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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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김별아 장편소설

김별아 | 해냄 | 2012년 8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 8.3 (7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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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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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꽃이기보다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자 했던 여인 '煖'『채홍』 평점8점 | w*****8 | 2012.03.05 리뷰제목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들은 많다.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한 남성중심의 사회인 조선에서는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남성들이 천하를 호령할때 여성들은 다소곳한 몸가짐과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지아비를 따르는게 또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졌던게 우리의 역사, 조선의 전례였다. 여인의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새어나가서도 고개를 꼿꼿이 쳐들어서도 구구절
리뷰제목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들은 많다.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한 남성중심의 사회인 조선에서는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남성들이 천하를 호령할때 여성들은 다소곳한 몸가짐과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지아비를 따르는게 또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졌던게 우리의 역사, 조선의 전례였다. 여인의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새어나가서도 고개를 꼿꼿이 쳐들어서도 구구절절 말이 많아서도 안된다. 그저, 있는듯 없는듯, 집안 살림만 잘 건사하고 지아비를 잘 섬기기만 하면 그게 최고의 미덕이요, 제대로된 현처賢妻라는게 명명백백한 시대였다. 이런 의 사회에서 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여인은 부덕不德한 사람이요, 악녀요, 되바라진 요부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여기, 김별아 작가의 팩션(faction) 소설 『채홍』의 주인공,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세자시절 두 번째 빈이었던 순빈 봉씨가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익히 알것도 없이 그녀의 기록이야 많은게 남아있지 있다. 그저 '조선 왕실 유일의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으로서 회자되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는 유흥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랑으로 죄가 된 시대, 사랑으로 불사르리라!

 

지금처럼 자유연애가 성행하던 시절이 아니었다는걸 먼저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그 뒤에 순빈 봉씨가 있다(소설 속에서 작가가 그녀에게 지어준 아명은 '난煖'이다) 그런데 민가의 여염집 아낙도 아니고 장차 나라의 국모가 될 사람에게 자유와 사랑은 입 밖에 내어서도 안될 말이고 꿈꾸어서도 되지 않을 일이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고명딸로 온 가족의 사랑을 담뿍 받아왔던 '난'은 얼굴은 복사꽃처럼 해사하고, 하늘 아래 그 어느 하나 무서울 것 없는 당차고 총명한 아이었다. 어려서 어미의 정을 모르고 자랐기에 아비와 오빠들은 막내딸이자 동생이 하고자 하는것은 물론이요 원하는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한마디로 세상에 못할것도 겁낼 것도 없던 사랑만 받고 자란 어여쁘디 어여쁜 소녀일 뿐이었다. 그런 난이 규율과 규범과 체면을 중시하는 왕궁에 적응하기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는게 자명한 일이고 더군다나 의지할 데라곤 지아비 뿐일 터인데, 역시나 체면과 예를 중시하고 행여 여인에게 손닿을까 스칠까 전전긍긍하는 향(문종)에게서는 애정어린 한마디 말조차 기대하기가 어려웠음에 보는 이로 하여금 봉빈의 운명의 기구함에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자신의 배우자에게서조차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삶만큼 처량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도 사랑받고 싶은 소망이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니, 파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후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옛부터 궁중에서 궁녀들의 사사로운 동성애가 성행했다는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사방이 막혀있고 발소리가 날까 숨소리가 날까 숨막히는 체계로 똘똘뭉친 구중궁궐九重宮闕 그곳에서 트일 숨통이라고는 같이 동고동락하는 지기들 뿐일테고 그 의지가 촉매가 되어 연정이 싹튼 것을 그 어찌 무조건적으로 잘못 됐다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외로움이랬다. 외로움으로 죽을수도 있을 만큼 극악한 병이 외로움병이다. 그에 그 외로움을 견뎌내고자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한 그녀들을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 만도 없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한낱 궁녀도 아닌 세자빈이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는데에 모두의 이목은 집중된다. 하지만 이를 '동성애'라는데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견딜 수 없었던 외로움의 마지막 퇴로退路같은, 본인도 어찌할 수 없었던 운명이지 않았나 그런 합리화 또한 나 스스로 봉빈에게 부여해본다.

 

 

억압된 굴레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우고 역사는...

 

봉빈은 단지 관심이 필요했을 뿐이고 따뜻하게 보듬어줄 임이 그리웠던 것뿐인데 세자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뿐만 아니라 예쁜 얼굴조차도 죄악으로 치부하여 악녀 중의 악녀로만 취급을 해대니 당하는 사람은 더 독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한마디, 사사로운 다독거림 한번이었다면 봉빈이 그렇게까지 외로움에 치를 떨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구걸하지도 시종에게 눈 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소설의 재구성으로만 파악하는 한가지 답안일 뿐이다. 흔히 팩션소설에서 따라오는 폐단이랄 수 있는게 허구를 기정사실화 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였다고 한들 이 부분은 작가의 색채가 짙게 베어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특히나 이런 소설을 읽을때는 다각도로 생각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아래는 순빈 봉씨純嬪 奉氏에 대해 세종실록에 실려있는 짧은 기록이다.

 

"성질이 투기가 많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며, 또 궁궐 여종들에게 항상 남자를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또 세자가 종학으로 옮겨 가 거처할 때에 몰래 시녀의 변소에 가서 벽 틈으로 엿보아 외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역사는 승자를 기록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랑 앞에서는 승자였을지도 모르나(자신의 사랑에 솔직했다는 이유로) 역사 속에서는 명백한 패자일 수밖에 없다. 폐출된 순빈 봉씨에 대한 이 짧은 기록으로는 우리가 그녀를 다 알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렇듯 팩션소설로도 탄생하는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든 재구성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많은 역사소설이 남성 인물 위주의 형식이었던 것에 비해 김별아 작가의 『채홍』같이 시대가 다 기억하기도 벅찬,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등돌린 여성인물을 재조명 하는 부분은 다양한 역사적 조명이라는 차원에서 꽤 괜찮은 시도라고 보아진다.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를 기록하기도 하거니와 이 승자 또한 대부분 남성들이다. 그렇기에 여성에 대한 기록은 그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할 수밖에 없고 팩션이라는걸 충분히 감안한다면야 이런식으로 다시 한번 관심의 중심에 비운의 삶을 산 안타까운 여인이든 악녀의 삶을 산 여인이든, 그녀들의 삶을 두루 생각해 보게 하는건, 소설이지만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다중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여운을 안겨준다.

 

 

사랑을 돌아보고, 돌아본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들 흔히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음양'의 조화일때만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큰 반감은 없다. 나와는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들일 뿐이라는 생각이고 충분히 그들을 존중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마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분명 처음에는 조금은 꺼려지는게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 앞의 국경의 부재不在는 이성끼리이든 동성끼리이든 나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아, 나는 이성애자이다!) 세간의 눈에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사랑도 있는 것이요, 그에 반하는 사랑도 세상에는 있음이라. 그 어느 것인들 잘잘못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다. 남의 이목이든 남의 눈초리든, 사랑에 깊게 침잠해 있을때는 내 사랑만 보이고 내 사랑만 세상에 존재한다. 봉빈이 찾아간 꽃이 남성이었던들 그 또한 지탄을 받았음은 물론이었을테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눈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았더니 그 대상이 같은 성을 가진 여인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사랑과 욕망에 솔직했던게 죄라면 죄였을까. 그렇다고 봉빈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세상 만물이 음양의 조화가 있고 그에 맞추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순탄히 돌아가주면 그 얼마나 좋으련만, 이에 대해서는 봉빈이 여성을 사랑하게끔 벼랑끝으로 내몬 요주의 인물 문종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다. 나라의 국부이기(봉빈이 폐출된 후 즉위) 이전에 한 여인의 지아비로써 내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외로움에 피고름이 켜켜이 멍울지게 만든 것 또한 잘한 처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그 어떤 일이든 상대적인 것이 존재하고, 그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마음의 응어리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부재와 소통의 단절이 가져온 아픔...

 

세상 모든 부부의 연을 이어주는 월하노인의 붉은 실이 이들에게만은 예외였나보다. 그 운명의 붉은 실이 두 사람의 운명을 저리도 기구하게 만들었다면야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실正室만 세번을 들인 문종 또한 가히 여복이 넘친다는 우스갯 소리로 넘겨 짚을 수 없다. 문종은 성정이 곧고 바르기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색에 큰 관심이 없던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세자 시절에만 두 명의 세자빈을 얻었고 두 명 모두가 성정이 바르지 못해 폐서인 되는가 하면 세 명의 후궁(봉빈이 폐출되기 전)을 들이면서 간신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람 마음은 인력으로 어쩌지 못한다고, 박색이든 가인이든 마음이 동하여야 하는 것일테니, 세자 향을 향해서 왜 봉빈을 사랑해주지 못했냐고 원망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의 여인이 사방천지 자신을 옭죄기만 하는 창살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궁에서 눈 돌려서 마주친 그 누구에게든 정을 주지 않는게 더 어려웠을 일일테다. 소설은 크게 자극적일것 까지도 없고 그저 이기적이지만-사랑을 못받는 여자의 인생은 이리도 이기적이게 가련해진다- 미워할 수 만은 없는 여인의 외로움이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점점히 번져감에 내 마음도 따라서 잔잔히 파동을 치는 정도이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것으로써 끝나는 나의 안위 문제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됐든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뼈아픈 진리 아닌 진리를 되새겨 본다. 더 사랑하는 이가 약자라 하는 말은 진정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기 보다 단지 '사랑'을 하는 행위만을 두고 보는 사람들의 말놀음이라 생각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은 기억되기에, 기억된다.

 

아름다움 또한 봉빈에게는 죄가 되었으니, 세자의 냉대는 끝이 없는데도 매일같이 '열녀문'이나 읊고 앉아 있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통했을텐가. 여자는 자고로 보고도 못본척, 듣고도 못 들은척, 알아도 모른척, 귀 닫고 입 닫고 눈 감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렇게 순하디순한 존재여야 하는데 봉빈은 결코 사랑 앞에서만은 약자로 남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한몸, 한 마음 편히 놓일 꽃을 향해 그리도 날아가고 싶어했나 보다. 그녀가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지 (소설에서는 둘째 오라비에게 죽임을 당한다.)그도 아니면 스스로 자결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성정으로 보았을때, 결코 자신의 사랑(동성애)을 부끄러워 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는걸 짐작해 본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저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을 권력과 법도와 격식에 짜맞추는 세상이 퍽이나 이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비록 역사에 사랑은 기록되지 않지만 작가의 말처럼 기억되어 질 수는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토록 고통스럽게(세상을 떠들썩하게는 했지만) 사랑했기에 또 이렇게 기억의 끝자락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다소곳한 꽃이 되기보다는 세상을 훨훨 노니는 나비가 되고자 했던 여인.

 

나비는 꽃을 찾아 날아드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꽃은 그 자리에서 나비가 날아들길 한사코 기다리지만

 

나비는 꽃을 찾아 천지사방 그 어디든 날아가고자 한다.

 

봉빈 역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자신을 품어줄 꽃을 찾아 훨훨 날고자 했던 여인이지만,

 

정작 온전한 꽃이 되지 못했던 그 운명의 기구함과

 

한 마리 나비 날개의 외로운 퍼덕거림 속에 가엽고 가련한 마음만 분분히...

 

봄날, 저 떨어지는 꽃송이의 쓸쓸함처럼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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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채홍』 by 김별아 평점8점 | d******7 | 2016.02.04 리뷰제목
소설의 제목이 채홍(彩虹)인 까닭은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또한 중의적으로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 『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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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이 채홍()인 까닭은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또한 중의적으로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채홍』은, 세종의 적장자이자 조선의 다섯 번째 왕인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순빈 봉씨의 시점으로 그려진 이야기다. 알려진 본디 이름이 없고 죽어 얻은 시호도 없기에 한때 지녔던 순빈이라는 품계가 부를 수 있는 호칭의 전부다. 작가는 짧고 서늘했던 그녀의 생애에 온기를 불어넣는 '난(煖)'이라는 아명과 성씨를 따른 '봉빈'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냈다. 붉은 가마를 타고 갔다 검은 가마에 실려 오는 사이 꽃봉오리 같던 열여섯 소녀는 시들고 지친 스물셋의 소박데기가 되어있었다. 회임한 후궁을 투기하고 일상을 술에 취해 있고 여종과 사사로이 동침하는 추잡한 일까지 저지른 탕녀가 되어 사가로 돌아왔다. 공자가 말하고 유학이 정하고 열녀전 속의 귀신들이 증명하는 바대로라면 봉빈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파륜자였다. 훗날 나라의 주인이 될 세자와 함께 만백성의 어머니가 될 세자빈은 사랑받는 한 여인네로서의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까지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거늘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 여성들은 수많은 금기에 시달리는 가운데 특히 사랑을 통제받았다. 아무리 지엄한 명령과 법이라도 사랑하고 보니 사내가 아니었을 뿐인데 계집이 계집을 통해 음욕을 채우려 하는 것이 죄가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를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사랑을 부정했다. 상전의 요구를 차마 거절하지 못한 소쌍에게 정인이라도 된 양 봉빈이 집착한 결과가 되어있었다. 


"종학에서는 제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사옵니다. 저는 그저 세자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인(偶人:인형)에 불과했습니다." -p307


 

궁궐 내 궁녀들 사이에서 여자들끼리 남녀의 교접을 흉내 내는 대식(對食) 행위가 은밀하게 번져 하나로 풍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어미 젖을 떼자마자 궁으로 들어와 오로지 한 남자만 바라봐야만 하는 궁녀들에겐 어쩌면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욕망을 분출하는 방법이었으리라.


평소 담담한 낯빛과 점잖은 몸가짐으로 주 문왕의 아내 사씨를 빼쏘았다는 칭송을 받아온 세자빈 휘빈 김씨가 사가로 쫓겨났다. 폐빈의 사유는 어리석고 못나고 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세자가 빈궁에 오질 않자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비책을 궁녀로부터 알고 싶어했는데 그것은 '남자가 좋아하는 다른 여자의 신을 베어다가 불에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사랑을 받게 되고 신발 주인은 멀어져서 배척을 받는다'는 압승의 술법이었다. 두번째 맞이한 세자빈 순빈 봉씨는 사헌부 감찰을 거쳐 창녕 현감으로 재직한 봉여의 고명딸 '난'이었다. 일찍 어미를 여의고 유모로부터 젖을 물려 성장했으나 가족들과 주변사람들로부터 부족함 없이 양껏 사랑을 받았던 어여쁜 소녀였다. 궐에서 보았던 수백의 궁녀 중에도 그만한 미색을 갖춘 여인은 없었다. 그러나 세자는 덤덤했다. 세자에겐 덕도 소용없고 용모도 소용없었다. 상대의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구면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낯을 가리는 습성 때문이었다. 사내다운 외양에도 불구하고 여색에는 전혀 관심이나 흥미가 없었으니 특히 낯선 여자를 싫어한 점이다. 심지어 유적을 통해 습득한 선입관까지 있었는데 심하게 아름다운 사람은 반드시 심한 악을 갖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었다.


아름다운 것이 그녀의 죄일 리 없으나 아름다움 때문에 외면당하는 것도 그녀의 운명이었다. 의례를 행할 때는 정중하고 극진하기 이를 데 없던 세자였건만 단둘의 자리에서는 아내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신혼 초야부터 그녀 스스로 옷고름을 풀더니 결국 그녀의 궁생활은 설움과 황망함을 이룬 마당과부와도 같았다. 명랑한 성격의 난은 지아비의 처분에 고분고분 따르지 못하고 시비곡직을 물었던 게 용서 못 할 과오였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자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고,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좋은 것을 좋다고 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하는 일이 부끄러운 죄가 되었다. 사람의 삶이 짐승보다 나을 게 없었다.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입맛을 없었으며, 점점 웃음을 잃었고 울보가 되어갔다. 세자 내외의 불화는 부왕의 근심으로 옮겨갔고 효심을 발휘한 세자가 빈궁을 찾았으니 그것은 사랑이 없는 짐승 교배나 진배없었다. 


왕실의 고뇌에는 무엇을 희생시키고 어떤 사실을 곡해해서라도 세자에게 오점을 찍어서는 안 되었으니 자손이 널리 퍼질 수 있게 동궁에 잉첩을 세 명 들였다. 세 명의 승휘 중 권씨가 입궐 1년 만에 수태를 했다. 결국 봉빈도 사가로 쫓겨났던 휘빈 김씨처럼 미신적인 풍속에 매달렸고 급기야 상상임신까지 하기에 이른다. 임시변통으로 실혈(유산)했다고 거짓 실토한 것이 탄로났고 궁 안에서 모두의 비난 세례를 받았다. 거짓임신 소동 이후 술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고 급기야 금단 후유증까지 나타났다. 권승휘가 조산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이 가졌던 분노와 시기를 미안함과 죄악감으로 갚기 위해 술이 늘었다. 동궁의 딸이 낳자마자 죽은 뒤 임금은 세자와 봉빈을 종학에 나가 살도록 명했는데 첫 아이는 정실인 봉빈에게서 낳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궁 안에 있을 때보다도 더 나빠졌다.세자는 바빴고 봉빈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꽃다운 나이의 봉빈에게 그토록 간절한 것이 오직 술뿐이었다. 술이 아니라면 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비집고 바람의 아이, 여인이라기엔 석연찮은 궁녀 소쌍과 비에 젖고 사랑에 취하고 만다. 궐 안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도 세자는 봉빈이 벌인 내막을 끝내 묻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초연하고도 무심한 방관자였고 구경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첫째에 이어 둘째 세자빈까지 폐위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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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무지개 평점8점 | YES마니아 : 골드 m***8 | 2014.05.08 리뷰제목
책제목은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제목이 <채홍>인 까닭은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또한 중의적으로 다양한 채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적 상징이
리뷰제목

책제목은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제목이 채홍인 까닭은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되었다.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또한 중의적으로 다양한 채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채홍의 주인공은 순빈 봉씨로 세종대왕의 며느리이자 조선 5대 왕인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봉빈의 기록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실록에 많은 이야기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는 작은 기록으로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작가들의 상상력과 통합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채홍봉빈이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폐서인되는 과정을 그렸는데, 주된 봉빈의 사랑이외에도 궁궐 생활, 궁궐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어있다.

봉빈은 여자에 무지한 문종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 그것이 봉빈의 안타까운 운명이다.

봉빈역시 사랑에 서투르다. 그러나 봉빈은 조선시대 여인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펼친다

 

채홍은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소설이다.

그러나 봉빈이 나인 소쌍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는 실록의 역사 기록에 의거해서 인지 봉빈이 문종과의 관계에 실망하고 나인인 소쌍을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은 잘 드러나지만,

 ‘봉빈소쌍의 사랑은 필연적이거나, 운명적이란 생각이기 보다는 왕실의 세자빈으로써 부덕을 갖추지 못한 봉빈의 빗나간 일탈처럼 느껴지고 기억되어져 조금 안타까웠다. 

소설의 마지막 조선시대의 궁중에서 일어난 봉빈과 나인 소쌍의 사랑은 봉빈을 폐서인으로 만들고 사가로 쫓겨나 죽음으로 이어진다.

 

죽음의 순간 봉빈은 말한다.

나를 바라보는 작은 오라버니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네요. 나는 그의 붉은 눈과 손에 빼어든 번쩍거리는 단검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오라버니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오직 하나가........ 이것이었군요. 몸은 칼날 앞에 본능적으로 굳어졌지만 공포보다 더 큰 허탈감 때문에 살려달라고 울부짖거나 악다구니하며 매달릴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니 사내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제가 사랑한 사람이 여인이었을 뿐입니다!”

내입에서 띄엄띄엄 변명이자 항변이자 호소이자 고백인, 마지막 진실이 새어 나옵니다. 하지만 임금께서 내리신 교지에 삭제되어 기재되지 않은 바와 같이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아니 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각자의 기억으로 제각각 다른 빛깔로.......

 

그렇다. 사랑은 같이 하는 것이지만 사랑의 느낌은 각자의 것이니

봉빈의 외롭고 그리고 파격적인 사랑을  기록으로 사랑의 기억을 만든 소설 채홍>.

영화로 만든다고 한다.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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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채홍(彩紅) 평점8점 | j******6 | 2012.01.15 리뷰제목
인류역사를 통해 남성은 사회성과 신분 상승을 중시하고 여성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는거 같다.그러하기에 결혼한 여성이 부군 내지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고 냉랭해지면 사랑이라는 울타리는 벗겨져 나가고 서로 소원해지며 종국에는 헤어질 수도 있는 극한 상황까지 간다.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력과 성격 차이,무관심 등으로 헤어지는 일은 개인을
리뷰제목

 

 

 

인류역사를 통해 남성은 사회성과 신분 상승을 중시하고 여성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는거 같다.그러하기에 결혼한 여성이 부군 내지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고 냉랭해지면 사랑이라는 울타리는 벗겨져 나가고 서로 소원해지며 종국에는 헤어질 수도 있는 극한 상황까지 간다.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력과 성격 차이,무관심 등으로 헤어지는 일은 개인을 위한 길이라면 주위의 눈치나 불명예 따위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거 같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고 부모가 맺어준 혼인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아가야만 했던 시절이 부모님 이상의 세대는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살아야만 했던 인권과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절이 있었다.그 중에 조선의 세종의 며느리 순빈 봉씨는 부군이 세자이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10대에 혼인을 올리며 사랑이 뭐고 살을  섞는 것조차 모르는 어린 세자와 불편한 나날을 보내야 했으며 세종의 뒤를 잇기 위한 각종 수업과 대인 관계에만 신경을 쓰고 잠자리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숙맥과 같은 세자를 향한 불타는 정념과 탈주극이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봉빈의 가슴 아픈 사연을 그림 그리듯이 그려가고 있다.

 

 임금과 왕비의 낙점을 받아 순빈에 오른 세종의 며느리 봉빈은 임금과 왕비의 문안 인사부터 왕조의 규율과 격식에 맞춰 울타리에 갇힌 새마냥 자유가 있는 일반인이 아니기에 정신적인 고통이 컸을 것이다.세상이 고요하고 정지된 밤이 되면 그 날의 이런 저런 얘기와 정담을 나누고 살을 섞어가는 극히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의식을 세자는 몰랐던 것일까? 봉빈을 보고 세자는 '소가 닭보듯이'철없이 무관심으로 대하고 봉빈은 끌어오르는 생리와 정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마음 속으로 안달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임금(세종)과 왕비는 세자와 봉빈으로부터 세손의 소식이 없자 부모와 자식이 너무 가까이 있어 신경이 쓰일까봐 종학(宗學)으로 가게 하고 젊은 부부가 자유스럽게 생활하도록 배려하며 세손까지 바란다.

 

 학문적으로 수양하고 임금 교육을 받기 위해 세자는 봉빈과 거리를 두게 되고 밤에도 같은 침소를 쓰지 않는 등 정상인이 보았을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고 성정체성이 무엇일까까지 의심마저 든다.세자의 성격 또한 결벽증 환자마냥 머리카락 한 올,먼지  냄새,꺼림칙하고 불완전한 것들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정된되고 청소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유자인거 같다.봉빈 역시 세자를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올지를 생각하면서 상상 임신까지 하면서 임신 소동까지 벌어지고 결국엔 낙태를 빌미로 자신이 꾸민 가짜 임신사실을 감추기에 바쁘고 궁궐에 들어온 궁녀나인들 중에 소쌍이 봉빈의 정념을 휘려쳤는지 결국 봉빈은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인 소쌍과 함께 옷을 풀어헤치고 몸을 더듬으며 손과 몸,입으로 동성간의 야릇하고 허망하며 길게 가지 못할 구렁텅이로 빠지고 만다.세상엔 비밀이 없듯 임금과 왕비의 귀에 봉빈의 일탈적인 행위가 소문으로 남게 되고 임금은 봉빈을 불러 앉혀 사실 여부를 캔다.봉빈은 남편인 세자로부터 못받은 사랑과 굶주린 사랑을 떠나 행위의 자초지종을 고백했을까?

 

 봉빈은 비록 사랑과 욕망을 동성에게서 찾았지만 분명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출했던 비범한 인물이고 세자는 성불구자가 아닌 이상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하고 사랑을 주고 배려를 해야 하는 부군의 입장에선 죄의식과 책임감이 결여된 인물이며,비록 세자가 나이가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 해도 주위에서 잠자리 교육과 2세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봉빈이 임금과 독대를 마치고 뜰 앞에 선 기분은 어떠했을까,숨김 없고 솔직했던 봉빈은 그 후 세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가 무척 궁금하다.금기시되고 위태로운 동성애는 현재도 사시로 바라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체제와 규율,가문이 중시되었던 조선의 왕조 가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자체가 파격적이고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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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그녀도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을까?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3 | 2012.01.06 리뷰제목
채홍 :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중의적으로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 (LGBT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책 뒤편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가 국사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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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

         왕이라는 태양이 빛나는 반대편에는 권력과 사랑과 질투 등의 인간적인 감정들로 채색된

         여인들의 무지개가 떴다.  중의적으로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 (LGBT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 (책 뒤편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가 국사를 배울때 태정태세문단세...  로 시작하는 조선의 왕만 외웠지 그 안에 들어 있는 세세한 내용을 배운적은 없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한국사 공부가 심화과정으로 올라가면서 역사소설들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가 배우지 못했던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면서 그들의 인생사가 궁금했었다.

얼마전 정의 공주를 읽으면서 만약 세종이 허약한 문종에게 왕위를 주지 않고 수양대군에서 왕위를 물려줬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또 다른 흐름을 탔을거란 생각을 했다. 세종 자신이 장자가 아닌 상태에서 왕위를 물려 받았기에(그부분에선 형에게 미안하고 또 약간의 컴플렉스가 있어보인다) 세종은 무조건 장자에게 왕위를 주려했던 것 같다.  자식은 내마음대로 안된다더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도 자식앞에선 그냥 평범한 아버지란 생각을 했다.

 

결단력있고, 건강하고, 때론 왕위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이 있었다면 자신의 아내를 그렇게 허망한 인생으로 내몰지 않았을텐데...   이 책을 보면서 어떤이들은 봉빈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뭐 이런 책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이들은 가련하다 못해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세자빈.. 세자가 왕위에만 오른다면 중전이라는 타이틀을 옆구리에 차고 앉자, 세상을 호령할 수도 있는 자리임에도 봉빈은 바람앞에 호롱불이었다.

 

어릴적부터 귀염있게 그리고 귀하게만 자랐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기는 했으나 오라버니의 사랑을, 아버지의 사랑을, 새어머니의 사랑을 듬뿍받으며 자랐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당차게 자랐다.  절세미인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자존심과 콧대가 높았다.  못생기고 투기가 심한 휘빈 김씨가 폐비가 되고 그 자리에 앉으면서 얼마나 못났기에 폐서인 되었을까 비웃었다.

하지만 신혼 첫날부터 그녀의 자신감은 유리컵 깨지듯이 산산조각나 버렸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인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다는 이유로 세자는 그녀를 가까이 두지 않았고 때론 두렵다 생각하게 되었다.

 

격식, 의례, 절차....  그 모든 것을 앞세워 남의 인생을 걱정하면서도 제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세자...  그런 세자가 남들에게 부자와 군신과 부부와 장유와 붕우의 오륜을 가르치기에 열을 올리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그 또한 이상한 소문에 소문을 만들어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가 해야할 일은 오직... 사내아이를 낳아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  하지만 그것도 혼자 할 수 있은 일이 아니니... 그녀의 두려움은 날로 커져만 간다.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한 모든 잘못은 역시... 그녀였다. 

 

가끔...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든 역사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기록한 사람은 분명 남자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때문에 봉빈은 쳐 죽일년이 될 수밖에 없다. 높고 높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세종 대왕의 역사 앞에 여인들의 사랑이 왠말이냐....

 

부부의 사랑과 연을 중하게 여기기에 앞서 대를 이을 사내아이를 낳는 일이 제일 중한 그곳에서 그녀들은 어떻게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그녀를 대변하고 싶은 생각을 없지만 그들의 삶 앞에서 울컥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격식, 절차, 의례, 명분, 도리.... 처방은 다양했으나 무엇도 내게는 효험이 없었습니다.

후궁을 들이고 열녀문을 가르치고 종학에 내보내 끈 떨어진 망석중이를 만들었던 일은 환부를 덧나게 할 뿐이었죠. (중락) 장차 국모의 보위에 오를 세자의 정처인 나는 비단 병풍을 두르고 꽃방석에 앉은 채 금방이라도 질식해 죽어갈 지경이었습니다.... (중략)...

애초에 몸과 맘이 닮은 우리는 사내들과 상관 없이 세상에 모르는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할 줄 알았습니다.....  "가라 부디 다음 세상에선...... 사내로 태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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