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북한의 성장 과정을 예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식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적절한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10년 후에도 북한이 중국보다 후진적인 임가공 산업을 기반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 미래 한반도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한반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즉 남북한이 함께 잘사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래 변화를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와 같은 개발도상국 발전 방식을 북한에 적용해서는 남북한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 오히려 남한보다 앞선 첨단 기술을 북한에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 28쪽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의 저서 《호모데우스》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어쩌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율주행차가 운행되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서구 사회에서는 안전사고 문제에 대한 반대와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해 자율주행차의 도로 운행이 어려운 반면, 북한에서는 중앙집권화된 의사 결정 체계가 현실적인 제약을 쉽게 극복하고 기술적인 도약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교통 시스템을 아예 처음부터 자율주행차에 적합하도록 설계하고, 도시 전체를 자율주행차의 운행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39쪽
북한의 노동력만을 활용하는 기존 방식의 협력 모델은 점차 지양해야 한다.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근시안적으로 북한의 역량을 소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분간 북한 노동력의 임금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 협력이 진행되어야겠지만, 지식 기반 산업과 4차 산업 분야로 전환해갈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특구·개발구 계획 단계에서는 미래 산업구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할 것이다. / 43쪽
남북한의 정치적 통합은 최대한 늦추고 경제적 협력은 자유롭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남북한의 체제가 서로 다른 상태에서는 인구 이동을 제어할 수 있으며, 남북한의 격차를 활용한 상호보완적 협력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상적 상태를 유지한다면 미래의 통일 비용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북한에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의 자생력을 증진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면 북한 주민들에게도 간접적인 복지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남북한 경제 수준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이질감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정치적 통합은 적절한 시기에 무리 없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 54쪽
실제로 한반도와 직접 연결된 경제권의 인구는 현재 남한의 두 배가 되는 1억 명에 육박하게 되고, 여기에 기반하여 현재와는 다른 산업 발전 패러다임이 가능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의하면 인구가 7,000만 명 이상이 되면 내부적으로 생산·소비·투자가 연쇄적으로 올라가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북한·중국의 접경 지역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다수의 한민족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한반도 경제권은 같은 언어와 문화·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통합의 효과가 유럽연합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 74쪽
북한 지하자원 개발은 남북한 경제협력이 재개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진출해야 할 분야다. 만약 우리가 선점하지 못한다면 북한 지하자원의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투자하려는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 것이 뻔하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728개의 광산에 42종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석탄 광산이 241개, 금·구리 등 금속 광산이 260개, 인회석·마그네사이트 등 비금속 광산이 227개다. 외국 기업과 개발 관련 투자 계약이 체결된 광산은 전체의 약 5.2%에 불과하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에 무척 적극적인데, 북한이 광물자원 개발과 관련해 외국과 체결한 계약 중 87%가 중국과 맺은 것일 정도다. / 82쪽
남북한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 경제가 구축된다면, 북한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물질적 생산요소를 반드시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남한이 이미 보유한 우수한 산업 역량과 인프라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한반도 경제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네트워크 경제의 등장은 남북한 경제협력 방식의 일대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탕으로, 남북한이 상호보완적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한반도의 미래 성장 전략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이다. / 113쪽
도시를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스마트시티는 좀 더 똑똑하고 신진대사가 빠른 상태를 의미한다. 스마트시티에서는 신경망과 혈관의 성능이 향상되어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물류와 교통의 이동속도가 증가될 뿐만 아니라 사고율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다. 산업과 산업이 서로 융합되고, 도시와 도시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도시가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한 차원 높게 진화된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이다.
스마트시티에서는 곳곳에 깔려 있는 사물인터넷 센서들을 통해 빅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모이고, 여기에서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물류·교통·에너지 등 공급망을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경제활동에 투입된 노동의 가치를 각 단계별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산정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또한 중간 거래상을 거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시켜줄 수도 있다. / 116쪽
북한을 통과하는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물류망의 길목에 위치한 한반도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한반도는 지경학적·지정학적으로 효용성이 매우 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교통망 구축과 남북한 경제협력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되살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만약 북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놓치고 북한 주요 거점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가 실익을 얻지 못하고 주변의 열강들이 한반도의 가치를 선점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북한 지역 주요 거점도시들에 대한 투자 및 경제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 181쪽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는 환황해 경제권과 환동해 경제권을 동서 양측에 가지고 있다. 환황해 경제권은 중국 동부 지역의 핵심 경제권과 한반도 서부 지역을 포괄하는 인구 약 5억 명, 총 GDP 1.4조 달러의 시장이다. 환동해 경제권은 일본과 남한의 동부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포함하는 인구 약 1.4억 명, 총 GDP 5.6조 달러의 시장이다. 이처럼 한반도는 동북아 경제권의 핵심 거점으로서, 전략적 관문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지경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관통하는 유라시아 진출 교통망이 연결되면 동북아의 교통·물류망 체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관문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만 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192~193쪽
평양은 관광 명소로 개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시 자체가 사회주의 도시계획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평양에는 여러 종류의 상징적 공간, 광장, 기념비, 공원 등 관광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소가 많다. 혹자는 북한을 모든 것이 연출되어 있는 극장 국가라고 비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서 평양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극장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북한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체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평양을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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