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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글 / 인디고 그림 | 라임 | 2024년 10월 0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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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320g | 153*225*9mm
ISBN13 9791194028185
ISBN10 1194028187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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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 전, 조로병(노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병)과 하이랜더 증후군(성장 호르몬의 결핍으로 더 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병)을 연구하던 어느 유전자 연구팀이 시간 유전자를 발견했다. 인간의 몸은 시간 유전자가 짧아지면 노화가 일어나고, 시간 유전자가 길어지면 일정 기간 동안 노화가 멈춘다고 했다.

그 유전자 연구팀은 오랜 연구를 통해 시간 유전자의 DNA를 잘라 유전자 구조가 비슷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시간 유전자 이동’ 기술을 개발했다.

타임 스토어는 발 빠르게 나서서 ‘시간 유전자 이동’ 기술을 수익 모델로 전환했다. 그 후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시간 유전자의 길이를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시간 유전자의 길이를 늘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간 유전자를 이식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반대로 자신의 시간 유전자를 잘라서 제공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었다. 결국 ‘시간 유전자 이동’ 기술이 시간을 사고파는 새로운 시대를 연 셈이다. 〔중략〕

어느 순간인가부터 타임 스토어의 시간 유전자 이동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꿈의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타임 스토어를 이용하고 있다.
--- pp.6~7

나는 초록색을 무지 싫어했다. 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얼룩덜룩한 초록색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지금은 초록색 반점이 깨끗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초록 비슷한 색깔을 띠는 물건조차도 꺼렸다.

“난 언제 내 차를 가져 보냐? 에잇, 스무 살만 돼 봐라. 당장 시간 유전자를 팔아서 그 돈으로 차부터 사야지! 그것도 빨간색 초고속 비행 스포츠카로! 그럼 다들 엄청 부러워하겠지?”

은찬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흐뭇하게 웃었다.

“하여튼 오지후, 난 네가 제일 부러워. 우리 엄마랑 아빠는 맨날 돈 없다고 하면서 시간 유전자는 죽어도 안 판대요.”

은찬네 부모님처럼 타임 스토어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 유전자 이동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최고의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술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나는 초록 괴물로 살고 있을 거다. 엄마와 아빠는 시간 유전자를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내 몸에서 초록색 반점을 말끔히 지워 주었다.

“지후야, 우리 스무 살 되면 시간 유전자 팔러 같이 가자.”
“그래, 우리 유전자는 금방 팔릴 거야.”

우리는 벌써 시간 유전자를 팔아 돈을 번 것마냥 신이 나서 헤헤거렸다.

시간 유전자는 신체의 성장이 모두 이루어진 시점부터 팔 수 있다. 보통 스무 살부터 시간 유전자를 팔 수 있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 팔렸다. 타임 스토어에서는 어리다고 해서 시간 유전자가 더 건강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어릴수록 시간 유전자의 질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사 년치의 시간 유전자를 팔 거다. 마음 같아선 한꺼번에 사 년치를 다 팔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시간 유전자는 이 년에 한 번씩 일 년치만 팔아야 했다.
--- pp.22~23

미스터 유는 꼭 본인을 미스터 유라고 부르라고 했다. ‘미스 터’라는 호칭이 좋다나 뭐라나. 하지만 미스터 유는 별로 미스터 같지 않았다.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늙었고,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젊었다. 그래서 ‘할저씨’라고 불렀더니, 그런 요상한 말이 어디 있냐며 호통을 쳤다.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 이렇게 단것은 건강에 안 좋다고.”

미스터 유는 빼앗아 먹는 주제에 참 당당하게도 투덜거렸다. 그럴 거면 차라리 먹지나 말지. 하여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었다. 미스터 유가 저토록 당당할 수 있는 건 모두 겉모습이 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늙어 보인다는 건 가난을 뜻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기가 죽어 있었고, 바깥으로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당당할 수 있는 노인은 딱 한 종류였다. 시간 유전자를 왕창 사서 젊음을 창창하게 유지하는 부자 노인.

미스터 유는 타임 스토어를 만든 창립자 가운데 한 명으로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소문에 따르면, 태어난 지 백 년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도대체 시간 유전자를 얼마나 샀기에 늙지 않는 걸까? 시간 유전자를 파는 건 이 년에 한 번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사는 건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 p.32

스케줄러의 알람이 울렸다. 벌써 집으로 돌아갈 시각이었다. 세랑 누나와 함께 있으면 삼십 분이 꼭 삼 초 같았다. 누나와 있을 때는 시간을 죽 잡아당겨서 천천히 가게 하면 좋겠다.

“누나, 그만 가 볼게.”
“지후야, 고마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세랑 누나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있어서 참 좋아.”

세랑 누나가 환하게 웃었다. 누나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심장이 쿵쿵대며 뛰기 시작했다. 아, 왜 이러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누나가 방금 한 말이야말로 내가 세랑 누나에게 늘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누나가 있어서 참 좋아.

“지후, 네가 내 친동생이면 좋겠어.”

친동생이라니……. 이번에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에잇, 좋다가 말았잖아.

“누나, 내일 봐.”

나는 세랑 누나에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가게에서 나왔다. 얼른 스무 살이 되어 시간 유전자를 왕창 팔았으면 좋겠다.
--- p.46

나는 예전부터 이모에게 묻고 싶었다. 이모가 활동하고 있는 안티 타임 스토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임 스토어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 유전자를 팔아 돈을 벌 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시간 유전자를 사서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건지.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 전보다 시간을 더욱더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

“누구나 잘사는 세상인데, 왜 나 같은 사람은 타워 빌리지에 사는 걸까?”
“그건 이모가 시간 유전자를 팔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시간도 마구잡이로 쓰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 입에서 ‘마구잡이’란 말이 튀어나온 뒤였다. 사실은 나도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모는 좋지만 왜 그렇게 사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워 빌리지에도 시간 유전자를 판 사람이 많아. 그래도 그 사람들은 계속 타워 빌리지에 살아.”
“이모, 그건 시간 유전자를 팔 생각만 하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모의 말에 반박했다. 학교에서 배워 그 정도는 알았다.

“정말 그럴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분명히 있어. 타임 스토어 때문에 너만 한 아이들이 시간 유전자를 팔기도 해. 그 아이들에게도 이 세상이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티 타임 스토어는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꼭 있어야 하는 단체야.”
“말도 안 돼. 그런 건 다 헛소문이라고.”
“우리가 조사 중이니까 곧 진실이 밝혀질 거야.”

이모는 일 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엄마 말대로 안티 타임 스토어는 문제가 많은 단체 같았다. 이모가 그런 헛소문을 믿다니, 은찬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 pp.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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