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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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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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독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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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넬레 노이하우스 저/김진아 역
산 자와 죽은 자
사악한 늑대
넬레 노이하우스 저
사악한 늑대
사랑받지 못한 여자
넬레 노이하우스 저
사랑받지 못한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넬레 노이하우스 저
너무 친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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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장기 이식에 얽힌 복수극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8 | 2022.08.09 리뷰제목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후 타우누스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산자와 죽은자 스나이퍼라 불리는 연쇄 살인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고군분투하며 해결해나간다 산자와 죽은자는 장기 이식에 얽힌 사랑과 복수라는 소재로 왜 스나이퍼라 불리는 자가 왜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을 죽였는지 범인추적에 나서게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생각지도
리뷰제목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후 타우누스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산자와 죽은자 스나이퍼라 불리는 연쇄 살인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고군분투하며 해결해나간다 산자와 죽은자는 장기 이식에 얽힌 사랑과 복수라는 소재로 왜 스나이퍼라 불리는 자가 왜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을 죽였는지 범인추적에 나서게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개를 산책시키던 노인 손녀 곁에서 요리를 하던 부인 빵집 종업원과 학교 선생님까지 그들은 다른 사람이 봐도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스나이퍼의 총에 맞아 살해된다 

 

왜 그들은 죽었을까 아무리 봐도 피해자들간의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죽은 이들에게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다 과연 사이코패스의 짓인걸까 그들이 왜 총에 맞아 죽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스나이퍼에 대한걸 알아갈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결국에는 생각지도 못한 슬픔과 맞닥뜨리게 된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스나이퍼를 잡을 수 있을까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범인이 잡혔다는 희열보다는 그가 왜 스나이퍼가 되었는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내몰렸는지 나온다 그리고 슬픔도 함께 몰려온다 

 

이 책의 소재는 장기 이식의 이면이었다 스나이퍼가 죽인 사람들은 장기이식과 연관성이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서 장기이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생명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생명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 판단을 내리고 보호자를 궁지로 몰아 장기이식에 동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장기를 적출해갔다 그 이후 스나이퍼는 자신이 피해자들을 하나씩 총을 쏴서 죽인계기가 된 것이었다 범인은 누구인지 끝내 밝혀졌지만 스나이퍼에게서도 아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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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세월호와 메르스... 평점10점 | l****1 | 2015.06.16 리뷰제목
작년엔 세월호가 있었고 올해는 메르스가 있다. 우리는 강한 기시감을 느낀다. 수수방관이나 다를 바없는 무력한 대처도 모자라서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정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언론 통제에다 진실을 알려는 국민의 욕구마저 다짜고짜 유언비어 엄단이라며 협박부터 하고 보는 모양새까지 마치 좀 더 광범위하게 세월호 참사가 또 한 번 반복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리뷰제목

 작년엔 세월호가 있었고 올해는 메르스가 있다.

 우리는 강한 기시감을 느낀다. 수수방관이나 다를 바없는 무력한 대처도 모자라서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정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언론 통제에다 진실을 알려는 국민의 욕구마저 다짜고짜 유언비어 엄단이라며 협박부터 하고 보는 모양새까지 마치 좀 더 광범위하게 세월호 참사가 또 한 번 반복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든다. 메르스는 형벌이라고. 세월호 참사를 분명한 책임 규명과 엄중한 심판으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들에 대한 신의 독화살이라고.


 세월호 참사를 우리는 일부만이 겪은, 그렇게 그들만의 아픔이라 여겼다. 하여 신은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만들었다. 남의 일이기에 강건너 불구경했고 그랬기에 교통사고라며, 유족은 보상만 바라고 인양은 세금 낭비라는 망언도 서슴없이 했다. 하여 신은 우리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았고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말해야 할 것에 침묵했다. 누군가 비를 맞고 있을 때, 그 비 역시 언젠가 우리들이 맞을 수도 있을 폭우였기에 곁에 서서 함께 견디고 더불어 이겨나가야 했지만 우리 모두는 자기만 피할 수 있는 우산을 찾기 바빴다. 하여 신은 서로를 불안하게 보도록 만들고 아예 홀로 격리시켜 버렸다.


 메르스는 신의 집게 손가락이다. 그것은 똑바로 우리를 항하면서 다그치듯 책임을 묻고 있다. 어찌하여 외면했냐고,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서둘러 잊어 버렸느냐고. 메르스는 우연한 재난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듯이. 그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의 방관과 망각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자주 보지 않았던가?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자들에게 역사는 언제나 가혹하게 복수해 왔다는 것을. 모든 위정자들은 과거의 아픔일랑 서둘러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라고 잘도 말한다. 하지만 과거를 제대로 결착 짓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 그런 미래란 그저 다이너마이트의 심지에 불과하다. 저 끝에서는 과거에 행한 무책임한 망각이 계속 불꽃처럼 타 들어와 결국은 폭발시키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메르스처럼. 그러니까 세월호를 강 건너 불구경 했던 우리에게 남아있던 미래란 심지는 고작 1년 뿐이었다. 진정한 미래는 심지를 끊을 때 보존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절은 오로지 분명한 원인 규명과 엄중한 심판 그리고 통렬한 자성만이 가져올 수 있다.


 이제 한 권의 소설을 이야기하려 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소설로 이제는 제법 우리에게도 익숙할 이름인 넬레 노이하우스의 '산 자와 죽은 자'라는 작품이다. 당신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 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게 이 소설은 정확히 지금 우리들 모습의 반영이었다. 소설은 복수극이다. 바로 그 복수를 당하는 대상에서 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복수자에겐 리스트가 있다. 오래된 과거에 한 여인에게 죽음을 선사한 자들의 리스트다. 그런데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죄책은 동일하지 않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주도한 자들도 있고 단순히 조력한 자들도 있다.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자들도 있다. 하지만 복수자의 총탄은 동일하게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머리나 심장을 뚫는다. 죄질은 달랐으나 형벌은 동일하다. 얼른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복수자였던 이우진(유지태가 연기했던)의 말이다. "조약돌이나 바윗돌이나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적극적으로 저지른 자와 그저 지켜보기만 한 자의 죄책이 같을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맞다. 우리 형법은 분명히 '정범'과 '방조범'으로 구별하고 있다. 하지만 복수는 그렇지 않다. 복수자의 눈엔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다 '그 놈'이다. 중요한 잘못을 했든, 사소한 실수를 했든 그들 모두가 한 데 어우러져 대체 불가능의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장본인인 것이다. 복수자의 눈에 개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똑같은 일원인 집단이 있을 뿐이다. 시선이 다르다. 법정이라는 제3자가 아니라 당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방은진 감독의 영화 '오로라 공주'도 그러지 않았던가? 엄마인 주인공은 딸의 죽음을 초래한 이들 모두에게 행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죽음으로 복수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역사야 말로 우리의 방관과 망각에 대한 가장 가혹한 복수자라는 것을.


 "그들이 무관심이나 욕심 때문에 야기한 고통을 그들도 직접 겪게 하려는 거죠."('산 자와 죽은 자. p. 410)


 복수자인 역사는 단죄한다. "너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문득 상기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든 현실이라는 것을. 당사자인 우리에게 역사의 복수를 피할 구실 따윈 없다. 우리 모두가 한데 어울려 역사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므로. 그래도 우리는 변호하고 싶다.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침묵했을 뿐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 것 같다. 밥벌이의 힘겨움 앞에서 좀 더 제대로 된 현실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도 보인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가지치기가 필수이듯이 이 각박하고 피말리는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적당한 무관심과 망각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역사는 바로 그런 우리의 생각을 비난한다. 그런 항변이, 변호가 역사를 망친 진정한 장본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의 본심을 보기 때문이다.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침묵과 망각. 그 모든 것의 근저에 있는 것은 주도적으로 역사를 망친 장본인들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어쨌든 모두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자기 본위적 욕망의 발로가 아닌가! 드러난 외형은 각자마다 다를지라도 뿌리는 같으니 역사에겐 모두가 똑같은 가해자인 것이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조약돌이나 바윗돌이나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다. 개체는 다를 지언정 가라앉는 본성은 똑같듯이 아무리 오대수처럼 그저 자신이 본 것을 친구에게 말한 것 뿐이라 해도 자신과 누나를 괴롭힌 자와 본성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눈을 가리고 있다. 그는 우리 개인의 행위를 보지 않고 그것을 낳은 본심을 본다. 그리고 그 본심에 있어서라면 우리는 누구도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 


 사실 레나테 롤레더, 파트릭 슈바르처, 베티나 카스파 헤세가 한 일은 중벌에 처해질 죄는 아니다. 이미 기억에서 지워지고 마음속에서 정리된 사소한 실수, 인간적인 실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소한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긴 시간이 지난 후 무시무시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p.473)


 메르스는 그런 우리에 대한 단죄이다. 소설처럼 세월호 참사를 남의 일이라며 무심히 정리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렸기에 날아온 총알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소설 속 리스트의 인물들과 똑같이 치사율 40%라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 우리의 무심과 망각에 대한 대가를 이토록 뼈저리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 자와 죽은 자'는 타우누스라는 가상의 마을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사실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산 자와 죽은 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간단하다. 남의 비극을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아픔이라 하더라도 결코 잊지 말고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관심을 갖고 기억할 것을 원한다. 소설에서 어머니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버지의 진실을 찾아내려고 홀로 분투했던 여인 카롤리네 알브레히트처럼. 주인공 형사인 보덴슈타인과 피아 보다 바로 그 여인의 여정이 소설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보여주기 위하여 넬레 노이하우스는 가족을 가져왔다. 시간적 배경도 크리스마스와 설날 전후로 가장 가족적인 분위기로 넘치는 때로 정했다. 가족에 유념해서 보다 보면 여주인공 피아의 결혼이 소설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 초반에서 피아는 신혼 여행을 앞두고 있다. 피아는 신혼 여행을 다녀온 뒤 동거 중인 크리스토퍼와 정식으로 결혼할 작정이다. 하지만 저격 살인이 일어나자 그녀는 도저히 사건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신혼 여행을 미룬다. 크리스토퍼는 홀로 외국으로 떠나고 피아는 독일에 혼자 남아 수사를 계속한다. 결국 크리스토퍼와 피아가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때는 사건이 해결된 다음이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일부러 에필로그까지 써가며 독자들에게 그들이 행복하게 결혼했음을 알려준다. 여기서 우리는 꼭 가족의 결합이 사건 때문에 저지당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도 가장 가족적인 분위기의 크리스마스와 설날 전후 내내 말이다. 이것은 마치 사건으로 인해 가족의 성립이 더 이상 불가능해 진 것처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이런 독백까지 한다.


 집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새 집을 얻은 행복한 가정. 그러나 이 밤이 지나면 가정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p. 453)


 궁금해진다. 작가는 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왜 구태여 가족을 소설의 중심으로 가져왔으며 사건과 가족의 불가능성을 연결짓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가족은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다.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심함과 과거 잘못에 대한 망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 개인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 우리가 사회가 저지른 타인의 아픔을 방관하고 그 잘못을 무심히 쉽게 잊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삶과 그다지 관계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 자신의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쉽게 나누고 담을 높이듯 그 경계가 확고하리라는 생각에 어디까지나 타인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쉽게 치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묻는다. 하여 그녀는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행했던 것처럼 그러한 타인의 비극과 사회의 잘못에 대한 무심과 망각이 만연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사적 영역의 형성도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넬레 노이하우스는 용의주도하게도 범죄의 모습을 하필이면 '저격'으로 가져온 것이다. 날아가는 총알은 그 어떤 경계도 넘나들기에. 또한 피해자들은 가장 사적인 상황에서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것과 같이 그 어떤 개인도 사회가 초래한 타인의 비극, 사회의 실패와 과오로 부터 벗어날 수 없다. 조약돌이든 바윗돌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복수자인 역사에게도 몸통이든 깃털이든 다 똑같이 보이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사회의 가장 작은 자의 아픔이라 할 지라도 내 일처럼 관심을 갖고 귀기울이며 그들이 당한 일과 이유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와 메르스처럼 무심과 망각은 언제나 반복된 비극을 낳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2차 대전의 과오와 만행을 어느새 잊고 날로 우익화 되어가는 독일 국민만큼이나 비슷한 착각과 오해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경고가 되어 줄 듯 하다. 타인을 아프게 하고 영혼마저 이기심으로 굳어버린 돌이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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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산 자와 죽은 자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3 | 2015.06.26 리뷰제목
과학이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책들이 많이 나온다. 막연하게나마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 그들로 인해 우리는 생활이 풍요로워졌고, 편리해졌으며, 생명은 연장되었다. 하지만 과학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대형 제약회사에 의해 행해졌던 다양한 인체 실험, 노벨상이나 기타 자신의 업적을 위해 이유도 모른 채 수술실에 오
리뷰제목

과학이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책들이 많이 나온다. 막연하게나마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 그들로 인해 우리는 생활이 풍요로워졌고, 편리해졌으며, 생명은 연장되었다. 하지만 과학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대형 제약회사에 의해 행해졌던 다양한 인체 실험, 노벨상이나 기타 자신의 업적을 위해 이유도 모른 채 수술실에 오르게 된 사람들. 하지만 누구도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가난하고 돈이 필요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이젠 그런 실험은 없고, 그걸 다양한 동물들이 대신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과연 옳은 것일까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는 어느 날. 개와 함께 산책하던 노인, 손녀 곁에서 요리를 하던 노부인,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여성, 그리고 학교 선생님까지. 전혀 개연성이 없는 살인이 일어난다. 그것도 어딘가에서 쏜 총에 의해. 묻지마 살인에 의한 피해일지, 아니면 계획적인 살인일지, 어디에도 단서는 없다. 그러던 중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부음 쪽지가 날아오고, 그 쪽지로 인해 피해자 주변의 과거 행적들을 조사하게 된다. 이들 가족에게는 과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봐도 되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그 가족 뒤에 거대한 슬픔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한때 장기 기증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혹 내가 뇌사 상태가 되면 장기를 기증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선행 정도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장기 기증에 대해, 인간의 탐욕, 그리고 욕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장기 기증의 순서를 모르지만 만약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뤄진다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울까?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왠지 믿음은 가지 않는다. 누군가 뇌사 판정을 받게 되면 의료진들은 가족에게 압박을 가한다고 한다. 지금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강조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서 장기 기증에 서명해야 한다고.. 옆에서 이런 식의 설득이 이뤄지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사인을 하고 나면 가족들은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장기가 적출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는 것. 그건 굉장한 충격이 될 테니까.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기증자에 대한 경외심도 무시된 상태에서 오로지 빨리, 효율적으로 수술을 끝내려고 하는 의사들. 또한 장기 기증 대상자 순서가 있음에도 돈이 있는 누군가는 뒤에서 돈을 마련해 그 순서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현실. 과연 누구를 위한 장기 기증이고 누구를 위한 합의인지 모르겠다. 가족들에게는 숭고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장기 기증이 의사들에게는 연구 재료나 다름없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렸다고, 잘못은 없다고, 사람이 죽은 것은 상황 자체가 나빴던 것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함을 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명예나 업적을 위해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실험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 미련. 피해자의 가족들은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살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은 너무도 잘 살고 있다. 어떤 법적인 조치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그랬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복수(?)를 꿈꾼 것일까? 가족을 잃는다는 슬픔. 너도 똑같이 너로 인해 네 가족이 다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어떤 것이든 다 무섭고 아프고 슬프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이 인간의 죄를 어떤 식으로든 단죄할 수 없다고. 하지만 죄를 지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산다는 것. 그게 피해자 가족을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장기 기증, 인체 실험 그리고 그로인한 가족의 아픔까지.

 

초창기의 작품을 좋아했다. 이후엔 몇 권만.. 생각나면 읽었는데 이번 작품은 좋다. 단지 재미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부분을 생각하게 하니까.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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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영화한편을 본것같은 작품 평점10점 | m********2 | 2016.10.19 리뷰제목
2년전 타우누스 시리즈를 접하면서 노이하우스의 팬이되었는데요 새벽까지 손에서 놓을수없을정도로 산자와 죽은자는 내용과 구성이 흥미진진해서 영화를 본것처럼 재밌게 봤습니다 다른 작가의 스릴러물을 여러권 읽었지만 노이하우스 작품이 최고인것 같아요 영화로 제작해도 손색없을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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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타우누스 시리즈를 접하면서 노이하우스의 팬이되었는데요 새벽까지 손에서 놓을수없을정도로 산자와 죽은자는 내용과 구성이 흥미진진해서 영화를 본것처럼 재밌게 봤습니다 다른 작가의 스릴러물을 여러권 읽었지만 노이하우스 작품이 최고인것 같아요 영화로 제작해도 손색없을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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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산 자와 죽은 자 평점10점 | q******5 | 2015.06.02 리뷰제목
'타우누스 시리즈'의 저자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 <산 자와 죽은 자> 77인의 리뷰단으로 당첨이 되어 먼저 읽게 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날카로운 직감과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피아와의 콤비가 이번 책에서도 돋보인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한 남자가 개와 산책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익숙한 패
리뷰제목

'타우누스 시리즈'의 저자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 <산 자와 죽은 자> 77인의 리뷰단으로 당첨이 되어 먼저 읽게 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날카로운 직감과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피아와의 콤비가 이번 책에서도 돋보인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한 남자가 개와 산책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익숙한 패턴을 이미 파악한 남자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방아쇠를 당긴다. 한 번에 목표에 정확히 명중시킬 정도의 사격 실력을 가진 이 남자는 누구이며 그는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한 번에 아픈 결혼이 있었지만 첫 눈에 반한 새로운 사랑하는 남자와 조금 장기간의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 허나 계절이 계절이고 수사팀의 인원이 부족한 탓에 강력반 수사반장 보덴슈타인은 피아에게 연락을 취한다. 사건 현장이 피아에 집 인근이라는 이유로... 사건 현장에 도착한 피아는 단숨에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느끼게 된다. 그녀의 피를 뜨겁게 하는 사건 현장을 두고 휴가를 간다는 것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연달아 같은 인물에 의해 두 건의 살인사건이 더 일어난다. 범인을 '스나이퍼'라 칭하며 그가 보낸 메일을 통해 세 사건이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세 번째 사건은 특히나 총알을 맞은 엄마를 곁에서 보게 된 딸과 손녀에게는 커다란 상처, 슬픔,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현장에 있던 딸은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죽었다고 느꼈지만 이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데...


강력반 내부에서는 스나이퍼가 누구인지 쉽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직 FBI 직원인 남자가 강력반에 배치되면서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강력반을 점령한다. 반장인 보덴슈타인은 자신으로 인해 피아가 진급하지 못한 것을 신경 쓰고 그가 사건 현장을 떠나도 좋을 엄청난 제안을 받게 되면서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나이퍼를 잡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나름의 방식으로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체포하는데...


제 생각에 우리가 찾는 범인은 아주 특이한 살인자 유형이예요. 사이코패스하고는 거리ㅏㄱ 멀고, 과대망상증 환자도 아니예요. 범인은 우리와 게임을 하는 게 아닙니다. 스릴이나 도전을 즐기는 것도 아니예요. 범인은 총 쏠 장소를 고를 때 도발이 아니라 오직 실용성만을 생각해요. 최적의 각도와 최적의 도주 가능성을 따져서요.  -p254-


죽어야 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산 자는 벌을 받을 것이고 죽은 자는 원을 풀 것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p355-


범인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싶다. 우리가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넘어 그가 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의 선택이 옳지 않지만 세상은 힘 있는 자에 의해 움직이고 이 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인물보다 꽤 있기에...


독일 미스터리가 재밌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 넬레 노이하우스... 그녀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산 자와 죽은 자'에서도 역시나 전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긴장감을 누출 수 없다.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책으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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