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당초 그때 일에서 도망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마이코에게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AD일에서 도망친 것과 기자회견에서 도망친 건 다른데."
"계속 매스컴으로부터 도망쳐 봐야 상황은 조금도 수습되지 않아. 한 번은카메라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지 세상이 잊어줄거야."
- p.151
도대체 마키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빈곤의 여왕은 빈곤에 허덕이게 되는 마이코의 이야기다. 나도 빈곤한 삶을 살았고, 여전히 빈곤한 삶을 살아가니, 극도의 감정이입이 되면서 책에 몰두가 되었다. 카드가 없던 시절에는, 밥 사먹을 돈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때가 있었고, 카드가 생기고부터는 갚아야 할 할부 때문에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못 사야 하고. 그런데, 나의 이런 빈곤은 결코 빈곤이 아니다. 나는 지금 세끼 밥을 굶지 않고 있고, 누워서 잘 만한 공간이 있으며, 물도 사먹을 수 있다. 책도 가끔 보고 있고, TV로 보는 거긴 하지만, 영화도 본다. 핸드폰도 잘 터진다. 그러니, 이건 결코 빈곤이라고 볼 수 없다. 빈곤은 이런 게 아니다. 빈곤의 여왕. 그녀가 진짜 빈곤이다. 그래, 그러니까,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냐고?
2.
마이코는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다. 표면상으로는 일의 실수 때문이라 하지만, 마이코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일을 그만두자 같이 살고 있던 사토코가 집에서 나가라 한다. 그래서, 잘 집도 없어졌다. 인터넷카페 같은 곳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휴지 나누어주는 일로 일용할 양식을 얻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거기서 만난 야마오코에게 휴지 나누어주는 일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고 마이코에 대해 너무 잘 알기에 마이코는 그가 불쾌했지만, 그냥 넘긴다.
그 후, 마이코가 인질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다도코로라고 하는, 마이코를 인질로 붙잡은 이 남자는 마이코의 사정 얘기를 듣더니 1억엔을 달라고 요구하던 걸, 이렇게 바꾼다.
"다치바 마이코 씨의 빈곤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라……"
- p.116
결국, 이 한마디에 마이코의 삶은 "조금" 달라진다.
3.
어쩌면, 빈곤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삶이, 그러니까 마이코의 삶이 확 바뀌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이코의 삶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삶이 아니다. 소소하게, 자신만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 그것이 더 강했던 것이 아닐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마이코는 노숙까지 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밑바닥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은 그다지 없었다. 자신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리라. 그렇게 근거도 없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멀리서 "다치바나!"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였다. 어쩐지 반가웠다.
마이코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 p.226
앞에서 강조한 "조금" 바뀌는 삶. 그렇다. 마이코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빈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약간의 일이 필요했을 뿐. 그리고 "빈곤"은 돈이 없다는 의미에서만의 빈곤은 아니다.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 그러니까, 처음에 일했던 곳에서 일할 때 느꼈던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 느낌. 그 마음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 그런 삶이 마이코에게는 필요했다.
4.
『빈곤의 여왕』은 길이도 빈곤하다. 230페이지에 전체적인 크기도 작고 글자도 작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1~2시간이면 읽었을 분량이지만, 이번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요즘 내가 속독을 안 하기로 했던 터라 그렇게 천천히 읽기도 했지만, ""빈곤"이라는 공감이 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애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빈곤에서 허우적대더라도 그 빈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갈 수 있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면, 조금은 빈곤하더라도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는 『빈곤의 여왕』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아닐까.
가끔은, 도망쳐도 된다.
가진 것, 별로 없어도 된다.
하며!
진정한 긍정의 의미를 마이코가 보여주고 있듯이.
- 이 리뷰는 현암사 (달다) 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