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위조는 전망이 좋은 직업이었다. 특히 유람선이 늙고 비만한 미국인을 가득 채우고 정박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쑥 내민 배에 반바지와 기묘하게 가느다란 다리를 달고 더 기묘하게 큰 흰 신발을 거구 끄트머리에 점처럼 붙인 미국인들은 인간의 형태를 띤 사랑스러운 물음표였다./ 방금 사랑스럽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하려던 말은 그들에게 돈이 있었다는 것이다. --- p.18
그것이 평범한 책이 아님을, 확실히 나 같은 낙오자가 엮여 들어갈 물건은 아님을 깨달았어야 했다. 범죄자로서 제 한계를 알기에?적어도 안다고 생각하기에?신변의 위험이 따르는 멍청한 짓에는 손대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고 믿던 터였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나는?언젠가 사법절차에 회부되었을 때처럼?이미 연루되었다. 그 곱디고운 검은 먼지 밑에서 굉장히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 p.24
나는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고, 책이 무슨 강한 부적이라도 되는 듯, 근본적인 무엇을 전하거나 설명할 무슨 마법이 들어 있기라도 한 듯, 어딜 가든 그 책을 품고 다니는 습관이 붙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게 왜 그토록 중요하게 느껴지는지를 설명할라치면 말문이 막혔고?이는 지금도 그렇다. --- p.29
처음에는 나도 교수의 주장들을 일부분 납득했고, 그 책이 모종의 정교하고 미친 속임수임이 틀림없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사기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으로서, 모름지기 야바위를 치려면 거짓말을 최소화하고 상대의 선입관에 맞추어야 함을 아는 사람으로서 볼 때, 그 책이 위작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과거가 이러했으리라는 짐작에 하나라도 부합하는 구석이 있어야지 말이다. --- p.34
훙 선생이 말한다. 한 권의 책이란 최초에는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독창적인 우주?일 수도 있지만, 머잖아 아첨꾼들의 과찬과 동시대인의 경멸을 받으며 두 편 중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저술사의 각주로 전락한다고. 책의 운명은 가혹하며 책의 숙명은 부조리하다. 독자들에게 무시당하면 사멸하고, 후대의 승인을 받으면 영원히 곡해될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또 그 저자들은 처음에는 신이 되고, 그다음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이 빅토르 위고가 아니라면, 악마가 된다. --- p.44
내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때때로 그들은 멀건 죽 약간이나 산패한 염장 돼지고기 비계를 컵이나 사발에 담아 가져와서 던져준다. 나는 미소로 답례할 때도 있고, 특별히 기운이 넘칠 때면 이런 경우를 위해 특별히 아껴둔 똥덩어리를 공중으로 내던지기도 한다. 그런 유쾌한 교류가 오간 뒤에 그들은 때때로 나를 흠씬 두들겨주는데, 이는 그들이 아직 약간은 관심을 쏟는다는 뜻이기에 나는 그에 대해서도 역시 사의를 표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는 말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금 낄낄낄 웃는다. 구타와 똥을 던지고 받으며 우리는 정말 멋들어지게 잘 어울려 지낸다고 말할 수 있다. --- p.59
누구한테 돈을 받고 누구한테 안 받을지 결정하니까 무슨 권력이라도 쥔 기분이었지만, 사실 내게는 쥐뿔도 없었고 가진 거라곤 달랠 길 없는 지독히 근질근질한 갈망뿐이었다. 갈망은 심장을 작고 지저분한 흉터로 차츰차츰 뒤덮었으며, 흉터는 계속 증식하여 내 이름 모를 수치심을 뒤덮었다. --- p.74~75
왕풍뎅이는 경탄스럽고도 잔인한 기계였다. 이 기계를 타고 있으면 온몸이 살점이 아니라 고통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순전한 육체적 피로 때문만도, 거친 죄수용 작업복을 입고 불과 몇 시간만 오르내려도 사타구니가 쓸려 시뻘겋게 헌 살덩이가 되는 부작용 때문만도 아니었다. 하루가 끝날 때면 이 잔혹한 노동의 목적이 오로지 저 가공할 쳇바퀴를 돌리는 것뿐이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천재적이리만큼 지독한 무용성 때문이었다. --- p.96
그가 말을 하면 무엇이든 가능해졌다. 우리의 역할이 그 꿈의 수혜자가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 그 꿈을 벽돌과 모르타르, 유리판과 철제 레이스로 바꾸는 노역자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쇠미해진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의미를, 우리가 죄수가 아님을 뜻하는 무엇을, ‘요람’과 ‘튜브 재갈’ 이상의 무엇을 제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갈구하던 바였다.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대안, 우리가 자신과 세계를 개조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증기기계 말이다. 죄수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의 모습으로부터, ‘유형 체제’가 선고한 우리의 과거와 미래로부터 탈출해야 했으니까. --- p.121
“국가를 세운다, 바로 그거요. 우리는 국가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그는 렘프리어 선생에게 말하고 있다. “아뇨, 선생, 난 부끄럽지 않소. 아니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소, 운명이 내게 이 역할을 부여했는데? 국가와 그 창건자인 나, 저주받은 감옥섬 찌꺼기가 아닌 ‘국가’ 말이오. 나는 국부가 될 거요. 국민들은 그 국부를 기리고, 숭배하고, 서사시를 써 바치고, 폭풍우 치는 밤을 배경으로 찬란한 백마에 올라탄 초상화를 그려 바칠 거요. 듣고 있으시오, 렘프리어? 아무도 모를 거요. 이 섬을 감옥에서 국가로 격상시킨 건 바로 노동, 우리의 힘든 노동, 우리의 땀과 희생이라는 걸 말이오.”/ “소변 좀,” 술 취한 외과의사가 중얼거렸다. “봐야 해서.” --- p.231
세상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인식, 삶이 너무 나 특별하다는 감각?이 두 가지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람이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
---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