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쓰기는 결국 글쓰기다. 카피라이터는 결국 글쓰는 사람이다. 살면서 글을 써야 할 순간이 한 번은 찾아온다. 우리는 사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글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카피라이터가 되야 한다.
<누구나 카피라이터>는 그 순간을 대비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전작 <카피책>이 좋은 카피의 기준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었다면, <누구나 카피라이터>는 좋은 카피를 쓰는 과정에 집중한 책이다. 좋은 카피는 뿅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쉴새없이 붙이고 떼는 과정을 거쳐 간신히 건질 만한 카피 한 줄을 찾아낼 수 있다. 정철은 이번 책에서 그 지난한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책을 쓰면서 정철은 멋있는 카피라이터가 되는 길은 포기한 셈이다. 숙고와 장고를 거쳐서 겨우 쓸만한 카피 한 줄을 건져내는 건 그다지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좋은 카피가 번개가 내리치듯 번쩍, 하고 떠오르는 편이 훨씬 멋있어 보인다. 우리는 천재를 사랑해도 너무 사랑한다.
<누구나 카피라이터>에서 쓸만한 카피 한 줄을 찾아나서는 개인적인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 정철은 천재 타이틀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정철은 이 책 때문에 앞으로 천재 카피라이터 소리는 듣지 못하겠지만 용감한 카피라이터라는 새 별명이 생길 것이다.
쓸만한 카피 한 줄을 찾기 위한 고단한 여정을 공개한 정철의 용감함은 독자에게 용기를 준다. 우리나라에서 카피 제일 잘 쓴다는 카피라이터도 글을 쓸 때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는구나. 여전히 카피 쓰는 게 어렵구나. 내가 텅 빈 컴퓨터 화면 앞에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정철도 나랑 비슷하구나. 그러면 나도 언젠가는 정철이 쓴 것 같은 카피를 쓸 수 있겠다. 우리는 닮았으니까, 하면서 독자는 용기를 얻는다.
정철 카피의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 하나. 쉽게, 쉽게, 무조건 쉽게!
- 둘. 사람, 사람, 모든 것은 사람으로부터!
- 셋.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반드시 구체적으로!
글을 쓰다보면 자연히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정철은 글쓰기는 글쓰기이지 글 잘 쓰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글을 잘 쓰려고 하다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꾸 어렵고 멋있는 말을 쓰게 되고, 글이 길어진다. 모든 글은 짧고 쉬워야 사람들의 눈에 들 수 있다. 길고 어려우면 사람들은 읽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헤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카피여야 좋은 카피다, 라고 정철은 자신있게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재미난 이야기도, 가장 의미있는 이야기도 사람한테 있다. 그러니 사람에게서 소재를 찾아라. 좋은 카피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카피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해야 한다. 사람들의 안부를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해야 한다. 사람이 중심에 있는 카피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사람이 먼저다, 영원히.
개념어나 관념어는 갖다 버려라. 글을 쓴다는 건 그림 그리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어떤 종이 위에 그리는지만 조금 다를 뿐이다. 글쓰기가 원고지에 그리는 그림이라면, 일반적인 그림그리기는 (일반적이라는 말도 갖다 버려야 하는데 참..)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이다. 카피를 읽었을 때 머릿속에 한 편의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그러려면 아주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가 아니라, '눈물을 양동이 세 개만큼 흘렸다'여야 한다.
<누구나 카피라이터>는 <카피책>과 함께 읽을 때 눈에 보이는 내용이 두 배로 늘어난다. 전자가 로투스 비스켓이라면, 후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라고 할까.
글쓰기를 해야할 순간을 앞뒀거나, 그 순간을 미리 준비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필수다. 글을 읽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시대다. 많아야 30초 안에 두 세 문장으로 할 말을 다 전해야 했던 카피라이터만큼 이 시대에 부합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정철의 머릿속을 훔쳐가라. <누구나 카피라이터>에서. 고작 16,800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