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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해냄 | 2017년 2월 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 9.0 (3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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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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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작가의 역량은 빛났지만 평점6점 | s*****l | 2017.02.28 리뷰제목
김훈의 소설은 언제나 첫문장을 기억하게 된다. 첫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가 그렇고,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로 시작되는 <남한산성>이 그렇고,'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출항하지 못했다.'로 시작된 <흑산>이나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리뷰제목

김훈의 소설은 언제나 첫문장을 기억하게 된다. 첫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가 그렇고,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로 시작되는 <남한산성>이 그렇고,'초겨울에 남풍이 불어서 흑산행 돛배는출항하지 못했다.'로 시작된 <흑산>이나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뿐이다.'의 <현의 노래>가 그랬다. 작가에게는 이런 언급이 흘러간 세월처럼 무용하고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첫문장의 느낌은 '그래. 이래야 김훈이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그것은 곧 책의 마지막장까지 숨가쁘게 달려갈 독서의 여정을 위해 첫숨을 고르는 역할을 한다.

 

"마동수(馬東守)는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p.7)

 

소설은 그렇게 신문 기사의 한 문장처럼 건조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1979년이라는 과거에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그해의 한 귀퉁이를 살았던 '마동수'라는 인물을 독자는 기억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진 누군가의 삶을 기억한다는 건 그가 살다 간 시간을 두서없이 뒤적이는 일이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시간은 어떤 대상이나 물질로 형상화되고 조금 더 선명해진 색채로 우리의 의식에 조롱조롱 맺힌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p.140)

 

일제 강점기에 중국을 떠돌던 마동수는 해방이 되자 서울 외곽의 고향집 근처로 돌아온다. 부모의 생사나 행방을 찾을 길 없었던 터라 그는 외톨이가 되었다. 얼마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단신으로 그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그는 피 묻은 군복을 잿물로 빠는 빨래꾼이 된다. 빨래터에서 그는 흥남부두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고 탈출한 이도순을 만나 부부가 된다. 장남 마장세가 태어나고, 지우려고 했던 차남 마차세가 태어난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온 마동수의 가족. 그러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돌던 마동수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르곤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순전히 이도순의 몫이었다. 입대하여 월남전에 파병된 마장세는 그곳에서 제대하여 미크로네시아로 떠나고, 전방 GOP에 배치된 마차세는 상병 휴가를 나왔다가 아버지 마동수의 임종을 맞는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p.184)

 

퇴역한 미국인 문관과 함께 미크로네시아에 정착한 마장세는 그곳에서 고철업과 호텔업을 벌인다. 아버지의 임종에도 그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 제대를 한 후 마차세는 사귀던 여자 박상희와 결혼한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주간지 인턴 기자로 취직하엿지만 3개월 만에 해고된다. 미대를 졸업한 박상희는 미술학원의 강사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요양원에 입원한 이도순의 병원비며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빠듯한 여건이었다. 마차세는 물류회사에 취직하여 오토바이 배달 일을 시작한다.

 

"박상희는 이 가엾은 남편과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살아온 날들의 시간과 거기에 쌓인 하중을 모두 짊어지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의 벌판을 건너가야 할 것이었다. 벌판은 저쪽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p.185)

 

마장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전우 김정팔의 형을 통하여 오장춘을 소개받는다. 마차세의 친구이기도 한 오장춘은 제대 후 고물상을 시작했다. 폐타이어와 고철을 취급했던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여 고철과 폐타이어를 수입하는 무역회사로 발전한다. 마장세를 통하여 마차세의 소식을 듣게 된 오장춘은 마차세를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도록 한다. 오장춘의 거래업체가 된 마장세는 미크로네시아 곳곳에 방치된 폐자동차와 고철을 치워주는 대가로 그 나라에서 돈을 받고 그것을 다시 오장춘의 회사에 판매한다. 그리고 모래에 묻혀 인양이 쉽지 않은 폐자동차는 바다에 빠트려버리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아버지가 죽어서 세상은 홀가분했다. 아버지의 몸은 검불 같은 것이었지만, 그 무게가 마차세의 시간을 짓누르는 중력은 컸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생활의 지표가 될 리도 없었고 생계에 보탬이 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어서 남은 사람의 삶이 더 막막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한평생 끌고 온 시간과 아버지가 한평생 지고 온 짐이 소멸함으로써 아버지 없는 세상은 더 새롭고 가벼워질 것도 같았지만 아버지의 시간과 아버지의 짐이 과연 소멸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버지가 검불같이 하찮고 의미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어서 없어지고 난 후의 세상은 더욱 막막했다."    (p.198)

 

마동수가 죽고 8년을 더 살았던 이도순은 요양원에서 죽었다. 그때도 역시 마장세는 오지 않았다. 월남전에서 작전을 나갔던 분대원이 고립되어 적들의 공격을 받고 일부는 죽고 김정팔이 부상을 당하자 그는 살아 남은 두 명의 부하와 함께 탈출하기 위해 김정팔을 사살했다. 그리고 그와 나머지 두 명은 탈출하여 살아 남는다. 그 공로로 전사한 김정팔과 마장세는 훈장을 받았다. 마장세가 숨겼던 비밀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숨긴 비밀이 밝혀질까봐 두려웠었다.

 

"마장세는 감방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다가왔다. 수염이 자랐고 몸이 말라서 옷이 헐렁했다. 걸음걸이가 끌리는 듯했고 나이보다 한참 늙어 보였다. 마차세는 멀리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어느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지, 두어 달 만에 한 번씩, 겨울이면 새벽에 기침을 쿨럭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장세의 걸음에 옮겨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    (p.342)

 

가족이라기보다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던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고 전쟁터에서 있었던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나라를 등졌던 마장세는 결국 모든 걸 잃은 채 안 좋은 모습으로 귀국한다. '나중에 나는 죽어도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아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습관을 따라하거나 아버지가 밟았던 삶의 길을 따라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인 양 질기다.

 

몇 년 전 작가는 이병률 시인과 함께 미크로네시아의 추크섬을 여행한 후 여행 에세이를 썼었다. <안녕 다정한 사람>이라는 제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섬에는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여 그곳에 정착한 김도헌 씨가 살고 있다. 그가 쓴 <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에 김훈 작가의 추천사가 실렸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곳곳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오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 많은 까닭도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작가의 탁월한 문장 표현력이 없었더라면 작품에 대한 평은 훨씬 박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나 작품성보다는 작가의 능력이 빛났던 소설이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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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공터에서』잃어버린 시간들, 삶의 사유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17.02.08 리뷰제목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우울함을 내비쳤다. 아버지 마동수를 간호했던 아들이 외출해 여자를 만나러 갔던 사이에 홀로 죽은 아버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안도였던가. 아, 끝났구나, 끝났어... 라고 한숨을 내쉬었으니. 귀대 날짜 이틀을 남겨두었던 안차세는 군대 당직사관에게 전화를 해 휴가를 더 며칠 받고, 멀리 괌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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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우울함을 내비쳤다. 아버지 마동수를 간호했던 아들이 외출해 여자를 만나러 갔던 사이에 홀로 죽은 아버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안도였던가. 아, 끝났구나, 끝났어... 라고 한숨을 내쉬었으니. 귀대 날짜 이틀을 남겨두었던 안차세는 군대 당직사관에게 전화를 해 휴가를 더 며칠 받고, 멀리 괌에 있는 형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니가 고생이 많겠구나' 라고 말한 형은 돈만 부쳐주었을 뿐 찾아오지 않았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가 1972년이었다. 마동수의 혼백이 빠져나갔다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던 그 찰나의 시간에 물을 건너고 있었고, 너머에는 죽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시간 속 눈 덮인 만주의 길림 혹은 상해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소설의 시간은 마동수와 차남인 마차세의 시간과 교차된다. 마차세가 휴가 나오기 전 GOP에서의 시간, 휴가 나오기 전 받았던 박상희로부터의 편지. 그 편지를 들고 박상희를 만나러 갔던 시간까지 흐른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왔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고 저 밑바닥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광복이 되는 시점과 이어지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북에서 피난을 가던 사람들은 부부 혹은 아이와도 단절되는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 속 피난민들의 생활이야 뻔하다. 피묻은 군복을 빨거나 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해도 맞겠다.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복학을 하지 못했던 오차세와 베트남 전쟁시 파병되었던 오장세가 살기 위해 낙오된 장병을 사살했던 기억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괌 근처를 떠돌았던 형제의 이야기는 질곡진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멈춰있는 듯한 사람들의 삶. 그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했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라고 했다. 어쩌면 작가의,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가 들었던 이야기, 사진 자료, 신문 자료를 참고해 쓰여진 이야기는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나타냈다.

 

저자 김훈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서는 영웅이 나오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거리의 골목길 안쪽, 그들의 다 내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삶은 이들의 모습처럼 비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보니 살게 되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감정들, 지난 기억들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더 좋은. 아픈 기억이 떠올라 돌아가지 못하는 고국과 가족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마장세나 그러한 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감정의 갈래들을 글로 쓰고 작가는 마음을 내려놓았을까. 책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이 작가의 감정인양 느껴졌다. 책 속에서의 감정들은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왔고, 우리는 이 감정을 견디어가며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깊고 어두운 감정들의 갈래 앞에서 지난 날의 삶을 생각해본다.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이 조각조각 머리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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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공터에서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3 | 2017.03.04 리뷰제목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독립투사를 둔 아버지와 친일파를 둔 아버지. 자식과 부인 입장에서 어떤 것이 더 좋았을까 하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토론 주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엄마이자 부인 입장에서는 ‘독립투사’라고 단정 지어 말하지 않더라. 자신 있게 독립투사라 말할 수 없는 건 일제 강점기가 아닌 지금도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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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독립투사를 둔 아버지와 친일파를 둔 아버지. 자식과 부인 입장에서 어떤 것이 더 좋았을까 하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토론 주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엄마이자 부인 입장에서는 독립투사라고 단정 지어 말하지 않더라. 자신 있게 독립투사라 말할 수 없는 건 일제 강점기가 아닌 지금도 사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 아닐까? 이 나라가 독립투사의 후손들이나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했더라면 독립투사를 둔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안다. 독립투사의 가족들이 모두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단지 경제적인 부분 외에 견뎌야 할 고통이 크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가족이라면 흔쾌히 오케이 할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한 가정의 살림을 빈틈없이 꾸린다는 것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다는 것이, 내 주변 사람들과 평범하게 지낸다는 것들이 모두 어려운 일들이란 생각을. 특히나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산다는 것은 더더욱. 사춘기 때엔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낳고,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나의 부모님. 외면하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아팠고, 또 그러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내 부모님.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꽃같이 아름다웠던 청춘의 시간이 있었음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어느 덧 나는 부모님과 치열하게 싸우던 내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 엄마는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김훈 작가의 신작 공터에서를 읽으며 나는 부모님을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나의 부모님 역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셨을 테니까. 역사에 남는 유명한 인물들도 존재하지만 세상은 그들보다는 평범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 대부분의 국민들에 의해 이어지고 존재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세상은 무섭고 달아나고 싶은 곳이다. 그럼에도 우린 어른이 되어가며 어려움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조선에서 살지 못하고 만주 일대를 떠돌며 살게 된 아버지 마동수의 세월과 마동수와 만나 결혼하게 된 이도순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둘의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사람들의 비극. 1979년 박대통령의 죽음.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마씨 가족의 굴곡진 삶이 책 안에 있다

 

가끔 역사를 공부하며 나는 저 시대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해방 이후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 독재 정치. 급속하게 진행된 세계화와 자본의 잠식.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들. 하루하루를 쪼개보면 그렇고 그런 날들이겠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이런 저런 사건과 사고들. 결코 평탄한 세상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혼란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또한 힘겨운 삶은 아닐까? 아버지와 아들의 삶과는 또 다른 엄마들의 삶. 세상 변화에 민감하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부모를 만났다면 이 세상이 조금은 편안했을까? 권력의 최고층에 있는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의 자손들은 자신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줬기에 부모가 창피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그렇지 않고서야 부끄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겠지. 부모를 잘 만난 것도 스펙이라 말하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기에 우린 또 그렇게 열심히 산다. 내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주려고. 근데 보다 나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그런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헛헛함을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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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아들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들 평점10점 | g******1 | 2017.03.21 리뷰제목
(사진출처 - 본인 휴대폰 ^.^)아빠, 아버지아기가 말을 막 시작했을때, 대개 엄마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맘마 등과 함께 아빠를 배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아기 때 성립된 그 따스한 보호자와 위안적 존재인 아빠-딸의 관계에서 평생동안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는 나이를 시점으로 해서 대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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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본인 휴대폰 ^.^)

아빠, 아버지

아기가 말을 막 시작했을때, 대개 엄마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맘마 등과 함께 아빠를 배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아기 때 성립된 그 따스한 보호자와 위안적 존재인 아빠-딸의 관계에서 평생동안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는 나이를 시점으로 해서 대개 아빠라 부르는 걸 멈춘다. 아빠가 아버지가 되면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어르고 달래고 받아주는 아빠로서의 역할은 끝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가부장적 권위가 전면에 부상한다. 어쩌다 보니, 홀로 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가족의 유대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 가여운 아버지들은 자라온 환경이 만들어낸 틀 속에서 가장 자신이 기대하는 가장으로서의 위치가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가정에서의 남자의 위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한 채 자주 길을 잃고,  가족으로부터  유리된다.

아빠가 아버지가 되면 아버지는 고독해지고 아들은 독립적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모습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들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싶어한다. 극복은 쉽지 않다. 오이디푸스도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예언을 피해, 자신의 왕국조차 포기하고 떠돌던 오이디푸스가 운명의 힘에 의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던 신화가 상징하는 것처럼, 아들에게 아버지는 분리될 수도 극복될 수도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내 아버지, 시대의 아버지들

망국과 해방과 전쟁과 독재를 경험했던 아버지들은 ‘공회전하는’ 역사 속에서 온 몸을 갈았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무거운 역사의 하중을 견디고 또 견디며 자신의 씨를 뿌렸고, 견고한 고독 속에서 사회의 얹어리에서  천천히 스러저갔다.  김훈 작가는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 실린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  ‘술주정뱅이에다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아버지가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이렇게 회상한다.


말을 달릴 선구자의 광야가 이미 없다는 것은 나는 좀더 자라서 알았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이 없는 시대의 황무지를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 광야를 달리는 말(라면을 끓이며) 에서

작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쓰고 있다고, 썼다가 지웠다고,  혹은 쓰다가 못썼다고 전했다. 작가가 말하는 아버지는 비단 김훈 작가의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시대의 얹어리를 살다 간 수많은 당대의 아버지들, 시대와 부딪치고 시대에 저항하며 그 몸서리치게 반복되는 시대의 황무지를 좌충우돌 하면서 몸을 갈던 시대의 아버지들이다. 몇 안남은 김훈 작가 세대의 아버지들인 몇 안남은 그들은 지금 몇 줌 안남은 마지막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내 쉬며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언뜻 언뜻 소설 속에 내비치지만, 작가의 아버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더 많은 아버지들이 작품 내에 녹아 있다.

작가 스스로 작품을 초라하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작품이 긴 호흡을 가진 서사를 만드는 대신 작은 기억의 파편들로 이루어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 듯 싶다.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의 긴 인생 행로를 종으로 비추지 못하고 그들의 옆구리를 이곳 저곳에서 찔러 단면만을 보여주고 만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들은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거나, 아버지와 타협하지 못하거나, 또는 스스로와 화해하지 못한채 서로 분리되지도 유리되지도 못한 채 서로의 삶의 얹어리들을 스친다.

죽음의 시간들

죽음을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문학적으로 승화되는 지점에서 작가의 위대함을 본다. 소설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시간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마동수는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전방에서 휴가나온 아들은 가정을 지키지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둘 사이를 흐르는 불편한 기운을 느낀다. 죽음 직전의 무력과 아들을 향한 어쩔 수 없는 미안함을 본다.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 분들의 의식의 바닥은 어느 시간 어느 공간 속을 있을까가  하염없이 궁금하고 슬펐었다.

시간은 마동수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먼 변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마동수의 육신은 그 시간의 썰물에 실려서 수평선 너머로 끌려가고 있었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죽음이 이끄는 썰물에 실려서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갔다가 다시 밀물에 얹혀서 이승의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를 세 번 거듭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혼백이 먼저 육신을 떠나서 멀어졌고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

물이랑 너머에서 죽음의 세상은 펼쳐져 있었다. 생명의 맨 끝자락에서 모든 감각이 바스러졌고, 그 자리에서 죽음의 세계에서만 작동되는 낯선 감각이 돋아났다. 그것은 청각도 시각도 아니었지만 그 감각으로 마동수는 물이랑 너머의 세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시간은 발생 이전의 습기로 엉겨 있었고 진행의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채 안개로 풀어져서 허공에 밀려다녔다. 그 뿌연 시간의 안개가 갈라지는 틈새로 물이랑 저편의 세상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풍경은 오직 적막했다. 거기에서 죽은 자들은 끝없는 벌판을 제가끔 건너가게 되어 있어서,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서 안개의 틈새가 메워지고, 마동수는 다시 이부자리 위로 떠밀려 왔다. 그때 마동수는 얼핏 혼수에서 벗어났다. 천장의 도배지 무늬가 마동수의 의식을 잠깐 붙들어주었다. 그 도배지는 저승의 무늬로 보였다.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롤모델이 없는 아들은 아버지를 인생에서 끊어내는 것만이 아버지를 극복하는 것이고, 인생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를 피해, 가족을 떠나 살아가는 아들의 인생은 아버지의 것과 그닥 달라보이지 않는다. 배경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삶. 가족을 떠나 베트남에 참전하고 괌에서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하는 듯 보이는 큰아들 마장세는 아버지를 극복하려다가 스스로 아버지가 된다.

가난으로부터 구제되지 못한 두번째 아들 마차세는 스스로 사랑으로 일군 가정에서, 아버지를 극복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추운 전방에서 휴가를 받았던 동생은 형 없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치매 어머니의 요양원 비용을 댄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그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리 만무여서, 결혼 후 오랜 실직과 오토바이 배달을 하기도 하는 등 위태롭고 고단한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따스한 그의 아내 박상희가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족과의 끈을 잡으려는 박상희의 노력은 실질적으로 형과 동생 사이의 어떤 관계의 개선을 이루어낸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정신적 덫과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고 자유롭게 하는 데 기여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즉 가족을 끌어안고자 하는 박상희의 정신이 가족을 극복하도록, 현실을 살아내도록, 주저 앉거나 밀려나지 않고 그대로 현실 속에 버티고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거라고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아버지가 남긴 모든 정신적 유전자적 유산을 끊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자신만의 인생, 자신만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은 혼서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세대와 세대를 흐르며 끊임없이 유전자들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서로와 서로에게 거울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변화하도록, 세계가 늘 새로와 지도록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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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골드 c******4 | 2018.08.07 리뷰제목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7쪽)첫 문장의 의미가 남다른 김훈의 소설 <공터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인공의 삶이 마무리되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분명 이야기는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소설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왔던 한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
리뷰제목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7쪽)


첫 문장의 의미가 남다른 김훈의 소설 <공터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인공의 삶이 마무리되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분명 이야기는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소설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왔던 한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동수의 삶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동수는 경술년 국치의 해에 태어나 서울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 장춘, 상해를 떠돌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돌아온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피 묻은 군복을 빠는 빨래꾼이 된다. 이 때 흥남에서 피난온 이도순을 만나 부부가 된다. 장남 마장세와 차남 마차세가 태어나지만 아버지 마동수는 변변한 직업없이 가끔씩 집에만 들르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가족 생계는 오롯이 이도순의 몫이었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정리한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닐까? (184쪽)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그곳에서 제대하고 바로 미크로네시아로 가서 정착한다. 거기서 호텔업과 고철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좋아서 정착했다기보다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아버지 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가기가 싫었고, 둘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전우 김정필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는 베트남에서 함께 작전시 부상을 당했으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되어 자신이 사살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죽은 김정필과 함께 무공훈장을 받았던 것이다.


차남 마차세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제대하고 사귀던 여자 박상희와 결혼하지만  주간지 인턴기자로 취직한지 3개월만에 해고된다. 미대를 졸업한 아내 박상희의 미술학원 강의수입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의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어머니 이도순도 마동수가 죽고 난 후 8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다. 장남 마장세도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좋지 않은 모습으로 귀국한다.


내세울 것 없은 우리 이웃의 삶이 급박한 역사적 사건의 전개를 따라 그려진 작품이다. 이들은 세상과 겉돌면서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쫒겨 다닌다.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고 하루하루 마치 공터에서 혼자 쓸쓸하게 서 있는 듯하다. 지난 시대의 역사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심정이 작품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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