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율이 내려간 것은 유럽이든 미국이든, 20세기 후반부터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 경제에서 새로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들은 한국처럼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청년들이 어려워진 것은 세계적으로 일어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절반이 넘는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일은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노화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냥 노화가 아닌 ‘초고속 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지속가능할까? 그럴 리가 없다.
---「경제가 늙어간다는 것」중에서
간접세 앞에서의 평등, 결국 좋은 것은 아니다. 고가의 자동차나 전기제품에 붙는 간접세는 줄어든 반면, 죄악세의 일종인 담뱃세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소비하는 간접세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아직 제대로 된 복지 체계가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원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태우 시절에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듯이 지하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한 것도 아니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불리한 방식으로 간접세가 운용될 수밖에 없다.
---「죽은 것들의 경제학」중에서
한국 경제가 지금과 같은 위기에 봉착한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난 두 번의 정권이 산업을 너무 이념적으로만 보려고 하고 이론적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버려 두고 방치하다가 어려워지면 ‘사양산업’이라고 던져 버리는 것이 지난 8년간 한국 정부가 했던 일이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정부가 유일하게 생물학이나 생태학의 시각을 빌려 온 유일한 분야가 산업 정책인 셈이다. ‘늙어 버린 산업’, 이런 관점이 정부가 제조업을 비롯한 실물 경제를 보는 눈이 아니었던가? “이건 너무 늙어버렸어. 그냥 갖다 버리자”는 식으로 일을 했다.
그렇지만 산업이 튼튼하게 버티는 국가들이 복지와 경제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모두 제조업이 튼튼한 나라들이다. 산업이 늙는다는 표현이 과연 맞는 것일까?
---「죽은 것들의 경제학」중에서
지금 상황으로 보면 20대의 힘으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방향에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60대일 것이다. 20대의 힘으로 방향을 틀 수는 있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방향을 튼 상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 논리와 정서의 차이일 수도 있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일 수도 있다. 이미 걸어온 길과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직 취업도 하지 않은 사람과 이미 퇴직한 사람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 수도 있다. 방향과 에너지, 이 두 가지가 결합될 수 있을까?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라는 숲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청년 완전고용은 정말 불가능한가」중에서
최저임금의 효과는 거의 즉각적이다. 그리고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노동자들의 삶이 워낙 한계적 상황이라서 그렇게 지불된 돈 역시 거의 즉각적으로 소비 영역으로 재순환된다. 투자 승수효과가 가장 큰 정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검증된 부정적 효과는 거의 없다. 물가 상승이나 경제 침체 등 이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작용이 있기는 한데, 전면적으로 최저임금을 강화시킨 독일 등의 사례에서 아직 관찰된 적은 거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좋은 거다.
기본 소득과 비교한 최저임금의 장점 역시 속도다. 유럽에서도 10년 내에 전면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빨리 진행된다고 해도 20년 후의 일이다. 지금 20대는 물론이고, 10대가 청년이 되었을 때에도 전면 도입은 좀 무리다. 지금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들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유아들이 20대가 되었을 때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 바로 여기에서 힘겨운 시간을 지내는 청년들에게는 어떨까?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들, 남자거나 여자거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경제의 흐름에서 잠시 밀려난 사람들,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제도다.
---「권문석의 꿈」중에서
죽은 것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한 세상, 죽은 것들을 숭배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것들과 약속하는 세상,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길이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힘과 미래로 나아가려는 힘, 이런 것들이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계속해서 갈등을 빚을 것이다. 그 흐름의 축이 살아 있는 것과 미래에 속한 것 그리고 청년에 속한 것을 향해 흐를 때, 우리의 경제가 지금보다 분명 나아질 것이다.
‘청년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청년들의’ 경제,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되어야 한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