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정말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사람은 여태까지 살아온 자기 과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바뀐다.
--- p.5, 「글머리에_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중에서
우리는 “팔자가 꼬인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람이 쓰는 말에는 하늘이 내린 지혜가 담겨 있다. “팔자가 꼬인다”라는 말은 팔자가 꼬이는 것이 문제지 사람의 팔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역경은 인생사의 매 경우마다 적절한 조언을 제공하는데, 이 조언을 따르지 않을 때 팔자가 꼬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의 조언을 따르면 팔자가 꼬이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운이 좋아진다.
--- p.10, 「시작하며_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중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정대로 달성해 내는 강한 운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사람은 극단의 경계에까지 내몰려 있다. 특히 오십에 이른 많은 사람이 쉬쉬하지만 심리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극단에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보다도 더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운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자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 p.25, 「운이란 좋고 나쁨이 없다 / 운」 중에서
이 세상에 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태한 사람, 방만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길운을 다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흉운을 섞어 넣음으로써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의 구조라는 것이다.
--- p.39, 「길흉을 만나야 대업을 이룬다 / 길흉」 중에서
흔히 “아이고, 내 팔자야” 내지 “내 팔자는 왜 이리 사나운가” 하고 팔자 탓을 한다. 하지만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팔자가 꼬이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의 팔자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사람은 주어진 팔자대로 다 살아 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며, 자신의 팔자를 그대로 실현할 때 가장 뿌듯한 충일감을 느낄 수 있다.
--- p.53, 「모두가 각자 인생의 일등이다 / 팔자」 중에서
오십에 이른 이는 이제 자기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오십이 하늘에 올랐다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살아왔던 땅의 세상을 내려다보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더 이상 운에 치이지도 않는다.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오십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날아야 할 용이 비로소 하늘에 올랐다는 것은 이를 뜻하는 말이다.
--- p.99, 「오십은 용이 비로소 하늘에 오를 때다 / 오십」 중에서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나의 과거는 가변적인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비참한 과거였는가,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었는가? 무의미한 과거였는가, 유의미한 과정이었는가? 전반생이 어느 쪽이었는지 ‘지금의 나’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생을 통해 그 결정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삶이 완성된다. 결국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오늘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나의 마음은 그토록 놀라운 것이다. 이것이 인간 정신의 힘이다.
--- p.155,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중에서
사람이 나이 오십에 이르면 인생 경륜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역경이 “오직 기미를 살피는 연고로 능히 천하의 책무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조언하는 것은 경륜의 요체가 기미를 살필 줄 아는 지혜에 있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사람이 나이 오십에 이르면 무엇보다 기미를 살핌에 힘쓸 일이다.
--- p.198,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에 현명하게 처신하라 / 기미」 중에서
군자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역경은 “믿음을 갖고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형통할 것”이라 말한다. 형통할 것이라는 말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 p.246, 「어떤 상황에서든 약해지지 않으려면」 중에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인지라 나날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인생에서 어느 특정 시점에만 깊이 있는 사귐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사람이 가장 현실에 매이는 삶을 사는 시기는 나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세파를 헤치며 치열한 삶을 사는 전반생 동안이다. 사람은 전반생을 거친 후 후반생에 이르러 정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삶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정말 깊이 있는 사귐이 가능한 것이다.
--- p.258,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_사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