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홀로 고고히 서있는 바탕 위에서 타인들과 적당히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절실히 타인들에게 기대어 있는 것이다. 매 시절마다 있는 그 몇 사람 때문에 그 시절이, 그 시간이 살아지고 정의된다. 영원한 인연은 없기에 그들 또한 곧 멀어질 테지만, 그래도 한 시절을 그들에게 의지하며 돌다리를 건너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라는 존재의 배를 타고 인생을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절마다 각기 다른 타인이라는 배를 건너 타며 살아가는 것이다.
--- p.22~23, 「삶이란 의존하는 것」 중에서
누구에게나 낭떠러지가 도래하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들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많은 장치들을 마련하고 마음의 힘을 지키려 애쓰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이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를 곁에서 붙잡아주고 지켜주는것은 역시 근거리의 관계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계들이 우리를 붙잡아줄 손이라면, 우리의 마음이 발 딛고 서야 하는 땅은 우리가 오랫동안 이어가야 할 삶의 어떤 가치들일 것이다. 그런 가치가 지탱되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목표’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 p.52~53, 「삶에서 낭떠러지가 도래하는 순간」 중에서
달빛을 쫓아가듯이 밤을 사랑하는 시절이 있다. 깔깔대며 춤을 추고, 외로운 마음에 흠뻑 취하고,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세계가 되는 시절이 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남김없이,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찾고, 그렇게 국경을 넘고, 잠을 잊고, 달려가는 나날이 있다. 저마다의 시절에는 그때만의 마음이라는 게 있어서 나름대로 행복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느 시절에는 유난히 누군가를 간절히 지켜주고 싶고, 반대로 어느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뼛속 깊이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찬다.
--- p.79, 「저마다의 시절들을 사랑하기」 중에서
그리고 아마도 어느 낯선 미래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삶을 사랑하고자 애쓰며 또 많은 세월을 살아낼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결국에는, 삶을 사랑하고자 애썼던 그 마음이 역시 옳은 것이었다고, 나는 그렇게 내게 가장 어울릴 법한 삶을 역시 살아내고야 말았다고, 그렇게 고요히 고개를 끄덕일 날이 올 것을 기다린다. 내가 사랑한 모든 날들은 그 어느 하루도, 차마 다른 것과, 혹은 다른 누구의 하루와 바꿀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내가 얼마나 이 삶을 사랑했는지를 기억하며 저물어가기를 바라게 된다.
--- p.87,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를」 중에서
살아갈수록 그런 것을 배운다. 하루하루를 그것 자체로 인정하는 것, 이곳이 아닌 먼 곳의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는 것, 이순간의 다정함이 전부라는 것, 그 속에 안착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 p.103, 「이 순간의 다정함이 전부」 중에서
그래서 나 자신을 다정함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몸 속에 피가 흘러야만 하듯이, 나의 삶을 다정함이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내가 내 안의 피로들을 이겨내고, 내게 도래하는 어떤 정신적 압박들을 깨뜨려 헐어버리고, 매 순간 명료한 정신으로 나 자신과 나의 시간과 곁에 있는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의 몸이나 내 현실의 어떤 압박이나 나를 짓누르고 공격하는 어떤 삶의 요소들이, 내가 지닌 한 뭉텅이 작은 그늘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켜내고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 p.129,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 중에서
결국 사랑이란, 그렇게 끊임없이 되어감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닌가 싶다. 당신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당신을 유심히 바라보며 관찰했을 때, 당신의 어떤 몸짓을 기억했을 때, 그러한 사소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사랑이라 믿고, 말하고, 해석하면서, 사랑은 더 사랑이 되어간다. 그렇게 되어감 이외의 사랑이란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은 당연히 붙잡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 p.131~132, 「사랑이란 선언적인 것」 중에서
한 사람의 삶이 온전히 주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랑이, 순간이, 시절이, 정성이, 또 방황과 고민과 견뎌냄이 필요한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한편, 삶 그 자체이자, 삶의 전부라는 생각을 한다. 삶이란 그 여정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가는 길 외의 삶, 가는 길 바깥의 삶이란 없을 것이다.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목적지였을 것이다.
--- p.204, 「여기가 삶의 목적지」 중에서
세상에 두려워할 만한 것들이 참 많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다. 사랑을 잃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사랑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만약에 사랑이 이미 없어졌다면,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 같다. 이 드넓은 세상에,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터이므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국경선을 넘는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그렇게 사랑을 찾으라고 응원의 말을 건넬 듯하다.
--- p.221~222, 「삶에 사랑이 없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