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책이 아니라 폭탄이다. 언제 폭발할지, 파편이 어디로 튈지, 얼마나 큰 피해를 남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신출귀몰 자체였다. 마키아벨리가 쓴 정세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은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며 그를 『구약성서』의 ‘예언자(profeta)’로 칭송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괴짜(bizzaro)’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상상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진실과 현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관료였으며, 고금을 오가며 시대의 오류를 간파한 역사가이기도 했다. 그가 작심하고 쓴 『군주론』은 그래서 위험한 책이다. 곳곳에 함정이 숨어 있고, 교묘한 덫에 걸리도록 유도하는 문장이 즐비하다. 『군주론』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큰 규모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 「이 책을 손에 쥔 독자에게」 중에서
폐병에 걸렸을 때 이를 초기에 진단하기는 어려워도 발견을 하면 치료하기가 쉽고, 반대로 폐병 말기가 되면 발견하기는 쉽지만 치료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나라에 생기는 폐단을 일찍이 알아차리면 쉽게 고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려 깊은(prudente)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초기에 아무도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모두에게 자명할 때쯤 되면, 그때는 이미 해결책이 없게 된다.
--- 「3장. 혼합 군주국에 대하여」 중에서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을 걷기 마련이고, 그들이 살았던 행적을 모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길과 완전히 똑같은 길을 가거나, 모방하고자 하는 이의 탁월함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인들의 행적을 따르며 가장 뛰어난 자를 모방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만큼의 탁월함에 다다르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한 향기 정도는 풍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활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잘 알고 있으며, 목표물이 그보다 더 멀리 있다는 것을 파악한 사려 깊은 궁수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들은 목표물보다 훨씬 더 높이 화살을 겨냥하는데, 이는 그렇게 높은 곳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높이 겨냥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기 위함이다.
--- 「6장. 자신만의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의 통치에 대하여」 중에서
국가를 취하는 자는 국가를 장악할 때 불가피하게 행해야 할 모든 범법 행위를 검토한 후,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시행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매일같이 이를 계속할 필요가 없도록 하여 사람들을 안정시키고, 그들에게 혜택을 주어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겁이 나서 혹은 잘못된 조언을 듣고, 이렇게 행하지 않는 자는 늘 손에서 칼을 놓지 못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신민들이 군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면, 군주 또한 신민들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피해는 단번에 가해져야 그 맛이 덜 쓰고 분노가 덜한 법이다. 반대로 혜택은 조금씩 조금씩 내려야 그 맛이 더 음미되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과 함께 살면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무슨 일이 닥치든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역경 중에는 꼭 필요한 악행을 저지를 시간조차 없을 텐데, 그때 선을 행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것을 알고, 누구도 당신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8장. 악행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들에 대하여」 중에서
위급한 시기에는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할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고위 관리들에게 명령을 받는 데 익숙한 시민들과 신민들은 위급 상황에 군주에게 명령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시기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 부족할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 즉 시민들이 국가에 만족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군주는 만족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울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달려오고, 모두가 [충성을] 약속하고.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모두가 군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이 닥쳐오면, 즉 국가가 시민을 필요로 할 때가 오면 그런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만다. 이를 시험해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데, 오직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국가와 군주를 필요로 하게 할 방법을 고안 해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나 충성할 것이다
--- 「9장. 시민 군주국에 대하여」 중에서
정신의 훈련에 관해서라면, 군주는 역사를 읽으며 뛰어난 인물들의 행적을 숙고해야만 한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어떻게 처신했는지 살피고,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여 후자는 피하고 전자는 모방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인물 중에서도, 자신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 중에 칭송받고 영광을 받았던 사람을 찾아 그를 모방했던 인물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우스를,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스키피오는 키루스를 모방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과거 인물의 업적과 행적을 늘 가까이에 두었다. 현명한 군주는 이런 방법을 따라 평화의 시기를 한가롭게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열성을 다해 역량을 키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역경 시에 그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운이 변할 때, 이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14장. 군주는 전쟁의 기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중에서
군주는 스스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겠다면 미움받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과 미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서로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만약 시민과 신민의 소유, 그리고 그들의 여자들을 삼가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미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피를 보면서까지 조치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적절한 정당성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만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는 것을 삼가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유산을 잃어버린 것보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더 빨리 잊기 때문이다. 재산을 강탈할 이유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따라서 약탈로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은 언제든지 타인의 재산을 빼앗을 이유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피를 흘리게 할 이유는 더 적고 더 빨리 사라진다.
--- 「17장.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중에서
판단력(cervelli)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깨치는 부류다. 다른 하나는 타인이 깨달은 것을 알아보는 부류다. 세 번째 부류는 스스로든 다른 사람을 통해서든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첫 번째가 가장 훌륭하고, 두 번째는 훌륭하며, 세 번째는 쓸모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만약 판돌포가 첫 번째 부류가 아니라고 한다면, [적어도] 두 번째 부류에는 속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스스로 깨친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일을 하고 말을 할 때마다 좋고 나쁨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는 신하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알아채 전자는 높이고 후자는 교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하는 그를 속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선하게 처신할 것이다.
--- 「22장. 군주의 신하에 대하여」 중에서
우리[시대]의 군주들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군주국을 다스리다가 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두고, 운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나태함 때문이었다. 바람이 잔잔할 때는 폭풍우를 염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인 결점인데, 그들은 평온한 시기에는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역경이 닥치자 그들은 스스로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망칠 궁리만 했다. 그러고는 나중에 일반 시민들이 승자의 오만함에 불만을 느끼고 자기를 다시 불러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이 방법도 좋겠지만, 실제로 이를 위해 다른 해결책을 보류하는 것은 매우 나쁜 선택이다. 다른 사람이 붙잡아 주리라고 믿고 넘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붙잡아 주든 아니든, 당신은 안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대비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당신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방어, 확실한 방어, 지속 가능한 방어는 오로지 당신 자신과 당신의 탁월함에 의존할 때만 성취된다.
--- 「24장. 왜 이탈리아 군주들은 자신의 왕국을 잃게 되었나」 중에서
마키아벨리는 1장의 첫 문장에서 공화제를 잠시 언급하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전개하지 않는다. 『군주론』의 주제는 군주제이지, 공화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다음 2장의 첫 문장에서도 “공화국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이미 상세하게 다루었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겠다”라고 밝히면서 『군주론』의 주제가 공화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제를 ‘획득하는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서구 전통과 결별한다. 어떤 사람이 군주의 자리에 올라 ‘신흥 군주국’을 이끌게 되는가? 그는 어떤 방식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는가? 그 사람의 힘과 역량이 그를 군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그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거나, 그저 운이 좋아서 군주가 된 것일까? 이 짧은 장은 단순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사실 의미심장한 도발을 숨기고 있다.
--- 「Appendix 1. 해제 ‘1장’」 중에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목적과 정황은 당시 로마에 있던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와 교환한 19통의 서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서신 연락은 1513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2월 10일 자 편지에서 『군주론』의 집필동기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언급된다. 마키아벨리는 이 편지에서 처음으로 『군주국에 대하여』라는 작은 책을 썼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가 의도했던 『군주론』의 내용은 지금처럼 난세를 이끌어갈 군주의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군주국의 정체에 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책 이름을 『군주Il principe』로 고쳐 불렀고, 사후에 이 책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새로운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 「Appendix 2. 『군주론』은 어떤 책인가」 중에서
『군주론』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읽어야 한다. 그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책상을 치면서 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집필 동기를 이해한다면 그가 왜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며, 한숨을 몰아쉬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그 책을 썼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작가는 자신이 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글을 쓰는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
의 삶 자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헌정사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저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통찰력을 제시하겠다고 썼다. 따라서 『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생애, 특히 1498년부터 1512년까지의 공직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 「Appendix 3.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