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코리빙은 단순히 주택 부족이나 높은 임대료를 해결하는 것 그 이상의 물음인 것 같아요.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이고, 사회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 하는 것이 저한테는 조금 더 중요한 질문이에요.
--- p.27
제가 추구하는 코리빙은 개개인이 하나의 유닛unit으로 형성되는 구조예요. 1인 개념으로 접근을 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죠. 가족 단위의 고정된 역할에서 1인 기준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고요. 가족 구성원으로서,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 부모로서가 아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다시 한번 ‘1인’에 초점을 맞추면,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에서도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어요. 코리빙 공간 안에서는 남자의 공간, 여자의 공간이란 구분도 사라지는 거죠.
--- p.29-30
최근에 깨달은 사실인데 나는 아마도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살아낼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어디에 살 것인가’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마음에서 느끼는 주체성 덕분이다. 주체성은 자존감의 씨앗이 되니까. 어찌 됐든 내 집 마련의 자금이 될 수도 있었던 큰돈은 모두 여비로 탕진했고, 거처에 대한 문제 또한 풀지 못한 채 여행자 놀이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머물러봤자 자꾸 어긋나기만 할 것 같았다.
--- p.77
부엌을 천천히 다듬어가며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한 식사 실험에도 돌입했다. 실험의 내용은 간단했다. 매일의 식사에 무심해지지 않을 것, 그리고 솔직하게 있을 것, 두 가지였다. 어떤 재료를 어디서 사고, 어떤 기분으로 요리하고, 어떻게 차려서 먹을지 정중하게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수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져본 적이 없는 마음이었다. 집에서 혼자 먹을 식사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낯설고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부엌이라니.
--- p.90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집을 구하고 끼니를 차려 먹으며 흐트러진 균형에 대해 생각했다. 계절이 담긴 재료를 손에 넣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밥을 차리고, 식사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 어쩐지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런 시간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 감히 단정 지어도 되는 걸까 싶다가도 ‘집밥 같은 바깥 밥’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면 불균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102-103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이사 온 후 물 말고는 냉장고를 채워본 적이 없었다. 순간 고마운 마음에 울컥했다. 그 작은 냉장고 하나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삶이 서글퍼서. 그 뒤로 나는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다른 집, 아니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 p.132
천장에 달린 올리브색 펜던트 조명, 빈티지풍 패턴의 카펫, 짙은 나무색의 책장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과 잡지. 집 구석구석의 모든 것이 내가 좋아하는 컬러와 모양, 그리고 관심사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 공간이 나를 말해주고 있다.
--- p.143
문득, 집을 떠나기 전 이 공간으로부터 받은 위안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과수의 집’이 또 다른 사람의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글을 올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요즘은 옛날처럼 동네 이웃과의 교류가 많지 않고, 바쁘게 살다 보면 친한 친구들과도 메시지로 안부 묻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SNS를 통한 집 초대는 신선한 이벤트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 p.156-157
잠깐 머무는 집이라 할지라도 ‘내 집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마음을 담아 공간을 가꾸며,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더 이상 유보하지 않고, 한껏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온기로 가득한 방 안에서 이렇게 글을 쓴다. 가장 편안한 마음을 하고서.
--- p.167
구옥에 사는 이들에게 집수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상이다. 그리고 아파트와는 다르게 관리사무소도 없고 주민간의 연대도 없다. 집주인과 티격태격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배워가면서 집 안의 사소하지만 불편한 것들을 정리했다. 기계치인 내가 배수관, 보일러, 계량기 같은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애들하고 놀다니 놀랄 노 자였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꾸준하게 눈길과 마음을 줄 무언가가.
--- p.186
나는 극과 극의 이 습기와 사랑에 빠졌고 여전히 그 사랑은 진행 중이다. 수많은 송이들을 떠나보냈으며, 분갈이를 세 번이나 해서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화분 어른 두어 분과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화분 친구들을 모두 욕조에 넣고 듬뿍 물을 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꽃시장에 들러 과하지 않은 정도의 생화 구매를 한다.
독립 후 식물과 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냐고 하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잠을 청하는 것처럼 식물에 물을 주고 잎을 보고 꽂힌 꽃의 무른 줄기를 자르는 일들이 일상의 루틴이 되면서 나는 조금 더 건강해졌다. 마치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 p.194-195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트럭 하나에 모든 집을 싣고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로 가는 상상을 한다. 어디든 고양이 두 마리와 식물들이 있다면 그곳이 내 집이 될 것이기에.
하지만 우린 아직 이 집에서 함께 산다. 온기와 습기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고 가는 애정들을 느끼면서.
--- 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