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와 말들이 쌓여야 삶이 단단해진다는 말에 깊은 공감과 함께 선택한 책.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일상 속에서
사회생활 속에서
부모와 가족관계에서도
대화가 오고 가지만 말 한마디에 서로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오해가 오해를 낳는 일상 속 말들. 나를 지키면서 관계도 단단해지는 언어들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내 기분에 딸 내 상황에 따라 말하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상대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게 내가 상처가 되기도 한다.
대화,
말,
생각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관계가 무너지기에 배우고 생각을 해야 한다.
p20.22
말은 두 가지 운명을 타고난다. 첫째, 말은 혼자가 아니다. 말 뒤에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상황, 그 상황에 놓인 내가 있다.
중략
그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고 위로도 주는 것이 말의 운명이다. 둘째, 말은 바뀌는 운명을 지녔다. 말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중략
말의 상처는 필연이며, 위로의 말은 선택이다.
p24.25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면서도 받게 되는 것이 '상처'이다.
중략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붙들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살게 하는 원동력으로 삼기도 한다. 반면에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평생 불행과 등을 맞대고 살아가기도 한다. 내면의 어둠을 대면하지 못한 채 그저 견디기만 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그 어두운 면이 다른 사람의 말에 자극받아 상처가 된다는 점이다.
p26.27
나는 나를 좌지우지하려는 타인의 말에 무척 취약하다. 남의 비난이나 칭찬에도 약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럴 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 나 이런 말에 힘들어하지.'
나의 어두운 면을 인지하는 것이다. 내 탓으로 돌리라는 게 아니다. 상대의 문제점과 잘못은 거기 그대로 두고, 잠깐 동안 나를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런 뒤에 상대를 대하면 화가 얼마쯤 가라앉고 조금 누그러진 말로 내 생각이나 감정을 전할 수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가시를 드러내면 그들의 좋은 면을 알아보는 감각이 무뎌진다. 결국 그 가사를 다 드러내고 살면 초라한 인간관계만 남을 것이다.
♣ 20대를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으로 잠시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에게 등을 돌리고 결국 내가 나쁜 사람으로 화살이 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첫아이를 낳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스스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른인 내가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 대신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고 차단을 했다. 인연을 끊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한마디 던진다. '언니야 그렇게 하면 언니 곁에 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내 곁에 사람이 없어도 되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비위를 맞춰가며 상처받을 필요가 없었기에.. 그리고 내 곁에는 아이가 있었고 남편이 있었기에.. 인생은 홀로이고 삶은 혼자 살아가는 거라는 걸 20대에 깨우쳤고 친구가 없다고 사람이 없다고 외롭지 않았다.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고 있었기에..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었음을..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가장 힘들어하는지〕, 또는 〔어떤 말이나 행동에 유난히 예민한지〕를 '스스로 아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덜어낼 수 있다.
♣ 무엇에 가장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내 대답은 이러했다.
상황이 어떻든 내 탓을 하는 말에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미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덤빈다. 결국 실패로 맞았거나 손해를 보게 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나에게 비난과 화살이 돌아온다. 결국 네 탓이라는 말에 발끈하고 화를 낸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유독 비난이 심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랬을 말이지만 그저 지켜보던지 위로를 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같지 않은 일은 빈번히 많다. 나 스스로 나를 비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에 유난히 예민한가?
비난과 실수투성이라는 말에 예민해진다.
나에게 등을 돌리는 건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자신이 잘못 없다고 상대가 잘못 있다고 비난하는 그런 행동에 유난히 예민하다. 소문이 결국 내 귀에 들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p29
우리는 왜 사주나 타로가 하는 말에 매달리는 것일까?
혹 '나'를 말하고, '나'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 나 대한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어른이 되면 될수록 나에 대한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설사, 듣는다면 부정적인 말들이었기에 타로나 사주로 나 자신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 역시 올해 들어 사주와 타로를 봤다.
운이 너무 좋단다. 향후 3년 동안은 운이 좋다는 소리에 누구든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좋다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고 나 혼자 스스로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나쁜 점들도 말해준다. 거기에 신경이 온통 쓰인다. 나쁜 것들은 조심하고 좋은 것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 사주와 타로에 매달리는 것보단 약간의 양념으로 활용하면 좋을듯하다. 나에 대한 말들을 들었으니 말이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면이 말하는 대로 움직여보자. 때로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면서 말이다.
p35
내가 말하고 상대가 듣고, 그것을 상대의 입으로 확인하고 다시 상대의 생각을 듣는 순환의 과정에 참여할 때 대화가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42
남을 너그럽게 감싸고 받아들이는 힘의 원천이 '과학 공부'였다니...,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더 많으니 사람의 마음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억울함을 느끼고 남을 탓하기도 한다.
p51
내가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내 말은 모두 그것들의 결과니까.
p53.54
법륜 스님은 "남의 지혜를 모은 것은 지식이지 지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통찰에서 나온 '나의 말'보다는 유명한 말, 검증된 말, 쓰인 말, 인정받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채 '주위들은 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말'을 잃은 채 살다 보면,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살게 된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기 말을 잃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말이 없는 사람은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자기 언어로 말하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자신의 경험과 그것에서 얻은 지혜로 말하기 때문에 진실하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믿고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존중할 줄 안다.
♣ 다양한 경험을 한 나는 경험과 노하우를 말해도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없었다. 어느 날, 귀하고 귀한 지혜를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일한 통로,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듣고 싶어하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나누고 또 나눌 생각이다. 비록 결과물이나 정답은 없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그리하여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을까?'
p58.59
말은 늘 성격이 급하다. 마음을 채 정하기도 전에 불쑥 입을 열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내 마음이 나의 말을 따라가지 못할 때 멈춰 서서 그 속도를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말이 너무 앞서가면 '만들어진 나'로 살기 십상이니까.
♣ 아직도 마음보단 말이 먼저 나오고 만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닌 내가 만들어놓은 나로 살아는 걸 알아차린다. 지금은 약간의 의식을 차리고 마음보다 말이 먼저 나올 때쯤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마음과 생각이 정리된다. 말은 저 멀리 도망가고 없다. 글을 쓰고 또 쓰다 보면 말보다는 생각이 앞서 서로를 이해하는 분계점에 도달한다. 나는 전화 통화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내가 억울한 점만 나열하기에) 차분히 글을 쓴다. 억울한 감정들을 조금씩 수정하고 난 뒤 접전선에서 글을 복사해 SNS로 보낸다. 말보다 한결 담백하고 간결해진다. 그 순간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어 글을 선택한다.
p70.71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살리에리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습관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부정하는 괴로움 속을 헤맬 것이다. 거기서 해방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작은 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중략
다른 사람의 행복과 성공을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당사자의 노력과 열정을 깎아 내리고 있다면 거기서부터 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괴로워하고 있는지.
♣들어야 다 봐야 한다. 나도 모르게 뭔가를 일군 사람들을 보면 축하한다는 메시지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속내는 내가 초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내 나를 닦달하고 비난하기 일쑤다. 그는 그 일에 속도와 열정을 쏟아냈고 나는 내 상황에 벌어진 일들을 처리하느라 그 일에 열정과 속도를 못 냈을 뿐인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인정 못한 나를 바라보며 위로한다. '수고했어요. 그동안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했고 너와 아이가 포근한 집에서 살고 있잖아! 너는 큰일을 해냈어요! 그들 못지않게 열심히 산 너를 응원하고 멋져요. 이제부터는 네가 원하는 삶을 그리며 살수 있도록 모든 일들이 세팅되었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나를 위로하고 나를 인정하는 순간 그들에게 위로와 칭찬을 할 수 있었다.
p81~83
위기 대처 능력은 순발력의 다른 말이다. 나의 상처 나 굴욕이 다른 사람에 의해 자극받을 때, 그때가 나에겐 위기 상황이다.
화를 내기에는 애매한데 상처받는 말을 들었다면 '순간 침묵'으로 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상책이다.
누구처럼 눈치 못 채고 계속 말한다면 '두 번째 침묵'에 돌입하라. 대답만 안 하면 된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면 나를 대신해 응징해 줄지도 모른다.
단호하게, 우아하게, 유머러스하게 말할 순발력이 없다면 '웃지 말고 침묵하기'. 상대의 말에 내가 대신 마침표를 찍어주고 잠시 기다려보는 것이다.
p94.95
어떤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고 그로 인해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올 때, 힘들더라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말에 위로받지 못한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기 안의 어떤 것이 자극받을 때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를 내거나 남을 공격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건 이성이 작동할 새도 없이 시간의 저편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내면 아이일 가능성이 크다.
♣ 상대이든 나이 든 위로 받지 못한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는 걸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스스로 나를 알아가기가 벅찰 때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뭔가에 자극을 받을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해 화를 내거나 남을 공격하는 말을 할 때 나를 들여다보자. 습관이 안된다면 수없이 이 문구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적어야겠다. 최근 며칠 전에도 그 아이가 웅크리고 울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부당하다고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냐고 말했다.
p100.101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그 정도의 말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p109.110
상대의 입장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인간관계가 휠씬 가벼워진다. 거기서 덜 나아가도 더 나아가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입장을 살피지 못하면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아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상대의 입장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다 보면 내 입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거나 타인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게다가 마음에도 없는 이해와 공감은 질이 낮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말고 '있음'만 인식할 것.
상대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p123.124
법상 스님은 "칭찬과 비난은 한 뿌리다. 칭찬에 휘둘리지 않아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첨하고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으면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다.
말보다 마음이 좋고 단단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p132.133
친구와 싸우고도 그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부모나 친척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자신감,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에 몰두하는 집중력, 잘 웃고 잘 우는 솔직함을 우리도 갖고 있었다.
어른이 될수록 그런 용기가 '바보 같음'으로, 내가 잘하는 것이 '잘난 척'으로, 솔직한 감정이 '주책없음'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졌다.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보다 자꾸만 앞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앞에서 잘 버터 주어야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어떤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지속적으로 못살게 구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p161
진짜 나를 찾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못하는 것을 잘 못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 말을 하면 희한하게 자존감이 올라간다. 적어도 아는 척할 때만큼 벌어지지는 않는다.
p164.165
하차하고 승차하기를 반복할 수 있는 힘, 하차한 뒤에 다시 승차할 기회를 기다리는 힘, 승차했어도 언제든지 하차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에 가까이 가는 힘이었다. 그래서 그녀만의 '멋짐'이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열차에 타고 있다. 그런데 하차가 두려워 거기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으면 계속 같은 풍경만 보게 된다.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
어떤 일을 하다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가 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경험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김숙처럼 가볍게 말하는 거다.
"저 이만 하차할게요."
p169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방법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p174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좋아하는 감정과 그것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그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고백하면서 "내 열정의 주인은 나예요"라고 말한 남자 주인공이 멋있어 보인 것이다.
p182
적어도 나를 바라보는 나는 남들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나이니까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평가하지 말고, 선택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 하지 말고,
p188
말은 하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듣는 사람이 주인이라, 제아무리 상대방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써도 그것이 약이 될지 칼이 될지는 듣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p191
상대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친밀하게 밀착할수록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균열만 생긴다.
♣ 상대방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내가 사라졌다. 그 후로 거리를 두고 상대에게 말을 했다. 상대는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상대가 나를 비난할지라도 내가 먼저 그 균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상대는 자꾸만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달라고 하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내가 우선이니까...
p198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울퉁불퉁해진 상태라면 자신을 검열하는 필터를 조금 느슨히 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표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서, 디오게네스처럼 말이다.
♣ 검열의 필터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하루 종일 통화는 아까운 나의 시간을 뺏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데 상대 입맛에 맞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 내 마음의 균열과 울퉁불퉁해지려고 할 때 알아차렸다. 연락은 필요할 때 하자고.. 그러나 쉽사리 내 감정을 상대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알았을 것이다. 내가 불편해하고 있다는걸.
p202.203
사람 사이에 선은 필요하다. 다만, 그 선은 '여기까지 넘어오지 마'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너의 자유와 고유성을 존중한다'라는 선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 속에서 'AII or Nothing'이 자주 당신을 괴롭힐 것이며, 잦은 절교로 이어져 깊이 있는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p230
침묵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타인의 침묵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은 지는 오래전이다. 아직 마음의 갈피가 정리되지 않아 쉽사리 서평에 마음을 두지 못한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감정에 자신만의 언어로 씩씩하게 걸어가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왜?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고 나를 힘들게 한 건지... 요약한 서평의 글들을 읽으면서 한 번 더 정리했다.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나 자신의 말을 더 신뢰하며 내가 한 말에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될지 모르니 감정을 앞세우는 말을 잠시 참아보는 것도 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는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른 일에 몰두한다.
대화가 아닌 글을 썼어 보내고 난 후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한다.
그래야 서로의 격한 감정이나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잘못과 상대의 말에 서운한 점들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그러나 말로써 서로를 아프게 만들지 말자. 지성인답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런 나날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 돈 내산 책은 역시나 달콤하다.
서평 책도 좋지만 내 돈 내산 책은 오래 읽고 오랫동안 서평이 늦어도 부담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내가 쓰고 싶은 부분을 왕창 쓰고 거기에 더해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더 알찬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