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
무성애 無性愛, Asexuality
누군가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완전히 없는 것을 뜻함.
인간의 마음을 편견 하나로 함부로 재단하고, 반대하고, 가벼이 여기는 태도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도드라지는 문제다. 이렇게 편견을 바탕으로 함부로 말한 사람 입장에서는 딱히 눈에 띄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니 기억에도 안 남을 만큼 사소하겠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상처가 한 겹 한 겹 마음에 쌓이는 것이다.
이제라도 서로를 위해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타인에게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시작점에 있는 책, 현암사의 「에이스, 무성애로 다시 읽는 관계와 욕망, 로맨스」가 있다.
이 책은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모두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 자신은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편견과 싸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런 무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곁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 그리고 소수자의, 더 나아가 소수자의 소수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지구에 존재하는 인구 수를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불특정 다수에게 읽기를 권장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사례뿐만 아니라,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예를 들며 대중매체에서 보여졌던 무성애에 대한 오류를 꼬집기도, 그레이 아나토미의 예를 들며 퀴어 플라토닉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는 이 책은 마치 포토샵의 색상표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사례가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성관계에 대해 여성의 경우는 그 행위를 좋아한다고 해도 항상 남성을 위해 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었는데, 그 반대의 경우 남성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성 고정관념 때문에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꺼리는 무성애자 남성이 인셀(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 주의자)과 종종 뭉뚱그려진다는 사례였다. 주변에 이런 성향의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처음 깨닫게 되는 무성애자 남성의 불편함이었다. 괜한 편견을 가져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사례.
두 번째는 2부의 6번째 이야기로 다루어지는 카라라는 인물의 사례인데,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면서도 무성애자로 자신을 정체화했다고 한다. 이 성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집단에서 그녀는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여기저기로 던져졌다고 하는데, 장애인 공동체에서는 장애인이 성관계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고, 무성애자 공동체에서는 무성애가 장애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태에서는 편견이, 편견을 가진 사람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자 문제임에도 말이다. 모두가 서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정체화하고 주장하는 것에 이것저것 토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으면 하는 두 번째 사례였다.
▲ 주변에 없으면 듣기도, 알기조차도 어려운 누군가의 이야기.
▲ 보편화 되었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
당연시 여기는 욕망인 사랑과 성관계에 그것들이 없음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더욱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사랑, 성욕 이외의 다양한 개념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될 수 있음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이 책은 무성애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사랑과 관계의 형태 역시도 곁다리로 소개하고 있고, 필자 역시도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정의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함과 동시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성애와 무로맨스의 개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본 서평은 현암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