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흙에서 살 때는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돈도 필요 없었다.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 먹든, 논밭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든 다 그렇게 살았으니 먹고사는 일이 배부르지는 않았어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p.7
나는 세상의 제일 도둑놈이 씨 도둑놈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달나라를 갔다 오는 세상이라 하지만 씨앗은 절대 인간이 만들 수가 없다. 단지 씨앗들을 이렇게 저렇게 교잡하여 만드는 것이니 그것으로 자기가 만들었다고 저작권을 붙이는 것이야말로 언 땅에 흙을 덮어 땅을 팔아먹었던 봉이 김선달보다 더 나쁜 사기꾼이다. 과거 술을 몰래 담가 먹으면 밀주라 해서 금지했던 것처럼 종묘상에서 사다 심은 종자에서 씨를 받으면 불법으로 취급하는 시대인 것이다. --- p.19
3월 하순경, 절기로는 춘분. 따뜻한 봄의 기운을 등에 지고 볏짚을 벗긴다. 마늘의 순이 스윽 올라온 게 보인다. 부슬부슬한 흙이 손가락 사이를 스치고 지렁이도 꼬물꼬물 인사를 건넨다. 이게 바로 춘분에 만끽하는 생명의 기운이 아닌가 싶다. 마늘 농사를 지으면 그 맛에 놀라워 농사 중독자가 되지만, 또 한편 생태주의자,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에게 농사 배우러 온 한 분이 마늘과 땅이 주는 기운을 경험하고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생태주의나 자연주의 책을 읽은 적이 없고 관련 강의도 들은 바 없지만, 오늘 볏짚을 벗기며 마늘을 본 순간 절로 생태주의자가 된 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