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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껴안는 기분

우주를 껴안는 기분

꿈꾸는 돌-40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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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54g | 140*210*14mm
ISBN13 9791192836836
ISBN10 1192836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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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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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는 없어요. 그건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구오진의 요킨과 이곳의 요킨은 같은 사람이에요. 그 사이에 있는 건 기억입니다. 떠나온 곳으로 두 번 다시 갈 수 없다고 해도 그곳에 살았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기억에 남아 있죠. 잊거나 왜곡하려고 해도 기억은 제법 끈질긴 편입니다. 잃은 것이 무엇인지 기억한다면 회복하려고 하겠죠. 완벽한 원상 복구는 불가능할지라도 가까이 갈 수는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요킨을 요킨으로 남아 있게 할 거예요.”

그 순간 공기 중의 뭔가가 약간 달라졌다고 느꼈다. 사정없이 몰아치던 회색 눈보라가 갑자기 그치고 그 사이로 비친 따스한 햇볕이 목덜미를 살짝 어루만지는 느낌.
--- p.58-89 「행성어 작문 시간」 중에서

집 앞에 도착하자 앤은 고맙다고 말했다. 노랗게 불을 밝힌 창을 잠시 올려다본 나는 물었다. 헤카테어로 ‘고맙다’를 어떻게 말하느냐고. 앤의 입에서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따라서 소리 내 보았다. 지상에 낙하한 눈송이가 녹는 것처럼 앤이 조용히 웃었다. 그날 밤, 나는 버스에서 내린 뒤로 통역기를 켜지 않았고 앤도 물론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앤의 언어로, 눈송이가 흩날리는 듯한 소리로 말해 보았다. 고마워. 어쩌면 전혀 다른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앤은 이해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p.123 「앤」 중에서

침대 위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어린 강아지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두 팔 가득 초록 바람을 꼭 껴안고 레몬빛 강아지는 다정하게 내 뺨을 핥는다.
이제 언니는 바람이 되어 어디에나 갈 수 있다. 아무도 언니를 쫓거나 잡지 못한다. 언니는 멀리멀리 간다. 그러나 어느 밤 내가 자는 창가에 와서 노래를 불러 준다. 그러면 나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몹시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에 분명 언니와 나는 함께다. 언니는 내 뺨의 초록 반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나는 조용히 잠에 빠져든다.
--- p.177-178 「레몬 강아지, 초록 바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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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슬픈 소설들이다. 최상희 소설집 『우주를 껴안는 기분』이 내민 손을 꽉 마주 잡고 싶어진다. 소설들 속 세계는 부딪혀 볼 도리 없이 견고해 막막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연약한 듯 강인한 인간의 일. 교실에 앉아 다른 아이들과 이질감을 느껴 본 적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에서 자기 얼굴을 금세 발견할 수 있으리라. 친구처럼 느껴지는 외로움과, 방법을 찾을 수 없는 희망이 자꾸 교차되는 동안 우리는 낯선 행성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길을 잃는다. 이 소설집에서는 애도하는 코끼리와 양부모가 된 여우, 불면증에 걸린 고양이, 레몬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원치 않는 이별은 자꾸 일어나지만 언제나 삶은 다음, 그다음에도 이어진다. “왜 좋아하는 마음은 멋대로 자라는 걸까.” 호감도 0퍼센트에서 시작하는 우정의 예감은 기분 좋고, 다른 행성의 언어로 듣는 자장가는 빈자리에 눈물짓게 하지만, 『우주를 껴안는 기분』의 독서는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 곁에 선다는 의미. 당신이 외롭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의 외로움을 조금은 더 견뎌 보겠다는 다짐. SF의 틀을 투과해 이주, 이민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선은 날카롭고 우리의 품을 살며시 넓힌다. 최상희는 지구의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들에 대해 이야기의 형태를 빌려 질문한다.
-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우주를 껴안는 기분』 속 인간과 비인간의 눈은 우주처럼 깊고 별처럼 빛난다. 그 눈동자를 지닌 존재가 금빛 여우인지, 외계 행성에서 온 우주 난민인지, 멸종 위기 동물인지, 그 어떤 모습을 한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개의치 않는 태도가 무척이나 산뜻하다. 우정의 시작에 조건은 필요 없다. 단지 서로를 향해 눈을 마주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야기는 서로의 까맣고 아득한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으로부터 비롯한다. 이들은 얼음으로 뒤덮이고 비가 그치지 않고 더 이상 벚꽃잎이 흩날리지 않는 혹독한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도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들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끝내 손에 쥐고 놓지 않는 존재를 기어코 살린다.

외로움을 견디면서도 관계보다 손쉬운 단절을 선택하는 세상에서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을 포개고, 등을 쓰다듬고, 목을 그러안는 이들을 보며 껴안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이 뜨거운 여름의 살구처럼 주렁주렁 열린다. 우정의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최상희의 소설에서는 디스토피아마저 순하고 다정하다. 그러나 결코 대책 없는 다정함이 아니다. 이 순하고 다정한 인물들은 가만 앉아 다음을 기다리는 법이 없다. 짙은 어둠 속에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이들이 새긴 발자국을 북극성 삼아 우리 앞에 이어질 길을 상상해 볼 때다. 쭉 뻗은 우리의 두 팔이 어디까지 닿을지, 그 안의 품이 얼마나 넉넉해질지를 말이다. 이제 우리가 기꺼이 우주를 껴안을 차례다.
- 김담희 (사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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