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조금 더 든든하기를, 책을 읽고 나서는 스스로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기를, 그래서 기어코 불행 울타리를 깨고 나와 닿음이 소중해진 사회에서 온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OECE 국가에서 자살율 1위라는 ‘뉴스’는 하도 익숙해서 둔감해진 거 같다.
그러다가 가끔 유튜브 등에서 하루에 몇 명이라고 계산해 줄 때에야 많다고 느끼며 충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뿐.
우리 주변에는 유쾌하고 즐겁고 안정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조금만 따져보면, 그건 우리가 불편하고 불안정한 것들을 어딘가로 밀어버린 결과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는 브런치에서 호응을 얻은 글로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책.
작가 현요아씨는 가족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마음의 아픔과 방황을 겪었고 이를 토대로 책을 냈다.
무겁다.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이야기.
그렇기에 찬찬히 저자의 글을 따라가며 책장을 넘겼다.
와- 라는 경탄조의 표현을 쓰기 외람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낯설고도 새로운 세계가, 나는 몰랐지만 따뜻하고 희망적인 커뮤니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것은 자살 유가족 모임이다.
그 모임을 통해서 ‘자살 사별자 가족’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또 실제적인 마음 치료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얘기함”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유가족을 돕고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에서는 치료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포탈 사이트의 믿을 만한 까페에 이르기까지
저자 현요아씨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혹여 넘어지지 않도록 실제적인 ‘정보’를 주는 데에도 지면을 할애했다.
현요아 작가는 오래전부터 ‘드라마 작가’의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작가의 글은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이고, 때로 재치가 넘친다.
마치 최애 드라마의 대사들처럼.
글의 느낌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몇 가지로 정리되지는 않는데
어두움을 실제로 겪은 사람의 언어이고, 그래서 너무도 ‘오리지널’하다는 생각은 읽는 내내 들었다.
정돈된 표현들로 정갈하게 표현한 글도 있지만
거칠고 날카롭우며 읽는 내가 다 혼란스러워지는 표현들도 적지 않다.
근데 책장을 덮으면, 아 정말로 그래서 자살 사별자 유가족의 마음이
이러한 여정을 통과했겠구나,를
진심으로 느끼게 했다.
나와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었고
절대 나만은 겪지 않을 거야, 하는 감정과 마음 상태도 아닌 게
우울감이고 조울증 이라는 것.
어떤 정신의학자나 연구자의 글이 아닌
작가의 손 끝을 통해서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문학으로써도 손색없는 책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였다.
책 중 에서
기쁨을 억지로 누적하면 슬픔 어린 순간을 만날 때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이 자책감과 죄책감을 그만 뭉쳤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것이 많고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므로.
나에게는 밝은 면도 유쾌한 면도 있는데 왠지 글을 쓸 때만은, 가감 없이 아픈 면을 쉽게 보여 준다. 그래선지 사회생활을 할 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러 더 밝은 면을 보인다. 나를 무작정 어두운 사람으로만 납작하게 해석할까 봐.
아직 그 굴레에서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 모르는 순간에는 억지로 답을 찾겠다며 자신을 괴롭히기보다 허심탄회하게 모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쪽이 홀가분하다.
혹시 쓸모 있는 사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어른의 쓸모는 누가 결정하나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도 굳건히 삶을 지속하는 어른처럼, 가끔은 애도하며 슬퍼하다가 일상에서는 작은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일이 현실에 부딛혀 점차 사라지고 있을 때 내가 내 미래를 기쁘게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난다. 실은 그 힘이 새롭게 태어날 원동력이다.
세상에는 다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정과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는 덕분에 나도 그쪽에 가까이 가는 법을 익혔다. 다만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만큼이나 많다.
빌런을 해하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움에 휩쓸려 나를 지우는 일은 없도록.
흐릿해지는 좋은 사람을 선명하게 만들겠다고. 함께 다정한 길을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날일 것이다. 짙은 안갯속에서도 우리는 눈에 띄게 또렷할 것이다.
#브런치대상 #에세이 #나를살리고사랑하고
#에세이추천 #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
한때, 우울증으로 죽음을 생각했던 나에게, 동생을 떠나보낸 사별자의 이야기는 남아있는 사람의 아픔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스물일곱, 그리고 세 살 터울의 둘째 여동생, 막내 남동생이 있는 맏이지만, 여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실 책을 읽기도 전에 왜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분명 전조 증상이 있어, 알아차릴 수 있는 무언가를 느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었다.
여동생은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고, 학원 선생에게 성추행을 당한 중학교 시절부터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고 한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동생은 아마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을 거다. 역시 존중이 없고, 개념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약자다. 정말 씁쓸하다. 누군가는 "멘탈이 그렇게 약해서 사회생활 하겠어?" ... 하고 궁시렁 거릴 지 모르지만, 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감정을 모른다. 그리고 작가의 여동생은 스물 하나,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나이에 자신의 삶을 놓아버렸다.
솔찍히 "사별자"라는 말이 낯설었다. 대부분 자살자의 시점에서 그들과 연결된 사건이나 감정이 주를 이루는데, 사별자, "자살자의 남겨진 가족"의 감정은 깊이 생각지 못했다. 결국 죽은 사람은 따로 있고, 살 사람은 살게 마련이 아닌가, 그런데 작가가 처해진 감정의 곡선은 깊어진 웅덩이처럼 바닥을 향해 떨어질 듯 하면서도 눈이 쌓인 거리처럼 다시 높아 진다. 우울과 조증이 번갈아 가며 감정을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거다. 이런 감정의 극은 저자가 조울증과 범불안 장애를 앓고 있다는 소개 글로 미리 파악할 수 있지만,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감정과 사별의 아픔에도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 생활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경험은 슬픔과 동시에 삶의 치유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응원하게 된다.
작가는 유족 심리 상담을 한다. 존 볼비의 애도 과정은 순서가 있지만, 작가의 감정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감정이 올라온다. 얼마 전 읽었던 애도 과정에 대한 책 [왜 상처 받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까] 속에서 설명하는 애도 과정의 단계가 생각이 났다. 현요아 작가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의 책과 연결되는 감정에 첨부한다. 존 볼비의 애도과정, 그 순서를 보면,
- 애착 대상이 사라졌을 때 겪게 되는 애도 반응
1. 충격을 받고 무감각해진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힘든 일을 겪으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순간 멍해지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현실감을 못 느낀다. (넋을 놓는다)
2. 더이상 만날수 없는 대상을 보고 싶어 찾아 헤매는 행동을 보인다.
위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다음단계로 넘어갈수가 없다.
지금 당장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고 어떤 식으로든 재회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평생 남을 수 있다. 또한 생각과 판단, 감정과 욕구 같은 마음의 여러 기능이 잠식될수 있다.
3. 애착의 대상이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단계다.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면서 빈자리를 실감한다.
이단계의 울음은 분노보다 체념에 가깝다. (입맛이 없고, 불면증으로 고생한다.)
이 단계에서 자신을 향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 자살 시도)
-> 두번째 단계에서 충분한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고 아무리 애써도 재회할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게 일반적이다. 2번의 과정을 모두 경험하고 나야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다.
결국, 두번째 단계에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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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때, (차라리 지병이 있거나 떠나보낼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면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있을 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싫은 감정이다. 차라리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함께 죽게 해달라고 빌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빈 자리, 상실감을 차분히 써 내려가며 작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가는 과정은 상실감 속 삶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동생이 "언니는 어떻게 나를 안 따라왔어?" 라고 툴툴 댄다면, "그러게, 같이 있자고 말했잖아. 바보냐?" 라고 대답했을거라는, 그 말들 조차도 서글프다. 나라면? 꾸준히 책을 읽어가면서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물음이 계속된다. 나라면, 그 감정을 느낄 수 없게, 그냥 한 날 한 시에 함께 죽게 해달라고 할 것 같다.
우울증이 극심했을 때, "나중에 죽음이 가까워 지는 그 때, 연명 치료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다. 어차피 죽으면 나의 장기는 썩는다. 누군가를 위해서 나의 조직이나 장기가 도움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장기 기증과 조직 기증의 신청을 위해 전화로 문의한 적이 있었다. 온라인도 가능하고, 등록 기관을 방문해도 된다. 우편이나 팩스 어떤 방식으로도 신청할 수 있어서 기증을 신청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작가도 온라인으로 조직 기증을 신청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만약에 장기 기증 신청을 하고, 그 시기에 맞춰 나의 가족이 아파서 장기를 이식해야 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는. <살아 있는 자 간(間) 기증 : 부부·직계존비속 · 형제자매 · 4촌 이내의 친족간 · 타인 간의 살아있는 자 간(間) 장기 기증> 에 해당한다.
평소 동생과 함께, 자주 가던 그 곳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장소를 찾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는 장소와 추억을 결합해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한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래서 작가가 말했던 "인품이 훌륭하지 않은 상사를 만나, 잔뜩 데인 회사가 을지로에 위치한 탓에 중구라는 얘기만 들어도 마음이 아린다" 는 표현에는 풋 하고 웃음이 났다. 나에게 있어 중구는 너무 맑아 구름 한 점 없던 날씨에 동생과 월차를 함께 내고 거리를 거닐던 바로 그 장소였다. 장소는 다르지만, 나에게도 억울하고 아린 감정을 주는 장소가 있는데, 신림동이 그렇다. 그 곳은 월급을 떼였던 회사가 있던 곳이다.
누군가는 장소에 대해 크게 연연해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작가가 느꼈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은 새롭다. 내가 읽은 글이 나의 생각과 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은 공감과 함께 미소를 짓게 한다. 특히 그 감정이 누군가를 잃었던 감정이라면 더 강하게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개그우먼 허안나 님의 자매상과 연관지어 방송에서 흐르던 눈물을 보고 얼마나 따라 울었던지, 끔찍히도 우애가 좋던 언니를 한 순간에 잃는 감정을, 나는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가슴에서 오는 슬픔을 전부 느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작가의 에세이도 동생을 떠나 보낸 그 날 이후의 이야기라 어떤 날은 슬픔을, 또 어떤 날은 아픔을 잊기 위한, 담담함을 그린다.
자신을 붙잡고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바쁘게 생활해야 한다는 지인들의 말에 출근을 결심하지만, 결국 작가는 사직서를 쓴다. 동생이 떠난 이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면, "집에서 나오지 않아 오랜 기간 타인에게 손을 뻗지 않고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은둔자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어둠을 충분히 만끽하며 안도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동생을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추스리는 시간 중 책을 출간한 것도 애도의 한 종류가 되지 않을까.
작가가 말한 한 마디가 이 책을 설명해 줄 것 같다. "책을 덮고 나서는 스스로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기를, 그래서 기어코 불행 울타리를 깨고 나와 닿음이 소중해진 사회에서 온기를 나누기를." 죽어서 이별하는 감정은 누구나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치유의 한 꼭지를 먼저 경험한 이에게서 들을 수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은 어쩌면 공감이라는 감정을 시작으로 고독을 어루만질 수 있는 연대의 편지가 되지 않을까.
처음 내용이 너무나 무거워서 이 책을 읽으면 내가 더 우울해지고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 과정을 글로 쓰면서 극복해가는 한요아작가님을 보니 제 마음도 하나하나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막막함이 힘이 들고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 조금더 즐기면서 느끼면서 살아가자고 생각하게 해주었네요.
책을 읽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라서 다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