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들의 삶이란..
인생 뭐 있습니까?
...좀 듣기싫은 말 중의 하나다.
무책임한 것처럼들리는, 삶의 무게를너무 가볍게 보는듯한 이 말이 좀 귀에 거슬린다.
그러나... 이 말처럼 많은 군상들의 삶이 다 거기서 거기고 누구하나 별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선 이 말처럼 딱 맞는 말이 어디 있으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강의 삶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거짓과 위선과 이기심과 배신도 있고, 음모도 있고, 그리고 진실도 있다.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자의 땀도 있고, 사랑도 있다.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일말의 사건을 둘러싼 이 책의 줄거리는 인간, 삶의 모든것이 응축된 한 장의 그림처럼 다가선다.
어느시대던... 인간은 그렇게 살고있다고...
11월의 어느 길에서, 누군가는 도망을 치고, 누군가는 쫓기고, 또 누군가는 쫓고 있는 일주일 간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길을 달렸고, 이들 모두 길 위에서 혼자가 아니였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였다.
시대적 배경이 케네디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라는 것이 일단 매우 흥미로웠고, 그 암살단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 솔직히.. 공감을 전혀 할 수 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뭐랄까..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쩔 수 없이 다시 맞닥뜨리게될 수 밖에 없는데.. 쫓는 쪽은 꼬리만 자르면 된다는 식으로 계속해서 꼬리를 자르고 또 꼬리를 자르고.. 이야기 속에서 도마뱀이 나온 것이 단지 '그냥'인 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멈췄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바로 추격자가 서 있을 것 같은,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바로네의 추격이 그 이유다. 참 선호하지 않는 캐릭터인데.. 이 캐릭터로 소설이 더 쫄깃하게 읽힌다. 씁.
길 위에서의 일주일. 누군가는 도망을 치고, 누군가는 쫓기고, 또 누군가는 쫓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희망을 꿈꾸고, 누군가는 우정을 나눴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11월에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냥 좀 차가울 뿐.
읽는 내내 기드리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체 이 사람은.. 뭔가..?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또 어떻게보면 아닌 것 같고 그런데 또 어떻게보면 진짜 나쁜 놈이고.. 기드리를 보고 있으면,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뭐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하지만 연민을 느끼게 한다.
p.278
"뭣 좀 물어볼게요. 아저씨도 오줌 싸야 되지 않아요? 같이 가요."
아이가 말했다.
"나도 하나 물어볼게."
"뭐요?"
"잊어버렸어."
바로네는 아이를 따라 건천으로 내려갔다. 원래는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벨트를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그는 아이가 마음에 들었고, 벨트는 너무 오래 걸리기도 했다. 게다가 바로네는 아직 힘을 쓸 자신이 없었다. 오른쪽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데다 열 때문에 몸이 약해진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폴리스 포지티브로 아이의 뒷머리를 쏜 다음 어깨 사이를 두 번 더 쏘았다.
바로네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어차피 죽일 거 통증도 못 느끼게 죽여주겠다..라는 것이라면.. 그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될까? ㅡㅡ^
p.293
일요일 아침. 아침식사는 메이플시럽을 뿌린 팬케이크였다. 그리고 리조트를 한 바퀴 돌며 산책했다. 조앤은 인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을 발견했다. 눈을 깜빡, 깜빡. 그러더니 이내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체커 게임, 강아지와 놀이, 그리고 또 미니 골프, 기드리는 마침내 골프를 제대로 할 줄 알게 되었다. 로즈메리와 조앤은 그가 퍼팅할 때마다 응원해주었다. 이것도 익숙해지겠어. 그는 생각했다. 정확히 무엇에 익숙해진다는 거야? 그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좋은 느낌이 드는 익숙해짐이여서 기드리는 뭔지도 모르지만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좀 씁쓸하다.
3160. 루 버니 『노벰버 로드』 : 네버모어 ??[10/10]
마피아 카를로스 마르첼로 패밀리의 주축인 프랭크 기드리는 적어도 뉴올리언스에서만큼은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중년의 남자다. 화려한 밤의 네온사인을 가로지르는 차량 보조석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있다. 기드리는 매일 밤 원하는 여자를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1963년 11월 22일의 상쾌한 아침을 맞은 기드리는 언론가를 장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미국을 넘어 세계를 흔든 대통령 암살 사건은 마치 허술한 각본 속에 놀아나듯 바로 범인이 체포되고 곳곳에서 암살 증거물들이 쏟아진다. 기드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최근 자신의 종적을 돌이키며 존 F. 케네디 암살의 무대로 발걸음을 향한다. 얼마 전 맡은 작은 일 하나가 대통령 암살 사건의 일부임을 알게 된 기드리는 자신이 제거 대상자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서둘러 뉴올리언스를 떠나지만, 마르첼로 패밀리의 암살자 바로네는 기드리가 향하는 곳을 정확히 예측하며 간격을 좁혀온다.
사진작가의 꿈을 뒤로하고 둘리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샬럿의 삶은 무료하다. 오클라호마 변두리의 삶은 그녀의 꿈을 앗아간 대신 반복된 일상과 주 몇 십 시간의 노동, 그리고 무능력한 알코올 중독자 둘리와의 삶을 선사했다. 오클라호마의 풍경은 샬롯의 삶 이상으로 무료하다. 샬럿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두 딸의 삶은 오클라호마 풍경을 닮지 않기 바랐다. 남편 둘리가 어김없이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샬럿은 어린 두 딸과 간질 증상이 있는 개를 데리고 집을 떠난다. 수중에 있는 몇 백 달러와 낡은 차 한 대가 그녀의 전부였지만 오래전 연락이 끊긴 이모를 찾아 희망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발걸음엔 두려움보다 설렘이 크게 자리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중 차량에 문제가 생기며 샬럿은 새로운 삶을 앞에 두고 좌절하기에 이른다.
같은 시간 도로변 낡은 모텔에서 반파된 차량 앞에 울상 지은 샬럿을 만난 기드리는 암살자 바로네의 추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묘책을 떠올리며 샬럿 일행과 동행을 결정한다. 서로 다른 이유와,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기드리와 샬럿은 로스앤젤레스라는 같은 미래를 꿈꾸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존 F. 케네디의 암살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1963년 11월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록한 루 버니의 『노벰버 로드』는 과거로부터 탈출에서 만난 그들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다.
대비는 언제나 더 큰 효과를 불러온다. 세계적인 암살 사건의 중심에서 도망친 중년 남성과 알코올 중독자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여성의 미묘한 사랑은 암살자 바로네의 추격이라는 서스펜스 위에서 절묘하게 조화된다. 긴장과 낭만의 반복이 만들어낸 중년 남성의 성장은 평생 호의라고는 베풀어보지 않은 그의 희생으로 막을 내린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사라진 자리엔 오직 진실만이 남는다.
세계적인 뉴트로 열풍은 문학계에도 단단히 침투했다. 『노벰버 로드』의 시대인 1960년대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기 이전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루 버니가 불러일으킨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시대 배경에서 멈추지 않고 섬세한 인물 묘사를 통해 한층 빛을 발한다. 또한 단순히 범죄물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과는 차원이 다른 서스펜스에서 코엔 형제의 명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슷한 종류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단지 빠른 템포가 주는 영역을 벗어나 속도를 늦추고 폭력을 가외 배치함으로 오히려 더 큰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루 버니는 서스펜스를 위한 장치를 최소화하는 대신 완벽한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범죄 소설로 시작된 루 버니의 『노벰버 로드』는 암살자와 도망자의 추격에서 기드리와 샬럿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성장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소설에 거대한 변곡점을 둔 것인데, 작가로서는 굉장히 위험한 도전이었을 수 있고 독자에겐 신의 한 수가 된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서스펜스 위에 올린 사랑과 성장은 서사의 변곡점을 통해 장르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단번에 뒤집음으로써 루 버니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전작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에 이어 주요 범죄문학상을 휩쓴 『노벰버 로드』는 산해진미로 가득한 소문난 잔칫집이다. 이제 숟가락을 손에 쥘 시간이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다.
뉴올리언스 마피아 보스 카를로스의 심복인 프랭크 기드리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자신이 맡았던 작은 심부름이 그 거대한 암살 음모의 일부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건 관련 인물들이 차례차례 제거되자 살아남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도망치던 기드리는
두 딸과 함께 무책임한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게서 도망쳐 LA로 향하던 샬럿과 마주친다.
기드리는 조직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단란한 가족으로의 위장이 필요했고
차 고장으로 곤경에 처한 샬럿은 하루 빨리 LA에 도착하기 위해 기드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조직 최고의 암살자 폴 바로네가 무자비한 살인극을 벌이며 기드리를 바짝 추격해오는 가운데
우연과 운명 덕분에 함께 하게 된 여정의 끝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2019년에 읽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루 버니의 작품입니다.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은 오클라호마시티를 무대로
26년 전에 벌어진 의문의 사건의 진실을 쫓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였는데
각각 참혹한 기억과 깊은 상심을 지닌 주인공들이 집요하게 진실 찾기에 나선 이야기라
무척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노벰버 로드’는 1963년 11월을 배경으로 한 로드 스릴러입니다.
목숨을 걸고, 또는 인생을 걸고 도망치면서도 애정, 온기, 추억들을 쌓아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을 쫓는 피도 눈물도 없는 추격자라는 설정 때문에
읽는 내내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몸담았던 조직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살아남기 위해 과거와 단절하려는 기드리에게도,
꿈도 희망도 없는 소도시와 무책임한 남편이 지배하던 과거와 단절하려는 샬롯에게도
이 무모한 여정 끝에 딱히 믿고 의지할 사람이나 ‘약속의 땅’ 같은 게 있는 건 아닙니다.
막연한 기대와 바람만 갖고 각각 라스베이거스와 LA로 달려가긴 해도
그곳에는 비참한 죽음 또는 냉랭한 문전박대가 기다릴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노벰버 로드’를 달리는 것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지우고 싶은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함께 보낸 1주일의 시간은 어쩌면 그들에겐 평생 가장한 행복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뉴올리언스의 환락과 폭력 속에서 살아온 기드리가 누군가를 간절히 지키고 싶어진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뛰쳐나온 샬롯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온기를 느끼며 희망을 가진 것도
이전의 과거 속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잘 알면서도
기드리와 샬롯이 달콤한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를 바란 건 아마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한 스릴러 중 기억나는 건 스티븐 킹의 ‘11/22/63’인데
시간여행을 동원한 기발한 발상은 놀라웠어도 이야기 자체는 다소 밋밋했던 반면,
‘노벰버 로드’는 팩트에 기반한 픽션이지만 좀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설정을 지녔습니다.
대통령 암살을 도모한 마피아가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연루된 측근들을 제거한다는 구상은
케네디 암살을 소재로 활용한 그 어떤 작품들보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꿈과 희망을 위해 무모한 ‘가출’을 감행한 샬롯과 그녀의 딸들이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액션 로드 스릴러를 넘어 휴먼드라마의 향기까지 풍기고 있습니다.
뉴올리언스 마피아 중간보스 기드리의 캐릭터 때문인지
작가가 문장에 멋도 많이 부리고 기교도 많이 부린 느낌이었는데
영화 ‘대부’를 보듯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다소 어렵게 읽힐 때도 있었습니다.
뭐랄까, 과도한 생략과 멋부림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할 책읽기를 살짝 방해한 느낌이랄까요
또, 기드리와 샬롯이 감정을 쌓아가는 시퀀스가 생각보다 좀 길게 묘사된 점이라든가
그들을 추격하는 암살자의 행보가 예상보다 처져 보인 점 등이 아쉬웠는데,
이런 점들 때문에 별 하나를 빼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당초 초고가 “전작의 성공을 의식한 듯 너무나 대중적인 공식을 따르는 스릴러”가 된 탓에
작가가 기본 설정만 남겨두고 1년에 걸쳐 거의 새로 썼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봤는데,
그 초고가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제 취향에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봤습니다.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나 ‘노벰버 로드’ 모두 2%가 조금 넘는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앞으로도 루 버니의 신작 소식에는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용기는 그녀의 강점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은 항복이었다.
미치광이 통제광들에게 둘러싸인 여자들만 주구장창 등장하던 영미 스릴러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매끈하게 빠진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감상적인 결말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여자의 성장까지 요즘 성공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마저도 튀지않게 잘 조화시켰다. 특히 오랜만에 재치있는 대화들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영화화를 염두해 두었겠지만, 굳이 영화화가 필요없을 정도로 책을 보면서 자연스레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