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내공 : 사람을 끌어당기는 동서양 고전의 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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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내공 : 사람을 끌어당기는 동서양 고전의 화술

사람을 끌어당기는 동서양 고전의 화술

리뷰 총점 9.0 (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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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철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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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형편없는 지성으로 지성을 노하시고 계시네요 평점2점 | t*******4 | 2019.04.07 리뷰제목
박사모에 대해 착하기만하고 지성이 없어 악을 초래 했다고요!자기 생각과 반대에 있다고 주저없이 폄허할 수 있다면지성과 지혜를 말하시면 안되겠지요자하의 말씀을 공곰히 생가해 보시기 바랍니다작가분께서 가지고 오신 말씀 입니다과연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치밀한 질문 바랍니다그분들의 신념이 작가님가과 촛불은 들은 사람과 확연히틀리다고 그들이 선을 의미하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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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에 대해 착하기만하고 지성이 없어 악을 초래 했다고요!
자기 생각과 반대에 있다고 주저없이 폄허할 수 있다면
지성과 지혜를 말하시면 안되겠지요
자하의 말씀을 공곰히 생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가분께서 가지고 오신 말씀 입니다
과연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치밀한 질문 바랍니다
그분들의 신념이 작가님가과 촛불은 들은 사람과 확연히틀리다고 그들이 선을 의미하는것도 아닙니다
당위성과 바람직해야 하는것이 있다고 그것이 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계속 선의 상태로 지속되는 것도 아니겠지요
지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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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말의 내공. 평점10점 | z***k | 2018.12.24 리뷰제목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나는 그 사람들에게 내 고민도 조금 더 털어놓게 되는 것 같고, 진지한 대화도 다른 이들보다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음을 느꼈다.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저 말이 많고 화술이 좋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그들은 자신의 성찰에 능숙하고 성숙해 있으며,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더불어 상황 판단이 빠르고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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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내 고민도 조금 더 털어놓게 되는 것 같고, 진지한 대화도 다른 이들보다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음을 느꼈다.

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저 말이 많고 화술이 좋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성찰에 능숙하고 성숙해 있으며,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상황 판단이 빠르고 모든 경우에도 막힘없이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런 능력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일까?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만큼의 성숙을 위해서 큰 노력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우리도 말을 잘하기 위해서 아주 쉬운 방법으로는 서적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많은 서점에 이미 '말을 잘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여러 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 많고, 결국 뭐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는 결말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 <말의 내공>에서는 여러 인문학, 동서양 고전과 성현들의 말의 지혜를 통하여 말을 깊이 탐구하고 내공을 깊게 실현하기 위하여 구성되어있다.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많은 이들이 심심치 않게 인문학 수업을 신청하곤 한다.

아마 인문학을 공부하다보면 개인의 언어생활도 절로 성숙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이에 인문학도 배운만큼 나에게 스며들어 나의 화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 <말의 내공>도 그런 기대감으로 펼쳐보았던 기억이 난다.



타인이 느끼는 나는 '말의 내공'이 느껴지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남의 말에 귀기울이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그 잣대가 흔들릴 때가 종종있다.

그리고 사람인지라 나의 의견을 주장할 때가 많고 듣는 태도에 소홀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말은 곧 그 사람과도 직결된다. 첫인상이 좋지 않더라도 첫인사를 통해 그 인상이 반전을 보일 때가 있다.

나 역시 비교적 차가운 인상으로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대화를 하며 첫인상의 잔상에서 많이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첫인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긴 시간을 두고 오래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말의 내공이 필요할 것이다.

<말의 내공> 책에는 여러 성현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가끔 나의 대화법에 흔들림이 있을 때 다시금 꺼내어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말의 힘이 크다고 느끼는 요즘, 지금의 나를 더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말의 힘을 키우기 위해 나를 좀 더 면밀히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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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말의 내공 - 신도현 평점10점 | n***n | 2018.12.12 리뷰제목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패러다음일 바꾼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꿔야 다른 세상에서 살수 있다. 사람의 성숙함 정도를 보통 그릇의 크기에 비유한다. 말 공부는 이 그릇을 키우는 수양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양의 핵심은 자존감을 기르고 감정을 경영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갖춰야 나를 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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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패러다음일 바꾼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꿔야 다른 세상에서 살수 있다. 사람의 성숙함 정도를 보통 그릇의 크기에 비유한다. 말 공부는 이 그릇을 키우는 수양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양의 핵심은 자존감을 기르고 감정을 경영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갖춰야 나를 감추지도 과시하지도 않는 건강한 언어생활이 가능하다.  

그릇이 모나면 담긴 물도 모난다. 순자

그릇은 그대로 둔 채 거기 담긴 물의 형태만 바꾸려는 노력은 헛되다. 말도 그렇다. 말 그릇을 바꿔야 말이 바뀐다. 말을 다듬으려거든 우선 그릇을 다듬어라. 깊은 말을 하고 싶다면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믿음직한 말을 하고 싶다면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이 아닌 나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주입된 모든 규정과 규범을 벗어던진 후의 나는 진정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진짜 꿈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혜능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당신의 참얼굴인가?"

노자가 말한, 세상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규정과 규범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이 아닌, 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만들어 간다. 반면 자신을 바쳐서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의 규범에 종속돼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즉,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과 가치를 만들어 가지만, 자신을 세상에 바치는 사람은 지금 이대로의 세상의 모습과 규범에 충실할 따름이다. 

세상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나'가 귀한 것처럼 '너' 또한 귀한 걸 안다. 개인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모름지기 세상은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맡거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며, 나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너의 가치도 알수 없다. 

어떤 것이든지 관찰해야 알아차릴 수 있다. 나와 상대방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가만 한다면 우리는 그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일찍 알아 차리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순간의 감정이 모든 분위기가 어려워지고 배려의 단어가 사라진다. 이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감정과 잡념을 없애야 한다. 명상이 최고라 하는이가 많다. 

관점대로 즉, 보는 대로 세상은 존재한다. 세상 자체는 객관적인데, 우리가 주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주관에 따라 나의 세상이 달라지고 나의 세상이 달라질때, 정말 객관적인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양을 통해 언어생활의 기본인 나를 닦았다면, 다음은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 

공자의 제자 자하는 새 관점을 창조하려면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햇다. 네가지 방법을 제안하였는데, 널리 배움, 뜻을 깊이 새김, 간절히 물음, 곁에서부터 생각함이다. 
널리 배움은 기존 지식 체계를 확장하는 것이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관점을 넓힐 수 있다. 뜻을 깊이 새김은 새로운 관점을 꿈꾸고 사유할때 유무형의 외적 압박을 겪는다.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눈총을 받을 수 있고,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관점을 구축하려면 견뎌 내야 한다. 
간절히 물음은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뜻이다. 물이 가득 찬 그긋에 물을 더 붓기는 어렵다. 더 부으려면 그릇을 더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덜어 내는 방법을 의심해야 한다. 당연시 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 마침표를 지우고 그 자리에 물음표를 새기는 것이 물음, 질문이다. 늘 질문을 해야 한다. 
곁에서부터 생각함은 세상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나와 내 주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일상을 먼저 새롭게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가 바뀌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관점의 변화와 내외적인 물음 그리고 나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모름지기 한 번 때렸으면 한 줄기 흔적이 남아야 하고, 한 번 쳤으면 한 움큼 피가 묻어나야 한다. 글을 읽을 때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어찌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주희 

선비들이 치열하게 독서했던 이유는 독서를 단지 지식을 쌓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의미를 더 깨닫게 하는 관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먹고 사는 삶이란 의미가 없다고 보았으며 이세상에 무언가 의미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길을 바로 독서로 찾고자 한 것 같다. 책을 열심히 읽은 결과는 암기나 독서를 통해 이루어야 할 결과는 삶의 변화다. 
독서할 때 집중해야 할 대상은 글이 아닌 나 자신이다.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여 읽어야 한다. 또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선별해 읽어야 한다. 이것이 지성을 기르는 자세다.  

창의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기존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존과 완전한 단절만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의성이란 그러한 방식으로 탄생하지않는다. 단절보다는 현재에서 한 걸음 나아갔거나 내파한곳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천재라도 기존의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새로움은 단절이 아니다. 하늘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나를 찾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찾아 기존의 것을 버랴야 한다. 그것도 완전히말이다. 

그의 마음을 얻으려거든 우선 펼치게 하고, 그에게서 빼앗으려거든 우선 주도록 하라. 이것은 은밀한 지혜라 하니,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법이다. - 노자

노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당위가 아니라 전략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펼치게 해야 한다. 상대가 충분히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관심을 기울이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한다. 속마음을 내게 드러낸다는 것은, 곧 내가 그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듣기가 말하기를 이기며, 화자가 아닌 청자가 마음을 얻는다. 말을 잘해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은 강함의 기법이요, 잘 듣는 것으로 상대ㅡ이 마음을 여는 것은 부드러움의 기법이다. 강함끼리 경쟁하는 세계에서 부드러움을 택하는 것이야 말로 '틈새'공략이다. 노자의 표현으로는 "은밀한 지혜"다. 

마음을 두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을 둔다는 것. 이는 상대의 말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 진정한 경청이 될 수없다. 들으면서 그 다음 내가 할 말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시늉일 뿐이다. 이 때 나는 겉말만 들을 분 속뜻은 읽을 수 없으며, 종종 그 겉말조차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는 것은 가는 대로,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맡긴다. 응하되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경청은 마음으로 진정 공감해야하는 노력은 반드시 해야 된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나의고유한 사고방식과 관점을 버려야 하는데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세상에서 나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이 논리 가운데 진실로 내가 취할 만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거은 모두 나를 갈고 닦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하며 수양하고 성찰하게 하여 한층 더 덕을 발전시키는 기반이 된다. 옛말에 "나의 단점을 공격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스승이다"고 했는데 스승이라면 또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 왕수인

누군가 나를 험담하고 다닌다는 말을 전해들었을 때 마치 예정된 순서마냥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서서이 인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 그 상황 그자체를 이해하고 그냥 흘러가게 놔주어야 한다. 이때문에 기분상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마음에 요동이 칠뿐.....

말잘하기에도 정공법이 있다. 생각한 후 말하기, 과하게 말하지 않기, 배려하면서 말하기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이를 지키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원칙을 어기는 세상에서는 원칙만 잘 지켜도 기본 이상은 간다. 원칙에 따라 나의 언어생활을 돌아봐야 한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드러운 말씨가 최선이다. 화를 낼때는 당연히 강조의 어조로 말할 필요도 있다. 말하려는 내용은 명확하게 하되 이를 담는 표현과말투는 여연해야 한다. 말투가 너무 날카롭거나 건조하면 듣기 좋을 리 없다.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그러면 더 최악이다. 당사자는 상대방을 위해 쓴소리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상대방은 끔찍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쓴소리는 상대방이 원할 때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반감만 일으킨다. 

상대방이 먼저 요청하지 않는 한 충고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낫다. 충고 목적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데 있다면 어쩔 수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제해야 ㅎ나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굳이 내가 억지로 재확인시켜 줄 필요는 없다. 조언을 요청받아 하게 될 때도 그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럽게 해야 한다. 삼월 봄바람이 겨우내 쌓인 눈을 녹이듯이 부드럽고 찬찬히 말이다.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애써 겸손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겸손할 수 밖에 없기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알면 자연 말씨도 겨몬해진다. 명령보다는 청유가, 비판보다는 조언이, 연설보다는 경청이 더 겸손한 언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려면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이 중요하다. 무지한 말은 대체로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말 습관을 익히면, 말을 하다 문득 막히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대 내가 지금 잘 모르면서 너무 자신 있게 말하고 있구나며 반성하게 된다. 

비록 타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어떤 조건과 배경에서 그 의견을 냈는지 헤아려 보면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미워하거나 그와 충돌하는 일도 없게 된다. 더 부드럽고 열린 토론이 가능해지기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먼저 고찰을 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여과 없이 뱉은 말은 나를 해치고 타인도 해친다. 말에는 근거도 있어야 한다. 고찰은 사실에 근거해야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말에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말의 내용과 형식은 하나가 아니다. 진정성과 가치를 담고도 표현이 서툰 사람이 있고, 말은 유려해도 정작 그 안의 비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내용과 형식을 하나로 생각한다. 말이 예의바르면 마음 역시 공손하리라 생각하고, 말이 서투르면 그 내용이 또한 빈약하리라 넘겨 짚는 것이다. 노자는 예라고 대답하는 것과 응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토록 다른 것이냐고, 말의 형식과 예절에 집착할 수록 상처를 잘 주고, 상처도 잘 받는다. 

나의 말에는 예절과 형식을 갖추자. 그러면 사람들이 내 말에 더 귀 기울여 줄것이다. 반면, 타인의 말을 들을 때는 예절과 형식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지. 그러면 나의 말의 겉치레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타인의 말로 인해 상처입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스스로에게 또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필요없는 예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씩 변화를 주어야 겠다. 

상식을 전복할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타인의 비상식적인 말을 유연하게 판단하고 수용할 수 있는 내면은 갖추어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나와 다른 사람을 정의해버린다. 숭산의 말처럼 자신이 한국인이라 규정하면 한국인이요, 여성이라 규정하면 여성이다. 그러나 이런 껍질들을 벗고 또 벗으면 나에게는 '사람' 혹은 '나'란 한마디만 남는다. 

삼천근을 거뜬히 드는 사람이 깃털을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요 힘을 쓰지 않아서이듯이, 자신이 다른 것에 신경쓰면서 다른 중요한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그럴 마음이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 이다. 지금이라도 쓰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확장한다면 충분히 좋은 인격을 갖출 수 있다. 

나의 말하기가 자신을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다면 나의 마음을 가꾸어야 하고, 진심을 담은 것인데도 냉정한 말하기를 구하하고 있었다면 말투를 가다듬어야 한다. 앞으로 내가 진심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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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교양인문학] 말 공부는 나로부터 타인과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 - 말의 내공 평점9점 | d******7 | 2018.12.23 리뷰제목
말 공부는 나로부터타인과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  말 한마디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삶이 참여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화술에 능란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여 이해하고 상황까지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데 성숙한 상태를 말하며,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말공부'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말을 잘하는 이는 자기관리도 잘할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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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공부는 나로부터

타인과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



  말 한마디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삶이 참여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화술에 능란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여 이해하고 상황까지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데 성숙한 상태를 말하며,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말공부'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말을 잘하는 이는 자기관리도 잘할뿐더러 주변인들에게도 고루 마음을 쓰는이였던 것 같다.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닌 '대화'를 한다는 건 상대방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언어란 필연적으로 그 언어가 속한 사회의 지배적 관점을 담는다.  예를 들어 "남녀노소"란 네 글자에는 여성보다는 남성을, 어린이보다는 노인을 우위로 보는 시각이 내포돼 있다. ...(중략)... 한편 관점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도 있다.  알튀세르도 언급했듯이 관점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관점이 새로워지면 사람 역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공부에 관점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운 말이 나온다. /p41~42


  말의 근본을 바꾸려면?  자신을 수양하며 차곡차곡 필요한 것을 쌓아간다.  <말의 내공> 에선 이러한 과정을 여덟 단계로 정리했는데 도입부마다 개괄하는 글을 간략히 설명하고 동서양 고전이나 성현들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말하기에 관한 책들도 꽤 많이 출간되어있다.  '말하기'에도 공부가 필요한 건 왜일까?  화술의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기본적인 바탕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 않다.  당장의 화술보다 기존의 언어생활 근본을 바꾸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말의 내공> 은 말하기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이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한 번 때렸으면 한 줄기 흔적이 남아야 하고, 한 번 쳤으면 한 움큼 피가 묻어나야 한다.  글을 읽을 때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어찌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주희   

  옛 선비들은 위 인용문처럼 치열하게 글을 읽었다.  주희는 독서를 결투에 비유할 정도였다.  생사의 결투라면 나의 공격은 마땅히 치명타가 되어야 한다.  글 읽기도 이와 같다.  글을 읽었다면 분명 남은 바가 있어야 한다.  한 줄을 읽었다면 나의 삶도 그만큼 바꿔야 한다.  글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읽지 않은 것과 진배없다.  ...(중략)... 나의 삶을 바꾸는 독서.  여기서 주의할 점은 치열함이 책을 집중해서 열심히 읽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읽은 결과는 암기이나, 독서를 통해 이루어야 할 결과는 삶의 변화다. /p63~64

 

  '이 책을 읽고 나면 말하기를 조리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말하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수양, 관점, 지성, 창의성, 경청, 질문, 화법, 자유 총 8개의 장으로 진행하면서 말하기에 필요한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읽다 보면 메모해두고 싶고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이 꽤 있어서 몇 번이고 읽기도 했던 <말의 내공> 말이란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나를 알아가는 총체적인 과정이며 그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 '말 공부'.   마지막 장의 실전에선 말의 내공을 보여준 성인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어 책을 읽으며 조금씩 실행해 볼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을 지키는 한편으로 말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 말이 삶을 해치기도 해서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해 그런 말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종합하자면, 우리는 지켜야 할 말과 버려야 할 말을 구분해야 한다.  지킬 말은 지키고 버릴 말은 버리자.  말을 지켜 말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말을 버림으로써 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이 말에 대한 인문학의 태도다.  말 공부란 말을 위한 것이 아니요, 결국 말 너머의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p159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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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말의 내공 : 힘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를 위하여 평점8점 | YES마니아 : 골드 v*******4 | 2018.12.26 리뷰제목
간결하게. 빠르게. 요점만.요즘 'TMI'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Too Much Information' 이라는 말인데, 핵심이 없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과잉 제공하는 경우를 비꼬는 단어다. 유사한 뜻으로 투머치토커라는 단어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마음은 없다. 그저 통신기술과 매체 등의 발달로 변화하는 생활양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리뷰제목


간결하게. 빠르게. 요점만.

요즘 'TMI'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Too Much Information' 이라는 말인데, 핵심이 없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과잉 제공하는 경우를 비꼬는 단어다. 유사한 뜻으로 투머치토커라는 단어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마음은 없다. 그저 통신기술과 매체 등의 발달로 변화하는 생활양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여길 뿐. 확실히 스토리와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근래의 의사소통의 유형들은 요점과 결과만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굉장히 간결해졌다. 또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과정보다는 결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감도 있고. 그러다보니 내용보다는 소통 자체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고 (보통은 주고 받는 빈도에 따라 의사소통의 밀도나 컨텐츠의 전달력이 올라가다보니) 그렇게 '속도'가 의사소통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은 느낌이랄까. 카톡에 '1'이 사라졌는데도 답이 없으면 초조해지고 무시받은 느낌이 들어 화가나는 것도 아마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

 

 

사실 이러한 흐름은 나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의 표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좋아만 할 뿐 잘하지 못한다는 것... 특히나 요즘처럼 간결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 되면서, 시대흐름과는 동떨어진 구닥다리 글쓰기와 말하기를 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이를테면 어떤 주제로 블로그포스팅을 한다고 해보자. 글을 쓰다보면 애초에 생각 정리를 해놓은 주요문장들에 너무 많은 살들이 붙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걸 다시 양적인 다이어트를 해주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하는데, 퇴고를 거듭할 수록  계속해서 생각이 확장이 되면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문장들의 무질서한 나열들이 남게된다. 어떤 생각을 전달하려면 주요생각을 위해 움츠려드는 주장들도 있어야하는데, 작은 양보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중구난방의 장황한 글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퇴고를 포기하고 비공개 상태로 끝내 올리지 못한 리뷰와 포스팅만해도 한 트럭이 넘는 것 같다. 정리도 힘들고, 마무리까지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능력부족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글은 그래도 시간을 두고 고쳐쓸 수 있다는 점에서 양반인 편이다. 대화에서의 말하기는 너무 심각한 수준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의 특성을 머릿 속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하면서 바뀌고 확장하는 머리의 속도를 말로 변환해내는 능력과 속도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고 마는 것이다. 혹여나 대화 상대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한 대상이거나, 상황이 자제력이 떨어지는 술자리라면 최악이다. 대화 도중에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하고 자각을 할 정도로.


내가 겪고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문제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았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단 하나, 바로 '내공부족'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故정주영 회장의 일화였던가? 사업계획서나 각종 보고서를 A4용지 한장 분량으로 요약해서 가져오라고 지시를 했다는 기업총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예로 대학에서 방대한 내용을 짧게 요약한 레포트를 제출하기를 요구하는 교수님들의 이야기들도 여러차례 들었다. 두 사례 모두 공통적 '분량을 줄이는 데 필요한 능력'에 대한 힌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긴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는 것은내용의 경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반대로 요약이 안된다는 뜻은 곧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서류를 작성한 사람이 본인의 생각(표현)에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량의 측면만이 아니라 속도 또한 그러하다. 유명한 작가들 중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러한 기계적인 일이 가능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고, 구조에 대해서도 평소에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즉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시간 외에는 본인의 내공을 더욱 축적하고 정리하는 것에 늘 정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아는 것도 부족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았다는 것.

 

 

말의 내공을 읽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말의 내공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시중에 넘쳐나는 프레젠테이션법이나 화술을 가르쳐주는 실용서들과는 다르게, 제목 만으로도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책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게 참 인상적이었는데, 어차피 내공을 쌓는 일이라는 게 긴 글을 읽는다고해서 바로 만들어질 수는 없을테니 어떤 태도와 양식에 대한 지도방향을 전달하기에는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것이 요즘 추세와도 맞겠다 싶었다. 역시나 목차를 살펴보니 수양 / 관점 / 지성 / 창의성 등을 통해 자신의 그릇의 크기와 모양을 늘리는 법을 설명하고, 그 바탕에서 더욱 효과적인 말하기를 할 수 있도록 경청 / 질문 / 화법 / 자유 등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각 파트별로 관련된 동서양의 고전이나 명언을 인용하고 있어서 이해도 쉬울 듯하여 책을 읽기로 했다.


종종 촌철살인의 힘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인물들 혹은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가 느껴져 무언가 전혀 다른 울림을 일으키게 하는 이들을 보면서, 말과 문장이 단순히 의미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말 이면의 표현되지 않은 함축된 의미들이 그들의 인생과 사상을 통해 이미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 말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표현법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말의 내공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며스스로의 말 그릇을 키워야한다는 내용으로 책의 시작을 알린다. 구체적으로 말의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바로 세울 것을 권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도량을 넓히고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터리 화가에 대한 분노가 나의 가슴속에서 다툰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마치 토지의 정지작업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어지는 내용들은 기둥과 집의 형태에 해당하는 일들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관점'을 만들어 나갈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지성'을 통해 그 깊이를 만들어내야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책과 경험을 통해 관계를 공부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지성을 넓히는 길'이라는바가바드기타의 글귀가 인상 깊었다. 또 히틀러와 나치를 용인했던 당대의 독일을 비판했던 위의 시처럼, 불편하고 어려운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스로를 확장시켜나가는 훌륭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창의성'에 관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것이 아니라 접목과 개선, 변형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길 권하기도 한다.

 

 

내부의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명상과 알아차림이라면,

그런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용적 말하기다.

중용적 말하기란, 내뱉기 혹은 인내로 일관하는 말 습관을 버리고,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말의 내공> P.142

앞선 부분들이 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화자'의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면, 후술 되는 부분은 말을 더욱 돋보이고 유용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 대부분이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특히 '침묵과 경청'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공감의 가치를 너무 크게 산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입장에 너무나도 몰입하는 나머지, 감정의 여과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을 해보게 된다. 여기에 대화 중 정적이 흐르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향도 중구난방의 말하기를 만드는게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글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제'를 하는 동안 생각을 가다듬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테니, 이래저래 내게 필요한 건 '선을 지키는 말하기와 글쓰기' 였던 셈이다.

 

 

촌철살인, 힘 있는 한 마디를 꿈꾸며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어떤 한 문장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문장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몇몇 순간들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결혼을 앞두고 몽골로 여행을 떠났던  2014년의 여름. 다른 짐이 많아서, 가져간 책은 김연수 작가의청춘의 문장들과 여행관련 가이드북이 전부. 그마저도 거의 볼 일이 없다가 마침내 쳉헤르 온천 지역에 일찍 도착한 하루, 노천온천을 마치고 노곤함과 함께 게르 침대에 누워 드디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청춘의 문장들에 대해서 기억나는 부분은 딱 하나 뿐이다. 그만큼 인상깊은 한 마디였고, 또 그 뒤의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문장이기도 하다. 김윤아씨의 '봄날은 간다' 노래와 봄날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이야기하며, '그 모든 것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이 적힌 부분이 있다.


그 모든 것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과거에 얽매이는 경향이 많은 사람이었다. 추억이라는 명목으로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많았다. 현재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과거를 미화하는데 쓰다보니,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그때의 현재로 또 다시 아쉬움만을 남기는 시간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찰나에 그 문장을 보게 된 셈이다. 흩날리는 벗꽃에 대한 아름다움과 그만큼의 쓸쓸함. 나는 그 문장에서 말하는 것이 '나의 현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순간순간의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태도 외에도 가치관을 결정하는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의 '후회 최소화의 법칙'이었다. 유튜브와 서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 것은 나의 삶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바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늘 욕심이 많은 나에게 아쉬움은 어쩔 수 뒤따르는 부산물이었고, 그게 정도가 심해지면서 행동을 멈추는 두려움으로 자리잡혔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를 듣고, 후회를 최소화하는 기준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미래에서부터 실현가능한 현실의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짜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의 글도, 제프 베조스의 말도 그들의 의도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수용자로서 나의 상황에 맞춰서 그들의 말과 글이 시기 적절하게 다가와 준 덕분이지만, 일단 그들의 표현들이 형식을 넘어선 힘과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글의 원천인 '말의 내공'을 나 역시 꾸준하게 연마해볼 작정이다. 언젠가 나도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이에게 그런 진정성 있고 멋진 말 한마디 건낼 수 있는 때를 꿈꾸며 말이다.



 

책 속의 한 줄, 한 문장 (발췌하며 읽기)

- 말 한마디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삶이 참여한다. 화자의 삶에 따라 말의 의미와 표현이 결정되고, 그것들은 또다시청자의 삶을 고려해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 없이 말은 탄생할 수 없다

- 그래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화술이 능수능란한 상태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 성숙해져 있고,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여 이해하며, 어떤 상황을 읽는 안목까지 갖춘 총체적인 상태를 이른다 그리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말공부다

- 세상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가 귀한 것처럼 '' 또한 귀한 걸 안다. 개인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 세상에 나를 바치려는 사람은 자신도 세상을 위해 희생하니 당신도 그러해야 한다고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노자는 모름지기 세상은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말이 번잡하고, 마음에 주관이 없는 사람의 말은 공허하다. - 성대중

- 관점은 (중략) 사회의 묵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중략) 그러나 관점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관점이 새로워지면 사람 역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말 공부에 관점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관점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운 말이 나온다

-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지성이 길러질 수 없다. 나의 해석을 거쳐야 지식은 지성이 되고 지혜가 된다. 이 지점에서 해설과 해석이 구분된다. 해설은 주어진 말을 알맞게 풀이하는 것인 반면, 해석은 말을 하는 화자와 그 말의 배경까지 꿰뚫어 보는 것이다. 단정하자면 해설은 객체로서 하는 것이요, 해석은 주체로서 하는 것이다. 세상의 지식을 익히고 이를 기반으로 나의 말에 힘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해석하는 훈련은 필수다

-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름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 카를 마르크스 

- 말씀의 세계에서 내쫓기는 것은 비참하지만, 그것에 감금당하는 것은 더 비참하다. - 버지니아 울프 

-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랑'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 정의한다. 연인 간이라 하지 않고 '남녀 간'이라 한정함으로써 동성애를 배제한다. 이것은 성소수자가 말씀의 세계에서 내쫓긴 예다

- 역사를 보면 지배계급은 언어를 소유했고, 피지배계급은 대체로 문맹이었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의 문맹률은 매우 낮지만, 여전히 지배자는 언어를 지배하고 피지배자는 언어에 지배당한다. 지배자는 언어를 창안하고 규정하나, 피지배자는 지배자가 만든 언어를 사용한다. (중략) 이런 악순환을 역전시키는 것은 역시 해석이다. 해석이란 말씀의 감옥을 부수는 약자의 무기다

- 나의 입장을 정한다는 것은 보이는 대로 믿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주어진 대로 사고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쪽만 고집하지 않고 반대 측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등 다양한 주장을 섭렵한 후 나의 입장을 도출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 창의성이란 (중략) 단절보다는, 현재에서 한 걸음 나아갔거나 내파한 곳에서 비롯된다

- 침묵이 경청의 전부는 아니다. 경청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듣는 차분함과 여유, 집중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알맞게 마음을 드러내 반응해야 하며, 상대의 의도와 속뜻을 읽는 해석의 기술과 안목 역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마음을 둔다는 것. 이는 상대의 말에 온 정성을 기울임을 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 흔히 우리 사회를 '질문 없는 사회'라고 한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질문이 없다기보다는 질문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회다. (중략) 윗사람은 묻고 아랫사람은 답하는 구조다

- 우리의 지향점은 질문다운 질문이 풍요로운 사회다. 질문이 많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중략) 질문이란 곧 변화의 씨앗이고 소통을 현존시키기 때문이다

- 문제의식은 변화의 첫머리다. 당연시하는 것에 숱하게 질문을 던진 덕분에 세상은 지금껏 발전해 왔다. 서양 학문의 시조를 탈레스로 보는데 실상 그가 남긴 업적은 보잘 것 없다. (중략) 그럼에도 철학사에서 그런 지위를 갖게 된 것은 그가 최초로 질문을 던진 이였기 때문이다. 비록 답은 미흡했지만 그 질문 적분에 질문이 이어져 철학이 탄생했고, 과학도 탄생했다

- 모든 학문은 둘 중 하나만 잘해도 의의를 갖는다. 좋은 질문을 던지거나 좋은 답을 찾는 것이다

- 전쟁에서는 정공법으로 싸우고, 변칙으로 이긴다. - 손자 

- 내부의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명상과 알아차림이라면, 그런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용적 말하기다. 중용적 말하기란, 내뱉기 혹은 인내로 일관하는 말 습관을 버리고,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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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으로서의 말의 내공을 수양하는 일이.

나를 수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더 깊이있고, 더 넓고, 더 위트있는 이를 꿈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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