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서 : 슌킨 이야기
저 자: 다니자키 준이치로
출판사: 문예출판사
문예출판사 에디터스 컬렉션 시리즈 중 [슌킨 이야기]를 만났다. 일본 하면 추리소설을 자주 읽었기에 오늘 만난 도서는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이어 읽은 <슌킨 이야기>는 6편의 단편으로 된 도서다. 작가에 대한 평가는 탐미주의, 여성에 대한 묘사가 문득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곤 했었고 한편으론 난해하다고 할까? 즉, 좀 더 깊게 읽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작품 해설에서 먼저 작가를 알아야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후기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묘한' 느낌이라는 단어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던 책인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자인 다니자키의 삶은 어땠는가? 아내를 양도한다는 사건을 일으켰다는 데 순간 아내를 양도한다라고? 내막을 읽어보니 처제에게 끌려 아내를 사모하던 남자에게 아내를 양도한다는 사건이었고, 이혼 후에도 두 번이나 결혼을 그리고 어느 모임에서 재회하기도 했었는 데 하여튼, 이런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그이 삶이 작품에 드러나기도 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단편인 <문신>은 문신을 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로 그의 실력은 탁월했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고통 소리에 희열(?)을 느끼는 인물이다. 하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문신을 해왔기에 유일한 소망은 자신이 원하는 인체를 발견 그 위에 문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던 여성을 보게 되었고 그녀의 등에 문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나 두 사람의 묘사가 참 몽환적이랄까? 앞으로 게이샤가 될 소녀에게 문신을 해 줌으로써 앞으로 그녀가 앞으로 게이샤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임을 암시한다. 이어 게이샤들과 같이 술 마시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호칸>, 어린 시절 부잣집 친구의 집에서 학대와 같은 놀이(?)를 보여주는 <소년> , 여장을 즐기는 한 남성이 우연히 다시 만난 이름 모를 여인과 몇 일을 같이 보냈던 <비밀>, 죽은 부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한 탐정이 등장한 <길 위에서> 등 그리고 눈 먼 두 사람에 관한 내용인 <슌킨 이야기>. 이 이야기의 공통점은 전혀 없다. 그렇다보니 읽을 때 마다 무슨 내용인가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잠자코 고객를 끄덕이고는 옷을 벗었다. 때마침 아침 해가 문신을 비춰 여자의 등은 찬란하게 빛났다.
-본문 중-
추리소설 같은 <길 위에서>는 저자의 상황이 비춰진 것이라 하는 데 내용은 이러하다. 몇 년 전 아내가 질병으로 사망한 남자에게 의문의 남성이 다가온다. 탐정이라면서 그에 관한 누군가가 확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는 거다. 도대체 왜? 어떤 내용인지 예상하지 못하고 탐정은 남자를 붙잡고 죽은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질병과 경미한 교통사고, 호전되면 다시 질병으로 약해지는 게 일상이었던 아내. 하지만, 결국 사망했는 데 이 점에 의문을 품은 친부의 요청으로 전 남편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문장은 추리로 이랬을 거다 라면서 흘러가지만 독자는 이미 확신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소년>은 에로틱하면서 섬뜩함을 던져주는 데 소년들은 모여서 사냥꾼, 노예 놀이 등을 하면서 상대방을 괴롭힌다. 싫다고 할 수 있음에도 같이 놀이를 한다는 건 왠지 인간 안에 숨겨진 본능을 끄집어 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마지막 <슌킨 이야기>는 귀족 집안 딸이지만 눈이 멀어 기예를 배우게 되었는 데 게이샤가 되려는 수련생들 보다 뛰어났다. 어릴 적 눈이 멀었기에 늘 사스케라는 남종이 길잡이를 했었는 데 훗날 두 사람 사이에게 아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설에선 두 사람의 애정을 결코 볼 수 없다. 오히려 기예를 가르치는 슌킨의 괴팍한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나중에 사스케도 기예를 그녀에게 배우게 되면서 꾸중을 너무 들어 우는 일이 허다함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그녀 곁을 마지막까지 지켰으며, 사스케 역시 눈이 멀었을 때....기록은 그가 스스로 바늘로 눈을 찔렀음을 보여준다. 사랑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슌킨 사망 후 노년이 된 사스케는 어느 여인도 쳐다보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랑이라 해야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무엇이다 할 수 없어 독서 모임을 하다보면 뭔가 더 알지 않을까 했다. 이를 보면, 어려운 문장 없이 흘러가지만 인간의 심리를 치부와 같이 드러내면서 보여주는 게 어색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도서였다.
낯선 문체, 주제의 작품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의 대표 단편선 <슌킨 이야기(春琴抄/しゅんきんしょう)>. 쉽게 접해보지 못한 '일본 탐미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작가의 책이다. 탐미주의, 에로티시즘, 페티시즘 등으로 설명되는 작가 다니자키.
'아, 이것이 실로 스승님이 사는 세계로구나. 이제 마침내 스승님과 같은 세계에 살게 되었구나!'
<슌킨 이야기>에서 흉한 모습이 되어버린 스승이자 연인인 슌킨의 명에 따라 그녀의 얼굴을 보지않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찌른 제자 사스케의 진심어린 독백이다. 이제야 말로 외계의 눈을 잃은 대신 내계의 눈이 열린 것을 깨달았다는 남자의 시선이 슌킨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주를 이룬다.
사스케는 슌킨이 실명한 나이, 아홉살에 그녀를 처음 만난다. 슌킨보다 네 살이 많은 사스케는 일생을 그녀를 극진히 봉양하며 존경을 다한다.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三味線, しゃみせん)을 매개로 둘은 모두가 아는 비밀-부부의 연과 같은 둘의 사이-를 철저히 외면하며 일방적인 종속관계로 생을 이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외의 번뇌를 끊고 추를 미로 승화시킨 선(禪)적 행위는 가히 달인의 경지에 가깝도다.' 사스케의 행동을 두고 내뱉은 고승의 말에 다니자키는 "독자라면 이를 이해하겠느냐?"고 물음을 던진다. 굳이 그러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책은 이상하리만큼 '여성의 미'에 집착한다.
'슌킨 이야기'는 '문신', '호칸', '소년', '비밀', '길 위에서', '갈대 베는 남자'와 함께 책 7편의 이야기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다. 후카가와의 한 요정 앞에서 가마 아래로 떨어지는 소녀의 발을 잊지 못하는 문신사가 마침내 꿈을 이루는 '문신'이나 자신의 신분과 남자라는 품위마저 잊은 채 오로지 여성의 웃음을 위해 사는 남자에 대한 '호칸' 등 일본소설 <슌킨 이야기>의 모든 단편에는 사건보다 남자와 여자가 중심이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여자 없이는 시도 예술도 없다"는 다니자키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주제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 단편선인 <슌킨 이야기>는 아름다움의 화신인 여성을 숭배하는 남성의 모습이 줄곧 등장한다.
또 <슌킨 이야기>에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사회상, 당시 직업 등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에도 거리를 머리에 떠올리며 호칸(연회에서 손님의 시중을 들며 만담 등을 해 좌중을 흥겹게 하는 직업)이나 차보즈(무사 집안에서 내객 급사와 접대 담당) 등을 그려보는 일도 흥미롭다.
'소설보다 소설적'이라는 다니자키의 일생은 책 뒷부분에 간략히 소개된다. 그의 삶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고, 작품의 내용이 다시 실제 삶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설명이다.다니자키의 다른 작품역시 호기심을 불러오는 이유다.(*)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문예출판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은 지극히 일본적이다. 단편의 구석구석 일본문화가 들어있고 역사와 지리, 문화에 대한 묘사 역시 잘 표현되어 있으며 그 시대 작품 속 배경에 대한 일본 고유의 묘사가 잘 드러나 있었다. 총 7편의 단편 중 『소년』은 '하기와라'라는 10살의 소년이 같은 반의 '하나와 신이치'라는 금수저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계층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류층에 대한 하기와라의 동경을 잘 드러내 주어 흥미롭게 읽었다.
오늘부터 그 멋진 아이와 친구가 된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소년 51page
특히 사물에 대한 묘사력, 부자 친구 하기와라가 입은 정장의 오돌도돌한 촉감이 햇빛을 받아 은모래처럼 반짝인다거나 엉덩이가 곤약처럼 떨린다는 표현은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섬세함이 드러나 보였다. 『문신』 이라는 작품은 여성의 몸에 대한 아름다움이 거의 찬양급으로 드러나 있어 그가 작품에서 여성의 신체를 일생동안 쫓았다는 남성적인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어 보였다. 그 시대 일반적이지 않고 반사회적이라는 편견이 강한 문신을 소재로 하여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감각을 총동원하였고 신체를 통해 시대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며 독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독자가 작품을 통해 현실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니자키의 작품은 시대를 비껴간듯한 일반적 서민들의 삶보다 개성있고 특이한 일본 고유의 미를 배경으로 하는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문신』에 나오는 젊은 문신사가 소녀의 등에 그림을 그려넣으며 희열을 느끼는 모습은 개인의 성적 욕구를 가장 아름답게 예술로 승화시킨 일본 최고의 탐미주의 작가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을 왜 슌킨이야기로 정했는지 7편의 단편 중 가장 읽는이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아름답고 뛰어난 샤미센 연주가인 슌킨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다. 보지 못하면 마음도 정화되어 착해야 하거늘 슌킨은 제멋대로이고 하인 사스케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표독스러우며 도도하기까지 하다. 이런 슌킨을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는 하인 사스케가 슌킨에게 샤미센을 배우면서 스승과 제자 더 나아가 연인처럼 희생하는 모습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워낙 작가의 삶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라 어쩌면 사스케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행위는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투영된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구절구절 묘사가 아름다웠던 탐미주의 대가의 작품이 향후 읽어나가야 할 과제처럼 단편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와 닿았다.
일본 소설은 단편 위주로 읽게된다. 김영식 작가의 번역을 통해 일본 문학을 처음 접해서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참 맛깔나게 번역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전에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이 번역하신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읽으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소설 번역도 정말 어렵겠구나, 어떻게 남의 나라 말을 이렇게 우리말의 운까지 맞춰서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감동했었다.
'갈대베는 남자'의 시작 부분에 옛날의 일본 시조를 번역한 문장을 읽으면서 번역작가의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을 때도 그 해 겨울 내가 그 곳에 있는 것처럼 긴장하고 춥고 배고팠는데 갈대사이에 앉아있던 남자가 바로 나한테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들다니... 평생 한 여자를 흠모하면서 결국 그녀의 동생과 부부의 연을 맺게된 남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 남자와 언니를 끝까지 지켜주려고 했던 여자. 주인공에게 얘기를 들려준 그 둘의 아들은 누구였을까?
일본이라고 하면 아직도 미국보다는 뭔가 멀게 느껴지고 약간 주저하게 되는데 이제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은 우리와 다른 것 뿐이고 미워할 대상도 아니며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한 세상 멋있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영식 작가의 책을 더 골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