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나를 늘 행복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 곳에 있으면 세상의 일들이 물러간다. 조용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깔끔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세상의 일들이 작아 보이고, 더러는 명예와 권력이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산은 은인자중을 배우게 한다. 산은 깊은 마음이 되게 한다. 산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게 한다. 산은 내 영혼의 반려자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이런 산이 좋다. 나는 이 나무들이 좋다. 심신이 고단해질 때 이곳에 들어서면 모든 잡다한 것들이 다 물러간다. 조화가 되고 중용이 되고 평안이 된다.
이 책을 만났을 때 바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산에 대한 나의 생각 때문이다. 산은 나에겐 중화와 평화의 공간이다. 행복의 바로미터다. 이런 공간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 지 말로는 이루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진해진다.
이토록 황당하면서도 낭만적인 여정이라니. 처음에는 신탁이나 하늘의 계시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야 이런 은유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나만의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살면서 별이 나의 갈 방향을 가르쳐 준다거나, 압도적인 계기가 답을 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중간과정이 필요하며, 신조차 중계소를 필요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산으로 걸어 들어가 보라.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만났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당신과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저자가 산을 만나고 산에 매료가 된 생각을 해보고 있는 내용이다. 아마 이 문장들이 저자가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고 산을 오르며 산에서 느낌을 가진 모든 내용들을 포괄해 얘기할 수 있지 않으랴 생각해 본다. 저자는 산을 지속적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 산에서 만난 단상들과 자연들, 그리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산이 주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산은 그렇게 스스로를 만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산에 가면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만날 수 있는 듯하다. 산을 오르면서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한다. 몸이 부실하면 부실한 대로, 마음이 흡족하면 흡족한 대로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거의 건설적인 대화가 된다. 순수와 긍정의 대화가 된다. 산에 올라서도 좋지만 오르면서 느끼는 그 힘겨움과 아울러 다가오는 긍정의 아이콘이 좋다. 그것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일상으로 즐겨할 따름이다.
저자는 산에서 특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산 아래 세상만큼 힘들진 않으니까? 라고 완곡하게 얘기하는 저자의 산에 대한 느낌의 일단을 본다. 물 한 모금, 사탕 한 개를 가지고 오르는 산길은 힘겹다. 하지만 모든 게 확실하다. 그 명료함이 좋다. 세상에 있으면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데 산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하다.
산 위에서는 일출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생각은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명료하게 해준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오늘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득하다. 그럴 때는 산이 더욱 떠오른다. 산은 걷고 오르고, 바라보고, 느끼고 그러면 된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악착같이 싸우고 남을 이기려 하고 하는 것들이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 가지고 느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산에 오르는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인이 된다.
난 고산(高山)을 오르는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 저자는 배낭을 메고 산을 향해 떠나는 행위를 좋아한다. 책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만 봐도 높은 산, 깊은 산 등을 두루 섭렵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산을 오르면서 산속에서 만난 모든 것을 언어와 조합시킨다. 그것이 감동으로 연출되기도 하고, 놀라움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산이 아름다운 풍광으로 언어를 채색하게 한다. 산과 저자가 더불어 이익이 되는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산에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서,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산의 효용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참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나눔이 아닐까 여겨진다.
설령 지금 당신이 모든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고 해도,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른다 해도, 지금 이별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해도, 나는 그 모든 걸 이해한다고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저자는 산을 통해 만난 지혜를 만나고 있다. 당연히 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마음에 달려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마음을 산은 우리들에게 일깨워 준다. 삶의 여정이 우리를 여물게 하는 과정이라고. 삶이란 긴 시간 동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삶속에서 숱하게 자신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다독여야 한다. 그런 힘과 그런 여유를 산은 가지게 만들어 준다. 산의 지혜에 공감하면서 산을 오르는 자는 복되다.
산을 오르는 것이 혼자서 되는 일은 아니다. 동반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함께할 때 그 산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상호보완이 되고 서로 의지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산행을 하면서 많은 동료들을 만난다. 그들과 산을 오르면서 가지게 되는 동질감은 나려놓음이다. 함께 내려놓으면서 만날 때 소중한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은 많은 것들을 해결해 나갈 자산이 된다. 산은 넓은 마음(호연지기)을 기르게도 하지만 섬세하게 타인의 마음을 살피게도 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다. 그렇기에 서로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은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산에 오르면 거대한 정기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삶의 힘이다. 그런 힘의 배양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산이 주는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에 대해 더욱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책이 아니라도 산은 우리 인생들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다. 손을 자주 오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 산은 작은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찾게 만들고, 자신의 삶의 긍정적인 방향성을 모색해 준다. 산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프리라. 이 책을 통해서 산의 진면모를 더욱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산은 늘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힘겹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을 위로하고 있다. 산을 가까이 하는 삶은 생명의 소리와 함께하는 길이다. 감사하게 책을 읽었다. 산은 우리를 멋지게 살도록 이끌어준다. 저자의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 멋진 인생(人生).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산이 좋아졌어
산뉘하이 Kit
글담출판사/2021.3.8.
우리나라의 등산인구는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주말에 산을 오르다보면 만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까운 근교의 산을 오르는 사람을 비롯하여 전국의 유명산을 찾는 사람도 많으며, 외국의 유명산이나 트레킹 코스를 찾는 사람까지 꾸준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젊은 직장여성으로 대만의 산뿐만 아니라 네팔이나 미국의 여러 트레킹코스를 꾸준히 다니며 기록한 것들을 <산이 좋아졌어>에서 소개하는 저자는 타이베이 사람으로 낮은 산 중독자. 필명 산뉘하이는 ‘산의 아이’라는 뜻이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걷기를 즐기게 되었고,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걷고 쓰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산과 사랑에 빠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산이 좋아졌어>의 저자가 맨 처음 산에 오른 이유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도 아니고, 정확한 방향 감각을 갖추어야만 검은 숲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늘 산과 함께 걷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산은 언제나 반겨주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깊은 밤 텐트를 걷어 올려 별을 바라보고, 새벽녘 숲속 깊숙한 곳에서 깨어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자기의 그림자와 함께 먼 길을 걸어가는 것, 달빛에 살을 태우고, 새벽빛에 눈시울을 붉히는 것도 좋았으며, 이른 새벽 침낭을 정리하면서 서로에게 미소 짓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산을 오르며 기록한 글들을 네 개의 주제 ‘첫 일출을 본 순간부터, 조금 괴로워도 무리가 되더라도, 함께 오르는 산, 산과 나 사이’ 등으로 나누어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아직도 처음으로 일출을 본 순간을 “우주가 가늘게 진동하고, 바람은 간간히 귓가에 흐른다. 심장은 더디게 뛰고, 피는 얼어붙은 듯하다. 알 수 없는 힘이 불러들인 금빛 공기 안에서 세상은 서서히 녹는다.(p.13)”고 생생히 기억한다. 타이베이는 3,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이 268개나 있고, 1시간만 운전하면 그 산들의 입구에 닿을 수 있으며, 원주민의 안내자를 따라 그들의 성스러운 산을 방문할 수 있다고 저자가 살고 있는 도시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보다 작은 면적이지만 높은 산들이 많아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네팔의 고원지대를 트레킹하고, 미국 대륙의 트레킹 코스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산을 오르고 또 오른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디고(글담) 출판사에서 출간된 < 산이 좋아졌어 >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는 당연히 한국 에세이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좀 이상해서 가명인가? 싶었는데 왠걸 대만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대만사람이 대만과 세계 여러 곳에서 즐기는 산행 이야기이다.
그런데, 대만과 한국의 자연환경이 비슷해서일까? 읽는 내내 한국에서의 산행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 속 여성의 외모도 우리와 비슷하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듯하다. 그리고 대만에 그렇게나 많은 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저자를 산으로 이끌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어머니'이다. 오랫동안 병간호를 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저자는 산행을 결심하게 되는데, 물론 처음 시작은 주변의 오르기 쉬운 산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그렇게 시작한 저자의 산행코스는 점점 그 강도와 스타일이 변하면서, 새벽산행, 야간산행, 캠핑, 트레킹 등으로 다양해지고 그에 비례해 산을 향한 저자의 사랑도 커져만 간다. 동시에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 된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해 몰입할 수 있는 취미가 있는다는 것은 아주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저자는 그 방법의 하나로 산행을 선택했고 결론적으로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인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며 인생을 돌아볼 수도 있고, 고요한 새벽 혹은 한밤중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
평범한 직장인이 산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 마냥 부럽기만 하다.
산이 좋아졌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누군가 무슨 운동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대답할 수 있는 정도가 걷기, 등산, 골프이다
숨을 헐떡이는 몸부림을 싫어해서 오롯이 걷기만 하고 있다.
한때 100대 명산 등산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해내기 위해 부지런히 산을 다녔다.
산이 매력을 맘껏 느꼈다기보다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요즘은 한번 가본 산 보다는 안 가 본 산을 찾아다니고, 높은 산 보다는 300~700m 사이에 낮은 산을 찾아다닌다. 산에 가면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대만의 젊은 처자가 어머니를 여의고 산을 찾아다니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일종의 사랑 에세이 같기도 하다.
“ 지금부터 너는 나의 배낭이다. 네가 무엇을 넣든 그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될 것이다. 나는 너를 짊어지고 깎아지른듯한 바위를 오르고, 봉우리를 넘고, 별도 달도 없이 캄캄한 어둠속을 걸을 것이다. 과거 네가 사랑했던 사람과 상처 입은 마음, 너의 깊은 골짜기와 어두움 균열 그리고 이따금씩 나빠지는 모습까지 모두 짊어지고 걷겠다. 나는 너를 메고 수없이 많은 산을 오른 강을 건너서 결국 네가 사랑과 만날 때까지 걷고 또 걷겠다.”
산을 다닐 때 꼭 동반자가 있어야 하는 아니였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때는 혼자 다녔다. 나도 한창 산을 다닐 때 작가처럼 고독을 미화했다.
“언제든 출발 가능. 만약 혼자라면 최고의 시작은 아니어도 최고로 잊지 못할 여정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때론 외로움 속에 깨닫는다. 고독은 지나치게 미화되었다고”
“전날 밤 야근을 마치고 밤새 차를 몰아 도착한 친구는 피로를 전혀 풀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전진 속도에 맞추느라 자신이 평소 걷는 속도가 아닌 비정상적인 속도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걷는 리듬을 완전히 상실하고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친구의 ’천천히 걷는 정도의 발걸음‘으로는 날아가는 듯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나는 매번 뒤를 돌아보면 친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산을 올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산행에서 가장 힘든 건 오래 걷는 게 아니라 자기 속도가 아닌 다른 속도로 걷는 일이다. 친구를 기다릴 때면 몸이 급속도로 서늘해지면서 정신도 가물거렸다...중략... 하지만 산위에서의 힘든 시간은 언제나 끝이 있다. 결국은 산장에 도착 할 것이고 결국은 산봉우리를 넘을 것이며, 결국은 길이 끝나는 순간과 마주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산 아래 세상만큼 힘들지 않다.”
“최근 몇 년 간 연습한 결과 내가 혼란스럽고 괴로울 때 최소한 상대방에게 나의 상태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예전처럼 버림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대충 얼버무리거나 내가 먼저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방어든 자기 보호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또 나를 사랑하는 이를 상처 입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산뉘하이Kit
옮긴이: 이지희
펴낸이: 김종길
펴낸곳: 글담출판사(인디고)
"어차피 내려올 걸 힘들게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답변 대신에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산은 오르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평범한 직장여성으로 일상에 몰두하며 살아가던 한 대만 여성이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느끼는 사람들이야기가 담담하고 진솔하게 담겨있는 책 『산이 좋아졌어』이다.
이른바 등산덕후가 되어버린 그녀가 말하는 산의 매력이란 무엇이고 함께 산행하는 이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를 담은 『산이 좋아졌어』는 최근에 산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게된 중요한 동기는 대만의 산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내가 아는 대만의 산은 옥산과 아리산 정도 뿐이다. 그러나 대만에는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산들이 무려 268개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이 겨우(?) 1,950m에 불과한데 3,000m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만의 산들은 어떨까? 그곳을 오르는 이들은 누구일까?
오랜 시간 간호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 산을 오른 그녀에게 자연은 말없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더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심 속 낮은 산을 시작으로 새벽 산행, 야간 산행, 산속 캠핑, 트레킹까지. 점점 더 산을 사랑하게 되면서 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 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피톤치드 향 가득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산뉘하이'라는 이름의 저자가 그동안의 실제 산행경험을 엮은 책이기에 호기심이 작용하기도 했고, 여성 산악인으로 겪는 애환은 남자와는 또다른 것이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다른 고산에서의 애환은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7월 한여름에도 3000m 높이의 고산에서는 눈이 녹지않아 고생했던 적도 있었다고 하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다보니 대만의 고산들을 가보고 싶어졌다. 경사도 70도의 급경사는 어떤 느낌일까? 깎아지른 바위를 넘는 아찔한 느낌은 또 어떨까? 3000m를 넘는 268개의 고산들을 오르는 기분은 또 어떨까? 책을 통해 그 험난함과 고단함을 느낄 뿐이다. 가고 싶어졌다. 대만으로...
지은이가 산행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보니 마치 우리나라 산행하면서 느끼던 것들과 동일한 것들도 있어 놀랍기도 하거니와 내가 아닌 산행동료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들도 거울보는듯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지은이도 산행하면서 미숙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새벽 3시에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정적감을 통해 몰아일체의 경험을 느끼기도 하는 것을 보니 그냥 친숙한 산악인을 보는 듯해 낯설지 않다. 그녀를 알지 못하지만 마치 그녀와 함께 산행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체감하기도 했다. 대만 산행하러 가면 그녀와 같이 하면 좋겠다. 대만의 고산들은 가이드가 필수라고 하니 그녀와 같이 산행하면 기쁘기 그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날이 오길 바랄뿐이다. 좋았어 대만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산행하기를 기다리자.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새벽별바라기를 같이 해보면 좋겠다.
타이베이에는 3,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이 268개나 있고, 운이 좋게도 1시간만 운전하면 그 산들의 입구에 닿을 수 있으며, 원주민 안내자를 따라 그들의 성스러운 산을 방문할 수 있다. (산이 좋아졌어』 16쪽)
턱까지 차오르는 숨,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오르막,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은 무게, 눈이 녹은 물속에서 감각을 잃어버린 발가락, 그렇게 걷고 또 걷다 체력의 한계에 직면할 때마다, 눈 앞의 윤곽이 흐려질 때마다 선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무치게 그리워서 (『산이 좋아졌어』 18쪽)
내가 산에 오르면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다.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산이 좋아졌어』 36쪽)
'아웃도어리서치'의 방수 등산모자, '스마트울'의 250파운드 양털 바디 핏, '블랙다이아몬드의 아이젠, '페츨' 350루멘 헤드랜턴, '마무트'의 비브람 등산화. 이들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 눈동자처럼 반짝거리며 자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가 주길 가다리고 있다. (『산이 좋아졌어』 40쪽)
트레커들 사이에서 난이도 9.5로 분류되는 중양젠은 해발고도 3,705m로 타이완 3대 뾰족산 중 으뜸이다. 남쪽은 무너져 내리는 험준한 절벽에, 북쪽 역시 깍아지른듯 가파른 절벽이다. 칼날처럼 뾰족한 원뿐 형태이며, 타이완 '백악' 중에서도 11위에 해당한다. 숲길, 협곡, 계곡길, 암벽, 자갈 비탈길 등 각종 지형을 한 번에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그야말로 중양산맥에서 최고로 험난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산이 좋아졌어』 59쪽)
산이 좋아졌어
산뉘하이 Kit
글담출판사/2021.3.8.
sanbaram
우리나라의 등산인구는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주말에 산을 오르다보면 만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까운 근교의 산을 오르는 사람을 비롯하여 전국의 유명산을 찾는 사람도 많으며, 외국의 유명산이나 트레킹 코스를 찾는 사람까지 꾸준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젊은 직장여성으로 대만의 산뿐만 아니라 네팔이나 미국의 여러 트레킹코스를 꾸준히 다니며 기록한 것들을 <산이 좋아졌어>에서 소개하는 저자는 타이베이 사람으로 낮은 산 중독자. 필명 산뉘하이는 ‘산의 아이’라는 뜻이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걷기를 즐기게 되었고,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걷고 쓰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산과 사랑에 빠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산이 좋아졌어>의 저자가 맨 처음 산에 오른 이유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도 아니고, 정확한 방향 감각을 갖추어야만 검은 숲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늘 산과 함께 걷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산은 언제나 반겨주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깊은 밤 텐트를 걷어 올려 별을 바라보고, 새벽녘 숲속 깊숙한 곳에서 깨어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자기의 그림자와 함께 먼 길을 걸어가는 것, 달빛에 살을 태우고, 새벽빛에 눈시울을 붉히는 것도 좋았으며, 이른 새벽 침낭을 정리하면서 서로에게 미소 짓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산을 오르며 기록한 글들을 네 개의 주제 ‘첫 일출을 본 순간부터, 조금 괴로워도 무리가 되더라도, 함께 오르는 산, 산과 나 사이’ 등으로 나누어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아직도 처음으로 일출을 본 순간을 “우주가 가늘게 진동하고, 바람은 간간히 귓가에 흐른다. 심장은 더디게 뛰고, 피는 얼어붙은 듯하다. 알 수 없는 힘이 불러들인 금빛 공기 안에서 세상은 서서히 녹는다.(p.13)”고 생생히 기억한다. 타이베이는 3,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이 268개나 있고, 1시간만 운전하면 그 산들의 입구에 닿을 수 있으며, 원주민의 안내자를 따라 그들의 성스러운 산을 방문할 수 있다고 저자가 살고 있는 도시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보다 작은 면적이지만 높은 산들이 많아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네팔의 고원지대를 트레킹하고, 미국 대륙의 트레킹 코스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산을 오르고 또 오른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너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 그 배낭, 네가 얼마나 나를 그 안에 함께 넣고 싶어하는지, 나의 사랑과 호감과 진심까지 담고 싶어하는지 잘 안다. 너 역시 꿀을 가장 많이 모으려고 하는 욕심 많은 꿀벌이다. 나는 너의 불안을 알고 있다. 불안 때문에 나를 혼자 보내지 못하고, 사실 홀로 걷고 싶다는 너의 비밀을 내가 눈치챌까봐 또 불안해한다. p.26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나 혼자다. 늘 어디쯤 서 있어야 할지 모르고, 내가 가진 것들을 선택해 본 적도 없다. 항상 원망 섞인 헐뜯음에 시달리며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그러다 결국 능력도 부족하고 약해빠졌다고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산봉우리 몇 개는 거뜬히 넘으며, 능숙하게 산으로 걸어 들어가고, 나의 작고 보잘것없음과 마주할 줄 안다. 산은 우리가 길을 잃으면 별을 보내주고 시냇물을 흘려보내며, 부는 바람과 부러진 나뭇가지로 우리의 선택을 돕고 나아갈 방향을 인도한다. p.46
네팔의 산간 지역 트레킹은 보통 오후 4시가 되면 대부분 하루 일정이 끝이 난다. 아무리 혹독한 눈길과 고강도의 등반이었다 해도 저 멀리 푸른색 산장 지붕이 보이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신다. 안나푸르나 마르디 히말 트레일의 오성급 산장에 들어서자 뜨거운 차이밀크티가 제공되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장작 난롯가에 앉아서, 혹은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진 채 따뜻한 죽이 코앞까지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p.106
우리에게는 늘 즐거운 일이 한 가지 있다. 함께 산을 오르고 함께 먼 길을 걸으며, 함께 배고품을 견디고, 함께 별을 올려다본다. 나는 너의 말을 이해하고, 너는 나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서 짐의 무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나에게 바로 그런 동료다. p.115
나는 흐릿하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산에 가고 싶다. 산에서는 모든 게 확실하다. 해다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는 그 리듬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어쩌면 나는 다른 무엇이 아닌 그저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출발하면 일출의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지금 출발하면 저 산을 넘을 수 있다. 내가 발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여정을 마칠 수 있다.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이 모든 걸 보상받을 수 있다. 최소한 산에서는 사는 게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 p.125
당연히 사는 건 늘 어렵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은 쉽게 변할 수도 이다. 쉬워지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그건 이 여정이 우리를 여물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이란, 이처럼 긴 시간 동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절망하지 말라고 수없이 자신을 다독여야만 한다. 설령 지금 당신이 모든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 해도,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른다 해도, 지금 이별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이별을 통보받았다 해도 나는 그 모든 걸 이해한다고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도 이미 겪어봤다고, 괴로워하고, 잃어버리고, 상처받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p.166
산에서 알게 된 것
산속에서 너는 더욱 너다워지고
산속에서 나는 더욱 나다워진다.
몸이 중량에 성실히 반응하는 건
숲이 바람에 반응하는 것과 같다.
산 아래 사소한 갈등에도 괴로워하던 너는
결국 이해하는 법을 연습중이다.
지구가 계속 돌고 은하수가 끊임없이 흐르는 건
구름과 숲이 바람을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람에게는 언제나 바람만의 방법이 있다. p.169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다. 사랑은 함께 하려는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만약 사랑의 대상이 사물이나 어떤 물건이라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덕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 산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이 있다. 산을 찾아 다니며 산에 대한 사랑을 예찬하는 여성. 대만의 산뉘하이 이야기다. 산뉘하이는 저자의 필명으로 '산의 아이'라는 뜻이다. 누가 산 덕후 아니랄까 필명마저 산에 대한 사랑이 배어난다.
저자에게 산은 무엇일까? 무엇이 저자를 산으로 이끌었을까? 그에 대한 질문을 저자는 '어머니'로 답한다.
나는 어머니 때문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자주 그리워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한 번도 그 사랑을 멈춘 적은 없다.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힘껏 숨을 쉬고 있다고.
힘든 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시는 나 자신에게 회피할 이유를 주지 않겠다고.
오늘로써 어머니를 위한 걸음은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걸음을 내딛겠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일본의 가을 산행, 어머니의 임종 이후 그리움에 산을 오르던 저자는 다짐한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걸음을 내딛겠다고. 자신을 위한 걸음을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저자의 사랑은 시작된다.
산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낭? 신발? 체력?
저자 산뉘하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한 모든 건 불가능하다.
삶도 산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계획이 어긋날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를 믿는 것이다. 저자 역시 여러 산을 다니며 외롭기도 하고 길도 잃지만 그 때마다 깨닫는다. 나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은 언제나 열린다고.
그래서 산을 오를 때마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사랑이 소유를 의미하지 않음을.
사랑은 그 존재 자체로 행복하므로 굳이 소유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한다.
저자의 산에 대한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과 길은 그 자체로 저자에게 하나의 여정이자 행복이다.
산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산에서 하는 그 자체가 소중할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안개가 끼면 멈추고, 걷히면 나아가는 데 만족한다."
산을 개발 대상으로 여기며 정복할 생각에만 혈안인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은 환경보호라는 구호도 중요하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걸 느끼게 한다. 사랑하면 소유하지 않으려 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니까..
덕후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행복해한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해한다. 저자를 비롯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함께 산을 오르고 먼저 가기도 하며 쉬어 가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주며 응원해준다. 산을 오르는 행위만으로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함꼐 또는 홀로하며 서로의 길을 걸어간다.
저자에게 산은 인생이자 어머니이자 자기 자신이다.
산을 오름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해가고,
산을 오름으로서 인생을 배워나가고,
산을 오름으로서 자기 자신을 이겨나가며 사랑해간다.
저자가 말한 《산이 좋아졌어》는 결국 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한 여성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저자가 산을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산을 오른 이후, 겁에 질려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한 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저자의 산에 대한 예찬을 읽고 있노라면 함께 산을 오르자고 손짓하는 저자를 보는 듯하다.
아마 내가 산에 오른다면 그건 분명 저자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리라.
< 산이 좋아졌어 >
산뉘하이Kit 지음 | 이지희 옮김
"산으로 걸어가 보기를."
평범한 직장인에서 산 덕후가 된 등산 러버의 산행 에세이
이 책의 저자 산뉘하이Kit은 뼈속까지 타이베이 사람이다. 그랬던 그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였다. 4년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병동에서 깨어나 10km 마라톤을 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달리기 영혼이 소멸되어, 더이상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주었고, 그는 한동안 버티지 못했다.
그런 그가 산을 오르기로 결심한 것은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SNS에 포스팅된 설산 허환산의 이미지. 우연히 본 사진은 그를 산으로 이끌었고, 산은 기어코 그를 산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무엇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저자는 산을 오르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법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산을 오르고, 산은 그런 그를 품어준다. 때로는 가파른 언덕으로, 때로는 자갈을 선사하지만. 그것 또한 그에게 고통이 지나가는 것이라 말해준다.
P.63
중양센 삼각점을 마주했을 때도 이 '서 있는 길'을 완주했을 때만큼 가슴이 벅차지는 않았다. 2시간 넘게 자갈 비탈길을 기어오른 뒤에 두 발이 평탄한 산길을 내딛는 순간, 감격에 겨워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슴 깊이 느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거세게 밀어붙였도 나를 날아오르게 하는 힘은 언제나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며 다른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38
우리의 인생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모두 나의 동료이고 늘 누군가는 나와 함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목표가 있고 제각각 익숙한 걸음걸이가 있기 마련이다. 마침 목표가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났다 해도 각기 다른 속도로 인해 누군가는 앞서가고 또 누군가는 뒤쳐질 수 있다. 더 많은 산을 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바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누리는 신이야말로 길에서 겪는 최고의 경험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지만, 나름대로의 속도로 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가려다 지치고, 또 지쳐서 주저앉고 만다. 또는 남들에게 타인과 같은 속도로 살아가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야 오랜시간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산을 오르며 그 깨달음을 얻었다니, 나도 산을 오르며 그것을 더욱 확실히 깨닫고 싶었다. 오래전 나는 산을 오를 때, 남들보다 먼저 올라가고 싶어서 무리해서 오르곤 했다. 산을 둘러보지도,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그저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정상에 일찍 도달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와 바싹 마른 입안에 한참동안 숨을 고르고만 했었다.
만약 내가 나만의 속도로 산을 올랐다면, 나의 산행은 힘든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지금도 나는 취미로 등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등산의 재미를 잃은 내게, 저자가 등산의 재미를 알려주었다.
P. 185
산은 우링에게 허가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원하면 언제든 오고 갈 수 있다. 캄캄한 밤에도 오르고, 짐승들이 다니는 길로도 다니며, 비공식적인 노선으로 비탈길을 올라가 곧장 남쪽 세 번째 구간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산은 우리를 그냥 그곳에 머무르게 둔다.
이번주 주말에는 나도 가까운 산을 가보려 한다. 어떠한 차별도 없고, 허가도 필요없는 그곳에. 나 자신 그대로를 가지고 가보려 한다. 제발, 미세먼지가 적기를.
이 책은 한 평범한 직장인이 산이 좋아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좋은 이유들을 적어 놓은 에세이다. 다시 내려올텐데 왜 올라가냐, 힘들거다, 산을 오르는 것에 많은 이야기가 붙곤 한다. 하지만 산은 아무런 편견없이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그 행위 자체에서 가져올 행복감을 이 책은 자신의 언어로 얘기한다.
등산을 취미로 가지고 싶은데, 막상 두려움을 겪는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산을 오르고 싶어질지 모른다. 이 책을 읽었던 나처럼. 산을 오르고 싶은 누군가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 YES24 리뷰어클럽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초록색의 산뜻한 산행 같은 책 한 권. 이제 봄기운이 완연한 날들이 이어지니 나도 모처럼 산행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라 글로 읽는 산행마저 반가웠다.
예전에 회사에서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부서별 활동비를 지원해 준 덕분에 우리 부서는 종종 산행을 하곤
했었다. 특히 야간 설산을 등반했던 기억은 힘들었던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막상 오르기는 힘들지만, 성취감도 상쾌함도 더없이 좋았던 느낌이 있어서 오랜만의 산행을 꿈꿔본다.
저자는 타이베이 사람이다. 산뉘하이"라는 이름이 "산의 아이"라는 뜻이라니 재미있다.
산행을 하는 과정을 읽다 보니 인생의 여러 순간들의 축소판 같다.
저자의 산행을 따라가며 나누는 단상들이 참 좋았다. 산에서 가장 힘든 건 오래 걷는 게 아니라 자기
속도가 아닌 속도로 걷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늘 복잡하고 눈 돌릴 곳이 많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서는 순간 산에서 나는 풀냄새와
새소리가 들리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일상 소음과는 다른 치유의 힘이 있다.
우리가 종종 무심코 발견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감동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안타깝게도 도시의 환한 불빛들로 인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일도 쉽지 않다. 일출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나서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자연이 주는 에너지의 힘에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경관이 주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난 후의 감동은 우리를 종종 자연 속으로 불러들인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잠깐 비껴 나 있는 시간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은
우리 또한 자연의 일환이 된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과정은 우리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한다. 느리게 걸으면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보게 하고 내면의 나를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복잡했던 일상들의 실타래를 풀어보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자연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너그럽게 하는 힘을 가졌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희열은 생각보다 크다는 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증 나지 않는 것. 자연.
산행을 따라가며 여러 순간들에 삶의 단면들을 만난다. 제각각의 보폭으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만나지는
사람들이 있고, 멀어지기도 한다. 목표가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났다 해도 속도가 모두 같을 수 없다.
더 많은 산을 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바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누리는
산이야말로 길에서 겪는 최고의 경험이다. 나답게 누리는 산행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
산행 중에 만나는 자연의 경관, 산행 후 마시는 소박한 차 한 잔이 주는 의미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산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위험요소도 따르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삶도
그렇다.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교차하고, 긴 시간 동안 용기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산행에서도 인생에서도 그런 경험들은 우리를 또다시 일어서게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지만
분명 그 안에서 발견하고 마주할 장관들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살만하고, 산을 오를 용기가 생긴다.
책 속 산행을 따라 마주한 경관들과 사람들, 그리고 내면의 단상들로 올랐던 산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으로 채워질 산들을 기대한다.
이 책의 저자 산뉘하이kit은 평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이 답답할 때는 도시 곳곳을 달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2014년 이전에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이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 간호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상실감이 커서 달리기 영혼조차 함께 사라졌다.
달릴 수 없게 된 이후로 삶의 의지조차 흐릿해져 뭔가 하려고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친구가 sns에 공유한 설산 등반에 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고 2015년 9월 생애 처음으로 산을 오르게 된다. 느리게 걸으면서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 체력의 한계에 직면할 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운 기억들. 매년 9월이 되면 산뉘하이kit은 산을 오른다. 어머니 때문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다시 나 자신을 찾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등산이 뭐가 좋아?"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산이 좋은 이유, 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저자의 필명 '산뉘하이'는 '산이 좋은 아이'라는 뜻이다. 타이베이 사람이며, 낮은 산을 좋아한다.사찰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서 그런지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걷기를 즐기게 되었고, 인생 첫 마라톤을 하고 산에 오르면서는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매일 아침 7시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욕망과 욕심, 미련을 잘라내고 떠나보내는 일이다.
p. 034
나는 나이며, 나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내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나는 그냥 이런 내가 좋다.
p.036
"살아가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 어려울게 뭐 있겠어? 살아남는 게 어렵지. 그게 정말 어려운 거야."
p.096
너는 너의 것을 사랑하고,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각자 자기 자신으로서 잘 살아가는 것.
p.208
과거의 나는' 어차피 내려올 건데 산을 왜 굳이 올라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는 사실 운동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은 걷고 뛰는 것이 좋다. 걷고 뛰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사실 등산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018년도 성산일출봉 앞에 숙소를 잡고 제주도 여행을 했을 때만 해도 그렇다. 숙소에서 보이는 성산 일출봉의 뷰는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별로 오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성산일출봉 앞의 2박 3일 동안 성산 일출봉의 근처도 가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오르지 않았지 후회되기도 한다. 지금은 '등산'이라는 것이 유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변 친구들의 sns 피드를 보면 주말 동안 등산을 다녀왔다는 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등산이나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내 부모님들은 등산이 취미 시다. 집에는 등산 신발부터, 가방, 등산 복까지 장비들이 한가득 있다. 이렇게 가까이 등산러가 있었음에도 등산을 쉽게 선택하지 못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등산"이라는 것에 조금의 호감과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읽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책을 들고 집 앞 작은 돌길로 나갔다.
요즘 버킷리스트의 하나는 작은 산이라도 올해에 하나 정복해 보자는 것을 계획으로 세웠다. 그 산은 '계양산'이다. 등산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양산이 오르기 쉬운 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고소공포증도 심하고, 기초체력도 높지 않아 두렵기만 하다. 등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작년 겨울부터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미세먼지 타령, 날씨 타령, 기온 타령으로 산행을 미뤘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산을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조금씩 천천히라도 작은 뒷산, 동산을 올라보려고 한다. 산을 처음 오를 때면 나 자신의 호흡을 모르고 무작정 욕심으로 오를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자신의 템포에 맞추고 내자신과 대화하며 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저자 산뉘하이kit의 산을 오르며 쓴 마음의 일기들을 담은 것 같다. 산을 오르며 만난 나 자신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산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담았다.
그리고 산뉘하이kit의 인스타그램에 있는 산과 함께 찍은 사진을 책 속에서도 중간중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산을 오르며 생긴 일화들을 통해서 삶을 생각하는 산뉘하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시간이었다.
* 출판사'글담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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