭉치이자 장난꾸러기인 데이비에게 정이 가는 두 사람. 처음 앤이 초록지붕집에 왔던 때를 기억하기 때문인지 몰랐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폴 어빙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앤과 마을에 새로 이사온 해리슨 씨와 친구가 되는 과정들을 보다 보면 그 시절의 앤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앤의 시선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고통도 따르지만 참 기쁜 일이라는 걸 말야. 아이들의 편지에 마음이 꽤나 뭉클해졌어. (143페이지)
결국은 말예요. 정말 근사하고 행복한 나날이란 건, 막 멋지고 놀랍고 신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진주알로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소박하고 사소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257페이지)
사랑스러운 앤은 어느새 성큼 숙녀가 되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신처럼 부모가 죽은 먼 친척 아이를 사랑으로 대한다. 또한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으로 대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처음 초록지붕 집으로 왔을 때 만났던 다이애나 하고는 여전히 우정을 나누고 에이번리에서 없어서는 안될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디 그 뿐일까.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숲속 돌집에 사는 숙녀를 알게 된 앤의 행동들은 감동적이다. 누구냐를 떠나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앤에게 배울만하다.
잘 왔어, 앤. 네가 올 줄 알았어. 넌 오후의 사람이니까. 오후가 너를 데려온 거겠지. 서로 통하는 존재들은 늘 함께 나타나거든.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숱한 문제들이 생기는 거지. 그걸 모르니까 서로 짝을 찾느라 천국이랑 지상을 헤매면서 힘을 빼는 거고. (381페이지)
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탄생한 초록지붕 집으로 오기 전의 이야기는 무척 슬프더니 미래의 앤은 흐뭇하게 한다. 길버트와 대학을 가고 새로운 미래에 발돋음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좋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기에. 앤의 새로운 삶에 응원을 보낸다.
앤이 너무 커버렸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자신과 같은 결을 가진 폴 어빙의 말을 들어주고 라벤더하고도 친구가 되긴하지만... 앤은 책임져야할 것들이 많다. 고아가 된 마릴라의 먼 친척 쌍둥이도 돌봐야하고, 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도 가르쳐야한다. 늘어난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다 무매력이란건 아니지만 예전에 나왔던 인물들만큼 정감가지도 않고..반짝반짝 사랑스럽던 앤의 모습이 안보여 아쉽다.
앤이 선생님이 되어 이어지는 이야기.
어떤 글에서 읽은 적 있다.
하고 싶은 걸 모르겠다면 선생님이 되라.
선생님이 되어 배운걸 가르쳐줘라.
이건 굉장히 돌려서 나에게 배움을 지속하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다.
배우는 자리다.
앤이 아이들과 부딪이며 배우는 많은 감정들.
그건 메슈가, 마릴라가 앤에게 배운 것들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베어드는 흐뭇한 미소.
순수함이 가져다 주는 행복한 생각.
어린왕자가 지적하듯 어른에게 부족한 건 순수함과 상상력이다.
어린이는 이걸 가지고 있다.
에이번리는 앤의 성장을 보여주고, 앤보다 어렸던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여준다.
순수함을 조금 잃어버린 앤이, 더 없이 순수한 아이들과 지내는 학교 이야기는 정말 좋았다.
선생님은 어린이에게 순수함과 상상력을 배우는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