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저녁을 먹으려던 코데레는 여동생 아율라의 전화를 받는다. 아율라가 왜 전화를 한 건지 이유를 듣지 않고서도 코데레는 바로 알았다. 코데레는 많은 양의 표백제와 고무장갑을 챙겨 아율라가 있는 곳으로 간다.
소설은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간 곳에서 상당량의 표백제로 살해 현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언니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동생은 왜 살인을 했으며, 언니는 그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청소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상황이 궁금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언니와 동생은 무슨 사이이기에,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시간이 쌓여있기에 그런 일들이 몇 마디 말도 필요 없이 가능한 게 되어버린 건지 듣고 싶었다. 살인은 장난이 아니지 않은가. 살인을 숨기고 흔적을 지우는 것 역시 놀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언니의 모습은 놀랍기까지 했다. 담담해 보였다. 평소에 자주 하던 일 처리하듯 묵묵히 청소하는 언니는 죽은 이의 존재를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은 언니의 등장과 동시에 안심하는 표정. 모든 것은 끝났다. 범행의 흔적도, 시체도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아율라는 외모에서부터 표정까지 남자가 한번 보면 반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싶어 했다. 그런 동생과 상반되게 언니 코데레의 외모는 평범하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코데레의 외모가 드러나지 않는데, 나중에 언급되는 코데레의 외모를 보면 평범하다 못해 못생긴 게 아닐까 추측한다) 어쩌면 언니는 한집에서 자매로 태어나 자라오면서 외모에 관해 굉장히 콤플렉스가 있지 않았을까. 언니는 언제나 외모에 자신이 없다.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왜 하필이면 아율라 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진 이와 자매로 맺어진 건지 모르겠다. 아율라는 요리도 꽝이고 연애가 끝나면 거추장스러운 애인은 칼로 찔러죽이는 습관이 있다. 반면, 언니 코데레는 유능한 간호사로 일한다. 요리도 잘한다.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 그녀의 삶은 늘 어둡다. 표백제 사용에 능숙해서 동생이 저지른 일을 해결하는 책임감(?)이 그녀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 아이는 내가 돌봐야 해, 내가 책임져야 해, 내가 감싸주어야 해.' 코데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동생을 대하게 되었을까? 동생은 그냥 자매일 뿐인데, 가족일뿐인데 말이다. 가족이 저지른 범죄를 덮어주는 것까지 그녀의 책임으로 여겨야 하는 일은, 어떻게 그녀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단 말인가. 동생은 살인이 습관이 되었고, 언니는 그 살인을 수습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 자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궁금해진다.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일. 겉과 속이 달라서, 사람들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너무 착하고 아름다워서 진실을 말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럴 리가 없어. 아름다운 그녀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어. 왜 그녀를 모함하는 거지?' 뭐, 이런 반응들이 바로 튀어나올 것이다. 아율라의 모습이 그렇다.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이뤄진 성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매의 아버지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지만) 어쨌든 그녀는 살인에 별다른 감정이 없다. 언니의 말처럼, 그녀는 순간만을 사는 재주를 가졌다. 방금 살인하고도 뒤돌아서서 SNS에 쇼핑한 물건을 자랑하며 행복한 일상을 올리는 게 가능한,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고, 다시 디자인 일에 열중하며 자신을 뽐내기를 즐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 살인을 습관처럼 저지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아니, 굳이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서술할 뿐이다.
읽으면서도 굉장히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의 분위기는 정말 독특하다. 동생의 살인과 매번 그 살인을 처리하면서 비밀이 쌓여가는 자매가 언제 들통이 날까 봐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읽게 된다. 그들이 저지른 일이 언제 밝혀질까, 어떤 식으로 소설이 마무리되어 그들이 벌을 받을까. 추리소설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으면서도, 점차 그들의 행각을 지켜보면서 살인이 무감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너무 쉽게 살인하고 처리하는 것이 자꾸만 별일 아니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율라의 악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아율라의 아버지. 그는 세상에서 더없이 자상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지만, 집안에서의 그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 행하는 잔인한 폭력은 기본이고, 아내와 딸들이 있는 집안으로 애인들을 끌고 들어오는 짓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악행을 바로 잊는다. 참으로 대단하고 완벽한 건망증이다. 필요할 때 저절로 사라지는 악행의 기억들이라니... 아율라의 살인 본능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가족들을 함부로 했던, 어린 아율라를 팔아넘기려 했던 기억에서 시작된 남자를 향한 살인 본능. 거기에 아버지의 폭력이 형태를 바꾸어 아율라에게 대물림 되는 것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떤 이유로든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남자들의 죽음에 깊게 눈길이 가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아름다운 여자를 향한 남자의 욕망이 부질없어 보일 때였다. 모두가 아율라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녀의 외모만을 보고 그녀를 흠모했다. 유능한 간호사에 지적 능력,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언니 코데레의 인성을 보면서도 그녀의 외모에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율라의 외모만 보고 바로 눈길을 쏟아버리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가치를 외모로만 판단하다가 죽임을 당했던 이들의 선택을 안타까워만 하기에는 마음이 완전히 닿지 않는다. 뭐, 어디까지나 지켜보는 입장에서 판단하는 또 다른 시선이겠지만.
분량이 길지 않은데,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가정 폭력의 대물림, 외모지상주의, 연쇄살인, 가족애와 도덕적 딜레마. 전혀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키워드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동생의 외모를 질투하면서도 감싸고,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양면성을 버릴 수 없는 한 여자의 삶을 지켜보는 게 힘들기도 했다. 동생의 범죄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감싸야만 했던, 그런 동생을 미워하면서도 지켜야만 했던 한 여자의 인생이 안타까워서 말이다. 소설은 끝났지만, 아무것도 분명해지지 못한 코데레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