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만이 사진이 찍힌 바로 그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시간은 사진 안에 멈춘 듯 남아있다. 내가 그 사진이 사진첩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도 그 사진은 거기 있었고, 내가 그 사진을 까맣게 잊었을 때도 사진은 거기 있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사라진 것, 이미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을 본다. 그날의 나는, 내 기억에도 남지 않은 그날은 자취를 완전히 감추는 방식으로 내 안에 남았다.
---p.99 「윤해서, 〈사라짐, 은폐〉」 중에서
오키나와에 놀러 갔을 때 하늘이 지나치게 푸르고 꽃은 붉고 빛은 환해서 모든 색들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여태 보았던 오키나와를 찍은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라서인지 오키나와를 떠올리면 한쪽에서는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한 원색들의 풍경이 떠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마쓰 쇼메이가 찍은 흑백의 오키나와 하늘과 마오 이시카와가 찍은 어딘가 피로한 얼굴의 여자들 피로가 운명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어 있는 흑백사진 속 여자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p.107 「박솔뫼, 〈기억하고 있는 흑백사진들〉」 중에서
흑백화면에 잘 정돈되어 담긴 세계는 실제 현실의 다이제스트판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매체의 기술적 한계는 매체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이미 극복된 한계를 부득불 되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그가 만들고자 한 언어의 고유성을 설명할 것이다. 그 언어는 제물을 바치고 신탁을 듣는 고대의 소통방식을 닮았다. 작가는 흑백필터를 통해 열화하는 것들을 흠향한다. 열화 되는 것은 단순하게 표현하면 세계의 군더더기처럼 느껴지지만 작가가 제물로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들이 결핍된 세계에서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p.112 「현호정, 〈이제 너는 날개와 부리를 가져야 하고〉」 중에서
사진의 지난 역사와 오래된 가족앨범 속 흑백사진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흑백사진을 컬러가 ‘없던’ 시절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누군가는 흑백을 색이 결여된 것으로 여기겠지만, 이를 결여의 관점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생성 조건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 흑백사진이라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써본다. 컬러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상을 드러내는 사진. 회색의 스케일을 조정해 그것으로 충분한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 명암이 아름답게 드리우는 사진. 빛을 보
여주기 위해 색을 가린 사진. 어떤 흑백사진까지 포괄할 수 있는 말들일지는 모르겠지만, 흑백사진을 보는 관점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는 데 꽤 도움이 된다.
---p.118 「신예슬, 〈흑백, 빛과 그림자, 색〉」 중에서
모름지기 사진은 필름으로 찍어야 참사진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름지기 문학은 원고지에 연필로 써야 참문학이라는 생각처럼 빠르게 지나간 시절이었다. 모름지기 사진의 정수가 흑백사진에 있다는 생각은 어떨까. 사진의 정수가 무엇인지 몰라 오락가락하는 내겐 솔깃한 규정이지만, 그래도 그쯤은 안다. 그런 정수가 필름이나 흑백에 있을 리 없다는 걸.
---p.124 「노순택, 〈나의 흑백 흐릿하고〉」 중에서
스티븐 쇼어가 컬러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던 것은 미국의 어떤 껍질 같은 것이었다. 그는 워커 에반스나 로버트 프랭크처럼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했지만, 선배들처럼 미국의 숨겨진 모습이나 시각적 질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좀처럼 그 구조를 드러내지 않는, 오직 덧없는 일상과 표면만이 있는 세계. 주유소와 모텔, 교외의 단층 주택, 화장실, 자신이 먹은 음식, 길과 교차로, 자신이 잤던 침대 같은 것들을 찍어내는 데 한때의 사진 분더킨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걸작과는 거리가 먼 그의 이 느슨한 컬러사진들은 스멀스멀 분열하여 오늘날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가득 채운다.
---p.134 「김현호, 〈스티븐 쇼어, 컬러로 찍은 미국의 껍질〉」 중에서
사진을 함께 관람하는 것을 통해 잠시일지라도 하나의 공동체가 설립되는 작은 기적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때 사진의 효능은 사진에 관한 질문 속에 포함되어야하지 않을까.〈나의 올드 오크〉속에서의 사진이란 함께한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는 아둔한 이미지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함께 사진을 관람하고 그 사진이 매개하는 세계가 공통의 세계였음을 자각하도록 하는 사진이다. 사진은 희미한 유토피아적 열정을 타전하고 이를 수신한 이들은 자신들이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열정으로 그에 답신한다.
---p.141 「서동진, 〈사진 유토피아: 켄 로치 영화 속의 사진들〉」 중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을 사실이나 사건, 정보나 이야기 등의 체계적 집적으로 간주한다면 베닝의 영화는 역사와는 아예 무관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27년의 차이를 철저히 공백으로 두고 병치된 이중적 구성물을 보면서 이것이 기억과 시간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밀워키 태생으로 이 도시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 거기서 유년기를 보냈던 베닝 자신의 개인적기억 같은 것은 영화에 없다. 여기서 기억이란 이 영화의 구조에 호기심을 느낀 관객이 저마다 마음에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가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무늬일 터다.
---p.143 「유운성, 〈역사를 노래하는 부기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