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 중 가장 성공한 CEO이자 경영인 중에서 디자인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김봉진 창업자는 ‘디자인은 예술이 산업에 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디자인은 디자이너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잘 키운 폰트 덕분에 우아한형제들 임직원,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장님들과 무료 배포 폰트를 사용하는 소상공인들의 밥까지 벌어주고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선언으로 남을 돕는 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좋은 폰트, 좋은 디자인은 밥을 벌어줄 수 있다. 배달의민족 한나체가 그걸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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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브랜딩에서 전용 폰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일관되게 다양한 매체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용 폰트는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에 효과적인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한나체 역시 그 기조에 있지만 제작 과정과 평가는 매우 독특하다. 시작은 ‘우리도 전용 폰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김봉진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가벼운 동기처럼 들리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시각적 요소로 전용 폰트의 가치와 영향력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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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에서 을지로체를 디렉팅했던 심우진은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의도적으로 못 그린 폰트를 낸 건 처음이었죠. 이건 차원이 다른 디자인이구나 싶었습니다.”라며 한나체에 대한 충격적인 첫인상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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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란 무엇인가? 힘을 뺀다는 것이다. 힘을 뺀다는 건 쉼을 의미한다. 심각한 것, 경직된 것 그리고 이 꼴 저 꼴 보기 싫은 것으로부터 잠시 멀어짐을 뜻한다. 웃을 때와 맛있는 거 먹을 때, 그 순간만큼은 어깨 근육이 뭉치지 않는다. 배달의민족에는 크게 두 가지 자산이 있다.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유의 감수성으로 ‘풋!’ 하거나 ‘아~’ 하게 만드는 유머와 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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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폰트는 간판, 로고, 유튜브 자막, 공연 포스터, 메뉴판, 시위 현장의 피켓, 프로필 이미지까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온·오프라인에 등장하는 단골 폰트로 확고히 자리 잡으며 한국의 밀레니얼과 젠지가 열렬히 소비하는 동시대 시각언어의 한 형태가 됐다. 어떤 폰트가 사회의 혈관 속으로 한번 흘러들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배달의민족이 이렇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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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 폰트는 바로 이 브랜딩의 꾸준함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김봉진은 2012년 전용 폰트인 한나체를 개발해 고유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이 목소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여느 시각적 이미지와 달리) 유행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어느 매체에서든 동일하게 무한한 발화를 생성할 수 있다. 또한 목소리 특유의 개성, 말투와 말씨가 내용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일정한 톤 앤드 매너를 형성한다. 강렬한 개성에 유머와 위트를 담고 있으며 유행에 관계없이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한나체의 가치는 브랜딩에서 실로 어마어마한 셈이다.
--- pp.178-179, 「브랜딩은 믿음의 영역이다.”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경영하는 디자이너」 중에서
“전용 폰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당장 기업 매출이 오르거나 숫자로 확인 가능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아요. 최고경영자를 상대로 브랜딩의 중요성, 필요성, 효과를 설득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런 브랜딩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를 단순 구매자가 아닌 ‘브랜드 옹호자’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 p.203,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경영하는 디자이너」 중에서
“봉진 님은 매년 우리가 디자인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것을 마치 숙제처럼 내줬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지금까지 개발한 폰트로는 성에 차지 않는구나. 이 사람, 앞으로도 계속 만들겠구나.(웃음)”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 p.221, 「“배달의민족 폰트 개발 방식은 압도적인 톱다운이었다.” - 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중에서
“저는 폰트도 디자인이기 때문에 취향과 개성의 영역에서 판단할 수 있다고 봐요. 좋은 폰트, 나쁜 폰트는 없다는 얘기죠. 한나체는 폰트 디자인의 원리 원칙에 맞지 않았지만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측면에서 좋은 폰트였습니다. 그렇게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었죠.” -석금호 산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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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0년 뒤에도 사랑받을 수 있는 지속성을 염두에 둔다면 물음표를 그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배달의민족 폰트를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보기에 영원한 인기 같은 건 상관없다고 봅니다. 브랜드 자산이자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석금호 산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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