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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45년간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해온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 쓰기 노하우
낸시 슬로님 애러니 저/방진이 역
생각에 날개를 달자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읽고
새해가 오면 떠오르는 새 해를 향해 새들이 난다.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한 사람이 보인다. 마치 지난해 풀었던 방정식의 해를 한편에 놓아두고, 새롭게 마주한 문제에 맞는 해를 궁리하는 것처럼. 수사법을 즐겨 사용하는 그를 볼 때마다 종종 선지자의 뜻을 전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떠오른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그래서인지 그와 날개라는 낱말이 더 각별한 관계로 느껴진다. 그랬던 그가 이번 새해에 한 마리의 새처럼 우리 곁을 떠나 머나먼 세계로 영영 날아가버렸다.
그는 바로 故이어령 선생이다. 살아생전 그의 바람을 담아 쓴 시 「날게 하소서」와 시에 대한 해설로 쓰여진 서문과 함께, 특유의 발상(發想)을 엿볼 수 있는 '생각'에 관한 13편의 글을 모아 엮은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집어든다. 저자는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제각각인 낭떠러지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맞춤형 날개가 절실하다고 외친다. 독기 서린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그것을, 살기 지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그것을,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그것을, 남남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그것을 달라고 소원한다.
(······)
갈등과 무질서로 더 이상 이 사회가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 자리를 바꾸어가며 대열을 이끌어간다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
이어령作, 「날게 하소서」 중에서
새들마다 지닌 고유의 이미지를 가져와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각기 다른 날개를 그린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던 날개는 기러기의 그것이며, 그들의 날갯짓에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 중 하나인 연대를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구한 날개가 비상(非常) 사태 속에서 비상(悲傷)을 느끼고 있는 주인에게 잘 달라붙어 비상(飛翔)하는 데에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해줄 저자의 여러 생각들 중에서 인상적인 '생각' 몇 가지를 옮겨본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흔들어주지 않고는, 누가 밖에서 공이로 때려주지 않고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의 소리를 울릴 수 없다.(51쪽)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침묵중인 종 안에 수많은 소리가 담겨 있음을 저자는 발견한다. 소설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달지 못했던 헤밍웨이가 우연한 기회로 존 던이 쓴 기도서의 한 구절인 '누구를 위하여 좋은 울리나'를 만나게 된다.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 그리고 모든 배경의 풍경을 종소리로 울리게 한 것처럼, 그 역시 무엇인가가가 자신을 흔들어주고 때려줘서 생각의 종소리가 날 수 있길 바란다.
우리도 아이처럼 매일 자란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통했던 상식과 지식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변한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 지식도 영양분처럼 넘쳐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샘물은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 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54~55쪽)
쓸모없는 우물에 빠진 늙은 당나귀를 파묻기 위해 던져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56쪽)이 오히려 당나귀 자신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는 생각뒤집기, 즉 역발상의 힘을 배울 수 있다. 고정관념은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의 적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깊은 굴에서 광석을 캐는 광부의 마음으로 머리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각을 발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 생각에 날개를 달 수 있다면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생전 '떳다 떳다 비행기' 동요를 부르면서 종이 비행기를 통해 뜨는 것과 나는 것의 차이를 짚어주던 그의 생각을 이어붙여 보자면, 묻혀 있거나 가라앉아 있던 생각이 떠오르기만 해서는 안되며 스스로의 힘으로 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의 결실인 창조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신발에는 자신의 작은 발로는 결코 다 채울 수 없는 헐렁한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이야말로 땅의 현실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하늘의 공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07쪽)
생각은 창조의 근원으로 불린다. 두 낱말의 관계와 힘에 대해 항상 강조했던 저자답게 '신발'을 두고 이리저리 보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유리구두를 신고 궁전으로 간 신데델라와 외짝 신발을 신고 서천으로 향한 달마와 신발을 벗어놓고 바다 건너로 사라진 연오랑과 세오녀는 각자의 정체성으로 서로 다른 꿈을 꿨다고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신발의 모형으로 미키마우스의 그것을 소환한다.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을 신고 있는 그를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큰 신발에 자기 발을 넣어 보고 이리저리 걸으며 까르르 거리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 신발의 그 공백 속에 숨겨둔 미래의 꿈과 창조적 사고를 찾아낸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려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처럼 느껴지는) 비익조(比翼鳥)가 내 머릿속으로 날아온 듯하다. 암수의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의 새처럼,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날 수 있는 세상을 바라 마지않았던 이어령 선생이 쓴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에 담긴 그의 생각이 독자들의 생각과 연결되어 각양각색의 날개로 돋아나는 상상을 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 이어령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감성충만한 딸에 대한 사랑을 그린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 수필과는 다르게 이 책은 이어령의 서원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가진 생각을 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총 열 세개로 나누어진 think들은 크게 공감을 하거나 또는 저자의 생각은 반박을 하거나 하는 그런 나만의 토론 시간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think 둘에서는 종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여행을 하며 사진 대신 녹음을 하고자 녹음기까지 구해서 녹음을 했지만 돌아와 들으니 직접 들었던 그 소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이걸 나중에도 또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지만 돌아와서 확인해보면 그때 그 멋진 그 분위기 그대로 담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소리 역시 그럴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카르페디엠 즉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 시간에 감상하고 만족하고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think셋에서는 우물에 빠진 당나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묻힐뻔한 당나귀가 그 상황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살아난 것처럼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더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악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지금이다. 그것마저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로 이용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인에게는 무플이 악플보다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74p
think 여섯에서 저자는 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미키마우스에서부터 지금도 내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 마우스까지 정말 많은 쥐들이 우리 주위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지 않는가. 원래 쥐라는 동물을 페스트 균을 퍼뜨리던 해충이었다. 그 또한 생각의 전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워서 피하는 3D직업이 새로운 디지털과 디엔에이 그리고 디자인의 새로운 3D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생각의 전환이 이토록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think 열하나에서는 전통 물건을 이야기 하면서 한복을 이야기 한다. 서양에서 만드는 옷과 우리나라 한복의 차이를 예로 들면서 한복의 이로운 점을 사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치수를 딱 맞춰서 입는 옷들과 달리 품이 넉넉한 것이 한복의 장점이다. 조금 배가 불러도 조금 키가 커져도 언제나 그 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로움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우리의 것을 잘 보존하고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다른 이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기 전에 말이다.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빨갛고 파랗고 노란 바람개비 모양의 삼태극을 먹는 것이며, 삼태극을 먹는다는 것은 우주를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우주가 되고 우주는 내가 된다. 191p
저자의 한국 전통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think 열둘에서도 이어진다. 김치를 맛의 교향곡으로 비유하며 김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라던가 김치의 효능 또한 맛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딱히 저자가 그리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김치의 효능은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통해서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는 오늘도 우주를 먹고 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하나의책장】을 열어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책장에 몇 권이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적지 않은 권수를 보니, 그의 작품을 꽤 읽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때, YES24이었는지 알라딘이었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한 해의 키워드 중 하나가 '이어령'이었으니깐.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저자,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Ⅰ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
서구의 두 모험가가 에티오피아를 구석구석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었다. 금과 은을 구하기 위해 돌까지 조사했을 정도로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니 황제는 그런 그들에게 선물까지 내렸었다.
그렇게 그들이 에피오피아를 떠나기 위해 배에 타려고 하자 근위병들이 조심스레 그들의 구두를 벗기고 깨끗하게 닦아 황제의 말을 전했다.
그대들을 멀리 떨어진 강한 나라에서 왔다. 그대들은 에티오피아가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대들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 땅의 흙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는 그 흙에 씨앗을 심고 우리의 죽은 자들을 묻는다. …… 에티오피아의 흙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다. 우리는 그대들을 환대했으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흙을 단 한 알갱이도 줄 수 없다.
모험가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 알갱이의 흙에서 나오는 힘이 에티오피아인들을 지켜준 것이었는데, 흙의 감동과 아름다움때문에 3000년의 긴 역사를 읽고 서구인의 지배를 받았으니 말이다.
서양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 먹지도 않는 땅콩을 대지에 잔뜩 심었었지만 이는 토양에 맞지 않았고 결국 심었던 땅콩이 아프리카 땅을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결국 흙의 시대, 그 지혜와 생명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었다.
단순히 보이는 흙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었다.
모험가의 구두에는 나라를 구석구석 다니며 얻었던 보이는 흙이 아닌, 보이지 않는 흙의 정보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는 결국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는 흙의 지혜를 압도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지식을 검색해 습득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모두가 사전을 이용했었다.
모든 면에서 방대하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며 심지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까지 한다.
일론머스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위해 스타링크를 전격 지원하지 않았는가.
과거 아프간 전쟁도 모두가 10년은 걸릴 것이라 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끝났으니 디지털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비행사들에게 수직 폭격의 기술을 가르쳐 수평 폭격의 적중률을 높였었던 반면에 스마트탄은 날렵하고 지능을 가진 폭탄이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교량 하나를 파괴하려면 200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어야 했는데 레이저 유도 폭탄이 생겨나면서 12.5톤으로 줄었고 이후 이라크전에서는 4톤이면 충분히 폭발시킬 수 있었다.
GPS 유도탄처럼 위성으로 받은 위치 정보로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가격하여 적중률을 높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스마트탄이 마냥 스마트하지는 않다.
걸프전 때,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궁을 폭격한 일이 있었다.
물론 스마트탄은 완벽하게 투하되었지만 후세인은 죽지 않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때,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풍습이 있었는데 미군이 이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즉,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보기술은 뛰어났으나 문화에 대한 정보는 백지나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정보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도탄같이 기계를 다루는 하드웨어의 정보기술이며 또 하나는 상대방의 문화나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전자를 기계 기술, 후자를 지식 기술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정보기술은 부국과 강병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지식이나 문화를 목적으로 정보기술이 사용되는 경우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옮겨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교육,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이성과 감성적 능력이 빚어내는 창조적 산물과 연관되어 있으며 외교와 국방에서도 커맨드 파워 command power 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 cooperative power 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지 결정하는 기술인 스마트 파워를 강조하는 추세이다.
Ⅱ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
허허벌판에서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인 듯하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벽은 태양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강하며 오직 날카로운 설치류 쥐만이 구멍을 뚫을 수 있다.
벽은 바람을 막고 풍경을 도살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이 때 날카롭고 빨리 자라는 송곳니가 필요하다.
한밤의 어둠 속에서 갉고 갉은 색채와 선 그리고 회화의 구도가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탄생이다.
희랍의 전설에는 회화와 조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청년을 마음에 품은 소녀가 그와의 이별을 앞두고 상심하여 앓게 되자 소녀의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고 그 청년의 옆얼굴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따라 윤곽의 선을 그리고 색을 칠했다.
곧 청년과 꼭 닮은 릴리프, 즉 그림과 조각의 중간인 부조가 생겨났는데 딸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림자를 그림으로, 조각으로 옮긴 이야기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사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벽을 긁는 것,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리고 벽 너머로 사라질 연인에 대한 그리움.
긁는 것, 그림자, 그림, 그리움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따로 떨어져 불리던 그 말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합쳐지면서 떼어낸 달력의 벽면 윙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하나의 관자놀이처럼 뛴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벽은 무엇일까?
저자는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할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했다.
그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니 서구 문화는 즉 벽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무엇이든 간에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니깐.
성벽 안에 세워졌던 도시들로 이루어진 서양만 봐도 그렇다.
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성벽이라는 제한된 도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일찍이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도시가 커져도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두께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가 있는데, 그만큼 벽이 얇고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서양 집은 대개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벾을 쌓아 만든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 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Ⅲ 전통 물건에 담긴 한국인 생각
전통적인 물건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뜻이 담겨져 있다.
문풍지와 한복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밀함에서 문화의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적당히 문을 짜서 단 후에 틈이 생기면 문풍지로 막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반면에, 일본은 융통성보다는 정확성에 중점을 두어 문을 닫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들어맞도록 만들기에 문풍지라는 것이 없다.
바지, 버선 그리고 되질, 말질 등도 치수를 무시하곤 한다.
즉, 한국의 멋은 약간의 비규격이 있는 멋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의 양복 바지는 기능주의, 합리주의를 지향해서 허리춤에 꼭 맞도록 만들었었다.
반면, 한복 바지는 인체의 허리 부분은 밥 먹을 때와 굶었을 때가 다르고 건강할 때와 병을 앓고 있을 때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만들었기 보다는 풀어 입을 수도 있고 조여 입을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저자는 전통 물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로'융통성'이다.
치수가 잘못되면 사람이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는 주객전도의 양복 문화, 그것이 인간 소외 현상을 낳는 것이라면, 넉넉한 한국의 허리춤은 끝없이 인간을 감싸주는 융통성 있는 문화의 상징이다.
서양은 자아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어 그들의 문화는 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자아의 문화란 너와 나를 구별하는 방벽과 도시와 도시를 분리하는 성벽의 문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동양권 시인들은 두꺼운 벽이 아닌 병풍을 둘러치고 작업을 하였다.
병풍은 가볍고 신축성 있는 벽으로, 펴면 벽이 되고 접으면 한 공간이 된다.
병풍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아름답고 밝고 가동적인 벽이라고 할 수 있다.
병풍의 가동성과 신축성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기술의 원형이며 서구 문화와 동양 문화를 나누는 가장 상징적인 경계다.
즉,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이다.
(지금은 없지만) 어릴 적에 외가집에 가면 큰 병풍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저 보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일종의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벽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 또한 누군가의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때 봤던 병풍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다.
병풍이 다락방 옆에 있었기에 더 쭉 피면 조그마한 공간이 새로 만들어져 그 안에서 동생과 함께 놀기도 했다.
8살과 6살이 뭘 알겠냐마는 이미 그때 느꼈던 것이었다.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라는 것을.
☞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쓰셨던 작품 중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책결산을 살펴보니 『너 어디에서 왔니』였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작품들을 적지 않게 읽었었고 책장에 있는 그의 책들을 살펴보니 80년대에 출간된 책도 가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은 다름아닌 엄마의 책이었다. 20살이 되고서부턴 책을 더 읽었다는 엄마도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외가집에 가면 오래된 LP부터 핑글핑글 돌려서 거는 전화기 그리고 책이 다락방에 가득해 병풍을 친 뒤 다락방으로 올라가 동생과 함께 탐험 놀이를 했었다.
그러다 다락방에서 엄마 이름을 새겨놓은 책 한 권을 보게 되었고 오래된 책이 신기해 그 책을 들고 다락방에 내려왔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이어령 작가님의 책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집으로 데리고 왔으니, 그 책을 중학교 1학년 되는 시기에 읽었었다.
참 신기하다. 책 한 권으로도 나의 과거의 흔적들이 생각난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소재로 생각될 수 있는데 소재 하나로도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 생각이 이어진다.
국문학과도 가고 싶었던 학과 중 하나였는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비슷한 과목이 교양으로 나와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었다.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는데, 그 때 다시금 느꼈었다.
'역시 지성인이 맞구나. 지성인이구나!'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 책이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14년 전,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한 책으로 열 세가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메시지를 꼭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개해 보았다.
앞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표현하였었다.
틀에 박힌 생각은 결국 제자리 걸음하는 것과 다름없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
틀에서 걷히는 순간, 그 때 창의적 사고가 발휘되는 것이다.
에세이지만 사고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해 인문서와 다름없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책은 3월에 읽었는데 3개월만에 올리게 되었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이제야 재독하고 제대로 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고선 글쓰기 노트에 정리를 마친 후에야 글을 쓰는 것인데, 지금까지 쭉 해왔던 방법이지만 바꿔야 하나 생각중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새는 노트북 앞에 앉다가도 아프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니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아 더 느려지고 더 느려진다.
그럼에도 쭉 고수해 왔기에 쉽게 바뀌어지진 않는다.
이 글은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읽고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이어령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 그렇게 한 시대의 석학이 가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선생님의 책 ‘마지막 수업’을 주문했다. 그리고 서평단 모집에 공개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바로 신청,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 지성이라 지칭되는 이어령님의 서원시로 시작, 모두 13편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해석을 입혀 선생님의 생각을 전한다.
선생님은 누구나 마음 속에 생각의 보석을 지니고 사는데, 어떤 이의 보석은 잠들어 있어 밖으로 캐내지 못한 잠재력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래서 답답한 생각에 갇혀 있는, 자유로운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라는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제목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인상적인 글,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천의 빛깔로 빛나는 물고기(p.14)’ 이야기에서 “바닷가의 낡은 그물로 천마리 물고기 모형을 만 들어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진 물고기를 보며, 천 가지 색깔 물고기의 다채로움을 경이롭게 바라 보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색의 반란, 다양성의 가치를 생물의 ‘종의 다양성’에 담아 설치 예술로 전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진 부분이었다.
이를 사람 사는 우리 세상에도 적용하여 인류의 편견, 고정관념, 획일적 문명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 ‘아름다운 반란’을 꿈꾸는 선생님의 폭넓은 생각이 역시 큰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이어령님이 담고 싶으셨던 ‘다색다양’에서 창조적 상상력이 나온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또 “해마다 해가 바뀌어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싸움박질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쳐 주눅 든 가난한 자들에게는 용맹한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고, 풀이 죽은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 같이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p.27)
이 부분은 ‘다시 한번 날개 하소서’의 제목이 왜 도약을 꿈꾸는 듯한 제목으로 쓰였는지 이해하게 된 부분이다.
이 외에도 ‘사회 자본이 된 문화’에서 인간의 본능인 유희의 즐거움이 곧 기계의 기능, 효능과 소프트파워와의 조합을 이뤄 가장 중요한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좋았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전환이 디지털, DNA, 디자인으로의 탈바꿈으로 제조업에서 IT나 문화, 지식 산업으로 옮겨가야 함을 이야기하신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소리 내어 천천히 읽다 보면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전하고자 하셨는지가 느껴진다. 그리고는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통과 현대의 균형과 조화, 새로운 창의적 생각이 모여 21세기를 더 잘 살아가자’라는 도전적인 메시지가 전해진다.
지난 2월 故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난 다음 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사고가 틀 속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벽을 넘고, 360도 열린 초원에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가능성, 어두운 지하 갱으로 들어가 남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빛의 원석을 캐내는 연장.
그런 일을 돕기 위해서 제목도 처음에 '생각'이라고 달았다고 하신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라는 단어의 앞과 뒤에 여러 가지 말들을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으로 '사고의 자유'를 전하려고 만드신 책이라고 보면 될듯합니다.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적"
시를 읽는 듯한 에세이 같은 장르에 책이라 솔직히 넘어가는 건 사실입니다.읽고 나면 생각을 만들게 하는 건 후문이지요.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지금 외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싸움박질을 하는 정치인에게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쳐 주눅 든 가난한 자들에게는 용맹한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고,
풀이 죽은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 같이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주소.
---서문에서..
목차소개를 빼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think 하나에서 열셋
정말로 하나의 제목으로 여러 가지의 내용을 술술 풀어놓은 듯합니다.
흙과 디지털 세상에서는 흙의 감동과 아름다움 때문에 에티오피아인들은 3000년의 긴 역사를 잃고 서구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며, 또한 디지털 정보가 흙의 지혜를 압도하게 되고 사회자본이 된 문화라는 내용을 소개하게 됩니다.
잘못된 표기와 잘못된 번역이었는데도 뽀빠이와 시금치, 낙타는 성경 속에서 운다는 think 넷, 세 마리의 쥐의 변신 think 여섯에서 넘어가 think 일곱은 미키마우스의 신발로 시작해서 어릴 적 신발을 잃어버린 꿈에서부터, 발은 뿌리? 신은 신인가?의 관념과 하회 마을과 하회 마을을 방문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 풍습을 지켜준 여왕의 이야기, 인도의 신발을 신지 않는 것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 포기 같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로 길지 않게 선생님만의 생각으로 적어놓으셨다.
우리의 영원한 우상 이순신 장군과, 우리의 오래된 보자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전통 음식 김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정말 생각을 가두지 말라는 사고를 전환하라는 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p.56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p.103
달마의 신발
신발은 자신의 위이며 동시에 영혼이 담긴 뇌다. 나는 신발이고 신발은 나다. 신발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아이덴티티 identity의 상실을 의미한다.
p.188~191
김치의 메타언어
김치는 단순히 김치가 아니다. 한국 음식 맛의 특성인 한국인이 오랫동안 길러온 천지인의 조화, 삼재 사상이 낳은 조화의 맛이다.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빨갛고 파랗고 노란 바람개비 모양의 삼태극을 먹는 것이며, 삼태극을 먹는다는 것은 우주를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우주가 되고 우주는 내가 된다.
▶ 한국의 음식은 제각기 다른 색채와 모양, 그리고 맛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화성을 자아내는 '맛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p.169)
▶한국의 음식 맛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being'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 becoming'이다.(p.171)
▶ 김치에서 가장 주용한 재료는 배추도 고춧가루도 아닌,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물은 시들고 사그라지고 썩는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부패의 시간성을 역이용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 것이 발효식의 지혜다.(p.179)
색채는 물론 음식재료에 있어서도 들, 산, 바다에서 나는 것까지 모두 공간을 한데 섞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음식은 제각기 다른 색채와 모양, 그리고 맛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화성을 자아내는 '맛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정성도 정성이지만 맛을 느끼기 위해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음식에도 이런 정성과 시간, 지혜를 투자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 조절하고 배려하면서 동그라미가 되도록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절이고, 버무리고, 삭힌다.
<느낀점>
" 내 최종학력에는 대학원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학교에서 배운 게 별로 없어요. 역설적이게도 그게 참 다행이야."(P. 20)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을 내가 따라갈 수는 없지만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정말 선생님의 사고는 바람처럼 신선하게 불어주었습니다.
같은 책 다른 느낌이듯이, 김치 하나를 가지고도 여러가지의 글과 느낌을 표현하듯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구나, 그리고 그 만큰 나에게 성장하게 던지는 듯하다. 그리고 더 발전되는 안목을 갖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게 어떤 점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재 바쁘다고 저만 힘들다고 투덜대는 이 시점에..
저만의 편견, 고정관념, 그리고 내게 누적된 지식이 법인양 아집이 되어 "꼰대"로서 발휘할 수 있을 법한데... 딱, 그것을 피할 기회를 주신 걸지두요.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자극을 주었으며 저를 또 발전시키게 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는 좋은 글귀를 정리해서 필요할 때 하나씩 풀어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가시는 길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심에.. 대단한 분임을 또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