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젠툼 니트리쿰은 시간에게 시간을 내주고, 눅스 보미카는 여름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브리오니아는 겨울로부터 보호해준다. 에파르 술푸리쿰은 폭풍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주고, 스트라모니움은 밤의 악령들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 아룸 트리필룸은 말에 실체를 부여해주고, 이리스 베르시콜로르는 말의 무게를 덜어준다. --- pp.20~21
자리를 잡는다. 무대에 적응하고 거기에 짐을 푼다. 밤까지 무대는 내 것이다. 바닥에 길게 누워본다. 마룻바닥 아래엔 공연장의 음향에 아주 중요한 공명상자가 있다. 반쯤 차거나 텅 빈, 건조한 공명상자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청중은 바닥 아래에 수백 입방미터 면적의 숨겨진 빈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 동굴은 피아노의 공명상자인 음향판보다 음을 현저하게 더 키운다. 무대 아래 허공이 있다. 피아니스트는 떠다닌다. 그가 마룻바닥에서 노를 저어가 압도적인 악기 앞에 자리 잡는 게 보인다. 우리는 그가 바닥 깊이 닻을 내렸다고 믿는다. 아니다. 피아니스트의 주위에는 허공이 있다. 사방에. --- p.36
라벨 음악은 꼼꼼한 외과 의사처럼 연주한다. 디테일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것들은 수년 동안 세세히 검토되고 계량되어 밀리미터 단위로 분할되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엔 오직 선線만이 중요하다. 콘서트에서 라벨을 용의주도하게 분석적으로 연주하면 금방 견디기 힘들어진다. (...) 거대한 방주처럼 건축된 그의 작품에서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도 전체 구조만큼 중요하다. 거대한 대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 같다. 세세한 세공 작업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작업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첫 음을 누를 때부터 마지막 음을 겨냥해야 한다. 곡 안의 모든 요소가 서로를 지탱하고있다. 나는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 라벨을 많이 연습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 내게 중요한 건 그저 프레이즈, 긴 호흡과 관점뿐이다. --- pp.177~178
퀘벡에 사는 빅토르는 트럭을 몰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터미널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는 동료 운전수들에게 녹음된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다. 동료들은 별 반응이 없지만 그는 꿋꿋이 계속한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컬럼비아 프레이트라이너 트럭에 앉아 라디오를 95.3 FM ‘이시 뮤지크Ici Musique’ 채널에 고정하고 목청을 다해 노래한다. 음악이 모터 소리보다 크게 울린다. 매연을 후광으로 두른 스카를라티는 아름답다. 빅토르의 체격은 벌목공 같지만 그의 마음은 다감하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아버지는 프랑스 노래를 들었다. 빅토르는 잘 울지 않는다. 하지만 95.3 FM에서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라벨의 음악이나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 빅토르에겐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짐을 싣고 트럭을 모는 것과 음악이 모는 대로 실려 가는 것. --- pp.182~183
나는 한 남자, 한 여자를 위해 연주한다. 나의 피아노 소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을 향해 펼쳐지며, 독주회는 은밀히 헌정된다. 오후, 아니면 무대로 들어서기 몇 분 전에 그 인물이 정해진다.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푸근함을 안겨준다. 어느 지인, 어느 얼굴, 어느 미소, 무의식적으로 툭 떠오르는 남자나 여자. 나는 그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말을 건다. 그 사람이 그걸 알아차릴 때도 있지만, 대개는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죽은 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기꺼이 나의 죽은 이들을 위해 연주한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내 손가락 아래 또렷이 존재한다. 그들의 부고장이 부케팔로스의 뱃속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노래하고, 나는 그들이 일하도록 부추긴다. 내가 독주를 할 때, 무대 위에는 많은 이들이 있다. 부재한 이들이 많이 있다. 나는 여럿이다. --- p.193
자갈 위를 구르는 파도, 나는 그것을 무대 위에서 받는다. 페로스-기렉의 트레스트리넬 해변 근처에는 성의 뾰족한 탑 뒤로 펼쳐진 바다가 박수갈채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장소가 있다. 바위 사이에 숨은 내포內浦에는 자그마한 자갈들이 깔려 있다. 지름 4센티미터 정도의 동글동글하거나 타원형이거나 세모난 자갈들. 바닷물이 거칠지 않게 자갈들을 굴리면 돌들은 서로 부딪히며 활력을 되찾는다. 그 소리의 풍성함을 간파하려면 그곳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 소리는 낭랑하고, 탁탁 튀며, 보기 드문 활력을 지녔다. 각자 고유의 울림을 가진 자갈들은 다른 자갈들과 접촉하면서 소리가 끊임없이 변한다. 자그락자그락 구르는 소리 뒤로 펼쳐진 바다는 말이 없다. 박수갈채가 바로 그렇다. 나는 무대에서 제각기 독특한 자갈 같은 손 하나하나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 그 하나하나의 물질이 옆의 물질과 대화하는 것이다. 독주회는 끝나고 나면 더 방대한 실내악 연주를 시작한다. 파도가 무대 위로 쇄도하고, 수천 개의 자갈이, 맑은 물이 나의 검은 무대 위로 몰려온다.
---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