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가끔 어떤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온 동네 사람들 아니 표지처럼 온 우주 생명체들이 다 알았으면, 다 읽어봤으면!!!
사실 이 책은 알라딘 북펀드에서 봤던 책이었다. 이렇게 내 취향일줄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아니라 봤던 책에서 그치는 건 당연히 펀딩을 안 해서 그런거지만.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나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보다 제목처럼 '엔딩 보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CD게임 <하얀 마음 백구>부터 시작해서 <메이플 스토리>,<서든 어택>,<마비노기> 등등의 온라인 게임, 그리고 닌텐도까지 그 시대 유행했던 각종 게임들을 한 번씩은 깔짝대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어느 게임도 관심을 오래 주지 못했고, 그러니 당연히 엔딩은 커녕 저레벨에서 머물다 그치곤 했다.
게다가 게임에 관심이 있었어도 애초에 나는 '엔딩 못(안) 봐'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며칠 전에도 나와 비슷한 증세(?)를 가진 친구와 이 드라마 저 드라마, 서로 엔딩을 못 본 이야기를 나눴는데, 책이 아니고서야(책도 흥미가 떨어지면 엔딩을 보고 싶은 마음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 엔딩을 꼭 봐야겠어!'와 같은 강렬한 마음이 드는 때는 거의 없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잘 보다가 2회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졌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누가 진단을 내려줘요!)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 많이 걱정했다. 게임도 잘 몰라, 엔딩도 관심 없어, 이런 사람이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 때문에 책에 손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을 늦게 시작한 과거의 나를 탓할 뿐이다. 이렇게! 이렇게 재밌는 책을!!!
게임을 잘 몰라서 게임 관련 단어들이 나오는 족족 찾아봐야했지만, 그런 수고쯤이야 기꺼이 할만큼 매력적인 단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임을 즐거이 하는 사람이었다면 더 재밌었겠지만, 나 같이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이질감 없이 잘 섞여들 수 있게 하는 글에 그야말로 푹 빠져들어 읽었다. 오죽하면 지금도 게임에 정말 관심이 없는데, 이 책 속에 나온 게임이라면 당장 오늘이라도 현질하며 하고 싶어졌을만큼.
2_모든 단편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너무 내 취향이라 폭죽이 파바박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을만들어준 글은 단연「저예산프로젝트(김보영)」였다.
푸하핰,파하핳 하며 정말 현실 웃음을 터트리며 읽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저자의 유쾌한 글 솜씨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나도 모르게 마구 터져나왔다.
게다가 게임 속 주인공 무사 '홍운'도, 게임 시나리오 작가 '이세연'도, 그리고 '나'도 모두 여성인 여성 서사 작품이라는 거. '홍운'과 '이세연'은 초반부터 성별이 밝혀져 있었고, '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 괜찮겠다 싶었지만 내심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나'의 성별이 확실해지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런 여성 서사 너무 좋다 이거예요! 물론 여성임이 확실해지는 장면이 너무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윽 하고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건 금방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여성 서사,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에 늘 목말라 있었는데, 이런 사막의 오아시스! 가뭄 속 단비 같은 글이라니!
세 캐릭터 모두 좋았지만, 특히 더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이세연'이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게임을 정말 사랑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게임에 투영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지?','누가 날 써주냐' 하는 생각만 하던 내게 '이세연'이 자신의 일을 대하는 방식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멋졌다. 남들이 몰라도, 나는 아는 그것을 놓지 않는 사람. 내 직업관이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멋진 캐릭터들로 빠져나갈 틈이 단 1퍼센트도 없는 글로 인도했다. SF에서 현실을 찾는 것이 모순일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개연성이 있어서 더 좋았고, 마지막. 결말. 엔딩!까지 정말 완벽했다. 마지막 문장을 보고 "작가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터져나올 뻔 했을 정도로.
3_ 이 책을 읽기 전엔 '엔딩 보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이 내겐 진입장벽처럼 느껴졌지만, 이젠 제목이 책 속의 단편들 중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엔딩 보게 해주세요'라서 이 책이 더 좋아졌다. 각 단편들의 이야기가 '엔딩'이라는 하나의 주제로도 묶이는 느낌. 엔딩에 목매지 않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나도 하나하나 소중한 '엔딩'이 간절해졌다.
책 속 글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엔딩 보게 해주세요!"라고 외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 책은 세 종류의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첫째로 게임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무조건!
둘째, 게임은 좋아하지만 책은 즐기지 않는 분. 이 책이라면 분명 게임만큼 재밌으시리라!
마지막으로 게임은 즐기지 않지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 똑같은 게임 문외한인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 하나 빠져나갈 곳 없는 다섯 개의 단편으로 만든 펜타곤에 즐거운 마음으로 갇혀버렸으니, 분명 함께 유쾌하고 신박한 소설 속으로 빠져드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제 말은,
온 세상 사람들 다 이 책 읽어주시라구요!
사실 게임을 할 때 게임의 시나리오 라던지
NPC의 대사나 선택해야할 때 돌아가 본 적이 없다.
늘 1을 선택하는 사람이 나였다.
그래야 다음 화면, 다음 퀘스트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저예산 프로젝트」 에서 나오듯 가장 안 좋은 선택을 거듭해
길이가 짧을 것이 분명한 배드 엔딩을 하나하나 다 보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난 전형적인 개발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유저였어..!
게임소설이라 게임관련 된 지식들이 있어야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발자분들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이퍼리얼리즘이라 현역이면 읽기 힘들듯
다른사람얘기나 소설로 못 받아 들일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일에
마음을 다 바친다는 것에 지쳤고, 그게 다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 김보영, 「저예산 프로젝트」 50p
"아무튼 사람은 찾아봐. 세상은 넓고 마이너도 누군가에겐 메이저야."
-전삼혜, 「당신이 나의 히어로」 72p
우리가 임무 성공하려고 플레이를 하나요.
멋진 이야기를 보려고 하는 거지.
-김성일, 「성전사 마리드의 슬픔」 148p
더 살아보면 내일의 내가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어제의 나를 복선으로 만들 날이 올 수도 있고
그런거 아니겠는가.
-김인정, 「앱솔루트 퀘스트」 198p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경쟁해서 승리한 사람이 지배하고
패배한 사람은 지배받게 되겠지. 재산이 행복의 기준이 되고
공정함과 낭만은 사치일 뿐인 세상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행복은 서로 빼앗아 채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 김철곤, 「즉위식」 221p
내가 접하지 못한 분야는 늘 궁금하다.
당연히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접한, 앞으로 접할 모든 게임들은
누군가의 시간과 체력,
그리고 애정(애증)이 가득 담긴 게임이겠지
앞으로 게임을 하게 된다면
천천히 살펴보며 느린 플레이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