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유라시아 여행을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들 쫄바지에 근육질의 프로 사이클러를 떠올리지만, 나는 자전거가 힘든 줄을 몰라 자전거를 택한 철없는 저질 체력의 직장인이다. 유라시아 여행, 내 힘으로 천천히 가보고 싶은데 걷기에는 너무 느릴 것 같고 자전거 정도가 좋겠는데? 라는 순진한 생각이 이 여행의 첫 발상이었다.
자전거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타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을 나오기 한 달 전 테스트 삼아 국내 여행을 하면서 30여 년 평생 처음 자전거로 오르막을 올라봤다. 자전거로 오르막 오르기가 걸어서 오르막 오르기보다 빡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당연했다. 자전거는 홀몸이 아니라 족히 20킬로그램은 될 짐까지 매달고 있었다. 하찮은 오르막에도 목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오르막마다 골고다 언덕인 것이다. 이 체력으로 과연 자전거 여행, 갈 수 있을까?
--- 「황산에서 황주를 마신 이야기」 중에서
히옌은 내게 많이 먹으라며 밥에 계란말이를 올려준다.
“Don’t hungry. Don’t hungry(배부르게 먹어. 많이 먹어).”
히옌의 서툰 영어에 울컥한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 배고프지 말라는 그 마음에 오늘도 살게 된 것이 고마워서. 이렇게 큰 지구에서 먼지같이 아주 조그만 사람이, 먼지같이 아주 조그만 사람 하나 덕분에 또 살게 되는 것 같아서. 계란말이를 꿀꺽 삼켰다.
--- 「먼지와 같은 존재일지라도」 중에서
중간중간 버스가 멈출 때 음식을 파는 행상이 몇몇 올라탔지만 다 비닐 포장이라 안 먹었다. 한 행상이 스티로폼 용기와 랩으로 잘 포장된 포멜로(자몽 비슷한 과일로 내가 너무 좋아함)와 비닐봉지에 두 번 싼 옥수수(내가 환장함)를 들고 올라탔을 때 나는 비닐이란 무엇인가, 나란 놈은 무엇인가 되뇌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오전에 자전거를 타며 기력을 소비해서인지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3시경부터는 당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다 배가 무지 고플 때 몸이 이렇게 된다. 혈액순환이 안 되어 몸이 굳어지는 느낌. 잠시 명상을 한다 생각하고 몸에 기를 돌리는 시뮬레이션을 하니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일단은 괜찮은 것 같다며 몸에 가스라이팅을 시전했다.
--- 「자전거 타기가 제일 쉬웠어요」 중에서
서로의 얼굴과 주변의 존재가 보이는 작은 공동체. 내가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공동체. 공동체가 굴러가는 데 뭔가 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 시사아속은 예전에 세계 대안 공동체 마을의 한 사례로 한국 언론에 소개됐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그곳에, 마침내 가게 된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축제 현장 사이로는 ‘손해가 곧 이익이다(Our Loss is Our Gain)’라는 아속 공동체의 철학이 적힌 현수막이 나부꼈다. 또 다른 사회가 있었다. 내가 알던 사회 논리와는 다른 논리를 가진 사회, 내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상식이 통하는 사회, 내가 꿈만 꾸었던 사회를 누군가는 직접 살아가고 있었다.
--- 「공동체가 나를 살렸다」 중에서
어제 계획은 분명히 오늘 아침에 출발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염색 일을 구경하다가, 아이들이랑 동네 구경도 하고, 동네 이발소에서 달밤님 이발도 하고, 오후에는 아저씨와 이웃집 아저씨를 따라가서 전통 양조장도 구경하고 술도 마셔보고 하다 보니 오늘 출발하기는 자연스럽게 글러졌을 무렵, 아저씨가 물었다.
“내일 말고 내일모레 가는 건 어때?”
그렇게 해서 세 밤이 된다. 아줌마는 오늘도 내게 담요를 꼼꼼히 덮어주었다.
--- 「마니푸르의 삼일야화」 중에서
안전을 이유로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긴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버스를 탄 구간은 내게 계속 미지의 공간, 그저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겠구나. 몸에 맞추자면 시간이 갈수록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아질 텐데, 계속 포기하면서 부러워만 하고 싶지는 않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해나가는 것, 미지의 영역에 들어가 보는 것, 인생에 한 번씩은 이런 도전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 고생, 그 고독, 그 고단함 속에서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을 겪고 싶은 것이다.
--- 「다 컸어, 파미르도 혼자 가고」 중에서
레자 아저씨네 집은 마당이 넓었다. 아저씨와 나세르는 토마토와 닭고기를 사 와서 마당에서 닭고기를 양념하고, 케밥을 만들고, 불을 피우고, 부채질을 해가며 토마토와 닭을 굽고, 부엌에서 아저씨 부인은 쌀을 삶아 감자 위에 부어 식용유를 섞어 쪘다. 장장 3시간 동안 안팎에서 요리한 끝에 점심은 3시경에 완성된다. 맛있게 먹고 놀다 보니 해질녘, 슬슬 나갈 준비를 하는데 레자 아저씨가 다시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자고 가라고. 다시금 마음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낌없이 주는 레자 아저씨.
--- 「이란, 반전과 재반전의 나라」 중에서
위태로운 분위기를 흩으려야 한다. 무서워하면 상대가 진짜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기사는 트럭에서 내릴 때의 스킨십 이후 내가 기사를 슬쩍슬쩍 피하는 것을 진작에 눈치챘는지 물었다.
“왜 나를 무서워해?”
“아니? 안 무서워.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앵무새처럼 대꾸를 반복한다. 흑해에 가까워지는 동안 날은 저물어 완연한 어둠이 내렸다. 여전히 도로에는 지나는 차도 인적도 없는데,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지금 트라브존 쪽은 차가 막힐 시간이야. 기다렸다 가자.”
기사는 차 문을 철컥 잠근다. 내 쪽으로 몸을 돌려 가까이 다가앉는다. 심장이 떨리는 게 손까지 전달되어 오랜만에 손이 떨린다. 호신용 스프레이는 벌써 뚜껑까지 열어 주머니 안으로 쥐고 있었지만 차 문이 잠긴 상태에서는 무엇도 소용없어 보였다.
--- 「트럭에서 만난 천국과 지옥」 중에서
조용한 라이딩에 가끔씩 변수가 된 것은 개다. 개의 국민성, 아니 국견(犬)성을 논할 수 있다면, 가장 호전적인 견족으로 태국 견족과 튀르키예 견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 개들은 태국 개들보다 평균적으로 덩치가 컸다. 짖는 소리도 컸다. 그러나 나는 이제 태국에서처럼 개에 쫄지 않았다.
인도 라다크에서 개에 물리고서 매일 상처에 비누를 문질러 소독하면서 나는 개와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대자연에서 개와 나는 만인 대 만인으로 맞서야 했다. 그 이후 파미르의 역풍 속 너덜하게 악만 남아 있던 때, 짖으며 달려오던 개에게 나도 놀랄 정도로 고함을 지르게 된다. 이렇게 여행 1년 만에 나는 번듯한 개 쫓는 자로 성장한 것이다.
---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지는 지겨움」 중에서