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사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죠. (p.386)
사실 나름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을 읽은 듯하다. 한때는 나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는 열혈독자였는데, 집필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다른 책들도 읽다 보니 밀린 책이 꽤 되는 듯하다. 하긴. 워낙 빠른 속도로 글을 쓰시기에 분명 7명일 거라고, 7명이 한 글자씩 따서 히가시노 게이고일 거라고, 7명의 이름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히코리. 가무라. 시타. 노부. 게로. 이노우에. 고바야시. 이런 식으로 ㅋㅋㅋ)
오랜만에 읽은 소감? 말해 무얼 해. 삽시간에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냈지. 역시 나처럼 단순히 읽고 끝난 것이 아니라 씁쓸히 남은 여운으로 이런저런 제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 진행이 빠르고 긴박하면서도 툭,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분이시니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하다. 사실 몇 년 전 읽은 것을 다시 읽은 것인데도 몰입하여 읽고, 이토록 씁쓸한 것을 보면 그의 글이 매우 치밀한 것도 맞고, 세상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맞는 것이겠지.
그때의 나는 아이가 없었고, 지금의 나는 아이가 있어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형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물론 사형제도 자체가 가지는 사회적 의의(?)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가 없지 않으나, 그 자체가 가진 맹점에 대해 생각한다면 정말 이 방법뿐인가- 하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이런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 듯하다. 사형을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과 살인을 타당성으로 엮고 싶은 사람. 그 둘의 심리를 너무나 분명하게, 작가 특유의 호흡과 문장으로 끌어내니 오히려 더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가 되어 읽는 내내 마음을 둥둥 울렸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피해라 가족이라면, 사형에 대해 간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사실 그의 책이 마음을 편하게 읽게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 빼고) 미성년자 범죄, 성 소수자 문제, 그리고 사형제도. 그래서 어떨 땐 그의 책을 읽는 것이 버겁다. 또 한편으로는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쉽게 사상에 문을 두드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고. 이번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보았던, 죽은 딸의 복수를 하는 엄마를 그린 영화가 떠올랐다. 여전히 피해자의 마음은 극단적인 방법 말고는 풀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너무나 어려운 리뷰가 되어버렸다. 하루를 꼬빡 잡고 있었으나 분노와 씁쓸함만을 이야기한 느낌)
소설의 서평을 쓸 때면 늘 많이 망설여진다.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해야 책을 읽으려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해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절대로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공허한 십자가>를 읽고 든 생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들 알다시피 추리소설의 대가이다. 그의 소설은 긴박감이 넘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로 읽는 내내 독자들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읽고 나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가 늘 독자들에게 생각할 것을 남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허한 십자가>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공허한 십자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지 않다. 서로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하나로 엮이고, 그들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폭로되기까지 손에 땀을 쥐며 보게 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점도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는 다작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매번 이런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소설을 읽기 전에 ‘공허한 십자가’라는 제목이 궁금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인 걸까? 아마 소설을 중간 이상 읽을 때쯤이면 비로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나카하라 후미야는 살인강도에게 겨우 8살짜리 딸을 잃었다. 나카하라와 그의 아내 아마오카 사요코는 딸을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어져 결국 헤어졌다. 나카하라는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외삼촌의 일을 물려받아 반려동물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한다. 딸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이 지난 즈음에, 그는 경찰로부터 사요코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전처의 죽음을 추적하던 끝에 놀라운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나카하라의 딸을 죽인 자는 사람을 죽여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모범수로 가석방된 자였다. 가석방 기간에 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나카하라와 아내는 재판을 거듭한 끝에 살인범의 사형 판결을 받아냈고, 살인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그럼에도 나카하라와 그의 아내의 마음에 남은 무거운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자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의 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가? 진정한 속죄란 어떤 것일까? 교도소는 과연 제기능을 하고 있는가? 소설은 여러 가지 무거운 질문들을 던진다.
어느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소설 속에서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답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는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다른 무게의 삶을 짊어진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묵직한 사회문제를 엮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사견을 섞지 않기도 힘든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어려운 것을 매번 해낸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게 두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개인적으로도 고민하던 문제였기에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인간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어리석기도 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마주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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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택한 '사형 제도'에 관한 '사회파 추리 소설'입니다.
초반부 반성하지 않는 살인범의 인면수심에 경악하고 격분합니다.
살인 피해자와 피해 유족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운명만 염려하는 살인범.
그렇기에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모면하려고 '살인'이란 극악한 짓을 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행동을 하기 전 '긴 생각, 신중' 이런 것은 없고 오로지 '감정, 충동'에 의해서 살아가는 게 범죄자의 특징 중 하나일 겁니다.
선과 악은 현실에서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그만큼 불완전한 존재이고, 사법 제도조차 불완전합니다.
'사법 제도'는 차선을 선택합니다.
'법은 범죄자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법에 의해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이 없게 하기 위함'임을 천명합니다.
조목조목 성문법으로 만들어진 법은 현실에서 그저 작은 규칙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판결만을 위한 작은 장치일 뿐입니다.
범죄자가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가도 반성과 갱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재범률은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물론 전과자를 바라보는 사회 시선도 '재범률'을 높이는 하나의 이유겠지요.
'갱생, 반성, 속죄'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까요?
책을 끝까지 다 보고도 그 해답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단 하나 가슴속에서 각자 여러 물음이 떠오를 겁니다.
'사형으로 같은 범죄다의 또 다른 살인을 막을 수 있다?!'
'교도소에서 범죄자는 반성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운명만을 염려할 뿐?!'
'사형은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에게 무력하다?!'
'유족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과 위안, 치유가 되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범죄자가 등에 진 십자가는 '공허한 십자가'일뿐이다?!'
'죄'란 어쩌면 인간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매'가 먹이를 잡아 자기 새끼에게 찢어 먹일 때
'매'의 행동은 선일 까요? 악일까요?
잡아 먹히는 '먹이'는 무슨 죄가 있을까요?
새끼에게 전해지는 '먹이'로 인해 새끼는 죄의 굴레에 빠질까요?
'어미 매'는 과연 선일까요? 악일까요?
몸속에 세포 중 '잡아먹는 세포'와 '잡아 먹히는 세포'는 서로 선과 악, 죄 그 어떤 것일까요?
'몸'이라는 전체 집합에서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그 전체 집합, 전체 의식일 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과 악, 죄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많은 물음을 발생시키는 소설이었습니다.
*출판사제공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