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쓸모 :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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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쓸모 :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

리뷰 총점 9.8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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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심리/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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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흙 속에 저 정원 속에 - [정원의 쓸모]를 읽고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k*****o | 2021.03.23 리뷰제목
흙 속에 저 정원 속에 <정원의 쓸모>를 읽고       봄이 오면 시골집 마당과 텃밭에서 그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식물들을 깨우기라도 하는 듯 흙을 일구고 봄을 맞을 채비를 하는 까닭이다. 그는 바로 이 정원의 소유자이자 으뜸 정원사인 장인 어르신이다. 십 년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그를 결사코 만류하던 장모님을 아직도 기억
리뷰제목

흙 속에 저 정원 속에

<정원의 쓸모>를 읽고

 




 

  봄이 오면 시골집 마당과 텃밭에서 그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식물들을 깨우기라도 하는 듯 흙을 일구고 봄을 맞을 채비를 하는 까닭이다. 그는 바로 이 정원의 소유자이자 으뜸 정원사인 장인 어르신이다. 십 년 전 정년퇴직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던 그를 결사코 만류하던 장모님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은 환상의 콤비가 되어 두사람의 정원을 가꿔나가고 있다.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시골집을 찾을 때면 마당은 자연을 품은 놀이터가, 텃밭은 자연을 체험하는 현장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삼시 세끼를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니 이 모든 게 정원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서점에는 식물이나 가드닝(정원가꾸기) 관한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반려식물을 통한 위로와 자연이 가진 치유력에 대한 사람들의 높아지는 관심을 반영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에 본능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식물과 흙에 끌리는 걸까?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빈약한 나로서는 식물과 정원가꾸기에 관한 책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 시선을 거두어 우리에게 정원이 왜 필요한지, 나아가 그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정원의 쓸모>이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없이 이런(정원)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 그것은 성장을 돕는 파괴이기 때문이다.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본 듯 정화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 카타르시스다.(20쪽)

 

▦ 쉬어가기(정원의 쓸모 #1 : 비밀의 화원)

 

  처음 책제목과 책표지를 봤을 때 여타의 책들처럼 식물과 정원가꾸기에 대한 지식 및 정보를 전달해주는 책 정도로 여겨졌다. 이내 저자의 흙 묻은 손을 잡고 책 속에 펼쳐진 정원들을 눈으로 밟으며 걷노보면, 정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다 더 근원적인 물음과 궁금증을 품게 된다. <정원의 쓸모>는 저자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의 할아버지가 1차 대전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와 어떻게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첫 삽을 뜬다. 이어서 저자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땅을 파고 잡초를 뽑는 활동을 통해 상실에 대처했던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았고, 정원 디자이너인 남편을 만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정원을 만들고 가꾸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평소 우리는 식물을 돌보고 정원을 가꾼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의 감정을 돌보고 마음을 가꿔주는 건 아닐까 하고 저자는 되묻는다. 분노, 애통, 슬픔 등을 승화시키거나 창조적으로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원예라는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흙을 파고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는 일을 '파괴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파괴'는 성장을 북돋는 돌봄의 한 형태로 흙을 일굼으로써 공격성과 불안을 줄여주고 희망과 같은 선한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곧 원예는 본질적으로 식물과 사람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에너지를 쏟아 흙을 일구면, 무언가 대가가 따른다. 거기에 마법이 있고, 성실한 노력도 있다. 무엇보다 땅이 낸 열매와 꽃들은 현실이 된 '좋음'의 형태다. 원예에는 믿음을 줄 가치가, 그것도 우리 손 닿는 곳에 있다. 씨앗을 뿌리면서 우리는 가능성의 서사를 심는다. 그것은 희망의 행위다. 씨앗이 전부 발아하지는 않지만, 땅에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안정감이 느껴진다.(80~81쪽)

 

  <정원의 쓸모>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원예 프로그램(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가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연구사례가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원예가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나아가 회복탄력성을 길러준다는 점이다. 내향적 특징을 갖는 식물들과의 교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온과 평가받지 않을 자유를 가져다준다. 특히 뉴욕 라이커스섬에 자리한 교도소에서는 '그린하우스 프로그램'이 수감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공감을 가져왔다.

  이를테면 새와 곤충은 자유로이 교도소 한 편의 정원을 오가지만, 뿌리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수감자들과 똑같이 갇혀 있는 상태라는 사실이 일종의 공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과 사람의 취약성은 폭력의 희생자에게 잔인하고 가학적인 충동을 촉발할 수 있지만, 식물에는 고통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잔혹성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식물을 통해서는 안전하게 돌봄과 애정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젊은이 프랜시스의 경우는 앞서 수감자들과 또 다른 결의 공감을 식물들로부터 받았다고 밝힌다. "식물들은 연약하면서도 긍정적인 것 같고, 사계절을 버텨요. 여기 남아서 잘 살고 있잖아요."라고 말한 그는 '연약한 식물들'을 돌보면서 자신과 식물을 동일시함으로써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식물들이 그에게 존재의 다른 방식을 보여줬던 것이다.

 

▦ 쉬어가기(정원의 쓸모 #2 : 그린 핑거)

 

  워즈워스를 사랑하고 프로이트를 연구한 저자는 문학, 역사, 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정원의 숨겨진 의미에서부터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정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그의 폭넓은 이해와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에디가 스라이브 정원에서 처음 경험한 유대가 청결하고 상쾌한 나무 냄새라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음에 독성 감정이 가득하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냄새는 그런 장벽을 뚫고 들어온다. 후각은 가장 강력하고 원시적인 감각이다. 코는 편도체, 두뇌 깊이 자리한 정서와 기억 중추들과 직접 소통한다. 뇌의 이 부분들은 후각계와 함께 진화했고, 그래서 정서와 기억과 냄새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101쪽)

 

  정원은 근본적으로 공포가 없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다. '감싸주고 개방하는' 환경의 결합은 강력한 안전감과 평온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회복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스로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하는 정원의 식물들처럼 심각한 트라우마도 필연적으로 느리게 회복되기 마련이다. 스라이브 정원에서 2년 가까이 원예 프로젝트에 참여한 에디는 전직 군인으로 후각적 트라우마를 나무를 돌보고 유대하면서 서서히 극복해나갔다. 이러한 에디의 경험은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가 2차 대전 후 트라우마를 겪은 퇴역 군인들과 함께 하면서 관찰한 내용과 일치하는데, 그는 항상 원예 치료를 정신과 치료의 중요한 보조 수단으로 권장했다고 한다.

 

 

  원예로 만들 수 있는 정원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그중에는 집에서 먹을 채소를 키우는 정원, 그러니까 텃밭이 있다. 열매, 꽃, 푸성귀를 채집하러 텃밭에 갈 때면 마음속에 기대감이 일어, 구석기시대 우리 조상이 동굴을 나설 때처럼 도파민이 방출되는 기분이다.(127쪽)

 

  모든 텃밭에는 야생의 요소가 끊임없이 침입하기에 수확보다는 채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저자는 원예의 기원을 수렵과 채집으로부터 농경 사회로 접어들어 경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당시 소규모 경작은 식량의 부족보다는 식량의 풍요에서 시작된 것으로 물과 비옥한 토양, 온화한 기후와 풍성한 자연 자원을 제공하는 호숫가, 늪가, 강가의 정착지들에서 식물들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시간과 기회가 주었다는 설명이다. 경작은 거친 땅을 인간화하고 환경의 가치를 높이는 일로서 문화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culture(문화)'라는 낱말이 흙을 일구고 식물을 기르고 돌보는 일을 의미하는 'cultivate(경작, 재배)'에서 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잭과 콩나물 이야기'도 채소가 힘을 주는 내용이다. 이 영국 동화는 5000년 전 신화에서 기원한다. 잭은 가난한 어머니의 마지막 돈으로 '마법 씨앗'을 산다. 어리석고 한심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 씨앗은 커더란 콩줄기로 자란다. 잭은 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못된 거인을 만나고, 거인이 자기 가족에게서 훔쳐간 것을 모두 되찾는다. 이 이야기는 한 소년이 자신의 효능을 깨달으면서 남자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사회정의를 이루는 우화이다.(202~203쪽)

 

  18세기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뿌리 뽑힌 사람들, 즉 도시로 이주한 철기 노동자와 방직 노동자들이 치유와 회복을 위해 공장의 한 편에다가 꽃을 심고 키웠다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당시 그들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21세기 폭력과 약물중독이 만연한 도시 빈곤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식물맹에서 벗어나 안전한 녹색 공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시 농장 청소년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근·현대사회의 위기는 곧 소속감의 위기라고 진단한 저자는 '공동체 원예'를 통해 사람들이 정원이라는 장소와 유대를 맺고 사람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양한 '못된 거인들' 즉, 스트레스와 동기 상실 같은 개인적 문제부터 공동체의 파편화, 신선식품 부재, 도시의 쇠퇴 같은 사회 정치적 문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 정원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오늘날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환경의 위기 또한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이른바 ‘기후 슬픔’(또는 '환경 우울증') 현상은 자연의 위기가 닥치면서 정원의 회복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야생화(rewilding) 운동이 바로 원예가 지배 행위를 넘어 구조와 회복 행위가 되었음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도 알려준다.

 

▦ 쉬어가기(정원의 쓸모 #3 : 리틀 포레스트)

 

  몽테뉴는 "양배추를 심다가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생각하지 않고, 마무리 짓지 못한 정원을 더 생각하면서."라며 정원에서 죽음을 맞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고 예측불허이지만, 저자는 몽테뉴의 양배추밭이 비단 미완의 인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연속성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우리의 말과 생각은 우리가 심은 현실 또는 비유 속 양배추를 통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노령의 상실을 관리하는 데에 "나쁜 것은 떠나보내고 좋은 것에 정착하는 상황"이 최고임을 발견한 몽테뉴는 매일 과수원 산책을 했고 부정적인 생각에 맞닥뜨리면 의식적으로 관심을 주변 환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계절로 비유할 수 있다. 몽테뉴가 언급한 자연스러운 죽음과 달리 타의에 의한, 이를테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터에서도 그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놀랍게도 저자는 근현대 전쟁사 기록에서 식물과 꽃이 참전자들이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해낸다. 참호 속 꽃 한송이에서 해마다 봄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믿게 되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도 죽지 않고 좋은 것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공포와 절망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원이 주는 가장 영속적인 위안'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런 삶과 죽음의 병치에는 피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있다. 치명적인 포탄 공격 사이에 피어 있는 백합의 아름다움, 어쩌면 바깥에서 볼 때에만 당혹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참호의 군인들은 어머니와 정원에 대해 꿈을 꾸었다고 하니 말이다. 안전한 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꿈들이다. 꽃들은 전쟁의 광기와 공포 속에서 친숙함과 이성의 끈이 되고, 극단적인 트라우마와 소외 속에서 심리적 생명줄 역할을 한다.(211쪽)

 

 

  어느새 정원을 찾아나섰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정원 앞에 서게 된다. 저자는 손을 흔들며 "원예는 오래된 것인 동시에 현대적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원예는 아주 오래 전 채집과 농경 사이에서 자라났지만, 기본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일이자 원예가는 언제나 더 좋은 미래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거의 정원을 새롭게, 또 미래의 정원을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만들어준 이 책이 한 줌의 흙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태껏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무소유 혹은 비움의 미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며 자신만의 정원 하나쯤은 욕심내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쩌면 작은 화분 하나를 집 안에 들여 놓는 일부터가 식물을 돌보고, 나 그리고 우리를 돌보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혹시 이것마저도 망설여지는 사람이 있다면, 왜 우리가 정원에 발을 내딛고 손을 들어 흙과 식물을 만져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 <정원의 쓸모>를 먼저 펼쳐보길 권한다. 흙 속에 저 정원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는 말은, 인생에는 돌봄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인생, 우리 공동체, 우리가 기거하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볼테르 이야기(소설 『캉디드』)의 교훈은 이상화한 인생을 추구하면서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현실적인 상황에 전념하라는 뜻이다.(314~315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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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원의 쓸모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2.08.28 리뷰제목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고정아 윌북/2021.3.20.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심인성 질병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요즘 선진국에서는 정원 가꾸기를 통하여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원의 쓸모>는 정원이 과연 인간
리뷰제목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고정아

윌북/2021.3.20.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심인성 질병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요즘 선진국에서는 정원 가꾸기를 통하여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원의 쓸모는 정원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 연구를 통해 증명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수 스튜어트는 정원 디자이너인 남편을 만나 정원 가꾸기를 처음 접하였다. 식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여 이 책에서는 정원과 식물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지 신경과학적, 진화론적,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으로 밝혀낸다.

 

정원의 쓸모에서 정원은 우리에게 휴식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생명의 근원적 측면들과 접촉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원예는 반복이다. 내가 이만큼 하면 자연이 그만큼 하고, 거기 내가 응답하면 자연도 다시 응답하는 식으로 반복하는 게 대화와 비슷하다. 속삭임도 아니고 고함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주고받음 속에는 느리지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가 있다. 잠깐 떠났다 돌아오면 훨씬 흥미롭다. 내가 없는 사이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 싶은 기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한 빛과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정원은 삶의 녹색 맥박을 가장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자연의 성장력을 신으로 인식하든, 어머니 대지로, 생명 원리로, 또는 이들의 혼합으로 인식하든, 거기에는 살아 있는 관계가 작동한다.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든, 꽃가루받이를 돕든, 땅을 아름답게 만들든, 원예는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에 자연이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환과정이라고 한다.

 

수도원에는 대개 포도원과 과수원이 있고 채소, , 약초를 기르는 밭이 있었다. 울타리를 두른 정원도 만들어서, 고요히 명상을 하거나 질병에서 회복하는 장소로 삼았다.(p.41)” 11세기에 성 베르나르도가 남긴 프랑스 클레르보 대수도원의 호스피스 정원에 대한 설명은 치유 정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정원에 나가 있으면 세상의 소음은 줄어들고, 나에 대한 남들의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자신에게 대해 좋은 느낌을 받을 여유가 더 생기는 모양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일이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성과 재접촉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받는 즉각적인 피드백과 좋아요에 익숙하다. 식물뿐 아니라 우리 몸과 정신에도 작용하는 자연의 느린 리듬은 가치를 잃었다. 자연의 리듬은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즉석 해결마인드와 맞지 않는다.(p.45)”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갖다 보니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인성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분노, 애통, 좌절을 승화시키거나 창조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은 많다. 원예도 그중 하나다. 흙을 파고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는 일은 모두 파괴를 통해 성장을 북돋는 돌봄의 형태다. 흙을 일구면 공격성과 불안을 방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풍경도 바뀐다. 원예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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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원의쓸모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1.03.24 리뷰제목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고정아 윌북/2021.3.20. sanbaram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심인성 질병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요즘 선진국에서는 정원 가꾸기를 통하여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원의 쓸모>는 정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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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고정아

윌북/2021.3.20.

sanbaram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인들은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심인성 질병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요즘 선진국에서는 정원 가꾸기를 통하여 자연과 접촉하는 시간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원의 쓸모는 정원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 연구를 통해 증명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수 스튜어트는 정원 디자이너인 남편을 만나 정원 가꾸기를 처음 접하였다. 식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여 이 책에서는 정원과 식물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지 신경과학적, 진화론적,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으로 밝혀낸다.

 

정원의 쓸모에서 정원은 우리에게 휴식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생명의 근원적 측면들과 접촉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원예는 반복이다. 내가 이만큼 하면 자연이 그만큼 하고, 거기 내가 응답하면 자연도 다시 응답하는 식으로 반복하는 게 대화와 비슷하다. 속삭임도 아니고 고함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주고받음 속에는 느리지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가 있다. 잠깐 떠났다 돌아오면 훨씬 흥미롭다. 내가 없는 사이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 싶은 기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한 빛과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정원은 삶의 녹색 맥박을 가장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자연의 성장력을 신으로 인식하든, 어머니 대지로, 생명 원리로, 또는 이들의 혼합으로 인식하든, 거기에는 살아 있는 관계가 작동한다.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든, 꽃가루받이를 돕든, 땅을 아름답게 만들든, 원예는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에 자연이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환과정이라고 한다.

 

수도원에는 대개 포도원과 과수원이 있고 채소, , 약초를 기르는 밭이 있었다. 울타리를 두른 정원도 만들어서, 고요히 명상을 하거나 질병에서 회복하는 장소로 삼았다.(p.41)” 11세기에 성 베르나르도가 남긴 프랑스 클레르보 대수도원의 호스피스 정원에 대한 설명은 치유 정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정원에 나가 있으면 세상의 소음은 줄어들고, 나에 대한 남들의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자신에게 대해 좋은 느낌을 받을 여유가 더 생기는 모양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일이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성과 재접촉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받는 즉각적인 피드백과 좋아요에 익숙하다. 식물뿐 아니라 우리 몸과 정신에도 작용하는 자연의 느린 리듬은 가치를 잃었다. 자연의 리듬은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즉석 해결마인드와 맞지 않는다.(p.45)”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갖다 보니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인성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분노, 애통, 좌절을 승화시키거나 창조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은 많다. 원예도 그중 하나다. 흙을 파고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는 일은 모두 파괴를 통해 성장을 북돋는 돌봄의 형태다. 흙을 일구면 공격성과 불안을 방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풍경도 바뀐다. 원예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원에는 미술이나 음악 같은 다른 창조적인 작업보다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절반쯤 한 셈이다.(p.60)” 모든 씨앗은 잠재력을 품고 있다. 원예가는 그저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 원예를 처음 하는 사람은 누구나 식물이 제대로 자랄지 걱정한다. 하지만 새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힘을 느낀다! 이 경험,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는 긍정적 감각의 핵심에는 일종의 환상이 있다. 저자는 그 환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키우게 한다고 생각한다. 정원이 제공하는 환경에서는 사회적 위계와 인종의 의미가 훨씬 약하다. 흙속에서 일하면,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특징짓는 허세와 편견이 사라진, 진정한 대인 관계를 키울 수 있는 듯하다.

 

식물은 빠르게 반응하지 않으며,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츠리거나 웃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점이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p.74)” 어린 시절에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면, 이후의 인생에서 돌봄을 배우기는 매우 어렵다. 내면의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약한 모습을 보며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학대가 대물림되기 쉬운 이유다. 식물의 취약성은 작은 동물이나 사람의 취약성과 다르다. 동물과 사람의 취약성은 폭력의 희생자에게 잔인하고 가학적인 충동을 촉발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에는 고통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잔혹성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을 통해서는 안전하게 돌봄과 애정을 배울 수 있다. 크든 작든 잘못될 여지가 별로 없다.

 

많은 일이 그렇듯이, 원예 역시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역사 속 정원은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때로는 파괴하는 경우가 많았다.(p.75)” 부적합한 기후에서 완벽한 잔디밭을 만들려고 막대한 양의 물을 소모했고, 수많은 화학물질로 토양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치유의 원예는 당연히 지속 가능한 원예다. 자연의 생명력에 맞서지 않고, 더불어 일하는 원예다. 그린하우스 프로젝트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생태학의 기본을 학습하게 된다. 그 경험은 더 큰 맥락의 이슈, 우리 식량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우리가 이 지구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깨우침을 줄 수 있다.

 

자기 존중감을 높여주는 원예의 힘은 범법 위험에 놓인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특히 큰 힘을 발휘한다. 자연 세계와 교류하면 진정한 능력을 얻고, 식물의 성장력과 함께 일하면서 건설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다.(p.77)” 하지만 오늘날의 아이들 대부분은 자연과 단절되어서 자란다. 야외에 잘 나가지도 않는다. 실제로 최근 어린이들이 실외에서 보내는 주당 평균 시간은 최대 보안 감옥의 수감자보다 적다.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을 모르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얻어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파괴성 뒤에는 인정에 대한 소망이 있다. 그들의 미래가 어떤 희망을 보일지는 이 소망을 어떻게 잘 조절하는가에 달려 있다.

 

운동과 냄새로 기분을 고양시키는 것 말고도, 정원에서 흙을 파면 토양 속 다른 박테리아들의 직접적 활동을 통해서 세로토닌 조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p.95)” 10년 쯤 전,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퍼 로리는 토양 속에 있는 박테리아 소량이 두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올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잡초를 뽑거나 흙을 팔 때, 거름과 퇴비로 지력이 높아진 땅에 많은 마이코박테륨 바게를 흡입하고 소화하게 된다.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다양한 박테리아 대사 물질은 우리 장내의 미주신경-휴식과 소화를 담당하는 부교감신경계의 일부-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또 어떤 대사 물질들은 두뇌의 소교세포와 일종의 혼선을 일으켜서 두뇌의 항염증 기능을 높여준다고 한다.

 

햇빛, 운동, 흙과의 접촉은 원예가 신경계에 회복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큰 상실에 직면했을 때, 정원이 비유적 차원에서 의미하는 바도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우리 정신의 상징 능력은 훼손된다. 그때 정원은 간편한 상징들을 제공하며, 때로 심리적 생명줄이 되어줄 수 있다.(p.97)” 정원에서는 모든 일이 느리게 흘러간다. , 관목, 나무는 스스로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한다. 사람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트라우마는 필연적으로 느리게 회복되나. 마음에 독성 감성이 가득하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냄새는 그런 장벽을 뚫고 들어온다. 후각은 가장 강력하고 원시적인 감각이다. 코는 편도체, 두뇌 깊이 자리한 정서와 기억 중추들과 직접 소통한다. 뇌의 이 부분들은 후각계와 함께 진화했고, 그래서 정서와 기억과 냄새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은 정원일지라도 도시 생활의 피로에 대항하고 자연 세계와 접촉하고픈 소망을 채워주는 평화의 섬이 될 수 있다. 잘 고른 꽃과 나무, 그리고 흐르는 물이 있는 공간은 우리가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p.107)” 도로와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으면 자연은 아득하게 느껴지고, 식물은 인생에 필요한 것들에 밀려 뒷배경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생명의 녹색 맥박은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가혹하다. 소음과 오염은 사막과 먼지바람을 상기시킨다. 아무리 네온 불빛에 현혹되고 도시의 활기와 에너지에 이끌려도,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있는 태생적 본질은 경보를 올리며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신호한다. 수돗물은 편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녹색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때로는 창틀의 꽃 몇 송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따뜻한 햇빛이나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처럼 작은 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연의 부는 도시가 마케팅하는 부와는 다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도시공원과 정원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조용히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 내성을 변화 시킨다. 녹색 공간이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에게서 공격성과 불안이 줄고, 기분이 고양되며, 정신적 피로감이 감소한다고 밝혀졌다.(p.111)” 녹색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 방식도 바꾼다. 운동도 더 많이 하고 이웃과 접촉도 더 많이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과 마음이 자연 환경에 반응하는 복잡한 방식을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도시 환경이 무너지면 상황은 거칠어진다. 도시 황야에는 폐가, 쓰레기 더미, 깨진 유리창, 녹슨 금속과 사람 키만큼 큰 잡초가 가득하다. 그런 곳은 위험 지역이 된다. 지역이 쇠락하면, 주민들은 야외 활동을 줄인다. 그러면 갱단이 거리를 장악하고, 환경악화가 폭력 증가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p.194)” 원예는 스트레스와 동기 상실 같은 개인적 문제부터 공동체의 파편화, 신선식품 부재, 도시의 쇠퇴 같은 사회정치적 문제까지, 다양한 못된 거인들과 맞서 싸우도록 도와준다. 모두 오늘날 세계 모든 지역의 도심정착 프로젝트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들이다. 그것은 사랑을 키우는 일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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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원 이야기 들으며 힐링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j*****3 | 2021.03.31 리뷰제목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심신의 피로를 풀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인지 남편은 주말농장이라도 할까? 아니면 주택으로 이사가서 텃밭을 가꿔볼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파테크를 하겠다면서  화분에 파를 심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파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집에 있는 화분들을 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보면 뭔가 행동을 해야하나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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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심신의 피로를 풀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인지 남편은 주말농장이라도 할까? 아니면 주택으로 이사가서 텃밭을 가꿔볼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파테크를 하겠다면서  화분에 파를 심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파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집에 있는 화분들을 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보면 뭔가 행동을 해야하나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50대에 생산적인 삶의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80대에도 잘 살아갈 확률이 세 배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 심각하개 고려해봐야하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흙을 파고, 자갈을 골라내고, 씨앗을 심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내가 먹을 작물을 직접 거두는 기쁨은 얼마나 클까?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도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본 듯 정확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의 카타르시스다. -p 20  

 

 손으로 일하는 것에 몰두할수록, 내면에서는 더욱 자유롭게 감정을 정리하고 해결한다는 저자는 육체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정신을 가꾸는 기분이라고 했다. 스마트 폰을 쥐고 있는 시간은 많아지고, 기다림 없이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되는 지금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지고 정신은 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인지 카타르시스라는 말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농경을 시작했던 고대 문명과 원예가 의미있는 일이 된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5세기 초 성 마우릴리오의 이야기, 식민지 원주민들이 식물을 대했던 자세등 원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한 대목도 있었다. 문학 작품의 한 장면을 통해서도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그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소설 마지막 대목을 보면, 핍과 에스텔라는 옛 새티스 하우스 터에서 우연히 만난다. 핍은 폐허에서 "지난날의 담쟁이들이 새싹을 틔우고, 폐허의 낮은 흙더미들에 초록색이 번지는 모습"을 본다. 자연의 재생에 관한 작은 신호를 통해, 우리는 핍과 에스텔라의 인생이 그렇게 엉망이 되지는 않으리라 감지할 수 있다. -p 58

 

 저자는 심리적으로 '원예는 좋은 것이고, 그래서 정원은 있어야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학적인 근거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과 자연이 사람의 행복과 정신 질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18세기 유럽에서 처음 조명을 받았다. 많은 원예 프로그램과 연구를 통해 원예가 기분을 풀어주고 자존감을 높이며 우울증과 불안을 완화한다는 강력한 결과를 얻어냈다고 한다.

 

 여러 연구결과를 만날 수 있었는데,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원예 치료를 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향기로운 꽃과 식물들에는 진정시키고 고향시키는 효과가 있어 정원에 들어오면 안정을 찾게 되고, 햇빛에 노출되면서 비타민 D가 만들어지고, 햇빛의 청색광은 수면-기상 주기를 설정하며, 두뇌 속 세로토닌 생산속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의 배경이 되고, 기분을 조절하며, 공감을 높여주는 것이었다. 정원에서 흙을 파면 토양 속 다른 박테리아들의 직접적 활동을 통해서 세로토닌 조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 뉴런, 세로토닌 등과 같은 대사물질들의 수치의 변화등 과학적인 근거로 정원의 쓸모를 알려주었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도 정원이 있고 없고는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연구 결과로서 보여주고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사고에 의한 장애, 약물에 의한 중독, 치명적인 병등 삶을 무너뜨리는 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원예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난 경우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참호에는 시체들이 쌓여가는 그런 전쟁터에서 씨앗을 뿌리고 키운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저자는 1차 대전과 관련된 치유적 원예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했다. 기원전 329년에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왕들이 "가장 고귀하고 가장 필요한 사업" 두 가지를 전쟁 기술과 경작 기술이라고 여겼다고 기록했다한다. 저자도 말했듯 전쟁과 원예는 서로 반대되는 느낌이라 의아한 마음도 들었지만, 전쟁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생존을 위한 경작도 중요한 일임을 말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극단적 파괴의 현장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특히 꽃의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심리적 의지가 된다.-p 207

 

  사상자로 넘쳐나는 구호소 옆에 주재 목사 워커는 정원을 만들었고, 영국 장교 길레스피도 독일군 탄피로 만든 화분에 제비꽃을 심기도 했다. 군 당국이 자발적으로 원예활동을 공식적으로 활용해 신선 농작물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영화 <1917>에서 두 병사가 모든 것이 파괴된 전장에 피어있는 체리나무 꽃을 보고 고향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었다. 약한 식물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가지게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1차 대전에 참전해서 피폐해졌지만 재활훈련의 과정으로 원예수업을 받았고 힘과 회복력을 되찾았다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저자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면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워즈워스를 사랑하고 프로이트를 연구하던 ( 워즈워스와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었다.) 수 스튜어트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가 되었다. 정원 디자이너인 남편을 만나 정원 가꾸기를 접했고, 정원에 매혹되었다. 원예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한 할아버지의 경험을 실마리로 하여 식물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정원을 가꾸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몸소 체험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경험을 했기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을테고, <정원의 쓸모>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저 부제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으로 펼쳐진 아파트 마당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해나가는 정원의 모습에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흙을 만지고 몸을 움직인다면 식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안은 더 크지지 않을까? 내 작은 정원 하나 만들고 싶다는 꿈 하나를 가져본다.

 



 

꽃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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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원의 쓸모; 흙 묻은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 평점10점 | l*****5 | 2021.10.17 리뷰제목
아름다움과 부유함이 연상되는 정원, 때가 되면 늘 가꿔줘야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 정원. TV에서 보듯 과시와 장식용의 개념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 정원. '정원'은 집안의 뜰이나 꽃밭을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고 익히 들어왔던 선입견으로 인해 정원의 개념과는 멀게 느껴진다.  그와 반대로 '텃밭'이란 개념은 너무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로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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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부유함이 연상되는 정원,

때가 되면 늘 가꿔줘야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 정원.

TV에서 보듯 과시와 장식용의 개념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 정원.

'정원'은 집안의 뜰이나 꽃밭을 의미하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고 익히 들어왔던 선입견으로 인해 정원의 개념과는 멀게 느껴진다. 

그와 반대로 '텃밭'이란 개념은 너무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살아가는 삶과의 거리감이 '정원'과 '텃밭'의 사이를 띄운다.

'텃밭'은 집의 울타리 안에 있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이다. 

따지고 보면 텃밭 안에 정원이 자리잡은거다.

텃밭에 종자를 심어 신선한 채소와 야채를 키우고, 씨앗을 틔워 꽃도 키운다.

수렵 채집 시대에는 먹거리를 일일이 찾아다니는데 한계(이상기후, 동˙식물의 부족 등)가 있을테니

정착 생활을 하면서 씨앗을 뿌려 텃밭을 일꿔 생산량을 늘렸을거다. 

먹는데 부족함이 없는 시대와  사람들은 정원을 가꿨을거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텃밭과 정원은 얼굴을 달리해서 사람들에게 효용과 만족감을 주었다. 

 


 

요즘 정원과 텃밭 가꾸기는 하나의 현상이 된 듯 하다.

'정원과 텃밭' 가꾸기는 사람을 살린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고, 땅을 어루만지는 사람은 살아낸다. 

TV의 교양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진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워봤던 사람들은 안다.

내 손으로 어루만졌던 식물이 조금씩 날마다 자란다는 것을.

그것을 보면서 마음의 불안과 자존심에 흠집 난 사람들도 회복된다는 것을.

 

식물이 자연에서 번성하는 길과 인간이 번성하는 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바깥 자연을 돌보면, 우리 안의 자연, 우리의 본성도 돌보게 된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연결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이 깨어난다. (49쪽)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산으로, 촌으로 향한다.

도시에서는 더이상 내 자리도, 살아갈 희망도 없다며 태어난 고향으로 간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아프고 지치고 힘들었던 내 마음이 살기 위해서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고질적인 병이 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stress) 즉 마음의 병이다. 그 스트레스를 피해가는 사람은 없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식물을 키우고 가꾸면서 마음을 탐구하고 연계하는 심리 치료가 유용하다. 

정원이 주는 안전감과 자연의 풍요로움, 텃밭을 내 손으로 직접 가꾸면서 느끼는 생명의 경이로움....

인간의 정신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과거부터 유의미한 사례들이 되었다. 

 

식물은 사람 같아요. 우리 도움이 필요해요. 도움이 없으면 죽어요.

꽃을 키우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식물을 돌보면 우리에게 보답을 해줘요. (176쪽)

 

정원(텃밭) 가꾸기 프로그램을 통해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고된 산업 노동 속에서도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장소와 유대를 맺고,

집단과 애착을 형성하는 소속감을 키워준다. 기쁨을 공유하는 협력의 문화를 만들고.

범죄를 예방하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안과 공황 장애를 이겨내었다는 연구 사례들이 많다. 

결국,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원(텃밭)과 식물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켰는지

신경과학적, 진화론적,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해

식물이 인간에게 주는 위안 그 이상의 의미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책,

「정원의 쓸모」를 만났다. 너무 좋아서 괜시리 할 말이 많았다^^

 

작은 화분 하나만으로도,

손바닥만 한 공간일지라도

식물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힘은 같다. 

그 곳에선 우리 삶이 정말 바뀔 수도 있다. 

원예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분갈이 하고, 흙을 채워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솎아주고 잘라내고, 물을 주고....

내 손으로 일궈 자란 식물을 볼 때 마다 벅차오른다. 

궁금해서 매일 보게 된다.

오늘은 얼만큼 자랐나? 시들지 않았나? 아프지 않나?

내 마음 돌보듯이 식물을 돌본다. 

그래서 식물이 주는 효용과 회복에 관한 부분들을 더 잘 이해한다.

호흡하고 생명있는 것을 키워봤기에.

 

지금은 내 삶 속 테두리 속에서 아주 작게 소박하게 식물을 키우면서 위로 받지만,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키우고 있는 정원(텃밭)의 경계가 늘어날 것이다. 

그 때는 내 지혜가 한 뼘 더 성장할거라 기대한다. 

무언가를 집중해서 시간을 들여 보살피는 일은 살리는 일이기에.

 

파라다이스 정원은 제 역할을 해서,

우리더러 무화과나무들 아래서 몇 시간을 자고 가라고 유혹합니다.

남부의 어지러운 아름다움.....

나무에서 갓 따서 태양의 열기를 입 안에 향기롭게 전해주는

잘 익은 복숭아보다 호사스러운 것이 있을까?

무화과나무 아래 누워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련한 생각들에 잠기는 시간보다 휴식을 주는 것이 있을까?

더운 여름날 이런 곳에서 백일몽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쉬울까? (248쪽)

 

평소에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책을 만나는 일은 멋지다.

이런 책들을 보는 그 자체로 풍성한 위안을 얻는다. 

정원(텃밭) 가꾸기의 소망? 꿈?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닿은 느낌이다.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읽을거리도 풍성한 아름다운 정원 이야기이다.

일상의 소중함으로 평안함에 이르는 책, [토와의 정원]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토와의 정원 http://blog.yes24.com/document/14476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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