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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저
직장이 내게 무엇인지, 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희망퇴직 1순위에 들었다. 퇴직을 하지 않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 결과에 따라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직원들은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나이가 많은 그가 퇴직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그는 그만두지 못할 경제적 핑계를 댄다.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 재개발을 기대하고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값의 반을 대출로 구입한 다세대 건물의 대출금과 이자,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 그리고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 들을 생각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 쉬엄쉬엄 일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한 직장에서 26년을 일해 온 건 마치 충성을 맹세한 군인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70페이지) 그는 상품을 하나라도 판매해 보려고 공장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공유기를 교체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 회사에 관련된 말도 금지 사항이었다. 그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월급이 삭감되었고 그는 또 다른 지방 소도시로 발령이 났다. 그나마 그가 설치 팀에 있었다는 이유로 케이블 선을 끌어다 작업하는 일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에게 퇴직 권유가 시작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피해 다녔다. 사택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메모지로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분기국사에서 황 여사와 같은 팀으로 일했다. 황 여사는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가 교환국 업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콜센터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상담 업무만으로 해온 황 여사에게 회사는 설치와 수리 업무를 주었던 것이다.
밀려날 대로 밀려난 사람들은 고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최나 권이라는 성으로 불릴 뿐이다. 새로운 발령지로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7형, 3식이, 그는 9번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 전에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은 호석이나, 상현, 한수, 종규로 불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으로 여겼기에 서로를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문득 화순의 한 공원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하는 공원으로 온갖 국화와 함께 핑크뮬리까지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국화꽃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세워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 속 상황에서처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쏟아질 테고 미관상에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철탑을 세우는 기업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철탑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더군다나 노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싶은 곳이라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그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가. 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가. 자신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았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거의 평생을 일해 왔던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직을 종용받는 건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커왔다고 여기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그만두는 것과 쓸모를 다해 버림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가 자주 떠올리는 과거의 잔상은 행복했던 때의 한 순간이다. 그는 왜 아무것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여러 가능성을 다 흘려보냈다. 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지 못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의 수평이 맞지 않은 빨랫줄을 손보고 균형이 맞지 않은 평상을 반듯이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 갖은 수모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그는 왜 회사에 버티려 하는가.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그렇게 답답했다. 이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어디선가는 이렇듯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업은 기업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못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지, 직장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은 또다른 나의 자아다. 비록 경제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며 자아를 성장시킨다. 이름이 아닌 9번으로 불렸던 그는 비로소 자기 해야 할 일을 한다. 왜 진작 하지 못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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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외환위기와 국제금융 사태처럼 경제위기를 겪어온 사람들이라면 구조조정이라는 말에 익숙할 터이다. 사실 불경기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기업은 위기가 닥치면 우선 비용절감에 나선다. 가장 손쉽고 눈에 띄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인원감축이다. 대상자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고, 남은 사람들은 안도감도 잠시, 떠나간 사람들의 몫까지 고스란히 떠맡는다. 그만큼 일의 강도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다음엔 또 다시 남아있던 누군가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살아야 한다는, 일을 해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 울분은 가슴을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라는 실체가 보이지 않고 같이 일했던 동료나 상사가 마치 회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간 수리, 설치, 보수업무를 하던 그는 그 해 여름 부장으로부터 권고사직 권유를 받는다. 이미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두 번의 재교육을 받고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었다. 노후준비를 하겠다며 몇 달 전 대출을 받아 변두리의 오래된 다세대주택을 매입했고,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다. 매월 나가는 돈은 한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회사를 관두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자그마하던 회사가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같이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자신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유를 선뜻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부장에게 재교육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3주간의 교육을 받는다. 재교육평가는 최하위였다. 다시금 권고사직을 거절한 그는 타 지역 상품판매 부서로 발령이 난다. 터미널 근처 거점 판매 센터는 그와 같은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정해준 지역에서 인터넷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지역이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산업단지임을 알고서 비로소 회사가 자신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그는 전신주에 광고지를 붙이고, 공장사람들의 일을 거들어주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를 보수해주며 지내다 두 달째 되던 무렵 박스공장 여자기숙사에 인터넷과 tv결합상품을 판매한다. 인터넷이 잘 안 된다는 말에 보수를 해주던 그는 경고를 받는다. 판매사원은 판매만하고 보수는 수리기사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업무 촉구서를 받은 그는 다시 떠밀리듯 지방 소도시 시설팀으로 발령이 난다.
그곳에서 근근이 일을 이어가던 그는 휴가를 내고 죽은 친구의 노제에 다녀오지만 다음날 무단결근으로 처리되면서 출근부에서 아예 이름이 삭제된다. 노조에 가입하고 반년이 흐른 뒤에야 본사가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 변두리 한 소읍의 78구역에 복직하면서 1조 9번이라는 소속과 이름을 부여받는다. 마을 뒷산에 통신탑을 설치하는 현장은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을사람들과 대치중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9번이라는 이름으로 9번의 일을 시작한다. 마을사람들과의 대치는 끝이 날줄 몰랐고 노인들과 실갱이를 하다 폭행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대치중이던 어느 날 저녁, 그는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인다. 로프로 트럭과 몸을 묶은 사람들을 미처 보지 못한 까닭에 이장이 다쳐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이내 숨을 거둔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퇴직을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왔지만 한 달을 버티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저주하며 증오했고, 그는 그들과 접촉을 차단한 채 오로지 9번의 일에만 몰두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1년을 더 버텼고, 그 사이 철탑 5개가 세워졌다. 그가 그곳에서 한 일은 사람의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9번이라는 기계의 일이었다. 인사담당자는 계속 면담을 미루기만 하고.. 그가 비로소 회사의 실체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삼십년이 훌쩍 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권고사직 권유이다. 회사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온갖 설이 난무하게 되면 모두들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다. 대상자를 통보받고 며칠을 흘려보낸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난감하기만 하다. 기한이 다가오면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김차장, 저녁에 약속 있냐?’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눈가가 떨리고 어깨가 처지는 것이 보인다. 저녁 내내 밥은 제쳐두고 술을 마신다.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얘기를 들어주고 술친구가 되어줄 뿐이다. 김차장은 자신의 가족과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그가 어렵게 꺼낸 말은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거였다. 아무 말 하지 않던 나는 그 말은 안들은 걸로 하겠다며 자리를 일어난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권고사직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회사는 절대 너그럽지 못하다.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소설에서처럼 아예 일을 주지 않거나, 끊임없는 교육 속에 지각은 물론 교육태도마저 평가하는 것, 그것은 초기 얼마간의 일일 뿐이다. 결국은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온 지라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그 말 대신 차라리 독기를 품고서 나가기를 원했다. 남아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나에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독기 없이는 해내지 못할 일이지만, 결국 끝이 정해져 있다면 나라면 어떠할까 생각해본다.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소설 속 그를 읽으면서 그를 비난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가슴이 아플 뿐이다. 수많은 그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어느 회사, 어느 현장에선 또 다른 9번들이 그의 전철을 밟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일이란 무엇이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소설 속 그는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이 진짜 일이 되어버리면 누구나가 변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 끝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변할 것이며, 어디까지 너의 변화를 감수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자신과 힘들게 싸우고 있을 수많은 9번들을 응원한다.
정확히 말하면 김혜진 작가의 글이 내 취향이랑 100프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윤대녕이나 김훈 혹은 박완서나 양귀자 신경숙 같이 섬세하거나 읽고 난 후의 문학적 풍성함이 담뿍 느껴지는 것인데...
김혜진 작가의 글은 '중앙역',''딸에 대하여' 모두...살짝 거친듯 하면서도, 어쩌면 너무 노골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 하여, 문학적인 울림이 아닌, 마치 삶의 현장의 시사리포트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읽고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일단,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도 아니고, 쓸데없이 센티멘탈한 감성의 글도 아니고,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마 김혜진 작가 글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책을 사 읽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여, 읽었던 책이나 한 번 더 봐야지 했었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연말이 다가오다보니 임원인사, 조직 변경, 업무 변경, 성과 평가와 썩 좋지 않는 경제상황,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른 이런 저런 불안함 때문에, 책 한 권 사 읽을 마음의 여유와 지갑의 여유가 없기 때문.
회사는 애증의 관계이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도 하고...
박수 칠 때 떠나라지만, 가급적 서로 맞잡은 손을 어지간하면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은 심정의...
한 마디로 먹고사는 것과 직결되다보니, 이래 저래 가장 신경이 쓰이고,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업무와 근무지가 변경이 되고, 월급이 줄어들고, 끝내 성격마저 변해가는 모습에
이 책을 읽는 많은 직장인들이 뜨~악 할 것이다. 너무나도 닮아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 혹은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반의 동료들은 이름이 언급되고, 그 다음 근무지에서는 황여사, 최씨 등으로, 마지막 근무지에서는 3번 7번으로 등장되는 호칭 변경...아마 한 번 더 근무지를 변경하게 된다면, 마지막에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어떤 시절에는 회사가 전부였고, 동료는 가족과도 같았다고 하는데...
요즘 이런 말을 하면 코웃음을 친다. 회사나 동료들을 믿지만 믿을 수 없는 요즘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때에는 어찌 살아야하는건지...나는 사실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도 그 답은 없다.
그 답이 없어서... 느껴지는 이런 암울함 때문에, 이 책이 마음에 든다.
덧붙임. 올해, 김혜진 작가의 글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아주 당돌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김혜진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어찌보면 길지도 않은 소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는 옛날이라면 우리네 아빠를, 지금은 남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일이 주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육아로 인해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회사라는 곳에서 어떤 위치가 되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은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근속한 사람이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다. 그때 새로 온 부장이 그를 호출한다. 부장은 그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자신과 같이 일하던 동료들조차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평가 점수에 따라 다른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만둘 수 없다. 그에게는 몇 달 전 변두리 오래된 다세대 건물을 매입(대출을 끼고)했고, 아직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들어갈 돈이 너무 많다. 다세대 주택의 누수 수리비, 대출금과 이자, 자동차 할부금, 아이의 학비와 다양한 경조사비, 그리고 장인의 병원비와 노모 주택의 수리비까지.. 아직 들어가 갈 돈도 많고 어떤 미래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부장의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타지역 거점 센터로 발령 난다. 그곳에서 그는 인터넷 상품 영업 일을 시작하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월급은 30% 삭감되고, 그는 깨닫게 된다. 회사는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도 시키지 않는다는 걸. 성과가 없으니 촉구서가 이어지고 그는 다시 지방 소도시 시설 1팀 ‘분기국사’로 발령 난다. 이곳에서 인터넷 수리와 설치 및 보수 업무를 하며 일상을 되찾으려 하지만 휴가를 내고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온 다음 날 무단결근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노조에 가입하고 투쟁 끝에 본사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 변두리 소읍인 78구역으로 복직한다. 그는 이곳에서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치하게 되는데..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었을까? IMF이후로도 다양한 형태로 직급이 있는 사람들은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을 제안받는다.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버티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이나 힘든 건 다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고, 늙어가는 부모님이 있고, 많은 돈을 저축한 것도 아닌, 여기저기 나갈 돈만 수두룩한 우리네 남편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해야 하는 건 아닌지. 왜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슬프고 아프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마을 주민과 대치해야 하는 남자는 그들과 똑같이 시골 어딘가에 부모님이 존재하고 부모님을 위해 효도하려고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아직 나갈 돈이 많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마을 주민에게는 나쁜 놈이지만 남자도 회사에서 하라고 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 이걸 못하면 회사에서 짤리기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252)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몸부림.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회사를 위해 욕을 먹으면 해야 할 일. 그런 일을 누군가의 아들이, 아빠가, 남편이, 친구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삶이 어그러진다. 만약 내 남편이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충고를 하게 될까? 힘들면 그만둬. 아니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그만두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이 회사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를 것 같으니까. 하지만 우리네 아빠나 남편들은 그걸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은 시작되는 건지도. 책을 읽는 내내 남자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팠다. 일에 대해,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내 남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잘해줘야겠다.
일이란 무엇일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 철모르는 소리였다. 일하지 않고 평생 놀고먹을 순 없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 지쳤다. 1년을 쉬었다. 다시 일을 해야 했다. 통장이 텅장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일이 없어 생기는 불안한 마음과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의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쉬엄쉬엄해.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져. 이런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선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고 생각.
일이란 중독과 같아서 한 번도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일해본 사람은 없다. 꼬박꼬박 제날짜에 들어오는 월급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서 내일도 중독자처럼 눈이 풀려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선다. 나처럼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넘어 착각에 빠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일은. 이제는 일하지 않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편의점과 빵집에도 갈 수 없고 카카오 프렌즈의 귀염둥이 라이언 제품도 살 수 없으니까. 알람이 울리면 씻는다.
김혜진의 장편 소설 『9번의 일』에는 통신 회사에서 26년 동안 일한 남자가 나온다. 끝까지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가 소설 안에서 최종적으로 부여받는 호칭은 9번이다. 9번이 되기까지 남자는 회사로부터 굴욕과 모욕과 소외를 받는다. 수리,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그에게 회사는 재교육 대상자라는 통보를 해온다. 그 말은 조금 더 줄 테니 퇴직금을 받고 나가라는 뜻이었다. 남자는 거부하고 교육을 받는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강의를 듣는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다세대 주택을 매입했고 곧 대학에 들어갈 아들의 교육비도 마련해야 한다. 차 할부금도 남았고 시골집의 공사비도 드려야 한다. 나이가 있다는 모종의 압박을 받았다고 해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회사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회사의 요구를 거절한 남자에게 닥치는 살벌한 일들을 『9번의 일』은 그린다. 드라마 <미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남자는 전쟁터에 남아 끝까지 싸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남는다.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소외뿐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은 사라진다.
남자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업일이 주어진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내려가 제품을 판다. 남자는 어떡하든 업무에 복귀하고 싶어 모욕을 감당한다. 결국 이름이 아닌 9번이라는 호칭을 받기까지 한다. 일은 단순히 업무를 익혀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사람도 세상도 들어 있는 것이다. 남자가 회사로부터 부당 전출과 노골적인 퇴사 압박을 견디는 것은 일 안에는 그가 이룩해낸 세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려는 남자의 결말은 어떻게 끝날까.
『9번의 일』은 노동이 주는 가치를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그리지 않는다. 9번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버티기를 통해 일이란 자신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음을 아무리 포장해도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챙기는 전리품 정도의 가치인 월급이 전부임을 이야기한다. 대단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한순간에 밀려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지금의 일. 매번 이길 수는 없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9번의 일』은 역설한다. 좋은 일 나쁜 일이 따로 있나. 그저 하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제는 당연하게 하고 있다. 일하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천국을 살았던 기억이 없다. 지옥에서도 꽃은 핀다.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모욕 속에 두는 것이 아닌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해 보는 것. 『9번의 일』은 노동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이름도 지키지 못한 9번들에게 한 번쯤은 멈추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일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