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명에 대해서 낯설지 않거나 익숙하기는 하지만,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은 보통 사람이
읽을만한 책이 없을까 하고 고르다가 누군가의 서평을 읽어보고 선택을 하게 되었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대학교수이자 작가로 고대 그리스에 생생한 이미지를 입히고자 노력했다. 지식인 특유의 사변을 걷어내고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술하였다. 이책은 굉장히 재미있고 위트와 재치가 넘친다. 그래서 가독성이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 3권의 처음 나오는 '메데이아'는 오래전에 읽어 본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인지라 그때의 감상과 함께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사실, 출간된 지 이미 수 년이 지난 이 책을 이제서 왜, 찾아보는 것인가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보니, '아 그러고 보니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난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또 이 책을 찾아 읽었을까. 그리스사에 대해 무지한 나는 누구의 책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능력은 없다. 다만 과거에는 재미와 교양위주의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좀 더 정통적인(?) 책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전공자가 쓴 역사서인 이 책이 조금 더 끌렸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말랑말랑 재미있는 교양서적같은 책 제목에 비하면 조금은 딱딱할 수 있는 책이지만, 탄탄한 역사책을 만났다는 만족감은 있다. 그리스의 역사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듯하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 관련 서적도 다수 더 만나보고 싶다. 서구문명의 뿌리이니, 그리스를 알면 서구권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에드워드 카에 의하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과거의 사실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닌 현대의 렌즈를 거쳐 다시 투사할 때만 특정사실이 역사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인 이야기3권에서 등장하는 그림들이 이런 사실들을 잘 반영해 준다. 이전에는 단순한 사진들이었던 것이 역사가의 설명이라는 렌즈를 거치고 나니 흔히 지나가는 사진이 아닌 것이 되었다. 사진 속의 기원전 조각상은 얼마나 많은 풍파와 세월을 거쳐 왔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을 보고 왔을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도 그냥 지나가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야 한다는 내 삶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들도록 해 주었다.
그리스인 이야기의 특징은 1-3권까지 별개의 내용을 모아놓은 듯한 섹션들이 사실은 그리스의 탄생에서 종말에 이르는 시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사탕을 먹었는데 여러 가지 맛이 섞여 하나의 독특한 맛을 이루는 것처럼.... 이전의 그리스인들은 신=자연≒인간 이라는 도식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공포 그로인한 그리스경제의 파탄, 그리스인만을 최고의 가치로 취급하고 비그리스인들은 바르바로스라는 칭호로 부르며 노예로 취급한 사회적 분위기는 도시국가로써의 그리스에게 철퇴를 가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관념론에 바탕을 둔 이데아론을 주장하게 된다. 현재의 가짜세상에서 벗어나 진짜 영혼이 존재하는 세상(이데아)으로 가기 위해서는 금욕주의적인 삶을 통해 자신의 덕성을 바탕으로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은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플라톤은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해 불안한 현세에 대한 안정감과 위안을 줄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퍼진 그리스에 회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결국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도시국가에서 군주가 통치하는 근대국가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이전 그리스의 인간과 인간, 공동체와 인간의 관계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변천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전의 자연은 도전의 가치가 있고 정복이 가능한 존재인 동시에 위엄이 있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영적이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설립과 같이 하여 자연은 인간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영양분으로 인식하게 되며 자연자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게 된다. 즉, 신≠자연≠인간 의 관계가 된 것이다. 이것이 문학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노래하는 시와 극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말한다. 이런 변화들이 꺼져가는 촛불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다시 다른 촛불의 불을 밝히는 부싯돌의 역할을 하며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하게 만든다고.....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이 아닌 문학을 한꺼풀씩 벗겨나가면서 그리스의 내적변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글이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원전의 인용이 많아 아직 문학적 감각이 부족한 나로서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1-3권을 읽는 동안 그리스=신화라는 단순한 사고에서 그리스인의 마음에는 인간이 자리 잡고 있었구나 라는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머리에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에 대한 관심이 샘솟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