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건축을 2층 집에 비유하면 1층은 이슬람 건축이 되고, 2층은 기독교 건축이 될 것이다. 프랑스 길을 따라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건축은 스페인 건축의 대들보가 될 것이다. 기독교 세력이 연대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구축한 프랑스 길을 따라 신들의 궁전이 줄지어 서 있다. 오비에도가 스페인 기독교 건축의 용마루라면 레온 대성당, 부르고스 대성당, 팜플로나 대성당은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이어진 스페인 건축의 대들보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산티아고 대성당의 대문이었다. --- p.15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프랑스 길의 제로 포인트이자 스페인 중세 건축의 대 문이었다. 12세기 중엽 제2차 십자군 전쟁의 출발지였다. 파리의 중심은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센강에 배처럼 떠 있는 시테섬이었으며 그 심장은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파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바라보고 있는 샹젤리제를 축으로 발전했다. 파리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3세기 로마에서 출발해 파리에 도착한 첫 번째 순례 자 생 드니의 순교와 마주한다. 노르트담 대성당의 성모 마리아 문에 그의 죽음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생 드니의 부조 앞에 프랑스 길의 제로 포인트가 놓여 있다. --- p.32
피레네산맥을 넘어서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의 산티아고 성당이 나타난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그 이름이 같다. 이는 산티아고 성당이 스페인의 실질적인 관문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팜플로나 대성당으로 이르는 길은 중세 나바라 왕국의 길이다. 피레네 산줄기가 들판에 낮게 내려앉는 곳에 팜플로나 대성당이 성벽을 두르고 서 있다. 중세 팜플로나 대성당은 수도원과 병원과 대학을 갖춘 복합 종교 단지였다. --- p.59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포도 농장이 더 넓게 펼쳐져 있으며 곳곳에 나바라 왕국의 성당과 왕궁이 박혀 있다. 카스티야 왕조의 초기 수도였던 부르고스에는 스페인 3대 성당 중의 하나로 불리는 부르고스 대성당이 우뚝하다. 이곳에 엘 시드의 묘가 안장돼 있다. 부르고스 남쪽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이 있다. --- p.85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레온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은 스페인에서 가장 황량한 메세타 고원 길이다. 스페인의 등짝으로 불리는 메세타 고원 길. 황량한 대지가 뿜어내는 열기와 건조함은 중세 순례자에게 고독의 훈장을 깊이 새겨주었다. 황량한 들판에 간간이 나타나는 성당들이 여행자들이 놓쳐버린 마음의 주인을 다시 불러주었다. 메세타 고원 길은 천국으로 열린 회랑이자 우리를 시험하는 인내와 용기의 길이었다. --- p.149
레온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습기 먹은 갈리시아 숲길이다. 아스토르가 대성당을 지나면 레온산맥이 솟아오른다. 레온산맥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성당들을 지나면 웅장한 폰페라다 성이 마중한다. 폰페라다를 벗어나면 갈리시아 숲속에 사모스 수도원이 요정처럼 앉아 있다. 사모스 수도원에서 마음의 끈을 씻고 줄줄이 이어진 성당들을 지나치면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내 안에 잠자던 사랑을 일으켜 세워줬다. --- p.215
중세 사람들은 사람이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대지의 끝을 ‘피스테라’라고 불렀다. 중세 모든 대성당과 성당들은 하나같이 동쪽에 제단을 세우고서 피스테라가 있는 서쪽을 바라봤다. 해가 지는 대서양에 면한 피스테라는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암시했다. 육체의 발길이 멈추는 무시아와 피스테라는 신화의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건축물과 유적들이 산티아고의 발코니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