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여는 거다. 밥집이라 쓰고 술집이라 불러도 무방한 19금 놀이터이면서 식당.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는 실없는 유행가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에 세월을 퉁칠 수 있는 곳. 산삼 깍두기, 불로초 골뱅이무침, 봉황 알찜을 주메뉴로 하고 재료가 없으면 김치말이 국수에 막걸리를 강매하는 식당. 간혹 술 취한 김에 지리산 어디 즈음에서 우화등선을 꿈꿔볼 수도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극한 도道를 텃밭에서 기른 상추에 쌈 싸 먹을 수 있는 곳. 월화수목은 식재료 수급에 총력을 다하고 금토일만 영업하는 곳. ‘먹고살 만’의 임계치를 절대로 넘어서지 않는 그런 밥집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망하려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는 계획이라고 일갈했다. 밥집 이름은 자연히 김토일 식당이 되었다.
---「이름에서 풍기는 피 냄새」중에서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비로 가득한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날개 같은 긴 가슴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물박수를 한다. 그러다가 산더미 같은 그 몸이 솟구쳐 오르더니 허공중에서 쏟아지듯 쓰러진다. 바다가, 아니 허공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물인지 비인지 고래가 만든 포말 속으로 나는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혹등고래가 낸 물의 길을 따라, 꼬리지느러미를 따라 나는 내려간다. 조금씩 몸을 조여오는 압력을 느끼며 고래의 유영을 넋을 놓고 쳐다본다. 고래의 움직임은 시간을 두 배, 세 배로 늘린 듯 아주 느리게 물속을 미끄러져 날아다닌다. 물 표면을 투과한 햇빛이 고래의 몸에 햇무늬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심해로 장면이 바뀐다. 고래는 꼬리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흔들며 걷는 것 같기도 했고,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휘파람 같은 길고 가는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고래는 심해의 짙푸른 어둠을, 그 어둠 속에 박혀 있는 나를 꿀꺽 소리도 없이 한입에 삼킨다.
---「혹등고래 한 마리」중에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찾을 수밖에, 해결할 수밖에, 만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나는 인연이라 부른다. 특히 남녀 사이의 인연은 콩깍지를 동반하는데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물의 형체마저 미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만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평생을 콩깍지를 쓴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인연이란 찾는 게 아니라 순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아내는 내 옆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며 일관되게 찾아다닌다. 아내여, 나도 가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다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타게 찾지는 말고 어쩌다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느닷없이 찾아주기 바란다.
---「잃어버린 반 걸음」중에서
밥을 안쳐놓고 아직도 꿈과 생시 어디 즈음에서 헤매고 있는 몸을 책상 앞에 앉힌다. 노트북을 켠다. 어제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잡문을 읽어본다. 멍하니 노트북이 나를 읽어 내리는 사이, 밥통의 알림이 들린다. 쿠쿠가 고화력으로 맛있는 백미의 취사를 시작한단다. 비문이나 오문 그리고 더듬거림 없는 깔끔한 낭독이다. 잠시 후에 밥통은 뜸들이기에 들어갈 것이고,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내 잡스러운 글은 뜸만 들이다 끝날지도 모른다. 나도 고슬고슬한 문장을 갖고 싶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듯 잘 지어진 문장들을 인터넷으로 자주 주문한다. 장바구니에 가득한 책들을 덜었다가 다시 담았다가를 반복한다. 어차피 내 문장이 아니잖나. 내 문장은 내가 지어 먹어야지.
[…] 조미료 따위, 안 쓰기로 한다. 그러나 없으면 맛이 나나, 맛이. 나는 천연조미료를 많이 가지고 있으나 활용할 줄을 모른다. ‘처럼’을 채를 칠까, ‘같이’를 나박 썰까. 이 문장은 부사가 너무 많아 칼칼하고, 저 문장은 형용사를 지나치게 뿌려 느끼한데. 아, 또 이 단락은 너무 길어져 오버 쿡 돼버렸군! 이러다 언제 이 잡문을 마무리 짓.는.다?
---「나는, 조용히, 쌀을 계량해, 글로, 집을, 짓는다」중에서
늦봄, 얼마나 철저하게 비워야 허虛와 공空을 겹쳐 쓸 수 있을까. 그 허공중에 떼로 핀 찔레꽃들이 흔들린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면서 허와 공에 연분홍으로 환칠을 해댄다. 환칠 속으로 노란 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찔레향보다 얇은 날개가 바람에 쓸리다가 다시 제 갈 길로 방향을 잡는다. 찔레향 속으로 사라진다. 이내 바람은 굵어져서 감나무 이파리에서 차르락차르락 소리로 일어난다. 오디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뽕나무 이파리들이 박수를 친다. 허공의 한 어깨가 들썩인다. 어깨를 타고 올라온 바람이 풍경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쏴아아 쏴아, 흩날린다.
사방이 삥 둘러 산이고 산 너머에 산이라서 산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곳에서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모두 초록이 본적이다. 사람들은 초록 피를 우려 마시는 차 나무를 키우고 초록의 즙액을 받아 마시는 매실을 따고, 초록의 영토에서 산을 이고 지고 계절의 푸른 피를 빨아 마시며 살아간다. 봄의 끝자리에서 그 피는 좀 더 짙어져 이 본적지에서 지천으로 꿀럭거린다. 사람이나 나무나 새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핏줄에 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피를 돌려서 사람은 명줄을 잇고, 나무는 열매를 매달고, 새들은 열매를 쪼아 먹고 나무를 옮겨 심어 초록을 퍼뜨린다.
---「벚꽃 지고 명자꽃 필 무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