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앨리시어가 발을 끌며 걷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불시에 앨리시어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동전을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숨을 들이쉬다가 거리에 떨어진 장갑을 줍다가 우산을 펼치다가 농담에 웃다가 라테를 마시다가 복권 번호를 맞춰보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앨리시어의 체취를 맡을 것이다. 그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불쾌해지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 불쾌함이 사랑스럽다. 그대의 무방비한 점막에 앨리시어는 도꼬마리처럼 달라붙는다. 갈고리 같은 작은 가시로 진하게 들러붙는다. 앨리시어는 그렇게 하려고 존재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 그대가 앨리시어 때문에 불쾌하고 지루하더라도 앨리시어는 계속할 것이다. 그대의 재미와 안녕, 평안함에 앨리시어는 관심이 없다. 계속 그렇게 한다. --- p.8~9
배가 아플 정도로 서글픈 상태라는 것을 모르는 계집애는 맛을 봐야지. 무신경한 인간은 상처를 받아봐야 안다. 찢어져야지. 두고 봐라 너도 찢어져야지. --- p.22
앨리시어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생각한다. 단단하고 길쭉한 침처럼 지상을 향해 꽂히는 빗줄기다. 비가 내려 좋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이 방은 안전하게 고립된다. 바깥이 비로 촘촘하게 닫혀 있으므로 누구도 무엇도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다. --- p.31
알겠냐 너. 어? 씨발, 이라고 자꾸 들으면 씨발, 이 된다는 거. 어. 씨발, 이라고 자꾸 말해도 씨발 된다 너. 왜? 말하면서 자기 말 듣게 되잖아, 씨발 씨발, 하고. --- p.43
그렇게 할 때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니까. 그런 순간에 그녀는 한 점 빗방울처럼 투명하고 단순하다.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거야. 때리니까 때리고 싶고 때리고 싶으니까 가속적으로 때린다. 참지 못한다기보다는 참기가 단지 싫은 것이다. 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내면에 쌓는 일이 귀찮고 구차해 이것도 저것도 마다하고 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 p.50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갤럭시는 좆같다. 앨리시어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갤럭시란 앨리시어에게도 아무것이 아니다. --- p.78
앨리시어에게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 아닌 어떤 것, 말하자면 씨발. 그녀에게도 앨리시어가 그럴 것이라는 걸 앨리시어는 그때 알아차린다. 그녀에게 앨리시어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 아닌 어떤 것, 말하자면 씨발, 감각하고 반응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 상상하기가 싫은 것. --- p.157
앨리시어는 알 수 없다.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그 순간에 추웠는지 어땠는지, 괴로웠는지 평온했는지 어땠는지를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고 이제 앨리시어는 그것을 알 방법이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