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를 지켜보던 큰 아이들이 점차 주변을 둘러싸며 거리를 좁혀 왔다. 격리장 없이 직접 대면시키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한데 삐삐는 자기보다 대여섯 배는 덩치가 큰 언니 오빠들에 둘러싸여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용기를 낸 레가 제일 먼저 앞발로 조심스럽게 삐삐를 툭 건드렸다. 삐삐는 콧방귀를 끼듯 그 발을 찰싹 쳐내고, 한 뼘 뒤에서 지켜보던 도의 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알았다. 얘는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고. 큰 아이들은 얼음이 되어 삐삐를 관찰했다. 마치 ‘뭐 저런 게 다 있지?’ 하고 놀란 듯했다. --- p.47, 「멋진 신세계」 중에서
삐삐의 거취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분주한 소리가 나면 고양이들이 나와 배웅을 해 주는데, 큰 아이들 사이에 조그마한 삐삐가 끼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나도 이 집 가족이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갈팡질팡했던 마음은 그때 갈피를 잡았다.
“엄마, 삐삐 막내로 입양하자.”
비록 많이 부족한 집사지만,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줄 엄마 같은 구마가 있고, 친언니 같은 도와 레가 있고, 친오빠 같은 감자와 알감이가 있고, 삐삐가 많이 따르는 디디와 도도가 있지 않은가. 삐삐도 이런 결말을 원했으리라. 아니, 어쩌면 삐삐는 처음 왔을 때부터 이미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임보는 ‘임시 보호’의 준말이 아니라 ‘임종까지 보호’의 준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임보하며 쌓이는 정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것이다. 두 달이라는 임시 보호의 마침표를 찍고 임종까지 보호하기로 한 삐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붉은 실이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 --- p.59, 「임보의 숨은 뜻」 중에서
한 달에 두 번 ‘디도네 네일숍’을 오픈한다. 당일 예약묘가 여덟이나 되기 때문에 첫 고객은 가장 협조적인 구마, 감자, 알감이로 시작한다. 여느 고양이는 뒷발을 만지면 싫어하기 마련이지만 나에 대한 신뢰가 깊은 세 아이는 뒷발을 손질할 때도 얌전히 품에 안겨 있다.
금세 세 아이의 발톱 손질을 끝내고 나면 곧바로 디디와 도도 차례다. 다루기가 꽤 수월한 편인 디디와 도도는 뒷발만 오래 붙잡고 있지 않으면 금방 발톱 손질을 마칠 수 있다.
가장 까탈스러운 고객인 도, 레, 삐삐를 상대할 땐 진땀이 절로 난다. 겁이 많은 도는 품속에 파고들어 발을 꼭꼭 숨기는 바람에 어르고 달래야 겨우 발을 내어준다. 힘이 센 레는 시작과 동시에 뒷발로 내 가슴팍을 차고 멀찍이 달아난다. 얄밉게 도망가는 레를 겨우 붙잡고 발톱을 깎으면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한쪽 귀가 얼얼하다.
마지막 차례는 가장 난이도 높은 삐삐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내 손등을 마구잡이로 깨물어댄다. 시작은 살살 물지만 앞발을 끝내고 뒷발 차례가 되면 무는 강도가 세져서 손등에 푹 파인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다. 제일 까다로운 진상 고객을 내보내면서 간신히 네일숍 영업을 종료한다. 아휴, 빨리 셔터 내려야지! --- p.224, 「디도네 네일숍」 중에서
나와 엄마를 대하는 삐삐 모습이 극적으로 달라서 가끔 이중인격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엄마에게만큼은 예외였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배를 보이고 발라당 드러누워 애정 표현을 하는데 삐삐의 발라당은 오로지 엄마 앞에서만 볼 수 있다. “기다려” “앉아” “손” 훈련을 받은 강아지처럼, 엄마의 “삐삐, 발라당” 소리만 들으면 기우뚱 옆으로 누워 배를 보이고 “꺄옹~” 하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구른다. 몸짓이며 표정이며 목소리에 밴 애교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나도 삐삐의 애정표현을 받고 싶어 엄마 곁에서 “삐삐야, 발라당~ 발라당” 하고 애타게 외쳐보지만 삐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p.252, 「엄마한테만 발라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