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막연히 한국사회가 단일 언어에 기초하여 그리고 비교적 동질적 인종과 문화에 기반한 민족국가를 유지하여 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동질성에 대한 가정은, 경험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깊이 분석하여 본다면, 이러한 동질적 민족국가의 개념은 하나의 신화일 수 있다. 즉 현대 한국에 이르는 기나긴 지난 역사를 되돌 려 음미해 볼 때, 많은 인종 및 문화 집단들이 한반도에 흘러 들어 와 동화됨으로써 현대의 한국민족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동질적 혈연성을 유지하여 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막연한 환상일 수 있다. 이것 역시 기나긴 동화의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애초부터 언어적, 혈연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해온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에는 많은 상상된 신화가 깃들여 있다. 현대 한국에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상주하거나 정착해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적 과정에서도 당시로서 많은 외국인 및 이방인들이 한반도에 흘러 들어와 동화되어 정착하여 한국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였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현재 급속한 지구화의 진전으로 한국사회에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단순히 외국인으로 상주하거나, 아니면 한국의 시민으로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한국인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단일민족국가의 신화에 상당한 도전을 제기한다. 최근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한국계 중국인, 북한이탈주민, 그리고 상주하는 외국인의 증가는 한국 사회가 점차 단일민족국가의 언어적 및 문화적 동질성으로부터 점차 다문화화(multiculturalization)의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우리 사회가 다문화적 사회로 진전되어 가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과정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일상적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 및 관념,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차원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한국사회와 한국인은 다문화 현상과 다문화 이론에 관한한 아직 유아적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호주와 같은 이민 국가들은 상이한 언어, 문화를 지닌 이질적인 인종들이 함께 사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역사적으로 경험하면서,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문화적 현실에서 “함께 사는 방법과 논리”를 개발시켜 왔다. 이러한 논리들이 이론적으로 표명된 것이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고 할 수 있다. 킴리카(Will Kymlicka)의 『다문화주의 시민권』(Multicultural Citizenship)은 다문화주의의 이론적 작업에서 중심적 위치를 점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다문화주의 이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킴리카의 『다문화주의 시민권』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함유하고 있다. 먼저 그 요점은, 기존의 자유주의 이론들이 개인의 평등과 자유를 공정히 실현하기 위해 공통적 시민권의 개념(common rights of citizenship)에 의존하였지만, 이러한 공통적 시민권 개념은 집단간(group differences) 차이를 적절히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간의 평등한 자유를 실현시키는 데 실패하였다고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킴리카는 특히 민족(nation)과 인종문화집단(ethnic groups)에 초점을 맞추어 집단차별적 권리(group differentiated rights)를 이들 집단에게 부여할 것을 주장한다. 킴리카는 다문화주의 모델로, 소수민족(national minorities), 이민자집단(immigrant groups),고립주의적인 인종종교 집단(isolationist ethnoreligious groups),메틱스(Metics), 그리고 미국흑인(African-Americans)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과 관계하여 킴리카는 다민족 국가(Multination States)와 다인종문화국가(Polyethnic States)를 구분한다. 다민족국가는 한 국가 내에 여러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국가를 지칭하며, 다인종문화국가는 주로 이민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다양한 인종문화적 집단들이 존재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과 함께 킴리카는 집단차별적 권리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즉 다민족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자치정부권리’(self-government rights), 인종문화적 소수집단들이 자신의 문화적 독특성과 자긍심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다인종문화적 권리’(polyethnic rights), 그리고 소수민족 또는 인종문화적 소수집단이 광범위한 전체사회에서 경시되지 않도록 이들의 목소리를 보장하기 위한 특별집단대표권(special group representation rights)
을 주장한다.그러나 킴리카의 이러한 집단차별적 권리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소수자집단권리가 a) 해당 집단의 구성원들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슴 내부적 제재는 거부되어야 하고, b) 집단간 평등의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하에 집단차별적 권리는 개인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킴리카의 다문화주의는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liberal multiculturalism)라 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 이론 또는 킴리카의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이론이 한국현실을 설명하고 또 한국적인 다문화진전에 대한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화의 진척현상이 앞으로 어떠한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대한 예측과 함께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보다 화합된 한국사회를 운영하고 또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협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단서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을 번역함에 있어, 번역상 많이 고민이 되었던 개념들이 있다. 특히 ethnic, ethnicity, multiethnic 개념인데 통상 한국 학계의 일부에서 이미 ‘종족적’으로 번역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적 언어감각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ethnic을 ‘인종문화적’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race는 단순히 ‘인종’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group-differentiated rights 역시 여러 가지 우리말 번역이 가능하리라 생각이 들지만, ‘집단차별적 권리’로 통일하였다. 한편 the larger society는 ‘보다 큰 전체사회’ 또는 ‘보다 광범위한 전체사회’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societal culture 역시 단순히 사회적 문화 또는 다른 번역이 가능하겠지만‘사회고유문화’로 번역하였다. homeland는 맥락에 따라 ‘모국’ 또는 ‘생활터전’ 등으로 번역하였다. membership은 문맥에 따라 소속감, 귀속성, 구성원지위, 구성원자격 등으로 번역하였다. 이외에도 한국말 번역이 까다로운 용어들은 문맥에 따라 다소 변형하여 번역하였다. 예를 들어, commitment는 때로는 공약, 신념, 지지 등으로 맥락에 따라 번역하였다. 이 책의 번역에 참가한 사람은 책임번역자인 본인과 함께, 나의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였던 황민혁, 송경호, 변영환이다. 책임번역자는 번역해당저서의 감사의 글, 그리고 1, 2, 3 장과 함께 10장 결론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황민혁은 4, 5장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변영환은 6, 7장을 번역하였다. 송경호는 8, 9장을 번역하였다. 특히 책임번역자는 황민혁, 변영환, 송경호가 번역한 4, 5, 6, 7, 8, 9장을 문장 및 각주 하나하나를 대조하여 검토하면서 해당 번역자들과 일부 상의하여 용어와 문맥을 가다듬어 수정하였다. 그리고 난 후 다시, 책임번역자가 번역한 1, 2, 3 장 및 10장 결론을 같은 방법으로 다시 검토하여 수정하였다. 이러한 번역의 과정은 2009년 8월 경에 시작되었으며, 2010년 1월과 2월에 집중적으로 작업이 진행되어 초고번역은 2010년 3월 11일에 일단 마무리 되었다. 이러한 1차 번역과정을 거쳐 2차적으로 3월 11~25일간 책임번역자가 번역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번역 초고의 전체를 검토하고 수정하였다. 이후 책임번역자는 인쇄된 교정원고를 7월 19~21일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검토 . 수정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동번역자인 황민혁이 7월말부터 8월 중하순까지 문장 하나하나를 검토한 원고를 토대로 하여, 책임번역자와 함께 상의하여 8월말에 수정하여 마무리하였다.공동번역자인 황민혁은 현재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송경호는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 중, 군관계로 휴학을 하여 현재 공군장교로 국가에 봉사하고 있다. 변영환은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 중 미국유학을 떠나 현재 City University of New York의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 중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번역에 여전히 오역과 불분명한 점, 부족하고 미진한 번역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독자 제현의 관대한 이해를 부탁한다. 그리고 이 책이 전문가는 물론 대학생 및 대학원생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읽혀져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현상, 그리고 다문화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서 미래의 한국사회의 화합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2010년 10월
연희관 119호 연구실에서
책임번역자
---역자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