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의 책 중 읽은 것이라곤 [댓글부대]가 다 이지만 그 작품에 대한 인상이 강해서 다음 작품부터는 구입해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전 작품들도 읽어야지, 하곤 있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작가의 최신작들도 줄줄이 나오니 과거의 책들은 자꾸만 미룬다. 페북에 작가가 올린 에세이 출간 소식을 보곤 전작은 놔두고 신간이라도 잊어먹기 전에 사두어야겠다 싶었다. 저 사진은 8월에 책을 사자마자 찍은 사진이다. 바로 읽고 싶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음에도... 벌써 시월이구나.
제목만 보고 궁금했었다. 결혼'식'을 끝내고 설렘을 가득 안고 달리는 곳이 신혼여행지 아니던가. 생애 최대의 치장을 하고 현실의 내가 아닌 동화 속의 공주로 변신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 바로 결혼식에서의 황홀한 한 시간을 위해 우린 어마어마한 돈을 쏟는다. 결혼을 준비하는 건지, 결혼'식'을 준비하는 건지 분간은 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는 것이 럭셔리 신혼여행. 결혼이라는 대업에선 값비싼 여행상품은 용서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보통 그렇게 밟는 우리네 결혼'식' 문화 아닌가. 그런데 결혼하고도 5년만에 신혼 여행을 떠나다니. '신혼'은 한참 지났지만 신혼여행은 보통명사로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결혼은 했으나 남들 다 가는 신혼여행을 이제 떠나는 것일 뿐이다.
책에서 장강명 작가는 아내를 HJ로 지칭한다. 아내가 실명을 쓰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겠지. (아마 독자들은 이니셜만 보고 이름을 상상할 것이다. 희진? 혜진? 희주? 혜주? 효진인가? 이러면서) 흔한 여행 사진 하나 없다. 간결한 선과 묽은 단색으로 칠한 삽화 몇 개가 전부다. 장강명 작가의 개인사를 조금씩 엿보는 즐거움은 나도 역시 관음증 기질이 있구나, 하며 쑥쓰럽게 웃어버리기도 했다. 장강명 작가 부모님쪽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식은 뺀 혼인 신고만, 거기다 정관수술을 해서 자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이다. 결코 평범에 속하지 않는 이탈자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독립적인 삶의 자세가 오히려 돋보였다. 소신껏 선택한 방식이라면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는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행복하고 좋아죽겠는 걸 뭐.
에세이는 작가의 색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문체 같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세상에 대한 태도가 더 선명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장강명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서인지, 이공계 출신이라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라 공과 계열로 진학했고 기자도 선택했는진 모르지만 어느 게 앞이 되고 뒤가 되던 간에 글 속에서 드러나는 장강명은 냉소적이고 건조한 시선은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감각을 깨우는 서정성이나 감성적인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사물에 대해, 현상에 대해 뭉글한 표현으로 파고들기 보단 현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설명식 서술을 하고 어느 순간 자신이 가졌던 생각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장강명 작가와 HJ는 보라카이로 3박5일 일정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여행 일정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사람은 여느집처럼 아내인 HJ이다. 3박5일짜리 여행을 한 권의 책을 엮을만큼 할 말이 많았다는 것이 놀랍다. 억지로 분량 늘렸겠다 싶었는데 읽는 동안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3박 5일이 꼼꼼하게 들어 있다. 부부 간의 대화가 글에서 느껴지던 장강명의 냉정함이 없어서 그 점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도 귀여운 남편, 애교 있는 남편,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란 게 놀라(?)웠다.
이 장면에서 배시시 웃었다.
나도 남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옆에 없었기 때문에 문자를 보내보았다.
내남편의 답도, 가관이다.ㅋㅋㅋㅋ
여행 스타일이 나와 조금 달라서인지 하나하나 돈으로 따지는 HJ의 모습에 이상하게도 측은함이 들기도 했다. 뒤쪽에 장강명 작가가 그런 아내에 대하여 "가난한 집 딸의 자세를 아직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즐거움을 맛볼 때도 늘 본전을 생각하는 습관이 그녀의 몸속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202쪽)라고 서술했는데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꼼꼼히 사전 조사하는 여행 방식이 삼십대 후반의 내겐 귀찮은 일이 되었는데 이것은 혹시, 예전보다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쪼들리는 것이 덜하게 되어서인가? 가난한 딸로 살아보진 않아서인지도.(나의 가난에 대한 기준이 낮다는 말이기도 하다. 먹고는 살았으니 , 대학 교육까지 시켜주셨으니 가난하지 않다는 말.)
이들만의 방식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잘 맞는 두 사람이 만났으니 남들이 뭐라하든, 왜 평균에서 벗어나는 삶을 사냐고 물어보든, 개의치 않고 둘이서 즐겁게 알콩달콩 살아갈 것이 눈에 딱 보인다. 특히 장강명 작가의 곤조(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음)가 마음에 든다. 독자로서 장강명 작가의 글에서 묻어나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남편으로서의 장강명 작가를 보고 있으니 HJ도, 장강명 작가도 서로 윈윈, 잘 만났다 싶었다.
에세이 곳곳에 장강명 작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뚜렷이 보인다. 불편하게 덜그럭 거린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혼재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니.... 살맞대고 사는 둘이 즐겁고 행복하면 됐지.
사랑하던 남녀가 결혼한 뒤 부부로 살면서 어느 한쪽의 희생 없이 원만한 가정생활이 이뤄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양성 평등을 넘어 평등 부부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이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평등한 부부로 지내기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일일 것이다. 생리적 욕구 충족에서부터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실현하려는 반려자의 동기부여는 상대의 이해와 사랑을 전제로 한다. 결혼 후 자식이 태어나면 어느 한쪽의 양육 부담은 더욱 커져 갈등은 심화되어 사랑보다는 증오의 싹이 발아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맞벌이 부부로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며 사회생활을 잘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자식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부모로 살면서 짐 지고 가야 할 숙제로 자리한다.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 시민권을 획득하여 그곳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현지 적응 역시 힘들었음을 드러낸 <<한국이 싫어서>>속 주인공이 저자의 아내 HJ이었음을 고백하며 부부의 신혼여행 보따리를 펼쳐 보인다. 9학기 째 대학을 다니면서 학회 행사 진행을 맡아 HJ의 관심을 끌어서인지 둘은 학과 선후배로 만나 여느 연인들이 밟는 수순을 건너뛰기도 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배우자의 부모 눈에 들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고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는 어른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문 하단의 모서리에 낸 결혼 광고로 식을 대신하고 부부가 되어 그들만의 생활 수칙을 지키며 유교적 관행에서 이탈한 생활을 이었다. 명절 때는 며느리를 보기 싫어하는 시어른을 찾지 않고 친정으로 가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HJ의 곁에는 든든한 후원인인 저자가 있어 가능했다.
정관 수술로 아이를 갖지 않는데 합의한 부부는 부모로 살면서 겪어야 할 희로애락과는 거리를 두고 부부 중심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골몰하였다. 신속함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전업 작가로 돌아선 저자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부담을 안고 글을 쓰는 일에 주력하였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새로운 꿈을 실현하려는 열정은 실천적인 집필로 이어졌다. 직장 생활하는 아내가 출근하면 구상한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여 책을 출간한 뒤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은 조바심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학계의 동향과 시류를 읽어내는 힘이 있어서인지 큰상을 수상하면서 작가 장강명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결혼 5년 만에 3박 5일 일정으로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여행 전에 준비한 여행 이야기, 현지 리조트에 머물며 겪은 일들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공감을 더한다. 잔잔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 즐거운 해양스포츠가 어우러진 보라카이는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낙조를 보기 위해 서해를 찾는 것처럼 화이트 비치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며 지금껏 바쁘게 살아내느라 여유롭게 해가 지는 풍경을 볼 생각을 못한 채 지나왔던 시간을 반추한다. 한낮의 바닷가는 조각조각 난 사유지였고, 최소한의 장비로 수익을 올리는 부동산으로 자리하는 필리핀의 관광 사업의 일면을 가늠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 마시고 싶은 맥주에 싱싱한 해산물을 곁들이고 해변의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리는 일은 분주한 일상에서 비껴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보라카이의 호텔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D몰을 집 앞마당처럼 들락거리며 필요에 따라 음식을 맛보고 술을 마시며 여행자의 욕구를 충족한다. 망고 주스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으며 뒹굴며 여유를 부리는 즐거움 역시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책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더라도 각자 책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확장해 가는 부부의 모습에서 이해 증진을 위한 실천을 읽어 내린다. 책 속의 다양한 생활상이 관계지향적인 삶을 끌어주는 원동력으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키 어렵고 어떤 행복과 불행을 알 수 없지만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독자성을 인정해주는 부부의 배려는 보라카이 신혼 여행기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에서 좋았던 부분을 공유하며 다음 여행 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부부의 모습에서 행복을 읽는다. 2014년 11월 이후로 결코 다투지 않고 서로 사랑하다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나는 상상 속에 작가는 평안함을 찾으며 일상으로 회귀하였다.
26년 째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50대 부부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서로를 향해 세우던 날이 무뎌졌다. 그동안 성질 달래며 살아내느라 힘든 시간은 나잇살만큼 쌓여 세상을 보고 수용하는 폭이 넓어졌다. 피곤하다더니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남편의 주름진 이마를 들여다보며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영영 볼 수 없는 그대를 좀 더 이해하며 살자고 다짐한다. 가치관과 성향이 달라 합치된 의견을 보일 때가 많지는 않지만 이 또한 자신을 키우는 동력이라 여기며 가치를 부여한다. 해야 할 일들을 방기하지 않고 묵묵히 행하는 일에서 두터운 정을 가늠하며 애정의 깊이를 더한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하게 되면 하는 거지만 못한다고(?) 아니 안한다고 해서 큰 일 나는 건 아니니까. 나에게 결혼은.... 그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연애와 결혼 기간이 단 3개월뿐이라 솔직히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그게 전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아닌 것 같고, 성격 급하신 울 시어머님의 행동력 덕분(?)인 것 같다. 만약 그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 것 같다. 홀 시어머님과 같이 살아야 하고, 결혼하지 않은 손위시누이, 그리고 나보다 나이 많은 결혼하지 않은 도련님도 있었고 제사도 제법 많은 집이었으니까 ㅠㅠ)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도 남편은 욕심을 부렸다. 함, 약혼식, 웨딩촬영을 다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나마 화를 내서 약혼식은 생략했지만 나는 함도, 웨딩촬영도 너무 싫었다. 남편이야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었기에 함을 들이는 것이 재미있었겠지만 나는 이게 뭔 짓인지 싶었다.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웨딩촬영. 진한 화장에 늘어지는 드레스를 입고 인형처럼 웃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촬영하고 나서 그 사진을 볼 것 같지도 않은데... 남편은 나와 다르게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결혼해서 잘 사는 게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 앞에 보여 지는 이런 의식들이 왜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생략한다고 해서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걸 하겠다고 하는 건지... 만약 다시 결혼한다면 나는 아주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 정말 친한 친구와 내 식구들만 올 수 있게.
장강명 작가의 첫 에세이 ‘5년만의 신혼여행’은 2014년 11월 작가의 아내 HJ와 3박 5일간의 보라카이 여행기다. 말은 여행기지만 그 안에는 한국에서 자라 희망하는 것에 좌절하고 부모와 갈등을 일으켜 아파하고, 그런 과정에서 HJ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며 삶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나와는 물론 살짝 다르지만, 요즈음 결혼을, 취업을 걱정하는 젊은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시댁 식구와 연락하지 않는 것을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왔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젊은 친구들은 어떨까?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아이를 낳아 키우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희생과 경제력이 함께 하는 것인지.. 우린 알고 있으니까. 작가는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동기가 영향을 미친다. 부모님에게 사업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라든가 그들을 저렴한 베이비시터로 활용하기 위해 평소에 다소간의 투자를 해야 한다.’ (29~30) 작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고,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겠다고. 물론 작가의 모든 생각이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인정하고 싶다.
나는 시 어른과 함께 위아래로 살고 있다. 처음 결혼하고 나서는 내가 미쳤구나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남편이 나이가 있으니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간섭하셨고, 아이가 태어나서는 내가 회사에 다닐까 걱정하셨다. 당신은 일을 하셨으면서 당신 손자는 남의 손에 키우는 게 그렇게 싫으셨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울 때는 문 밖으로 울음소리가 나면 또 뭐라고 하셨다. 아이 울릴 일이 뭐가 있냐며.. 그런 와중에 제사며, 시댁 행사에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 병풍처럼 데리고 다니길 좋아하셔서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고 누구보다 현실적인 나였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건 힘든 일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
어쩜 그래서 장강명 작가의 생각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나는 효도도 셀프 효도를 외쳤던 사람이니까. 각자 부모에게 스스로 잘해야지 결혼했다고 며느리나 사위에게 잘함을 강요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 아무튼. 이 책은 요즈음 젊은 친구들의 결혼이나 신혼여행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고 하는 생각한다. 이들의 생각이 틀렸다가 아니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라고 한다면 고부간의 갈등이나 장서 간의 갈등은 완화되지 않을까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21)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나 역시도 제2의 내 인생을 살고자 더운 여름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닌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내는 시선으로 살아가고 싶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지만 선택을 하고 나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이혼이 많아진 건 사실이니까. 작가의 유쾌 상쾌 통쾌한 신혼 여행담과 생각을 알고 싶다면... 읽어도 좋을 듯.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하루키 생각이 많이 났다. 7년만에 발표한 신작 덕에 일본 서점가에 줄이 늘어섰다는 뉴스를 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별로였어도 에세이는 좋았기 때문이다. 에세이집이 워낙 유명하니 말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현대적 감성에 타고난 센스가 느껴지는 하루키. 반면 장강명의 글에서는 뭐라 딱 꼬집을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제 4의 벽을 넘어 독자를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 에세이집의 경우 글에서 묻어나는 생활감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공감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하루키의 글은 독자와 적당한 거리감이 있고 특유의 여유가 느껴지지만 장강명의 글은 현실에 상당히 밀착한 느낌. 에세이마저도 약간은 르포물처럼 느껴졌다.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기 보다는 그냥 까발리는 듯한...
보통 여행기는 재미있다. 좋았건 좋지 않았건 새롭고 익숙한 무언가를 찾아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일례로 돈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언젠가 실패할 수 있는 여유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경제적 사정 때문에 무언가 구입할 때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소투자로 최대효율을 얻어야 하니 이른바 가성비를 꼼꼼이 따지는 것. 합리적 소비가 나쁘단 말이 아니다. 이게 다시 말하면 도전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의 지원을 믿고 (실패를 경험으로 삼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부부는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롭지는 않다. 신혼여행 상품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행지에서까지 알뜰해야 하는 과정이 피곤하다. 여행 중에 싸우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눈치를 보며 읽는다.
그만큼 솔직하게 쓴 글이기 때문에 인간 장강명, 작가 장강명에 대한 일부를 알 수 있다. 작가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 같은 것들. 작가가 보여주는 자신은 단호하면서도 무른 구석이 있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부부의 애정표현은 은근히 닭살돋는다. 이 책을 읽으니 장강명 특유의 글 분위기를 조금은 이해할 듯 말 듯 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으며 포기하고 타협할 줄 안다는 것- 가끔은 고개를 젓기도 끄덕이기도 했다. 인상깊었던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일생의 사랑을 기다리기, 딩크로 살기 위해 병원에 다녀온 얘기, 결혼과 자녀에 대한 생각, 고부 사이를 굳이 좋게 만들기 보다는 다른 데 에너지를 더 쏟기로 한 이야기, 아내가 죽는다면 자신도 죽겠다는 얘기를 로맨틱하지 않지만 로맨틱하게 털어놓는다던가...
작가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길을 택할 때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다 가질 순 없고 이건 욕심이지 하고 냉정히 판단한다. 이 부분은 나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여행가기 전에 떡만둣국을 먹는데 작가는 더 먹고 싶었지만 장모님이 권하지 않아서 눈치를 보다 아내가 남긴 걸 먹는다. 정말로 신선했다. 장모 눈치를 보는 사위라니? 보통은 먹을 것 앞에서 시부모 눈치 보는 며느리를 떠올리기 마련이라... 이걸 신선하게 느끼는 나도 이상했지만 마땅한 예의를 차리지 않는 사례들이 떠올라서 그랬다. 리뷰 제목이 저런 이유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하기 때문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가 어쩌고 하는 건 개소리다. 장강명의 인생, 가치관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지만 상당히 힘겹게 읽어 별점이 저렇다.
우리의 삶은 바다가 아닌 뭍 위에 있다. (189)
한동안 장강명의 소설을 몰아 읽다 약간 꼬인 마음으로 ‘이제 산문!’이라며 읽기를 미루었다. 일년 만에 만난 그는 내게 직격탄을 날렸다. 성실하게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믿었던 나는 심하게 흔들리며 왜 즐겁게 사는 법을 모를까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의 직언대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먼저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도 돌볼 수 있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났다. 동갑내기 작가임에도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개척하는 남다른 점에 그만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가 지금까지 쓴 책 중 딱 절반 정도 읽었다. <그믐>에서의 우주볼의 이미지는 쉽게 가시지 않고 지금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작가는 <호모도미난스>로 받은 상금으로 5년 만에 늦은 신혼여행을 떠난다. 보라카이로. 남의 3박 5일 신혼여행담을 이렇게 신나게 읽을 줄 몰랐다. 그는 정색하겠지만 에세이를 읽으며 알랭 드 보통과 닮은 점이 보였다. 작년에 읽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패키지로 엮어 판매해도 좋을 듯하다. 신혼여행지의 기록이 연애와 결혼, 삶을 너무나 맛깔나게 요리해낸다. 작가의 자기 앎과 분석이 돋보인다. 작가가 자기식의 표현과 용어로 이론화하는 삶의 공식들이 참 좋았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그는 강단에 서도 유능함을 입증 받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장강명의 여행과 예술, 사랑을 테마로 책을 기획해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 발동일지 모르겠지만 성공할 주제임에 틀림없다.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237)
저자의 360도 펼쳐진 너른 시야와 트인 생각이 놀라웠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말 뒤에 한번쯤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보는 그림이(생각 많음이) 그려져 센 표현 뒤로 의외로 순한 인상이 감돌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독성 있는 그의 소설을 즐겨 찾는다는데 그의 철학을 접한 이들이 이끌 변화에 내심 마음이 들떴다. 한국의 결혼 문화가 문제점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리고 가정의 구성이 반드시 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대체로 함구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그의 분명한 계획과 실천과 주장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잊게 되고 관성에 젖기 쉬운 나이에 그는 자신의 사상을 삶과 일치시키는데 주력한다. 책이 대박 나서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된다 해도 자신의 중심과 가치를 쉬이 저버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타고난 명석함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스스로를 낮춰, 불편한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자신의 주관과 개성대로 사는 그의 시원함이 보라카이 해변보다 더 맑고 투명하게 시선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알아보고 기다리고 더 사랑하려는 그가 멋졌다.
그러자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며. (197)
중년에 삶을 당차게 포맷해 인생을 다시 쓰는 그의 활기와 의지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그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 그게 연이 되어 그의 소설을 읽어나갔다. 어느 정도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을 때 그가 작품으로만 사회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에 물음표가 생겼었다. 마침 알고 있었다는 듯 문학상 수상금으로 비주류 문학 증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장강명은 영리하고 소탈한 작가다. 복잡하지만 꽤 명쾌하다.
나는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가 부럽다. 그냥 추상적으로 혼자만의 소심한 생각에 그치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게 한다. 그의 산문체는 '언제나 좋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품고 있다. 유연하고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37).” 애완 인간에 뜨끔해하면서도 몸 사리며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아 좋았다. 나이 핑계나 엄살 그만 부리고 그의 청년 정신에 물들자.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