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처음부터 길고 어려웠던 음악은 아닙니다. 클래식도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클래식이 확 달라졌습니다. 상당히 진지하고 복잡한 쪽으로 말이죠. 다름 아닌 이 책의 주인공인 베토벤 때문입니다. (…) 극적인 베토벤의 삶만큼 그가 인생을 걸고 작곡했던 작품 역시 감동적입니다. 여러분도 그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낯선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설레는 길이 될 겁니다.
- 2권을 열며
“베토벤이 왜 특별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조차 베토벤이 왜 그렇게 대단한 음악가인지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요. 가장 분명한 건 베토벤이 이후 음악가들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베토벤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음악가란 이런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거든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러 음악가 중 하나가 아니라, 음악가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던 거죠. 실제로 200년 전 음악가인 베토벤이 음악에 보인 태도는 다음 세대는 물론이고 오늘날의 음악가들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클래식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에서 말이죠.
- 25p, 1부 1장, 베토벤이라는 이름
「운명 교향곡」만 보더라도 베토벤은 이전 작곡가들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과거 작곡가들처럼 단숨에 「운명 교향곡」을 써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전체 구조를 짜고, 세부 내용을 채우고, 군더더기를 삭제하는 등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거쳐야만 이런 곡이 나올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 이전의 작곡가들처럼 수백 개씩 곡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이유죠.
- 63p, 1부 2장, 절정에서 만든 운명 교향곡
베토벤은 끝내 아버지를 온전히 증오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용서하거나 이해했던 것 같지도 않고요. 그냥 자기 안에서 끝까지 정리가 안 된 채로 남았죠. 정리가 됐다면 후에 어떤 방식으로든 언급을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평생 거의 말하지 않았거든요. (…) 게다가 아버지가 죽을 때 심하게 병을 앓았어요. 그것도 아버지를 온전히 미워하지 못하게 했겠죠. 아무튼 이 유년 시절의 경험, 그러니까 ‘오늘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내일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생활이 베토벤의 일생을 잠식합니다.
- 90p, 2부 1장, 어린 음악가의 투쟁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아주 격렬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요제프 겔리네크는 연주를 듣고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에요. 악마랍니다. 베토벤의 연주는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겁니다. 게다가 즉흥 연주를 하는 그의 솜씨란…." (…) 당시 빈에서 유행하던 연주 스타일이 달콤하고 섬세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의 연주가 더 거칠게 여겨진 것 같아요. 그런데 신인인 베토벤에게는 그게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빈의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존재감을 각인시켰거든요. 쉽게 말해 고만고만한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튀었던 겁니다.
- 107p, 2부 2장, 피아니스트로 빈을 평정하다
베토벤은 보통 잘 쓰지 않는 불협화음을 과감하게 사용했고, 여러 방식으로 화음을 연결하며 긴장감을 능숙하게 조절했습니다. 베토벤이 낸 길을 따라 이후의 작곡가들은 더욱 파격적인 불협화음을 사용하며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지요.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악 전체가 풍요로워졌습니다. 베토벤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다채로운 음악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 172p, 3부 1장, 소나타에 이상을 담아내다
서른 살 무렵, 베토벤은 견디기 힘든 재앙과 마주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서히 청각을 잃기 시작했던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굉장히 고통스러울 텐데 음악이 삶의 전부였던 베토벤에겐 더 절망이었겠죠. 청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 병만 고칠 수만 있다면 전 세계를 껴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 178p, 3부 2장, 청력을 잃고 나아가다
돌이켜보면 베토벤은 불행한 가정사와 청력 상실이라는, 삶을 압도하는 비극을 일생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기어코 승리를 쟁취하고야 말았지요. 사실 그 길밖에 없었던 것도 같습니다. 베토벤이 걸어야만 했던 위인의 길은 청력 상실에 대처하는 한 개인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죠. (…) 베토벤은 이 시기 이후 청력 상실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마치 그게 별 중요한 일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베토벤의 빛나는 업적들은 쉽게 얻어진 게 아니라 불굴의 투지로 힘겹게 얻어낸 전리품입니다.
- 218~220p, 3부 3장, 음악으로 쓴 영웅 서사시
베토벤은 자존심이 아주 강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귀족보다 고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싸우고 나서 보낸 편지에는 “당신이란 사람은 우연히 출생으로 공작이 된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된 것이고요. 과거에도, 또 앞으로도 공작은 수천 명 있지만 베토벤은 단 한 명뿐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 242p, 4부 1장, 고립 속에서 그러나 멈추지 않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합창 교향곡」을 자주 연주하도록 했다는 건 유명합니다. (…) ‘형제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남은 사람들끼리 형제가 되자’는 식으로 왜곡한 거죠. 나치 정권하에서 「합창 교향곡」은 연주회장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빈번하게 연주되었습니다. 독일 군인들은 수용소의 가스실을 정비하면서 ‘환희의 송가’를 흥얼거렸다고 해요. (…) 아이러니하게 유대인들도 「합창 교향곡」을 좋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환희의 송가’ 중 ‘천국의 성소로 들어가자’는 부분을, 지금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언젠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죠. 그래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동안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가스실의 안과 밖에서 같은 노래가 불리는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비극적입니다.
- 260~261p, 4부 2장, 인간 해방을 향해 가는 노래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