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생각하기 쉽다. 법이 만들어진 목적과 추구하는 가치를 생각하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법 기능의 본질은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더 가깝지 않을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일반 대중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오는 까닭은 이 때문일 것이다. 성 범죄와 관련해 특히 이런 사례를 적잖이 보게 된다. 비슷한 내용의 범죄도 성별에 따라 형량에 과도한 차이를 보이거나 범죄 내용과 형량이 불균형해 보이는 경우처럼 우리의 상식과 거리가 먼 판례들 말이다. 《상냥한 폭력들》은 이런 성범죄 사례를 변호사의 전문적인 시각으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상냥한 폭력들》은 성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등 일반 대중의 인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판결을 지적하는 한편,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와 기관을 사례를 곁들여 소개한다. 성 범죄 관련해 피해자의 대응 방안과 함께 제3 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사건의 진실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직장동료를 성폭행으로 신고한 이에게 무고죄로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거나 먼저 안부를 물었다는 등의 이유로 성폭행이 아닌 합의된 성 관계라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역시나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댓글도 빠지지 않는다. 이 판결은 과연 진실에 가까울까. 이 판결을 이끌기 위해 쓰인 근거는 합당할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상냥한 폭력들 #동아시아 |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려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전방위로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한다. 성폭력을 당한 후에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 표정이 밝아도 안 되고, 남자와 술을 마시거나 태연하게 데이트를 해도 안 된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나는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
#소년심판 의 마지막 사건이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이었는데, 피해자는 친한 친구 부모의 차가운 말에 손목을 그어야 하고, 가해자들은 "사실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냐?"라며 뻔뻔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는데, 성폭력, 성추행 등의 고통 속에서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 혹은 명예훼손죄로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현재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은의 변호사도 대기업에 다니면서 겪었던 경험이 직장인에서 변호사로 인생을 바꾸게 한 사건이 되었으며, 도움이 필요한 많은 여성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담아 피해자를 변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도둑맞은 이에게는, 문을 잘 잠그지 않아 도둑이 들었으니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해를 입은 이에게, 가해자를 화나게 했으니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다르다. '나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세상의 시선에 추가 가해를 입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만 남겨지게 되는 상황을 보며,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이라면 언제까지 이런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할까 싶은 착잡한 마음이 든다.
더 이상 강간 피해자들에게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 및 협박이 있었느냐?"라는 질문이 아닌 충격 받은 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며, 사회와 법의 시선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 책을 많은 여성들이 널리 읽고 깨닫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거다'는 개소리고,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시대를 살아가는 약자이자 여성으로서 내가 나를 지키고, 이 사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반드시 들려줘야 한다.
"법은 세상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법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다면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상의 인식과 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온당하다면 묵직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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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은 늘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에 등장한다. 피해자측 변호인. 그는 피해자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낸다. 변호사가 된지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니 본인이 피해자이던 시절부터 홀로 서 있던 시절까지 합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법조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실명을 밝히지 못한 무수한 익명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가해자였다가 시스템의 지지자 혹은 가해자의 방조자이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일 수도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건들 아래 가려진 그 얼굴들의 단면을 본다. 그는 그 얼굴들 안에서 무자비함을 봤다가 오랜 권력의 권위를 보았다가 숨으려 하는 가엾은 얼굴들을 보았다가 결국에는 타의에 의해 강해져야 하는 피해자의 얼굴을 본다. 이 책은 어쩌면 좌절의 역사이고 간간히 등장하는 승리의 서사시이다. 전쟁에 참가하는 저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다가 넘어졌다가 우연한 응원에 다시 일어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좌절의 강을 건너기를 반복한다. 책에 등장하든 등장하지 않은 현실의 벽을 마주한 그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님을 되뇌인다. 그렇다. 세상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피해자가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피해자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법원만의 노력으로, 사법기관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가 함께, 범죄의 수단이 되는 폭력과 협박의 외연을 넓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89쪽 "세간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만 있으면 믿어준다'라며 역차별을 운운하지만, 지금까지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형사처벌은 이렇듯 피해자들이 여러 편견과 난관을 이겨내고 용기내어 한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를 객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151쪽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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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고 있다. 오늘 하루와 어제 하루는 달라진 것 같지가 않은데 1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허나 그러한 발전과 성장이 개개인의 피해자를 달래줄 수는 없는 일이다. <상냥한 폭력들>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 더 많아진 피해자들의 투쟁을 담고있는 책이다. 미투 이후에 더욱 피해를 고백하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그에 못지 않게 늘어난 것이 무고죄 소송이다. 이은의 작가는 그런 현실 속에서 투쟁을 위한 이들의 칼과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이들의 투쟁을 우리가 알아봐주고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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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자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다. 변호사가 쓴 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첫째로 민사보다 형사상 유죄 인정이 왜 보수적이게 되는지 일반인에게 잘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의 법감정과 형사처벌 여부의 괴리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개선이 필요하지만. 두 번째로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절차상 미비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수건의 변론을 통해 겪은 사례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고,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가 명확하다. 보완의 필요성을 더 느끼기도 했고 막연하지 않아서 좋았다. 세 번째는 피해자가 되었을 때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설명해준다. 내가 피해사실을 알리기로 마음먹을 수 있는 어느 날을 위해, 사법적으로 유효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이 흘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준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 같다. 오히려 '미투'를 강조하기보다 '법조인의 책'임을 어필하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부제처럼 미투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데 동의한다. |
펼치기 전의 두려움보다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용기를 낸 사람들, 생존한 이들, 도움을 준 이들, 손을 잡은 이들, 무엇보다 이들의 바로 옆에서 변론한 저자가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385개를 맡아 8년 간 변호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성폭력의 최전선, 현실의 면면을 기록했다.
지옥처럼 어둡고 절망적이고 무겁고 괴롭지 않았다. 단지 대략 안다고 생각한 모르는 내용들이 많아 정신 차리고 공부했다. 오늘의 읽기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이해를 위한 시간이라 다행이다.
“왜 가해자와 단둘이 술을 마셨나요?” “왜 문을 열고 도망치지 못했나요?” “왜 좀 더 저항하지 못했나요?” “왜 동맥대신 정맥을 그었나요?”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가해자의 강제성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라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1)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2)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3)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번호는 임의로 첨가)
‘주변인’으로서 우리는 상식에 반하는 법 적용 - 판결 -을 만난다. 종종 법은 더 나아가 가해자의 편에 설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낙인은 가해자가 받을 처벌보다 무거울 때도 있다. 그리고 가해자들 혹은 조직범죄자들은 매일 진화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 성범죄 이외의 가정 폭력, 친족간 성폭력, 데이트 폭력, 사내 성폭력, 낙태죄, 공공기관 내 성추행, 성매매 등 여러 사건 사례와 피해자들을 향한 조언들을 담았다.
우선 ‘법’이란 아주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다는 것,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시행된 경험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한 이들이, 무고, 명예훼손, 위증으로 고소당해 변호사를 찾아오는 현실을 숨 쉬며 이해할 수 있다. 미투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을까? 놀랍게도 사회나 제도는 바뀐 것이 없고 성범죄 가해자를 위한 대책 수단들은 정교해졌다.
그러니 범죄 성립이 되지 못한 범죄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손쉽게 비난의 화살을 쏘면 안 된다. 신고하면 가해자에게 고소당하고, 제도와 법은 당신에게 죽고 싶을 만큼 확인을 요구한다. 본인 잘못은 없었냐고. 혹은 피해가 발생한 것이 맞냐고.
한국 사회는 ‘가해자’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이다. 가해자의 심신 건강을 우려한 예산도 집행되었다는 기록을 다른 책에서 근래에 읽었다. 고객이 간절한 개업변호사들은 최선을 다해 가해자들을 모셔, 법망을 최대한 피하게 해주겠다고 무수히 손을 뻗는다. 많은 판사는 성인지감수성이 없다.
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내용은 수많은 이들이 함께 경악한 n번방 사건에 대해 저자는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 사건이 중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n번방 사건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이 수없이 계속된 이유가 ‘긴급 대책’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고민과 제대로 된 개선과 대책이 없어서일 것이다. 사회가 가장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범죄 형태를 담당하는 저자가 가장 힘주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 한국에서는 스텔싱stealthing - 성관계 도중 동의 없이 피임기구 제거 - 을 처벌한 법적 제도가 없다. 관계의 성격이 무엇이건, 상대가 원하지 않는 짓을 일방적 욕구로 자행하는 것은 폭력이다. 현실적이고 법적인 책임 부여에 동의한다.
- 형법에서 채택한 ‘최협의설’은 피해가자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 이를 완전히 억압하는 수준의 폭행이 이루어져야 강간죄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누구의 기준인가, 사력을 다하다 죽거나 죽기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가. 이것이 마녀라면 물에 빠져도 안 죽으니 죽이고, 물에 빠져 죽으면 마녀가 아니니 무죄라는 것과 얼마다 다른 이야기인가.
- 남성의 성적 매력과 능력을 여성어로 바꾸면 ‘문란’이라는 낙인이다. 실제 범죄의 정체는 ‘힘’과 ‘권력’을 야만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라, 대체로 가해자의 경제사회적 위치가 더 높다. 불평등이 상식인 한국에서 피해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기란 고단하고 분노가 치미는 모욕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어떤 세상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고 어떤 세상은 숨 막히게 변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현상태로 존재할 이유를 더 찾지 못하는 것들은 괴리를 메우고 인식을 따라잡으며 변해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시민의 공감, 공분, 공론에서 나온다. 그런 반응이 없는 사회는 아무 기대와 희망도 없는 공간일 뿐이다. 모르는 면면들은 끝없이 등장하고 다 소개하고 싶지만 부탁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주고 대신 정리해주고 대신 말해주는 것이 탐탁지 않다면 무엇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들로 당사자와 사건 자체에 다가가셔야 한다.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해 힘들지라도 속지 않는 것, 호도되지 않는 것, 배워서 알고 있는 힘은 약하지 않다. 꼭 필요한 순간 하나로 모여 세상과 역사와 누군가의 삶을 바꿀 것이다.
“너무 늦은 때도 없고 이미 끝난 삶도 없다. 지레 포기할 때 삶도 끝난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다시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삶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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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오늘은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입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은 여성폭력추방주간입니다. 매일 목숨을 연명하는 월말 업무를 하는 주제에 일주일간 뭘 하고 살면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 덕분에 하루는 채웠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법 적용의 한복판에 사람이 있다.”
“사건이 교훈을 남길 때, 피해자도 사회도 안전해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대부분이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 기반한다. (...) 보상에는 익숙해지고 책임에는 소홀해지는 순간 타인의 예의와 친절을 멋대로 해석하게 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여부보다 피해자의 회복이 더 중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이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2차 가해는 침묵하게 만들고,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을 양산시키고, 피해자 때문에 시끄러워져 일상이 불편해졌다는 무지한 판단마저 내리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현재를 살아내기도 미래를 상상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피해자가 사라진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조금씩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낀 이유는, 피해자가 더는 숨지 않고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자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목소리에 함께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때로는 뭉클하기도 했다.”
“법은 세상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법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다면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상의 인식과 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온당하다면 묵직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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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놀랍지도 않은 뉴스가 성폭행 관련 기사다. 아, 그랬구나 그렇다네 하고 넘겨들었던 사건들은 항상 시작만 컸고 끝은 작았다. 이 책에서 그 끝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든 일어나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내 주변에는 없어서(아니면 내가 몰라서) 내가 아니라서 귀막고 눈가리고 살았고 그저 부끄럽다. 책에서 작가님이 말하려는 것 중요한 것을 몇개 콕 찝어서 말하자면 1. 성폭력을 당하면 증거채집을 해둬야한다. 그게 뭐든간에 상황과 대상 행위를 특정할 수 있는 것으로,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으로! 2. 소송과정에서 분명히 상처받게 될 것이다. 그 점을 분명히 알고 각오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지말고 객관적으로 소송에 임해야한다. 3. 내 상황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한다. 타인은 나의 감정을 나의 말로 이해한다. 내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그들은 알지 못한다. 4. 무죄를 받는다고 해서 성폭력 가해자가 죄의 굴레를 벗은 것은 아니다. 민사소송을 통해 나의 피해에 대해 보상받자. 5.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로 도움을 요청하자!!!!! 책읽는 내내 빡치고 답답했다. 가해자들의 개소리와 무고주장에 힘겹게 싸우는 피해자들의 레파토리가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보여서 다행이기도 했다.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인식이 바뀌고 사회가 움직이고 법이 변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잊지 말아야겠다. |
155.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나는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
성폭력 피해 상담 및 법률 지원을 주로 해 온 변호사인 저자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정리해서 묶은 것이다. 가정 폭력, 친족간 성폭력, 데이트 폭력, 사내 성폭력, 낙태죄, 공공기관 내 성추행, 성매매 등 저자 본인이 맡았던 여러 사건 사례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들이 담겨 있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재판에서 형을 감경받는 가장 많은 사유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랑해서 우발적으로 때렸다고 말한 경우다. 한국은 여전히 처벌 여부를 판단할 때 이를 참작한다. 우발적 본능이 아동이나 여성에게서 흔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가해자에게 '우발적'이란 때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릴 수 있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저자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의뢰인은 성폭력 피해 신고를 했거나 피해 사실을 말했다가 무고.명예훼손.위증으로 고소당한 피해자들이다. 미투가 사람들의 마음엔 변화를 일으켰을지 모르지만, 사회나 제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 처지에서 무언가를 해본 제대로 된 경험이 없다. 성폭력 무고의 경계선에 서서 성범죄로 성립하지도 않을 것을 신고하는 피해자 또는 당신은 성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법조인 혹은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문제인가라고 저자는 스스로에게, 우리에게 묻는다.
저자는 법이 약자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음을 인정한다. 성관계와 성폭력에서 주장하는 바가 서로 극명한 차이를 보일 때에, 법이 인정하는 성폭력과 일반 피해자들이 처하는 성폭력 상황에는 괴리가 있고, 그 괴리는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의 처지를 '함께' 고민한다. 그나마 성범죄와 관련하여 형사재판 판결과는 다른 민사재판 판결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법의 판결이 다르다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2020년 'n번방 사건'은 대중들이 폭발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n번방 사건'이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냐고 되묻고 싶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많은 'n번방 사건'이 꾸준히 있어 왔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을 오도하는 대표적인 범죄가 성범죄다. 사실 디지털 성범죄 대부분이 'n번방 사건'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와 제도가 해야할 일은 긴급한 대안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개선책임을, 저자는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스텔싱을 처벌할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연인이든, 일회성 만남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짓을 일방적 욕구로 자행하는 것은 폭력이다. 도의적인 책임을 현실적이고 법적인 책임으로 부여해야한다는 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현재 형법이 강간죄의 성립 요건으로 '최협의설'을 채택하고 있다.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 이를 완전히 억압하는 수준의 폭행이 이루어져야 강간죄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과연 '사력을 다한 저항'의 기준은 누구 입장의 기준인가. 또한 사법기관이 협박으로 인정하는 해악의 고지는 일반인들이 공포를 느낄만한 극단적인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해야 인정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자신의 인적 사항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워질 수 있음을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법은 아직도 물리적.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는 맥락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사건 사례를 접할 때마다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이는 건 쩔 수 없다. 성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객관적 증거가 잘 남지 않는다. 거기다 여전히 '문란'이라는 단어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여성을 향해 낙인을 찍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남성에게는 '능력'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피해자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대한민국사회에서 넘어야할 벽을 실감할 때마다 입안이 쓰다. 우리가 사회에서 누리는 작은 평등은 아픔을 겪은 개인들의 고단함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성이어도 법은 동등하게 적용된다. 특히 직장 내 성범죄는 성적 문제에 더하여 계급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남성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서 구성한 사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접한 사건들의 피해자를 보면서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은 권력의 소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피해 사실을 쉽게 꺼내놓지 못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피해자 중심의 법률 개정도 필요하지만, 실무에서 시급한 것은 궁극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무고죄를 빌미로 한 맞고소)이 가해자에게는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는 제도 마련이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종종 성폭력 가해자를 두고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는 가해자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가해자가,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많이 겪게 되는 입장은 '주변인'이 될 것이다. 이 주변인이 어떠냐에 따라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아니면 사건을 조속히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사건의 방향이 2차 가해로 향한다면 피해자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폭력과 갑질을 감수해야 하는 조직문화가 남으며, 그것은 남은 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된다. 피해자를 잡아 주는 손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저자는 주변인들의 건강한 가치관이 사회 곳곳에서 작동할수록 그동안 이례적인 판결로 여겨졌던 법원의 태도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법이 세상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과거에 머무른 상태에서 현재를 재단한다면 세상의 인식과 늘 차이가 생길테고, 법의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될지 모른다. 저자는 부끄럽고 불편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 대중의 공분을 당부한다. 공분조차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을테니.
책을 읽으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척 하면서 언론 매체가 전달하는 대로 받아들이며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진정성 있게 이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어떤 주변인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 |
상냥한폭력들 ?? 보라색을 입은 책, ‘상냥한 폭력들’이 찾아왔다.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기화가 되어, 작심하여 변호사가 되어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변호한다. 감사하다! 손을 잡아주는 당신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피해자가 조사 중 잠깐 쉬는 시간에 내 손을 꽉 잡았다. 경찰서 앞에서 만났을 때는 바들바들 몸을 떨고 얼음장처럼 손이 차가웠는데, 이제는 그의 손에 온기가 돌고 있었다.’ 라 는 부분을 읽으며 따스한 손을 느꼈습니다. 외국인이요 피해자요 약자의 손을 잡아 준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격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당신은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유흥업소 직원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포기하는 대신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 것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돈을 좇지 않고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유흥업소 직원이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거기에 인격 값이 포함된 것은 물론 아니지요? 존중해 주는 사람이 존중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삶을 다시 세우게 하는 당신은 회복자입니다. 의뢰인이 아픔의 시간을 지낸 뒤, ‘피해자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해 주었다고 해도, 피해자에게는 이제 재건해야 할 삶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사건이 끝난 후에도 그 사건의 여파 위에 살아가야 할 주체이기도 하다.’는 것은, 사건 뒤에 가려진 그들의 실상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들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 감사합니다. 미안함을 아는 당신은 진정 용서의 사람입니다. ‘피해자의 절대적 신뢰가 있어 사건에 덥석 뛰어들긴 했으나 한국의 상황도, 법조계의 현실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낀 사건 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다른 이주자 피해자들에게도 아직 이런 한국이라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음에 남습니다. ‘아직 이런 한국이라 미안하다.’ 주변인들의 함께 함을 기다리는 당신은 동역자입니다. 누군가를 힘들게 하려거나 무너지게 하려고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자기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일을 위해 주변인이 필요하다. 그 주변인으로 책을 읽는 나와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법도 바뀌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바뀌었을까? 법이 법대로 지켜질 때, 법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구습대로 이익을 좇고, 정치관에 따라 다르고, 윗선 눈치 보기 바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조인이 아니다. 또 하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지금은 여성 중심의 사회로 바뀌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남과 여가 평등한 대한민국을 꿈꾼다. 글을 맺으며, 억울한 가해자, 억울한 피해자가 없이, 서로 존중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사는 나라를 꿈꾼다. #상냥한폭력들 #이은의_저 #동아시아_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