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에너지를 믿는다면] 김금희 작가의 식물 산문집. 소설로 우리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왔던 그는, 각자의 본능에 충실한 식물들을 살피며 복잡한 마음들을 너그럽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신을 보살피는 일과 결국 만나고야 마는 초록의 에너지가 이끄는 낙관의 세계로 초대할 이야기들. - 에세이 PD 이나영
우리가 떠올리는 가드닝의 아름다움은 기실 상상에 가깝고 오히려 성장의 개념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주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 그래도 나는 식물을 계속해서 기르고 식물 이야기를 쓸 것이다. 발코니에 나가 있을 때 내 안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마음들의 정체가 궁금하니까. ---「서문_식물 하는 마음」중에서
인간인 나는 파악할 수 없는 이 공간의 특질과 에너지를 찾아내 열심히 적응하고 성장한 식물들.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내 가까이서 그 일을 해낸 식물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 ---「잘 자라는 일」중에서
결국 식물을 기르면서 내가 하는 일이란 대체로 일상과 겹쳐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갈 마음이 아닐까. 준 것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 완전한 습관으로서의 돌봄, 혹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집사 일기」중에서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조건은 한정적이고 우리는 절대 살아 있는 것들의 완벽한 관장자가 될 수 없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그런 공백 때문에 어떤 식물은 자라고 어떤 식물은 성장을 멈춘다. 그러니 빛, 바람, 물이라는 답은 가드닝의 수많은 실패자들을 북돋우고 자책에서 구해내는 치유의 말일지도 몰랐다. ---「코로키아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된 것」중에서
우리집에서는 식물들이 제각각 다른 집을 짓고 산다. 좀 비좁기도 하고 습하기도 하고 색도 낡아 있지만 그런 차이들에 아랑곳없이 뿌리를 내리고 적응을 해낸다. 차이는 결함이 아니라 그저 조건일 뿐이라는 사실을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이다. ---「새집 생활」중에서
식물은 자기 상태에 대한 미움이나 비난이 없다. 그리고 마음은 본래 그런 식물의 형태이지 지금 나를 옥죄어오는 이 나쁜 형태가 아니다. ---「가능한 한 이팝나무에 가깝게」중에서
만약 식물에게서 매번 고통을 상상한다면 식물을 기르는 방식은 매우 왜곡될 것이다. 잎을 떨어뜨리거나 가지를 휘거나 적절한 시기가 되면 꽃을 말려 떨어뜨리는 식물의 행태는 식물의 방식대로 읽을 때 비로소 본질에 맞는 자연적 행위가 된다. 가드닝을 하며 식물과 나는 생존의 드라마를 함께 겪지만 그것은 인간인 내가 구성한 것일 뿐 사실 거기서 발생하는 상념들은 식물 자체와는 무관하다. 그 무관함, 발코니에서의 날들이 계속되면서 나는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무관함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일도 여여하다」중에서
식물에게는 지금 이곳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식물들의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낸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 삶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 그렇게 자기가 놓인 세계와 조응해나가는 것. 이런 질서가 있는 내일이라면 낙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내일이면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한 매일의 노력들이 없다면 우리 삶이 계속될 수는 없으리라. 이 건강한 힘을 이 책은 ‘식물적 낙관’이라 표현한다. 소설을 통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그러나 도저한 다정함으로 우리 삶을 살피던 김금희는 이 책에서 식물을 살피는 일이 어떻게 우리 삶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식물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깊게 공감할 크고 작은 일들을 따라 읽다보면, 당신은 때로 웃기도 하고, 또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을 낙관할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