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수도원 운동은 어떤 타협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개입, 그리고 이들과 엮임으로써 수반되는 삶 전체를 차단하고 거부하는 운동처럼 보입니다. 나중에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만, 사막 수도 전통의 글들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공통으로 발견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이들에게서 “도피한다”는 표현입니다. 수도원 운동은 그리스도교인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교회는 점점 더 부패하고 세속화되는 당대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공동체를 일군 초기 수도사들과 수녀들은 당시 교회가 진실로 무엇에 관한 곳인지, 무엇이 되어야 할 곳인지가 ‘일상’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진실로 어떠한 곳인지, 또한 어떠한 곳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떠한 인간성을 지녀야,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교감을 나누게 되는지를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 p.31
사막 공동체의 이야기와 말은 교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교회의 소명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공동체가 되는 것이며 사막 공동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몸과 마음의 습관을 익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습관이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을 향해 뜻하시는 바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진실로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적절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사막 전통에서 나온 글들을 읽으며 단순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이 베풀어야 할 관대함이나 친절함에 관한 이야기, 말로 여긴다면 이는 글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입니다.
---p.55~56
우리는 사막 전통의 지혜를 얕게 현대화시켜 적용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금욕적인 삶을 살면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꽤나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발견self-discovering, 혹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이라는 관념에 깊게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그래서 자기를 좀 더 다른 사람들 앞에 잘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막 수도사들과 수녀들에게 진리를 향한 여정, 자신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략을 고안해 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 p.80~81
“온갖 악한 제안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 곧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르라는 제안입니다.” ‘마음 가는 데로 가라’, ‘꿈은 이루어진다’와 같은 말이 각광 받고 격언처럼 통용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 경고는 당혹스럽습니다. 많은 이는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한 감정과 갈망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막 수도사들은 자기 안에 머물러 마음 가는 데로 가는 것은 양파 껍질 벗기는 일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이르러야 할 곳은 순수하고 단순한 곳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자기검증self-examination 아래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순수하지 않으며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 p.87~88
그리스도교 윤리에는 이론상 동시에 붙들기 어려운 두 가지 다른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 인간에게 있는 하느님의 형상, 피조 세계에 담긴 하느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그 영광에 부합하는 경배로서 행동이 있다는 강력하고도 타협을 거부하는 확신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 사람, 혹은 특정 집단의 가르침이나 권징은 결국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결국 모든 이에게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의심입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둘 모두를 고려하며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막 수도사들은 이론적인 해결책 따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서로에게 배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입니다.
--- p.139
사막 전통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일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담긴 유혹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이에 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들에 따르면 도피나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둘 다 핵심은 (인격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를 중시할 때 이에 따르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에 매이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이 강박들에서 벗어날 때, 도피할 때 참된 자유가 일어날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관건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데 있지 않습니다(다음 장에서 사막 수도사들은 이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해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관건은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데, 참된 우리 자신에게로 도피하는 데 있습니다.
--- p.147
코끼리 한 마리를 다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뻔하면서도 간단합니다. 조금씩 나누어서 긴 시간에 걸쳐 먹는 것이지요. 사막 수도사들은 이 문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두고 절망감에 포기하고 잠들지 않기 위해 애쓸 때, 문제가 그냥 지나가거나 저절로 해결되거나 새로운 환경이 해결해 줄 것처럼 굴지 않으려 애쓸 때 성장과 치유가 일어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는 이른바 영적 생활,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도전이 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한 자기계발서도 정직한 가르침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따분한 일, 지루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지침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따분한 일, 지루한 일과 직면할 수 있게 해주는 지침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쁨과 흥분으로 받아들이는 법이 아니라 눈을 계속 뜰 수 있게 해주는 고요한 동기를 간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 p.164~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