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의 이야기들에서) 한 번 들은 이야기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모두 기억하는 아이, 선노미. 삼개주막에서 어머니를 도와 일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연암 나리의 이야기 회에 동참하게 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연암 나리와 동행이 되어 청나라까지 떠나게 된다.
『삼개주막 기담회 4』에서는 이렇게 청나라로 떠났던 선노미가 혼자의 몸으로 여기저기를 떠도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는 왜 가족들이 있는 삼개주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청나라에서 살인을 저지른 일 때문에 가족들을 볼 낯이 없었던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떠났던 길에서 비록 연암 나리와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일이지만 누군가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다.
결국 청나라 사절단에서까지 나와버린 선노미는 그동안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닫게 된다. 아무런 방패막이 없이 어떤 기술도 없는, 게다가 추운 날들이 이어지며 그동안 그가 얼마나 편안했는가, 세상에 무지했는가를 몸소 느끼게 되는데 천우신조로 근처 암자의 우생 스님의 도움을 받아 며칠 머물게 된다.
하지만 동자승 하나와 우생 스님만이 기거하는 작은 사찰에서 선노미는 기괴한 일을 경험하고 그것이 바로 본당의 있는 지옥도와 관련이 있음을 우생 스님으로부터 듣게 된다.
이후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 그리고 마음의 혼란 등을 해결하고자 다시금 유랑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선노미는 그동안 자신이 듣고 들려주던 기담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감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등장하는 기담들이 그 당시에 분명 존재했을수도 있겠으나 어딘가 모르게 최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사건들과 상당한 부분에서 닮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시대만 조선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게다가 이전의 시리즈에서 언급되었던 기담 속 인물들이 곳곳에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와 연결되어 등장할 때는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프리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에필로그를 보는 것 같기도 했었다.
그저 기담으로만 말하고 듣던 일들을 현실에서 마주한 선노미를 보면서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을 어떻게 하면 덜어낼 수 있는가를 발견해가고 나아가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것 같아 시리즈 4권은 선노미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앞의 이야기들이 모두 마무리되는 느낌이라 과연 5권에서는 선노미가 어떻게 달라질지 더욱 기대된다.
삼개주막 기담회4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냉정하게 지적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가 오윤희의 『삼개주막 기담회4』를 소개한다.
선노미는 청나라에서 자신과 연암을 지키기 위해 한 사내를 죽이고 말았다. 사람을 해쳤다는 죄책감에 선노미는 사절단 일행에서 떠나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처 없이 헤매면서 만나는 기담들을 엮었다. 이제껏 남들의 입을 통해 듣고 기록된 기담들이 현실이 되었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고의로 나쁜 행동을 한 악인들은 그에 응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작가는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 파렴치한 행동을 한 인간들을 향해 경고한다.
“하필 내 차례 때 진이 저것이 도망쳤잖아. 오래 기다렸으니 그만큼 재미를 봐야할 것 아닌가.”(p.69)
“나쁜 짓을 한 자들이 죽어서 가는 곳만이 지옥이 아니다. 이자들이 있는 세상,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그래, 너희들한테 어울리는 지옥을 만들어주마. 그 속에서 영원히 살도록 해주마.”(p.73)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죽은 사람이 보이는 것을 그리움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차마 망자를 놓아주지 못한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길상의 간절한 마음이 기억 속 명옥의 잔상들을 끌어모아 허상을 만들어낸 거라고. 명옥을 친언니처럼 따랐던 덕임 역시 오빠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명옥의 허상을 볼 수 있었던 거라고. 명옥은 길상이 박수무당의 정체를 깨닫고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사라져버렸다.”(p.135)
내 마음을 잘 살피고 올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감추다보면 감정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가면을 쓰면 그 가면에 지배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주태가 가면이 돼버려서 그런 게 아닐까요?”(p196) … “저주받은 가면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감춰왔던 어두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게 한다. 하지만 가면을 오래 쓰다 보면 숨겨왔던 검은 속마음이 어느새 가면을 쓴 사람을 잠식하고 지배하게 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 가치가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작가는 내가 가진 것이 보기에 보잘 것 없이 보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것일 수 있음을 말한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재주라도 남들이 필요로 할 수 있다고 그건 달리 말하면 세상에 필요 없는 재주는 없다는 뜻이 아닐까. 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만기가 실수한 걸 굳이 하나 꼽자면 자신이 가진 재주를 너무 하찮게 여겼다는 게 아닐까.”(p159~160)
선노미는 말로만 듣던 기담을 현실에서 겪으면서 스스로 그 이야기의 가치를 깨닫고 성장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면 나도 저절로 위로를 받고 위로를 건네고 싶다.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선 선노미처럼, 이 책을 통해 오싹한 재미와 함께 삶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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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총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도>
비를 피하다 우연히 스님 우생을 만나게 된 선노미는 우생의 권유로 그의 암자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곳에는 산에서 다리를 다치고 산길을 헤매다 잠시 머물고 있는 춘식과 영달이라는 남자들 또한 있었다.
우생은 머무는 동안 본당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암자에 머물던 춘식과 영달이 차례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는 일이 벌어지는데….
<외줄 타는 남자>
하룻밤 잘 곳을 찾아 헤매던 선노미는 우연히 사당패 무리와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사당패 중엔 선노미 또래의 덕임이라는 남장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선노미에게 줄광대였던 오빠 길상의 짧지만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보름달 마귀>
사당패와 헤어져 길을 떠난 선노미가 어느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지나치게 된다. 그런데 어이없이 살인범으로 의심받으며 꼼짝없이 체포될 찰나, 오작인 병오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게 된다. 그리고 살인을 한 진짜 범인인 보름달 마귀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호리병을 든 남자>
다시 길을 떠난 선노미는 우연히 반월댁이라는 주모가 하는 주막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때 자신을 '필요 없는 것들을 사는' 장사꾼이라고 소개하는 무용이 주막의 손님으로 묵게 된다. 자신에게는 딱히 쓸모없는 재주를 산다는 무용의 말이 허황되게 느껴진 주막의 손님들은 그를 비웃었고, 그를 비웃던 손님 중 한 명인 만기가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자신의 능력을 무용에게 팔게 되는데….
<지지 않는 꽃>
주막을 떠난 선노미는 우연히 기방에 신세를 지게 되고, 거기서 예전에 만났던 사당패를 다시 만난다. 선노미가 기거하게 된 기방은 인근에서 유명한 기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기녀인 열일곱 살의 연홍은 덕임과 선노미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홍과 노기(老妓) 홍매가 같이 산책을 나갔다가 강도를 만나 홍매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낙서하는 아이>
사당패와 다시 헤어지고 길을 나선 선노미는 어떤 마을에 도착했고, 그 마을 서당에서 혼자 나뭇가지로 마당에 글자를 적고 있는 깡마르고 작고 지저분한 소년 차돌을 만난다. 선노미가 말을 걸자 차돌은 도망갔고, 그 소리에 나온 훈장과 맞닥뜨리게 된다. 선노미는 훈장이 다름 아닌 자신에게 언문을 가르쳐 줬던 춘추관 사관 종훈임을 알고 놀란다.
그런데 얼마 뒤 마당에서 서당 수업을 몰래 듣던 차돌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삼개주막 기담회』의 오윤희 작가는 일간지 기자 출신의 작가로 픽션과 논픽션의 세계를 넘나들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지 막연하게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비록 옛날을 배경으로 한 기이한 이야기들의 모음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현실의 문제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삼개주막 기담회를 통해 연암을 알게 된 선노미가 그 인연으로 연암을 따라 청나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과 연암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뒤 죄책감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을 떠돌아다니며 겪는 이야기의 모음으로 되어 있다.
그 방황을 통해 선노미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이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나간다.
다른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세 번째 <보름달 마귀>와 여섯 번째 <낙서하는 아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인간이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음험한 욕망과 충동을 숨기지 않고 드러나 보이게 하는 저주 받은 가면에 관련된 이야기인 <보름달 마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저주받은 가면은 마치 현대 사회의 인터넷이 가진 익명성이라는 가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살인이라는 더러운 욕망을 푼 보름달 마귀, 주태처럼 현대의 사람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소설 속의 주태처럼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을 먹잇감 삼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음험하고 더러운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마치 자신들이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자신들의 먹잇감이 된 상대를 향해 무자비하고 잔인한 칼날을 휘두르며 난도질하고 무참히 짓밟아 버리며 희열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있을 현실 속의 보름달 마귀들에게 이 이야기 속 보름달 마귀가 너희들의 모습이라며 보여주고 싶다.
<낙서하는 아이> 속 학대받는 차돌의 이야기를 읽으며, 힘없는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나 분풀이 대상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보다 힘없고 약한 아이들이 짓밟아도 되는 존재가 아닌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존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대는 대물림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충고를 통해 선노미는 죄책감을 떨쳐버리려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죄책감을 짊어지고 속죄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렇게 과거에 얽매여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향해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심한다.
과연 선노미가 선택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선노미가 모든 방황을 마치고 삼개주막으로 돌아가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 세상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