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부고 알림이 연거푸 올라왔다. 죽음이 멀지 않다. 그중 하나의 알림은 동창의 아들로부터 받은 문자를 대신하여 올린 글이었다. 동창일 뿐 일면식이 있지 않은 이가 떠났다는 소식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는 초보자일 뿐이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도 여태 초보이고, 이제 오십을 넘은 나와 아내도 아직 초보이다. 죽음의 유경험자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는 ‘죽음’을 ‘지금’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죽음’은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하이데거 역시 그 점을 지적했지요.) 미래에 죽음이 오리란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왜 그 미래의 죽음을 기준으로 지금을 생각해야만 할까요? 마치 미래를 위해 지금을 보내는 것 같지 않은가요? ‘언제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저는 이 말에서 기만을 느낍니다.” (p.28, 미야노 마키코)
내가 목격한 가장 최근의 가장 접근하였던 경험은 우리 고양이 용이의 죽음이었다. 이십 개월 동안 용이를 담당하였던 의사 선생님이 몇 개의 주사약을 투입하는 동안 나는 용이의 살갗에 올려둔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주말이었고 선생님은 문을 걸어 잠궜고, 조명을 낮추어 놓은 상내쳤다. 나는 어떻게든 견디고자 하였고 용이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숨결까지 지켜보았다.
“지난 주말은 여름처럼 무더웠는데, 이번 연휴는 첫날부터 비가 내리네요. 심지어 쌀쌀하고요. 그래도 저희 집 고양이 냐아(옅은 갈색 줄무늬, 7세)는 여전히 복슬복슬합니다. 방금 전까지 뭐라 뭐라 하며 밀크티 색 오른쪽 앞발로 제 허벅지를 두드렸습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냐아가 놀아달라고 조르는 시간입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지 불러도 돌아보지 않지만요.” (p.13, 이소노 마호)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철학자인 미야노 마키코와 의료인류학자인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미야노 마키코는 ‘우연’에 천착하여 연구를 진행해온 철학자이다. 미야노 마키코는 지금 암으로 투병 중인 상태이고 몇몇 사람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는 그리 오래된 관계는 아니지만 이소노 마호는 그녀의 병을 알고 있다.
“예컨대 의사가 제시한 위험성을 마주한 제 앞에는 암을 적당히 억제하면서 지금처럼 살아가는 인생, 부작용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생, 매우 무거운 부작용을 앓으며 간신히 연명하는 인생이라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것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 가능성과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지요.” (pp.28~29,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는 의료인류학자이다. 의료인류학은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의 한 분야로서, 인류학의 방법과 이론적 성취에 기대어 인간의 질병과 건강, 의료체계 및 치유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우연‘을 연구한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을 연구한 인류학자의 만남은 ’우연‘에 기대어 찾아온 질병과 그 질병이 향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필연‘의 행보에 대한 섬세한 기록으로 마무리된다.
“불운은 점, 불행은 선. 소화시킬 수 없는 점인 불운과 마주하는 것, 그리고 불행한 스토리의 선으로 휘감기는 것. 이 두 가지는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과연 두 가지를 분명히 잘라 나눌 수 있냐고 저에게 물으면 그렇게 깔끔하게 나누지는 못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p.150, 미야노 마키코)
책은 두 사람이 각각 작성한 열 편의 편지로 만들어졌다. 오래되지 않은 관계여서 조심스럽지만 또 그래서 섬세하고 예민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산발적이지 않고 ’우연의 질병‘과 ’필연의 죽음‘으로 진득하니 수렴하고 있다. 책이 출간되기 이전에 미야노 마키코는 결국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가끔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남겨진 것은 삶인가, 죽음인가.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 김영현 역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다다서재 / 283쪽 / 202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