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을 당신을 위해서 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기도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서 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먼 길 떠나는 당신을 위해 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모은 시들은
울고 있는 당신을 대신해서 울어줄 시들입니다.
기도하는 당신을 대신해서 기도해줄 시들입니다.
먼 길 떠나는 당신과 동행해줄 시들입니다.
일찍이 나는 이러한 시들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울음을 달랠 수 있었고
더욱 좋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며
떨리는 다리에 힘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홀로 외로운 당신을 위해」중에서
기도하고 싶은 당신을 위하여
돌아보면 한 생애 지난한 삶이었습니다. 이른바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날들이었지요. 누구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 날에도 위로해주거나 손 내밀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이야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할 때, 진정으로 목이 마르고 다리가 팍팍할 때,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준 것이 시였습니다. 국내 시인들의 시도 좋았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도 좋았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나라, 낯선 나라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함께 안겨주어서 좋았습니다.
시가 마음의 버팀목이 되었고 부드러운 동행의 손길이 되어 나를 멀리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바로 이 책에 실린 시편들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나의 낡은 노트 한 구석에 적혀, 수십 년 동안 나와 함께 숨을 쉬어온 작품들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무지개 같은 꿈을 주는 문장들입니다.
당신, 젊으신 당신.
당신,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인가요?
당신, 지금 무언지 모를 그리움에 목이 마른 사람인가요?
아니라면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외로운 사람인가요?
아, 지금 너무도 막막한 심정에 무릎 꿇고 기도드리고 싶은 사람인가요?
울고 싶은 당신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마른 당신, 외로운 당신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시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들이 당신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데려다줄 것입니다. 당신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더불어 약속해줄 것입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기도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답니다.
2021년 새봄에
나태주 씁니다.
--- 본문 중에서
시인이 떠난 자리를 지켜
시는 여전히 건강하게 숨 쉬고
여전히 푸르게 자라고 있음이다.
시여, 앞으로도 더 오래 살아남아 있거라.
위의 시 「약해지지 마」는 대표시. 말하듯이 썼다. 하긴 시의 첫걸음이 ‘말하듯이’다. 문자언어보다 음성언어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가 순하게 다가온다. 처음엔 아들에게 ‘편지 쓰듯’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것이 또 시의 본령이다. 호소와 고백이 다시금 시의 첫걸음이니까. 이런 시를 통해 시인의 삶과 함께 우리는 좋은 느낌, 바로 희망을 얻는다.
---「나태주, 약해지지 마(시바타 도요)」중에서
아, 헤르만 헤세. 젊은 시절부터 나에게 좋은 친구였으며 좋으신 스승이었던 이름. 늘 목마른 나에게 목마르냐 물었고 그러면 이것을 좀 마셔보라며 한 잔의 물을 권하곤 했다. 지쳤느냐, 힘이 드냐, 손을 내밀어 더 멀리, 아득한 곳으로 가자고 속삭여주곤 했다. 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이 세상 모든 젊은 영혼보다 먼저 아프고, 먼저 헤매고 먼저 길을 찾은 그. 그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드리는 고백은 그냥 그대로 사적인 고백이 아니라 공적인 고백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위로와 안식을 전해준다.
---「나태주, 어머니께(헤르만 헤세)」중에서
나의 소년 시절, 헤세 다음에 좋았던 시인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시의 문장으로서 가장 높은 신비의 봉우리에 이르렀으며 세계인들에게도 그것을 안내해준 시인. 헤세와 더불어 박목월 선생의 저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시인을 지망하면서 눈앞이 어두워졌을 때 이런 문장은 밝은 이정표를 제공해준다. 아니다. 인생 자체의 안내자가 되어준다.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리니.’ 이런 문장의 축복 말이다.
---「나태주,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라이너 마리아 릴케)」중에서
남성 시인인데 발성은 여성 어법이다. 아니마. 카를 융의 심리학에 나오는 ‘남성이 지니는 무의식적인 여성적 요소’.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성 시인들에게도 있을 수 있겠다. 우리나라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세계도 그렇다 하겠다. 참 부드럽고 그윽한 세상이다. 누군가 고운 한 사람, 하루 종일 연꽃 송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즈넉한 향기가 전해진다. 시 그 자체가 기도이고 명상이고 노래다. 순결한 사랑의 고백. 우리도 이런 시를 통해 조금씩 마음이 맑아진다.
---「나태주, 연꽃 피는 날이면(라빈드라나트 타고르)」중에서
이보다 힘찬 웅변이 없다. 인생에 대한 웅변, 삶에 대한 웅변이다. 어느 날 살아가다가 지쳤거나 우울할 때 소리 내어 읽으면 좋을 문장이다. 용기를 얻을 것이다. 스스로 반성이 될 것이다. 아, 아직은 아니구나. 아직은 가능하겠구나. 미래를 안을 일이고 희망을 안을 일이다. 자기 안에서 가능성을 찾으면서 인생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인생이 무서워 지레 기죽을 일은 없다. 과감하게 자기 인생을 열어나갈 일이다. 당신이 꿈꾼다면 바로 당신이 청춘의 사람이다.
---「나태주, 청춘(사무엘 울만)」중에서
릴케의 시. 첫 문장에 그만 압도되고 마는 시. 아, 이 문장. 이 문장의 감격.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드디어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왔음을 해마다 알려주는 누군가의 음성이 거기에 들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문장을 만난다는 건 그것 자체가 행운이요 감사다. 잊지 말아라. 이런 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격을 잊지 말아라, 내가 나에게 타이르곤 한다. 내 시의 모든 모범이 이 시 안에 들어 있음을 나는 부정하기 어렵다.
---「나태주, 가을날(라이너 마리아 릴케)」중에서
젊은 시절, 나는 헤세보다는 릴케가 좋았는데 나이 들면서는 점점 헤세가 좋아진다. 어쩌면 그의 인간적인 삶,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솔직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그의 수채화는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헤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경도傾倒와 사랑이 더욱 헤세의 시작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어머니 앞에서는 철부지 어린아이. 그 나름대로 진솔해지기 마련이다.
---「나태주, 들을 지나서(헤르만 헤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