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0년 넘게 나는 로저 파우츠에게 이 책을 쓰라고 졸라 왔다. 이것은 동물계에서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속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고, 동시에 과학의 어둡고 추한 면을 폭로하는 과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젊은 학생(로저)과 작은 침팬지 소녀(워쇼)의 삶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 사연을 차근차근 보여 준다.
--- p.9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 번 더 말하면 혼란이 정리되기라도 할 것처럼 세커드 박사가 다시 말했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어쩌면 대학원 신입생 모두에게 [말하는 침팬지]가 있다고 장난을 치는 건지도 몰랐다.
--- p.26
워쇼는 주먹을 쥐고 엄지를 펴서 입에 댐으로써 [마신다]라는 뜻을 나타냈다. [개]라고 할 때는 자기 허벅지를 톡톡 쳤고, [꽃]이라고 할 때는 손가락 끝을 콧구멍에 댔고, [듣는다]라고 할 때는 검지로 귀를 만졌고, [열다]라고 할 때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양손을 붙여서 든 다음 손바닥이 마주보도록 여는 시늉을 했고, [아프다]라고 할 때는 양쪽 검지를 마주 가리키면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렸다.
--- p.47
나는 워쇼가 인간과 비슷한 언어 능력을 매일 발달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1969년 초가 되자 나의 세 살 난 침팬지 여동생은 내 두 살 난 아들과 비슷하게 행동할 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침 7시가 되면 워쇼는 수화를 쏟아 내면서 -[로저 빨리], [와서 안아 줘], [먹을 거 줘], [옷 줘], [나가자], [문 열어] -나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몸짓이라는 점만 빼면 내가 매일 아침 아들 조슈아에게서 듣는 말과 똑같았다.
--- p.116~117
워쇼가 통사론의 모든 규칙이 새겨진 언어 기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규칙을 배워 나가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침팬지의 인지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에 비춰 보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정글에서 사는 어린 침팬지는 일반화를 통해 배우는 것에 무척 능숙하다. 야생 침팬지는 망치로 견과류를 깨뜨려서 깔 때마다 견과류 깨기에 대한 일반적인 무언가를 배운다. 침팬지는 견과류를 깨뜨리는 방법의 숨은 패턴 -즉, 규칙 -을 도출하고 그 규칙을 새로운 상황에서 일반화시켜야 한다.
--- p.135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로저: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보면서) 너랑 나랑 지금 집에 가.
워쇼: (반항적으로) 싫어.
로저: (절박하게) 뭐 줄까?
워쇼: (솔직하게) 사탕.
로저: (무척 마음을 놓으며) 좋아, 좋아. 집에 가면 사탕 줄게.
워쇼: (아주 기뻐하며) 너, 나, 빨리 가자.
--- p.181
데이비드가 수화를 하면서 행동이 급격한 변화한 것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이것이 다른 자폐아들에게도 통한다면 나의 접근법을 분명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데이비드가 수화를 시작하고 몇 주 후 정말 놀랍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데이비드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열어], [엄마], [마셔]처럼 한 번에 한 단어씩 말했다. 그런 다음 수화를 조합해 구절을 만들기 시작하자 말을 할 때도 단어를 조합해 [마실 거 줘]와 같은 구절을 만들었다.
--- p.238
워쇼는 우리 구석에 앉아서 내가 억지로 들여보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두 시간 뒤 첫 번째 주유소에 들렀지만 워쇼는 트레일러 옆문을 통해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오자 여행에 대한 워쇼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얼른, 얼른, 가자, 가자.] 워쇼가 도로를 가리키며 수화로 말했다. 갑자기 워쇼는 신이 난 것 같았고, 우리는 두 시간마다 멈춰서 기름을 넣고 아이스크림을 사야 했다.
--- p.320
그러나 나는 침팬지들의 삶에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매일 바깥에 나가는 것이었다. 침팬지들은 심리학과 건물 3층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편이었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도, 얼굴에 햇살을 느끼지도, 큰 나무에 오르지도 못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나무에 오르도록 타고났고,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워쇼 가족이 야외에서 햇살을 받으며 나무에 오르는 자유를 누리기 바랐다.
--- p.382~383쪽
「쟤 꺼내.」 수의사가 관리인에게 말했다. 「쟤 꺼내라고.」
관리인은 감자 부대를 끌어내듯 바비를 격리실에서 꺼냈다. 그는 바비에게 말을 걸지도, 달래려고 하지도 않았다. 바비는 관리인의 품에 가만히 누워서 매달리지도 않았다.
「사과 줘봐.」 수의사가 아마도 우리 때문에 실험실 탁자에 놓아 두었을 사과를 가리켰다. 바비는 흥미를 보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로봇처럼 사과를 먹었다.
「봐요, 괜찮죠.」 수의사가 말했다. 「비명 같은 건 안 지른다니까요.」
--- p.395
이틀 후 아침, 나는 새집에 들어간 워쇼 근처에 서 있었고 워쇼가 약에 취한 채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워쇼는 문밖에 펼쳐진 햇살 내리쬐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워쇼는 자신이 비디오테이프에 나왔던 집에 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깨달은 것 같았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처럼 기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워쇼가 벌떡 일어나더니 룰리스에게 가서 끌어안았다. 그런 다음 유리문으로 비틀비틀 다가와서 눈을 빛내며 나를 똑바로 보더니 [밖, 밖!]이라고 수화로 말했다.
--- p.416~417
나는 워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인간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떨까 종종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서 나의 외증조부가 자신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인정하고 새로 찾은 동족을, 자신이 부리던 노예를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기 혐오 때문에 흑인들을 더 탄압했을까? 그런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당신이나 나는 어떻게 할까?
--- p.474~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