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설민석의 <삼국지>'는 썩 맘에 드는 <삼국지>는 아니다. 방대하고 복잡해서 읽기 어려운 <삼국지>를 누구나 쉽고 재미나게 '시작'할 수 있는 <삼국지>를 쓰려고 했다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도 남지만, 그래서 '설민석'이 추리고 또 추려서 '핵심 포인트'만 쏙쏙 담아놓은 '설민석의 <삼국지>'가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렸느냐는 의문에는 적절한 대답도, 후한 점수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축약'하는 과정에서 '각색'을 하여서 '원작'의 깊은 맛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섬'까지 안겨주고 말았다. 한 마디로 온갖 값진 재료로 만든 '삼선짬뽕'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냉동건조 시킨 분말스프로 맛을 낸 '인스턴트 라면'을 대접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런데 아직 <삼국지>를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그게 애초에 설정된 '설민석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곱씹어보고 또 뜯으며 생각해보니 나름 재밌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왜냐면 <원작 삼국지>를 읽지 못한 독자들도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삼국지>가 있을 터인데, 보통 10권 분량의 책을 한두 권 읽다가 포기하던 독자들에게 '딱 두 권'만 제시했으니 일단은 '접근성'에서 아주 탁월함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줄거리의 '빠른 전개'는 '텍스트 읽기'에 서툰 '스마트폰 세대'에게 취향저격일 것이다. 물론 취향에 더욱 맞추기 위해서는 '삽화'를 2~3배 더 늘려서 '그래픽노블'의 수준까지 다다랐어야겠지만, 그러면 <만화 삼국지>와의 차별성이 없게 되는 우려를 낳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처럼 '설민석의 안배'는 탁월했다. 더구나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네임벨류'일 것이다. [역사 읽어주는 선생님]으로도 유명한 '설쌤'이 직접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기회에 <삼국지>를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 먹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어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 중에 고전이 되어 버린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할까? 라는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삼국지>는 전국민의 필독서였다. 비록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풍문이 돌 정도로 악명(?) 높은 고전이기도 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급격히 시들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이젠 '힘 있는 사람'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던 시절이 아니라 '투표'로 국민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널리 퍼지면서 '민주사회'가 정착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폭력'을 정당화하고 묘하게 '폭력지향적'인 <삼국지>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권좌'를 차지하기보다는 '권모술수'를 통해서 '권력'을 쟁취하는 모습이 점점 비호감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기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삼국지>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었다.
한때는 <삼국지>를 권하지 않는 책으로 선별하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말이다. '논술쌤'의 관점에서 '힘의 논리'와 '권모술수'가 넘쳐나는 책을 초등 어린이들에게 읽혀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바람직하지 않는 내용 때문에 어릴 적에는 읽힐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나인데, <삼국지>도 같은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들에겐 여전히 읽어줘야 할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찍부터 '조기독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극구 말리던 나였다.
하지만 이런 '잣대'를 적용하니 어린이들에게 읽힐 만한 '고전책'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역사라는 것이 '전쟁'과 '혁명'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어릴 적에 '역사'를 가르치면서 '거짓말과 폭력'만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골라서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정서와 사뭇 다른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서구적 고전은 살짝 꺼려도 좋겠지만, 동양의 고전은 '우리 정서'와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 '조기독서'를 해도 무방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사성어'와 같은 경우에도 '읍참마속'이니 '계륵'과 같은 <삼국지>에서 유래된 옛이야기가 엄청 많고, '유비, 형주 빌리듯'이라거나 '조자룡 헌창 쓰듯'과 같은 속담도 널리 쓰이는 마당에 무작정 '비교육적인 책'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가 서로 다른 궤를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굳이 '소설'은 가상이고 '정사'는 사실이라고 구분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굳이 따지자면 <소설 삼국지>는 유비 중심의 '촉한정통론'을 내세우고, <정사 삼국지>는 조조 중심의 '실제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일반대중에게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왕 읽는다면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라는 고민은 뒤로 미루고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그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삼국지>를 읽을까? 말까? 로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원작 삼국지>가 부담스럽다면 <만화 삼국지>도 있다. 또한 이책 저책을 읽다보면 <삼국지>도 '한중일'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다는 차이점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본(異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중적인 '촉한정통론'에 입각한 <삼국지> 뿐만 아니라 <삼국지 조조전>과 같이 '삼국지' 속 수많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쓴 색다른 책들도 맛볼 수 있다. 더구나 <반(反)삼국지>라고 해서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라 촉한이 삼국을 통일하는 엉뚱한 책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대중들은 '삼국지'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군상을 통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맛보고 싶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 요즘엔 '만화영화'는 물론 '영화'와 '게임'에서도 '삼국지'를 만나볼 수 있다. <삼국지>를 한 번 읽기만 해도 이만큼 즐길꺼리가 넘쳐나는데 한 번 읽어보지 않을건가?
책이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권으로 나뉜 책은 리뷰를 어떻게 해야 될지 참 난감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삼국지처럼 내용이 이어지는 경우에는 더 더욱 그렇다. 오래전에 삼국지를 읽으려고 어떤 번역본을 선택해서 읽을까 한참 동안 찾아보던 적이 있다. 그 때 「삼국지는 실패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책이다.」라는 식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 2권을 이제 막 읽은 지금 저 말을 다시 보니 좀 생각이 달라진다.
「삼국지 = 실패한 영웅들의 이야기」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실패하는 법을 말하지는 않는다.(물론 아직 원전을 읽지 않은 상황이라 단언하지는 않겠다.) 1권에서 영웅들의 치열한 전성기를 이야기하고, 2권에서는 그 영웅들이 늙고 쇠약해지면서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삼국지의 묘미는 이들의 치열한 전투장면이 아니고 그러한 영웅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치열한 전투에서야 적군이든 이군이든 (물론 그 중에 잔꾀로 제 발등 찍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이 자신들을 지탱하고 있던 소신이 무너지며 본래의 모습을 잃고 폭주(?)하다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건 유비 사단도 조조 사단도 거의 공통적이다. 솔직히 유비 마저도 그런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할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좋게 말하면 의형제의 결의가 이정도여야 되는 건가 싶지만, 평소의 유비라면 그는 의형제와의 결의와 황제로서의 의무에 균형을 이루었을 테니 말이다.
삼국지를 보면 크게는 정치판(국정 운영 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이 우선인..), 작게는 학교, 기업, 사회 곳 곳을 보는 것 같다. 1700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이랑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구석 구석 안 닮은데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 데쟈뷰 때문에 술 술 읽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왜 삼국지를 읽으라고 하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 특히 유비 사단들은 하나 같이 특출했다. 그리고 매 번 최선을 다하였고, 단결력도 결과도 좋았다. 그렇지만 늘 도망자 신세여야 했다. 서로 잘났다고 우격다짐도 없었는데 말이다.왜 유비 사단은 늘 도망자 신세여야 했을까? 실력도 출중했고, 내분 없이 충성심, 단결력도 좋았고, 책사 제갈공명의 전략으로 늘 통쾌하게 승리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그 원인은 찾지 못했다. 다음 번 다른 책을 통해 삼국지를 읽을 때에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천하 삼분지계를 호령하던 이들은 피터지게 싸우고, 천하통일은 사마염이 해 버렸는데, '재주는 곰이 불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라는 말을 이 상황에도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결말을 알고 봤어도 그 끝이 허무하게 짝이 없다.
책 말미에 저자는 이 책의 매력을 '평민으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어간 인물들의 기록' 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정치 싸움, 권력 싸움'이라 주인공 대다수가 평민이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는데, 되돌아 보니 정말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삼국지가 사랑받나 보다. 처음 접근하는데 꽤 오래 걸렸는데, 일단 이 책으로 시작하면서 삼국지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에 조금은 더 어려운 책을 통해 읽게 될 때도 이 마음이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번 휴가때 설민석 선생님의 삼국지 1을 구매한 후 5일동안 부지런히 읽었다. 물론 전체적인 내용은 소화했지만 잘게잘게는 하지 못했다. 설민석 선생님의 삼국지 2가 연이어 출간이 되길래 역동작으로(?) 구매를 바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역시 책의 구성만큼은 역대급이었다. 내용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을 이렇게 쉽고 다가가기 편하게 편찬해주신 설민석 선생님 이하 직원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마음속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